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와의 인터리그 3차전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짜릿한 역전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두 경기 내내 잠잠하던 대호의 홈런포가 다시 가동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호의 홈런포 자체가 아니었다.
너무나 드라마틱하게 연출되었다는 점이었다.
11:9로 2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8회 말 주자 1, 2루가 되고 다섯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
그런 대호가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역전 홈런을 치겠다 예고한 것이다.
홈 팬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선수가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9회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보면 마지막 타석일 수도 있는 8회 말에 팬들 앞에서 예고 홈런을 한 뒤 정말로 홈런을 때려 버렸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구장인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았던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원정 팬들은 그 광정을 목격하고, 무엇 때문에 오클랜드 슬랙스 팬이 대호를 그렇게나 응원하고 열광하는지 깨달았다.
팬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루어 줄줄 아는 그런 선수였기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 대호의 역전 쓰리런 홈런을 지켜보면서 응원하는 자신들의 구단이 패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대호에 대해 알게 된 것에 대해 기쁘기도 했다.
비록 오클랜드 슬랙스와 자신들이 응원하는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가 라이벌 구단이긴 하지만, 어찌 되었든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선수와 한 시대에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기뻤던 것이다.
한편 대호의 역전 쓰리런 홈런으로 승부를 뒤집고 승리를 한 오클랜드 슬랙스는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와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인터리그 3차전이 끝난 뒤 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날 경기를 직관했던 오클랜드 팬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시내를 활보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클랜드 슬랙스는 이날 9점을 뽑고도 질 뻔했던 것에서 역전을 한 때문인지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와의 인터리그 마지막 경기도 0:6으로 손쉽게 승리를 쟁취하였다.
이날 오클랜드 슬랙스의 에이스 앤디 프랑크는 9회까지 거의 완벽한 피칭을 하였다.
하지만 투아웃을 잡은 상태에서 안타깝게도 중전 안타를 허용하면서 퍼펙트를 놓쳤다.
그렇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자신이 무엇 때문에 오클랜드 슬랙스의 에이스 자리에 있는지 확인시켜 주었다.
아무튼 이렇게 라이벌과의 인터리그 네 경기를 모두 스윕하면서 오클랜드 슬랙스는 15승 1패로 아메린칸리그 서부 지구 1위를 2위 LA데블스와 네 게임차로 앞서 나갔다.
* * *
오클랜드 슬랙스는 샌프란시스코와 인터리그 네 경기를 치르고 바로 중부에 있는 디트로이트로 날아갔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다음 상대는 아메리칸리그 중부 지구에 속하며, 2032시즌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연패를 당했던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와 원정 두 경기를 치러야 하는데,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의 표정은 전의가 가득했다.
이는 전적으로 라이벌인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를 4경기 스윕 승을 거둔 것에 기인했다.
뒷심이 약해 2승을 먼저 따냈으면서도 원정에서 내리 3패를 하고, 또 홈으로 돌아와 패배를 함으로써 리그 우승을 디트로이트에 내준 것에 대한 복수를 할 때라 생각한 것이기도 했다.
* * *
“자기, 무슨 일 있어?”
호텔 숙소에 들어온 뒤로 내내 아무런 말도 없이 창밖을 보고 있는 대호를 본 한나가 물었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창밖만 주시하던 대호는 고개를 돌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음. 일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잠시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를 생각하고 있었어.”
챔피언십 시리즈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대호의 말에 한나는 순간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는 정말로 대호에게는 잊고 싶은 기억일 테니 말이다.
부상 때문에 구단에서 선수 보호 차원에서 남은 경기에 출전을 시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한나나 대호 본인도 충분히 이해하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대호는 내내 그것이 마음에 쓰였다.
비록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가벼운 염좌였다.
또 두 경기 쉬고 나니 컨디션이 100%까진 아니었지만, 충분히 경기에 나가도 될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렇지만 구단에선 대호를 출전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대호도 프런트의 설득에 넘어가 조용히 동료들을 지켜보았다.
그 결과 오클랜드 슬랙스는 2승 뒤에 내리 4패를 하면서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에 리그 우승을 내줬다.
그런데 대호가 이렇게 고민을 하는 이유는, 시즌이 끝난 뒤에 동료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미안한 표정 때문이었다.
자신이 경기에서 빠진 후 4연패를 하면서 챔피언십을 내준 것에 대해 너무도 미안해하는 동료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프런트가 쉬라고 해도 4차전에 출전을 했다면 어땠을까? 혹은 5차전이라도 철전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계속해서 남았다.
시즌이 개막하고 정신없이 기록에 도전할 때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디트로이트 원정에 오르자 생각이 났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복잡해진 것이다.
“자기 잘못은 아니잖아!”
한참 망설이던 한나가 씁쓸한 표정으로 그렇게 위로를 하였다.
“그렇긴 하지만 계속 신경이 쓰여.”
잘못은 아니지만 신경이 쓰이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자기야, 오늘은 더 생각하지 말고 그냥 자자!”
대화를 이어 갈수록 쳇바퀴 굴러가듯 계속해서 되돌아오는 대화 주제로 인해, 한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생각에 그만 자자고 대호를 달랬다.
“미안!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지?”
“아니, 내가 생각해도 작년은 너무 아쉬웠어. 이해해.”
한나는 자신이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는 대호에게 이해한다고 그를 안아 주었다.
“고마워, 사랑해!”
“나도 사랑해!”
쪽!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침실로 갔다.
* * *
따아악!
첫 타석에 들어섰던 대호는 마치 작년 챔피언십에서 못다 한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선발 베스트 윌의 초구를 강타해 2루에 진루했다.
하지만 2번 타자 지미 울프는 베스트 윌의 투구에 눌려 삼진이 되었다.
그렇지만 대호는 지미 울프가 삼진이 되던 때, 3루로 도루를 시도해 진루에 성공했다.
“우우우!”
2루에서 투수의 타이밍을 뺏는 도루를 하여 3루로 진출한 대호를 보며,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팬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명성을 떨치는 스타라 하지만, 자신들의 홈에서 대호가 활약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탁탁탁!
도루에 성공한 대호는 디트로이트의 팬들이 자신을 두고 야유를 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고 슬라이딩을 하면서 몸에 묻은 흙을 무심하게 털어냈다.
“정대호 선수, 디트로이트 관중들의 거센 야유에도 불과하고 아주 여유롭게 몸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있습니다.”
“네, 적진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아주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아주 좋아요.”
하구연 해설은 3루 베이스에서 무심하게 몸에 묻은 흙을 털어 내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나이 어린 선수들 중 원정 경기에서 거센 홈 팬들의 야유에 기가 죽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대호는 마치 프로에 몇 십 년은 구른 것처럼 자신이 할 것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너무도 기꺼웠다.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에 콜업 된지 3년 차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하는 모습을 보면, 팀 내 최고참급을 보는 듯 했다.
이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감독인 마이크 케세이나 수석 코치인 그렉 헥슬러도 마찬가지로 놀라워하는 부분 중 하나였다.
“켈리! 짧게 하나 부탁한다고!”
타석에 친구인 켈리 달튼이 들어서자, 3루에 있던 대호가 큰 목소리로 안타 하나만 부탁한다며 소리쳤다.
원래 기존 3번 타자는 리키 헨슨이었지만, 타율은 나쁘지 않으나 메이저리그 3번 타자로써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감독은 타순에 변화를 주었다.
메이저리그에 콜업 된 이후 8번 타순에 들어가 경기를 치르고 있던 켈리 달튼을 3번 타순에 넣은 것이다.
16경기 66타수 26안타 2홈런을 치고 있는 켈리 달튼에게 3번 타자의 역할을 맡겼다.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켈리 달튼 선수입니다.”
“네, 이번 디트로이트 원정에서 오클랜드 슬랙스 타순에 변화가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 동안 잘 치고 있는 타순을 바꾼 것일까요?”
김승주는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이번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원정 경기를 치르면서 타순에 변화를 준 이유가 궁금해 물었다.
그런 김승주의 물음에 하구연 해설은 메이저리그와 KBO의 차이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KBO나 NPB(일본프로야구)의 경우 중심 타선을 주로 4번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반해, 이곳 메이저리그는 3번 타자에 무게를 더 둡니다.”
“아!”
중심 타선에 대한 설명과 비유를 들은 김승주는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무엇 때문에 3번 타자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를 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한편 해설진들이 오클랜드 슬랙스의 타순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타석에 있던 켈리 달튼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선발 베스트 윌의 유인구를 잘 골라내며 자신이 원하는 투구가 날아오기 기다렸다.
따악!
두 번의 유인구를 참아 내던 켈리에게 3구째에 그가 기다리던 바깥쪽 포심이 날아왔고, 그는 이것을 놓치지 않았다.
3루에 있던 대호가 자신에게 요구했던 안타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굳이 무리하지 않고 그대로 맞추는 타격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켈리가 친 타구는 멀리 뻗지는 않았지만, 내야 수비의 벽을 살짝 넘어가는 외야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되었다.
켈리가 친 타구의 방향을 확인한 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뛰었다.
“세이프!”
발이 빠른 대호에게 우익수 앞 안타는 너무도 여유롭게 홈으로 들어오게 만들었다.
짝짝짝!
켈리의 안타로 홈으로 들어온 대호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며 동료들과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1회 초 공격에서 먼저 1점을 선취한 오클랜드 슬랙스는 4번 타자 홈런 브레드가 연속 안타를 치긴 했지만, 5번으로 자리를 옮긴 리키 헨슨의 어이없는 유격수 앞 땅볼로 더블 아웃이 되면서 이닝을 마쳤다.
* * *
팡!
“볼!”
3회 초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 초구는 안쪽 낮은 볼이었다.
몸쪽으로 유인구를 던졌는데, 이에 속지 않는 대호로 인해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투수 베스트 윌의 표정이 굳었다.
선구안이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유인구도 메이저리그에선 알아주는 것인데, 좀처럼 속지 않는 대호로 인해 베스트 윌은 점점 답답해졌다.
‘이렇게 되면 던질 것이 없잖아!’
포심을 던져도 보더 라인 바깥으로 공 반 개만 빠져도 배트가 움직이지 않았다.
종으로 떨어지는 공이라도 커브처럼 느린 구종에는 속지도 않는 대호를 보면서 베스트 윌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윌! 그냥 네 공을 믿고 던져!‘
머뭇거리는 투수를 보며 포수는 답답해 급히 사인을 보냈다.
자칫 잘못하면 15초 룰에 걸릴 수도 있기에 얼른 사인을 낸 것이다.
팡!
“볼!”
너무 급히 던지다 보니 가슴 높이까지 치솟는 볼이 나왔다.
‘캄 다운! 캄 다운!’
흥분한 것 같은 투수에게 포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 손을 좌우로 벌려 위아래로 내리누르는 듯한 동작을 하며, 투수를 진정하라는 사인을 하였다.
그런 포수의 모습에 베스트 윌은 공을 받으며 심호흡을 하였다.
‘후우! 후우!’
여실히 보이는 투수의 흥분한 듯한 모습을 보며, 대호도 가볍게 빈 스윙을 하며, 타격 타이밍을 잡았다.
‘곧 실투가 나오겠군!’
오랜 경험상 투수가 흥분을 하면, 꼭 실투가 나왔다.
아무리 포수가 흥분을 진정시키려 하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