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틱!
“파울!”
예상이 빗나갔다.
베스트 윌이 흥분하기는 했지만, 그가 무엇 때문에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에이스라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런… 싱커라니.’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베스트 윌이 던지는 구종 중 싱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싱커란 구종은 흥분한 상태에서 쉽게 던질 수 있는 구종이 아니다.
휘면서 뚝 떨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보니 컨트롤이 힘들기 때문이다.
‘흥분한 상태에서도 싱커가 이 정도나 제구가 되다니, 역시라고 해야 하나?’
지능 스탯을 빼고 모든 스탯이 70포인트를 넘어간 뒤로 대호는 자만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상태창에 나타난 스탯 포인트는 20―80 스케일을 본 딴 것이었다.
이는 대호가 몇 번의 회귀를 하면서 알아낸 비밀이다.
그렇기에 어떠한 스탯이 70스케일을 넘어섰다는 말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역사적으로 손에 꼽을 수 있는 월드 스타급 재능이란 뜻이었다.
그런데 대호는 그런 월드 스타급 스탯이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지능 스탯을 뺀 모든 스탯이 70스케일, 혹은 그걸 뛰어넘는 수치였다.
심지어 이번 4회차에서는 스탯을 복합적으로 사용하여 투수가 던지는 볼의 구종이나 궤적을 알 수 있는 스킬도 습득하게 되었다.
그것으로 벌써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경신하지 않았나?
물론 그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선 많은 스탯이 소모되고, 컨디션을 회복하는데도 시간이 꽤 걸린다.
잘만 사용하면 자신이 목표했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이 쉽게 가능하겠지만, 그 효능에 눈이 멀어 무리하게 썼다간 순식간에 골로 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얼마 전에 깨달은 대호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자신 정도면 충분히 자만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방금 전 상황을 되짚어 보면,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무조건적으로 상대를 찍어 누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여기에 있는 이들도 나와 같진 않겠지만, 모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메이저리그에 콜업 된 거야!’
대호는 자신이 예상한 구종이 아닌 엉뚱한 공이 날아오는 바람에 헛스윙을 하였다.
더욱이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투수가 던진 구종은 흥분한 상태에서 던져서는 절대 제대로 된 공을 던질 수 없는 구종이다.
하지만 대호는 이에 완벽하게 속았고, 베스트 윌이 던진 공은 제대로 제구가 되어 포심 패스트 볼처럼 날아오다가 몸 쪽 낮은 곳으로 공 하나 정도 떨어지는 위치에 도달했다.
대호는 처음 궤적만 보고 흥분한 투수가 실투로 정가운데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팡!
“스트라이크!”
방금 들어온 공은 12―6으로 떨어지는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에이스, 베스트 윌의 또 다른 무기인 82마일짜리 폭포수 커브였다.
96마일 포심 패스트볼과 94마일짜리 싱커를 본 뒤 바로 82마일의 느린 커브를 보았으니, 아무리 대호라도 공이 들어오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
자신들의 에이스가 메이저리그 역대급 강타자에게 연거푸 헛스윙과 꼼짝 못하는 스트라이크를 잡아내자,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팬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베스트 윌 선수 엄청나네요.”
“맞습니다. 조금 흥분하기는 했지만, 베스트 윌 선수는 그 자신이 왜 작년 월드 시리즈 준우승을 한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에이스인지 보여 주고 있습니다.”
김승주와 하구연은 방금 전 들어온 82마일의 폭포수 커브에 꼼짝 못하는 대호를 변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놀라운 공을 보았기에 그런 것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베스트 윌의 투구를 칭찬하였다.
뚜두둑! 뚜둑!
어느새 볼카운트는 2B 2S가 되었다.
이에 대호는 조금 전 자만심에 빠졌던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긴장된 몸을 풀기 위해 목을 좌우로 돌리고 어깨를 돌리는 등 신체의 긴장감을 해소시켰다.
그러면서 자신의 타격 리듬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어떻게 보면 야구란 스포츠는 투수보단 타자가 유리한 감이 없지 않았다.
물론 몇몇 야구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 중 그 반대의 의견을 내는 이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투수가 타자를 아웃시키기 위해선 수비수의 도움을 받거나, 아니면 최소 공 세 개는 던져야 한다.
그런데 타자는 투수가 던지는 공 중 한 번만 치고 베이스를 밟으면 된다.
대호고 타자와 투수의 대결에 있어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렇기에 지금 볼카운트가 2B 2S로 투수에게 유리한 상황이라 하지만 대호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어차피 공 하나만 치면 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후웁! 후우!’
속으로 나직하게 심호흡을 하고 숨을 내뱉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투수가 흥분한 것은 맞았지만, 상대도 자신이 무엇 때문에 메이저리그 구단 중 하나인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에이스인지 증명을 했기에 절로 감각이 고조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주 쓰지 않겠다 다짐했던 스킬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였다.
‘보인다. 싱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투수 베스트 윌이 가진 싱커는 종적 변화와 횡적 변화가 적절히 뒤섞인 이상적인 구질이었다.
사실 이런 뛰어난 변화를 보여 주는 싱커를 가졌기에 그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히는 에이스 투수가 될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대호도 한 시즌에 70개의 홈런을 치고, 안타도 220개 이상을 치는 선수.
따아아악!
가운데로 날아오던 공이 변화를 보이면서 대호의 몸 안쪽으로 휘어 들어왔다.
그것을 대호는 마치 처음부터 싱커를 던질 줄 알았다는 듯 어퍼 스윙으로 퍼 올렸다.
웅성웅성!
맑은 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솟은 타구는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홈구장인 코메리카 파크의 펜스를 넘겼다.
정확한 타이밍에 배트를 휘두르고, 또 공이 떨어지는 코스에 정확하게 배트의 히팅 포인트를 가져다 대다 보니, 93마일로 날아든 싱커는 배트의 궤적을 피하지 못하고 배트와 부딪혀 그 반발력에 빠르게 튀어 나갔다.
그리고 코메리카 파크의 가장 먼 중앙 펜스를 넘어 전광판에 맞는 대형 홈런이 되었다.
타타타타!
대호는 조깅을 하듯 느리게 코메리카 파크의 베이스를 돌았다.
그 순간 코메리카 파크는 도서관처럼 침묵만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몇 되지 않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원정 팬과 대호의 솔로포에 환호하는 팀원들로 인해 다시금 뜨겁게 달아올랐다.
“우와아아!”
비록 중부 지구에 속한 디트로이트 원정이다 보니 팬들이 많이 따라오진 못했다.
그렇지만 대호의 이번 홈런에 힘입어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팬들에 뒤지지 않는 목소리를 냈다.
“우와! 정대호!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정대호 선수, 홈런! 홈런입니다.”
“하하하. 홈런이 나오긴 했지만, 투수가 못 던진 것은 아닙니다.”
“네, 그런데 조금 전 홈런을 맞은 공이 어떤 공이었지요?”
김승주는 홈런이 나오자 자리에서 튀어 오를 정도로 기뻐하며 대호의 이름을 목청 높여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나운서의 본분에 맞게 조금 전 대호가 친 홈런 타구의 공의 구질을 물었다.
“조금 전 정대호 선수가 홈런을 친 볼은 투수가 3구에 던졌던 싱커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구연 해설은 방금 전 공에서 포심 패스트볼처럼 날아오다 타석 앞에서 살짝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베스트 윌 투수가 던진 것을 싱커라 말했던 것이다.
“싱커를 받아쳤는데, 저렇게 중앙 전광판을 맞추는 대형 홈런이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까?”
“다른 선수라면 좀 힘들겠지만, 힘과 배트 컨트롤이 좋은 정대호 선수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봅니다.”
“그렇습니까?”
“예. 정대호 선수의 힘, 그리고 배트 스피드에 베스트 윌 선수의 93마일 빠른 싱커가 더해진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아!”
설명을 들은 김승주는 짧은 탄성을 질렀다.
김승주와 하구연 해설이 이렇게 대호의 대형 홈런에 대해 분석하고 있을 때, 오클랜드 슬랙스는 대호의 솔로 홈런으로 1점을 추가해 2:0으로 앞서 나갔다.
그런데 2번 타자 지미 울프에 이어 오늘 3번 타자로 타순이 바뀐 켈리 달튼도 연달아 안타를 치며 지미 울프를 불러들였다.
3회에만 대호의 홈런에 이어 지미 울프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2점이 추가된 셈이었다.
따악!
“홈런 브레드, 오클랜드의 주장 홈런 브레드가 내야를 벗어나는 안타를 쳤습니다.”
김승주는 연속해서 안타가 터져 나오자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쳤다.
“2루에 있던 켈리 달튼! 켈리 달튼, 3루를 지나 홈으로, 홈으로 뜁니다.”
3유간을 뚫는 안타가 나오자, 2루에 있던 켈리 달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3루를 지나 홈으로 뛰었다.
지금이야 메이저리그 콜업이 되고 주전으로 경기에 뛰기 위해 3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하기는 했지만, 그의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그 말은 그의 발이 결코 느리지 않다는 소리였다.
내야 안타만 되어도 충분히 베이스 하나는 진루할 수 있는데, 내야를 벗어나 좌익수 앞으로 굴러가는 안타가 나왔으니 당연히 3루에 멈추지 않고 홈까지 달린 것이다.
살짝 타이밍이 애매하긴 했지만, 켈리 달튼은 자신의 발을 믿었다.
휘이익!
촤아아악!
접전이 될 것을 알기에 켈리는 포수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다 슬라이딩을 하였다.
한편 홈런이 친 타구는 좌익수가 잡아 홈으로 송구하였다.
펑!
좌익수 앞으로 굴러온 안타였기에 굳이 중계 플레이가 필요하지 않아 다이렉트로 포수에게 날아들었다.
휙!
포수가 공을 잡고 태그를 하기 위해 몸을 틀었지만, 켈리의 손이 먼저 홈 플레이트를 짚고 지나갔다.
“세이프!”
주심의 판정은 켈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를 승복하지 못한 포수가 더그아웃을 보며 손으로 네모를 그렸다.
챌린지 요청이었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요청으로 비디오 판독이 진행되자 장내는 조용해졌다.
그리고 잠시 뒤, 비디오 판독을 마치고 돌아본 주심은 양손을 옆으로 벌리며 기존 판정을 유지했다.
“우우우우!”
챌린지 요청이 기존대로 세이프 선언되면서 오클랜드 슬랙스가 또다시 점수를 내자 야유성이 울려 퍼졌다.
3회만 무려 3점을 뽑아내며 4:0으로 달아나자 관중석에서 안 좋은 반응이 일었고,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더그아웃도 급히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 위로 올랐다.
선두 타자인 대호의 홈런을 필두로 연속 3안타를 맞았다.
아무리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가 자신들의 에이스라 하지만, 3회 4실점은 라이온스의 코칭스태프들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더욱이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한 노아웃 상황이 아니던가.
마운드에 올라간 투수 코치는 한동안 투수와 포수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다 그대로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아마도 투수를 교체하지 않고 그냥 내려온 것은 불펜이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벌라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펑!
“볼!”
속개된 경기, 투수가 던진 것은 바깥쪽 느린 변화구였다.
리키 헨슨은 타석에 서서 가만히 서 있었다.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가 자신을 상대하지 않고 시간을 벌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굳이 뭘 하려고 하지 않았다.
“Walk!”
공 네 개가 전부 바깥쪽으로 들어오는 고의 사구였다.
그렇게 오늘 5번 타자로 나선 리키 헨슨은 첫 타석에서 병살을 쳤지만, 두 번째 타석에선 볼넷으로 1루에 진루를 하였다.
그리고 6번 타자인 브렛도 뒤이어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이렇게 두 타자 연속 볼넷으로 내보낸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는 투수 교체를 하였다.
노아웃 주자는 1루와 2루, 타자는 어제까지만 해도 5번을 치던 랭글리였다.
팡!
“볼!”
바뀐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불펜 투수 메이슨 잉그리트의 초구는 볼이었다.
바깥쪽 꽉 찬 스트라이크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메이슨은 판정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결코 좋지 못했다.
그가 메이저리그 5년 이상의 베테랑이었다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메이저리그 경력은 이제 겨우 2년차에 들어가는 애송이였다.
팡!
“볼!”
초구보다 안쪽으로 공 반 개 정도 더 들어오는 공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볼이란 판정을 받았다.
이에 포수인 제이크 하스가 고개를 돌려 심판을 보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게 볼이냐는 항의였다.
이는 그가 8년차였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낮았어!”
주심은 무심하게 낮았다고 말을 하였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은 제이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도 조금 전 투구를 하기 전 투수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았기 때문이다.
갓 뉴비에서 벗어난 햇병아리가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보였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