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발은 4선발로 자리를 잡은 라이언 헤밀턴이었다.
작년 초 오클랜드로 트레이드 되었지만, 빠르게 적응을 하고 20승 투수가 되었다.
이는 라이언의 메이저리그에서 기록한 것 중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물론 라이언이 메이저리그에 콜업 된지도 어느새 5년이 지났고, 올해 6년차로 내년이면 FA가 된다.
LA다윈스에선 연봉 조정 기간이 되었을 때, 다년 계약을 따내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이곳 오클랜드 슬랙스로 트레이드가 된 것이다.
다행이라면 작년 트레이드가 되었을 때, 빠르게 팀에 적응을 하고 일류 투수라 평가할 수 있는 20승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이번 시즌에 작년과 같은 성적만 거둔다면, FA로 대박을 칠 수도 있기에 이를 악물고 투구를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를 상대로 안타를 하나와 볼넷 하나를 내주고 1회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오클랜드 슬랙스 타선은 1번 타자인 대호를 비롯해 연속 안타가 나오면서 1회에 2점을 내며 앞서 나갔다.
“흠! 정대호 선수 오늘도 그렇게 썩 좋은 컨디션은 아닌 듯합니다.”
1회 첫 타석에 안타를 치고 출루를 하긴 했지만, 그의 타구는 평소보다 비거리가 짧았던 것을 떠올리며 김승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그렇습니다. 오른쪽 팔꿈치가 살짝 처지는 듯한데, 혹시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는군요.”
하구연 해설도 대호의 타격 폼을 느린 화면으로 재생을 하며 이야기를 하였다.
실제로 대호의 컨디션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무리하게 스윙을 크게 가져가기보단, 투구를 맞춰 출루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타격 자세가 평소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3회에 두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몸에 힘을 최대한 빼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그런 대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페레즈는 오해를 했다.
‘이 건방진 새끼가!’
힘을 뺀 자세를 자신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몸 쪽 깊이.’
페레즈의 사인을 받은 란슬럿 백이 고개를 끄덕이고 투구를 하였다.
쎄에엑!
란슬럿 백이 던진 포심 패스트볼은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대기를 가르고 대호의 몸 쪽 깊숙이 파고들었다.
퍽!
“윽!”
결국 대호는 느닷없이 날아든 볼에 맞고 말았다.
평상시 컨디션이었다면 충분히 피하거나 대응을 할 수 있었겠지만, 아직 연속 경기 홈런 기록에 도전을 하면서 무리하게 사용한 스킬로 인해 몸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다행이라면 공이 몸 쪽으로 날아오는 것 자체는 느끼고 살짝 뒤틀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란슬롯이 던진 공이 팔꿈치나 옆구리가 아닌 살집이 있는 엉덩이 위쪽에 맞았다.
“힛 바이 피치! 주자 1루로.”
주심의 선언이 있었지만, 대호는 잠시 제자리에 서서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를 노려보았다.
타자의 몸에 맞는 볼을 던졌으면서도 사과하지 않고 멀뚱히 서 있는 투수의 모습에 화가 난 것이다.
“뭐 해! 어서 1루로 뛰어가!”
가만히 타석에 서서 투수를 노려보는 대호에게 포수인 페레즈가 작게 소리쳤다.
“뭐? 방금 너 뭐라고 했어!”
공에 몸을 맞은 것은 자신이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듯 말하고 있는 포수에게 더욱 화가 나 물었다.
하지만 페레즈는 아직도 대호를 고깝게 생각해 또 한 번 소리쳤다.
“1루로 꺼져!”
“이런 개자식이!”
페레즈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대호는 순간 가슴 깊은 곳에서 욱하는 것이 올라와 페레즈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주심이 얼른 두 사람을 때어 놓았다.
그러는 사이 더그아웃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다 오클랜드 슬랙스 더그아웃에서 먼저 선수들이 뛰어나왔다.
오늘 경기에서 첫 번째로 나온 벤치 클리어링이었다.
공을 던진 투수보다 포수에게 화가 더 났던 대호는 가까스로 화를 누르고 1루로 나갔다.
‘오늘은 조용히 컨디션 조절만 하려고 했는데, 너흰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건드렸어!’
원래는 잠자는 사자여야 했지만, 자신은 호랑이라 생각하는 대호였기에 사자를 호랑이라 표현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맞은 곳은 어때? 감독님께 교체해 달라고 할까?”
1루에 도착하니 주루 코치가 다가와 물었다.
“아니요. 감독님께 오늘 저 날뛰어도 되냐고 좀 물어봐 주시겠어요?”
괜찮은지 물어오는 주루코치에게 대호는 그렇게 이야기를 건넸다.
벤치 클리어링이 나온 것은 메이저리그 규칙이니 넘어갈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팀 적인 문제다.
하지만 맞은 것은 자신이니, 복수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리 말한 것이다.
물론 만약 감독이 하지 말라고 막는다고 하지 않을 대호가 아니다.
그리고 그런 것은 주루 코치나 마이크 케세이 감독도 잘 알고 있었다.
“네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감독님이야 네가 하겠다면 말리실 분도 아니고.”
물을 것도 없다는 듯 주루 코치는 그렇게 대호의 물음에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그럼…….”
대답과 함께 대호는 1루에서 발을 떼었다.
* * *
한편 KBC스포츠 중계석에서는 김승주와 하구연이 방금 전 힛 바이 피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구연 해설 위원님께서는 방금 전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뜬금없이 데드볼이 나온 상황에 대해 물어본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와 오클랜드 슬랙스가 비록 라이벌이라 하지만, 상대 선수를 일부러 맞추고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 대호가 타석에 들어선 상태에서 맞은 볼은 절대로 실투에 의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었다면, 예의가 바른 대호가 절대로 타석에서 투수를 노려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런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그 뒤에 벌어진 상황 때문이다.
몸에 공을 맞고 투수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을 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대호가 이번에는 포수에게 접근을 한 것이다.
이는 누가 봐도 포수와 대호가 언쟁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거 오늘 재밌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데요.”
“재미있는 상황이요?”
김승주는 느닷없는 하구연 해설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상황입니까?”
정말로 어떤 상황이 벌어지기에 하구연 해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 것이다.
“정대호 선수가 마이너리그에 있었을 때 일인데…….”
짧은 기간이지만 대호도 마이너리거일 때가 있었다.
비록 반 시즌 정도였지만, 이때 대호는 뛰어난 재능으로 인해 많은 구단에 견제를 받았다.
그런데 단순히 견제만 했으면 괜찮았을 테지만, 간혹 과잉된 의식에 일부러 타자의 몸에 공을 맞추는 일이 있었다.
아니, 대호는 그런 공에 맞지 않았지만 대신 다른 동료 선수가 타깃이 되어 공에 몸을 맞고 나가야 했다.
그럴 때면 팀 차원에서 복수를 하였는데, 팀 투수가 상대 팀 타자를 상대로 똑같이 보복구를 던졌다.
하지만 대호는 거기서 더 나아가 본인만의 능력으로 복수를 하였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트리플A인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 있을 때 일이다.
상대였던 솔트레이크 비스의 선발 아드리안이 대호의 친구인 켈리에게 힛 바이 피치를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오랜만에 경기에 선발로 나왔던 켈리는 부상으로 경기에서 이탈했다.
몸이 재산인 운동선수에게 선수 생명에 위협이 되는 공을 던진다는 것은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렇게 판단한 대호는 그날 아드리안과 몸에 맞는 볼을 던지라 사인을 보낸 포수, 그리고 이번 모든 것을 지시한 솔트레이크 비스 감독 모두에게 복수를 했다.
골프 용어이기는 하지만, 날아오는 투구의 윗부분을 때려 톱볼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공의 윗부분을 맞아 톱볼이 된 야구공은 홈플레이트에 바운드 되어 포수의 급소를 맞췄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연속해서 두 번이나 말이다.
남자의 급소에 두 번이나 파울볼을 맞은 포수는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기절해 백업 포수와 교체가 되었다.
하지만 대호의 복수는 이게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솔트레이크 비스의 더그아웃이었다.
대호가 친 타구가 파울이 되면서 솔트레이크 비스 더그아웃으로 날아든 것이다.
그제야 그것이 우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은 솔트레이크 비스의 코칭스태프들은 급히 타임을 요청하고 항의를 해 보았지만 이를 증명할 길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호의 그러한 보복 행위를 견딜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호가 한 복수의 절정은 바로 투수에게 배트를 던져 버린 것이다.
마치 거칠게 휘두르느라 손에서 빠져나간 것처럼 연기를 하며, 투수를 향해 던진 배트는 회전과 함께 땅에 튀어 투수였던 아드리안의 손목에 부딪혔다.
이 일로 아드리안은 공을 던지는 손목에 부상을 당해 시즌의 반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대호는 그가 부상으로 시즌을 날리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먼저 시작한 것은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워크에식이 부족한 선수나 지도자에게 같은 선수로써 대해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이런 식의 보복을 하는 것에 전혀 꺼리지 않았다.
이런 야구에 대한 생각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이후로 대호나 그가 속한 팀에 대한 야구 외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허어!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김승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대호를 좋아하는, 혹은 아주 싫어하는 야구팬에게는 아주 잘 알려진 사건이었다.
방금 전 하구연 해설 위원이 설명한 트리플A에서의 사건이 가장 컸기에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었지만, 더블A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몇 차례 있었다.
다만 이슈가 되지 않았던 것은 대호가 금방 트리플A로 콜업 되고, 또 몇 달 만에 메이저리그로 콜업이 되면서 묻혔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타석에서 정대호 선수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되겠군요.”
“예, 저희는 팝콘이나 땅콩을 먹으며 재미있게 지켜보면 될 일입니다.”
“하하하! 그럼 재미있겠군요.”
어떻게 보면 대호의 치부가 될 수도 있는 사건이었지만, 모든 것이 한쪽 면이 있으면 반대쪽 면이 있기 마련.
우리 편이 당했을 때, 이를 보복해 주는 해결사가 있으면 마냥 예뻐 보인다.
그것도 팀의 최고 인기 선수가 그렇다면 더욱 팬들의 환호를 받는다.
중계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전달 받는다 해도 대호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는 대호에 대해 무조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안티뿐일 것이다.
* * *
6회 말, 오클랜드 슬랙스의 공격이 시작되고 대호가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기대해!”
뭘 기대하라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포수에게 하고는 타석에 들어섰다.
‘음, 이놈이 뭘 노리는 거지?’
기대하라는 이상한 말을 들은 페레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첫 투구가 날아들었다.
틱!
퍽!
“윽!”
“파울!”
첫 번째 소리는 대호가 휘두른 스윙에서 나는 소리였고, 두 번째 들린 소리는 대호가 친 파울 타구에 포수의 급소가 맞는 소리였다.
따라서 세 번째 울린 신음 소리는 바로 중심부에 공을 맞은 포수가 낸 것이었다.
포수가 파울볼에 맞아 쓰러져 신음을 흘리는 걸 본 주심은 잠시 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쓰러진 포수를 확인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더그아웃에서 급히 코치와 의료진이 뛰어와 그를 살폈다.
잠시 경기가 중단되고 포수에게 응급조치가 취해지고 다시 경기가 속개되었다.
“어때? 기분 끝내 주지?”
낮은 목소리로 대호가 물었다.
그런 대호의 질문을 받은 페레즈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또 맞고 싶다는 거지?”
몸에 공을 맞게 된 페레즈도 기죽지 않고 대호에게 대거리를 하였다.
휘익!
정말로 페레즈의 말대로 몸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보며 대호는 별것 아니란 듯 다시 한번 스윙을 하였다.
틱!
팍!
“윽!”
이번에도 조금 전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페레즈의 급소가 아니라 마스크 부위에 파울볼이 날아들었다.
물론 단단한 마스크로 인해 직접적인 고통은 없었지만, 그 충격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었다.
머리 부위에 파울 타구를 맞다 보니, 가벼운 뇌진탕 증상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한 번 더 경기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두 번의 사건으로 인해 페레즈는 교체가 되었다.
두 번째 머리에 맞은 타구로 인해 뇌진탕 증상이 있어 선수 안전을 위해 교체한 것이다.
‘이젠 마무리로 투수에게…….’
다시 재개된 경기 대호는 타석에서 마운드 위 투수를 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