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75화 (175/209)

175화

오클랜드 슬랙스의 3회 초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투아웃 만루, 다시 한번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커다란 폼으로 자세를 잡았다.

이미 첫 타석에서 2루타를 치고, 두 번째 타석이었던 3회 초 선두 타석에서 솔로 홈런을 기록했다.

현재 스코어는 5:0이 되었으니 대호는 이미 승기가 자신들 쪽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해, 조금 더 과감하게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부웅!

투구가 들어오기 전 크게 체크 스윙을 하며 상대의 기를 죽이려고 했다.

메이저리그의 거물 타자가 그런 큰 스윙을 하자, 상대 투수는 쉽게 공을 던지지 못했다.

‘기선 제압은 됐고.’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불펜 투수가 움츠러든 것을 본 대호는 살짝 고개를 돌려 포수를 바라보았다.

‘포수도 기가 죽었군!’

돌아보니 포수 또한 자신의 스윙에 기가 죽은 모습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적에게 보여 줄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얼른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

휘익!

따아악!

스윙을 가져가는데, 욕심이 과했는지 그만 힘이 들어가 타격 포인트가 살짝 흔들렸다.

다다다다.

타격음을 들은 대호는 투구를 확인하지도 않고 1루로 뛰었다.

‘저건 홈런이 아냐!’

스윙을 한 뒤 손에 남은 감각을 보면, 절대로 홈런이 될 타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1루로 뛴 것이다.

칙!

1루 베이스를 밟은 대호는 바로 2루로 향해 뛰었다.

그 사이 주자들은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3루 주자는 홈으로,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했고, 아직 3루에 도착하지 못한 1루 주자는 3루 선상에 서 있는 주루 코치를 주시했다.

‘뛰어!’

오른팔을 빙빙 돌리고 있는 주루 코치의 모습에 시몬은 급히 홈으로 뛰었다.

1루 주자였던 시몬은 주루 코치의 신호에 3루를 짧게 돌아 홈으로 뛰었다.

그 사이 대호는 2루를 지나 3루로 뛰고 있었다.

한편 우익수 방면으로 날아갔던 타구는 우익선상을 따라 한 번 바운드를 하고는 우익수 방향 구석으로 굴러갔다.

급하게 공을 따라 구석까지 들어가 공을 주운 우익수 메트 비에링은 급히 홈으로 송구를 하였다.

휘익!

홈으로 들어오는 시몬과 우익수가 던진 공을 잡기 위해 자세를 잡은 하스, 두 사람은 홈에서 아슬아슬한 승부를 펼쳤다.

다만 비에링의 송구가 살짝 좋지 못했다.

좌측으로 조금 치우쳐 날아가다 보니 왼손잡이인 하스가 포구하기가 살짝 힘들어진 것이다.

팡!

휘익!

공을 잡은 하스가 급히 몸을 틀어 홈으로 들어오는 시몬의 몸을 태그하려 하였지만, 시몬도 그냥 메이저리거가 된 것이 아님을 보여 주듯 하스의 손을 피해 우측으로 반 바퀴 돌아 들어가는 슬라이딩을 하며 그 손길을 피했다.

촤아아!

“세이프! 세이프!”

손바닥 하나 차이로 포수의 글러브를 피해 홈플레이트를 터치하고 들어간 시몬은 미끄러지던 탄력을 이용해 바로 몸을 일으키며 포효를 하였다.

“으아아아!”

“와아아!”

짝짝짝짝!

시몬의 포효와 함께 관중석에 있던 오클랜드의 원정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싹쓸이 3루타.

한 번에 3점이나 추가되는 추가 안타가 나왔다.

“정대호 선수 싹쓸이 3루타! 3루타가 나왔습니다.”

김승주는 3루에서 손을 번쩍 들고 있는 대호를 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에 뒤이어 하구연 해설도 포효를 하듯 소리쳤다.

“우리의 정대호 선수 3회 두 번째 타석에서 3루타를 추가합니다. 이로써 정대호 선수 짧은 단타 하나면, 올 시즌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 여기 메이저리그에서는 힛 포 더 사이클이라 불리는 기록을 쓸 수 있습니다.”

하구연 해설은 흥분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마구 떠들어 댔다.

하지만 이를 TV를 통해 듣고 있는 메이저리그 팬들은 두 눈이 동그래질 만한 이야기였다.

이제 겨우 3회였다.

그런데 대호는 힛 포 더 사이클에서 불과 1루타 하나만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대호의 싹쓸이 3루타로 스코어가 8:0이 되자, 몇몇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이제 겨우 3회 초인데, 벌써부터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팬 일부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관중석 일부에서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팬이 경기장을 떠나는 모습에 김승주는 신난다는 듯 떠들었다.

“아직 경기 초반인데, 8점 차가 되어 버린 점이 너무 큽니다.”

야구에서 8점 차이가 크다면 크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역전이 불가능한 점수는 아니다.

더욱이 현재 3이닝이지 않은가?

홈인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입장에서 아직 7회나 공격 기회가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디트로이트 팬들은 벌써부터 패배를 받아들인 것처럼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아! 저기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어린 팬이 울고 있군요.”

참으로 잔인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팬을 쫓기 위해 관중석을 찍고 있던 카메라에 경기장을 보며 울고 있는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어린 팬의 모습이 보였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하비 바이스 선수의 저지를 입고서 울고 있는 어린 팬의 모습은 디트로이트 팬들로 하여금 분노 하게 만들었다.

“우우우우!”

누구를 향한 것일까?

코메리카 파크 내를 울리는 야유는 점점 시간이 갈수록 거세졌다.

그것을 보면 적인 오클랜드 슬랙스를 향한다기보다, 이런 형편없는 경기로 팬을 실망시킨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를 향한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예, 맞습니다. 지금 경기장의 관중들이 보내는 야유는 원정 팀인 오클랜드가 아닌 홈팀인 디트로이트를 향하고 있거든요.”

하구연 해설도 인상을 쓰며 현 상황을 설명했다.

따악!

이미 기가 꺾여 버린 투수의 공을 지미 울프가 놓치지 않았다.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가 나왔다.

또다시 득점하는 대호, 그리고 1루에 진루한 지미 울프.

그러자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서 다시 한 번 투수 교체를 요청했다.

선발 베스트 윌이 3회 4점과 주자 두 명을 내보내고 교체가 된 이후 불펜 투수 메이슨이 비자책점 2점과 자책점 2점을 내주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로써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선발 베스트 윌은 2이닝 자책점 7점, 릴리프 메이슨 잉그리트는 0과 3분의 2이닝 만에 3점을 내주고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세 번째 마운드에 오른 투수는 올 시즌 ERA 3.44의 턴블 스텐튼이었다.

턴블 스텐튼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서 메이슨 잉그리트와 함께 차세대 기대주로 키우고 있는 롱 릴리프다.

다만 조금 전 메이슨이 불과 3분의 2이닝 만에 무너진 것을 보며 조금은 불안한 출발을 하였다.

팡!

“Walk!”

오클랜드의 3번 타자 켈리 달튼을 볼넷으로 내보낸 턴블은 다음 타자인 홈런 브레드를 투심 패스트볼을 던져 유격수 앞 땅볼로 처리하며, 길었던 3회 수비를 끝냈다.

그런데 수비를 끝내고 들어간 더그아웃에는 오늘 선발이었던 베스트 윌이나 릴리프로 나왔던 메이슨 잉그리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디트로이트의 에이스이자 선발투수였던 베스트 윌이 7실점을 하고, 릴리프인 메이슨 또한 3분의 2이닝 동안 3실점을 하였으니 교체 후 더그아웃에 남아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가 이렇게 3회에 급격히 무너진 것과 반대로 오클랜드 슬랙스는 3회 말 수비에서도 비록 안타 하나를 내주긴 했지만, 점수를 잃지 않고 잘 막아 냈다.

그리고 대호는 힛 포 더 사이클에서 안타 하나만을 남겨 둔 상태에서 5회 네 번째 타석에서 볼넷, 그리고 다섯 번째 타석에서도 볼넷으로 나갔지만, 9회 초 여섯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뽑아냄으로써 시즌 두 번째 힛 포 더 사이클을 달성했다.

이날 오클랜드 슬랙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스코어는 16:3으로 두 자리 수 점수 차를 내며 디트로이트 라이온스가 대패를 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이날 디트로이트 일간지는 물론이고, 주요 스포츠 채널에서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대패 소식을 대서특필하였다.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원정에서 2패를 하고 돌아와 홈에서 3승, 그리고 다시 원정에서 1승을 하며 4승2패로 대역전승을 거뒀던 상대에게 무려 13점 차라는 끔찍한 점수 차로 패배를 하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더욱이 팀의 에이스가 2이닝을 던지고 3회에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한 채 5점을 내주고, 또 주자 두 명을 내보낸 상태에서 교체가 되었다.

차세대 에이스라 불리며 부족한 선발진을 대신해 롱 릴리프 역할을 하던 메이슨 잉그리트와 턴블 스텐튼도 대량 실점을 하였다.

그런데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팬들을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비단 이날뿐만 아니라 다음 홈 두 경기에서도 오클랜드 슬랙스를 맞아 또다시 두 자릿수 차이를 내며 패배했다는 점이었다.

이날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는 2선발 포 브리스키를 내보냈지만 4회 4실점으로 물러난데 반해, 체프 벤은 6이닝 1실점으로 98구를 던지며,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였다.

또 오클랜드 슬랙스 불펜과 마무리 투수가 3이닝 동안 1실점을 하는 동안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불펜은 남은 이닝 동안 11점을 더 내주면서 작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대호는 이날도 1타석 1안타 2볼넷을 기록하고 7회에 교체되었다.

남아 있던 원정 2경기에서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를 상대로 2승을 거둔 오클랜드는 스윕을 하면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배했던 것을 완벽하게 복수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 복수를 한 오클랜드 슬랙스는 시카고로 떠났다.

* * *

시카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메이저리그 구단이 아닌, NBA구단인 시카고 불스다.

메이저리그 구단이 두 개나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시카고하면 시카고 불스가 떠오르는 것은, 한때 그들이 NBA를 석권하며 왕조를 이룩했었기 때문이다.

즉, 메이저리그의 뉴욕 킹덤즈와 같은 위치에 있다 보니 메이저리그 구단 두 곳의 인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더욱이 부자 구단이면서도 100년이 넘도록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가 없는 시카고 캅스에 비해 몇 차례나 리그 우승 트로피를 가지고 있는 불스를 응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아무튼 그럼에도 미국 4대 스포츠 리그 중 하나인 메이저리그 구단이 한 도시에 두 개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별로 볼 것도 없는데?”

브렛은 시카고 시내를 돌아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우리 구단보다 부자 구단들이야!”

켈리는 투덜거리는 브렛을 보며 씁쓸한 고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셔널리그인 시카고 캅스는 물론이고, 아메리칸리그 소속인 시카고 블랙스타킹스도 자신들의 팀인 오클랜드 슬랙스보단 부자 구단이란 것을 강조했다.

“아, 젠장! 괜히 짜증나네!”

브렛은 무엇 때문인지 이곳에 도착하고부터 이렇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브렛, 시카고와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 거야?”

대호는 자꾸만 투덜거리고 있는 그를 보며 물었다.

“응, 실은…….”

대호의 질문에 머뭇거리던 브렛이 자신이 오래 전 경험했던 악연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랬다.

하이 싱글A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었다.

싱글A에서 그럭저럭 성적을 내 더블A로 콜업 되었다가 성적 미달로 아래 리그로 떨어졌는데, 싱글A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하이 싱글A에 가게 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스탈린 소사란 놈이 있었는데, 어찌나 텃세를 부리는지……. 적응하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몰라!”

“스탈린? 이름이 무슨 공산당 서기장 같은 이름이냐?”

브렛이 자신을 괴롭힌 누군가의 이름을 언급하자 켈리도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대호는 조용히 브렛의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맞아! 그놈은 이름만큼이나 FXXX한 놈이었지.”

옛 일을 떠올린 브렛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런데 내가 하이 싱글A에 갔을 때는 그런 사람 못 봤는데?”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물었다.

“그거야 짜증 나는 놈이었지만 실력은 좋아서 더블A로 콜업 되었으니 넌 모르지.”

“응? 하지만 더블A에서도 못 봤는데?”

대호는 더블A에 콜업 되었을 때도 방금 브렛이 얘기한 이름을 보지 못했다.

“응. 그 자식, 트레이드 되었더라고.”

“아!”

대호는 트레이드 되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가 못 본 게 당연하네. 그런데 어디로 트레이드 된 거야?”

“그건 몰라. 하지만 그 새끼가 하던 말을 떠올려 보면, 이곳 시카고 출신이란 것은 기억하고 있어.”

브렛은 옛 기억 속 악연이던 마이너리거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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