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딱!
느닷없는 기습 번트에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수비들은 허둥지둥하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나온 기습 번트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외야 플라이를 생각하고 있을 때, 반대로 번트가 나왔으니 허둥지둥하는 것도 당연했다.
더욱이 번트를 댄 방향도 문제였다.
주자가 3루에 있는데, 어느 누가 번트를 3루로 댈 것이라 예상을 했을 것인가?
물론 이번 기습 번트는 지미 울프가 생각하고 한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본인이 살기 위해 한 번트였다.
오늘 2타수 무안타에 아웃 카운트만 두 개를 기록하고 있는 그였다.
그 때문에 이번 타석에선 어떻게든 살아 나가겠다는 생각에서 기습 번트를 감행했는데, 이때 그의 머릿속에 3루에 있던 주자는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3루에 있던 주자는 일반적인 선수가 아닌 야구 지능이 높은 대호였다.
타격은 물론이고 발도 빠르며, 작전 능력까지 훌륭한 선수였기에 자신의 앞으로 굴러오는 타구를 보면서도 과감하게 홈으로 뛰었다.
그 사이 지미의 의도를 눈치채고 샌프란시스코 포수와 3루수가 공을 잡기 위해 나오자마자 행동을 취한 것이다.
팟!
자신의 앞으로 굴러오는 번트 타구를 잡은 3루수는 급히 자신의 옆을 지나가는 대호를 보고 홈으로 송구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어?’
주자가 홈으로 들어가기에 포수에게 송구를 하려던 그는 공을 던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을 받아야 할 포수가 홈이 아닌 자신의 앞에 허리를 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젠장!’
포수의 옆을 지나 홈으로 들어가는 대호의 모습을 보며 그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는 1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그렇지만 기습번트를 댄 지미 울프는 공보다 빠르게 1루 베이스를 통과했다.
“세이프!”
“와아아아아!”
기막힌 타이밍에 기습 번트가 나왔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굴러간 타구로 인해 3루에 있던 주자는 물론이고 타자 주자까지 모두 세이프가 되었다.
어떻게 보면 실수 같았지만, 결과가 좋다 보니 오클랜드의 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6회 말 노아웃 주자 1루에 있으면서 점수는 2점에서 3점으로 한 점 더 달아났다.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기막힌 작전이 나왔습니다.”
하구연 해설은 조금 전에 나온 지미 울프의 기습 번트를 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기막힌 작전이요?”
김승주는 기막힌 작전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김승주의 반응에 하구연은 자신이 느낀 바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면…….”
중계 부스에서 조금 전 지미 울프의 기습 번트와 대호의 홈 쇄도에 대한 이야기가 진행이 되고 있는 중,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에서 변화가 나왔다.
5회까지 잘 막았던 제이콥 주닌이 6회에 들어 연속 안타를 맞고 점수를 3점이나 내준 것을 보고 투수 교체를 감행한 것이다.
한창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나온 작전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던 하구연은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투수교체를 보며 다시 한번 말을 하였다.
“지금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에서 투수 교체를 하는데,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습니다.”
하구연 해설은 이번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투수 교체를 늦었다고 판단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5회까지 오클랜드 슬랙스의 강타선을 무실점으로 잘 막아 낸 투수가 6회에 이렇게 급격하게 무너질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만약 그런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는 야구 감독이 아니라 신일 것이다.
그렇게 6회 말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마운드에서 물러난 제이콥은 고개를 숙이며 원정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한편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투수교체를 지켜본 리키 헨슨과 대기 타석에 있던 홈런 브레드는 드디어 제이콥이 물러나고 불펜이 나온 것에 눈을 반짝였다.
오늘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선발 제이콥 주닌은 메이저리그에서 그렇게 뛰어난 투수는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오클랜드 슬랙스 타선과는 뭔가 잘 맞지 않았다.
아니,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은 그의 투구에 심각하게 말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 껄끄러운 투수가 물러나고 불펜 투수가 마운드에 나오자, 오클랜드의 타자들은 그제야 뭔가 무거운 것이 내려가는 시원함을 느꼈다.
타자들이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타석에 들어선 리키 헨슨이 바뀐 투수의 초구 몸 쪽 낮은 패스트볼을 받아쳐 2루타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사이 1루에 있던 지미 울프는 3루를 지나 홈까지 파고들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1번 타자인 대호보다 빠르진 않지만, 대호가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기 전까지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1번을 치던 선수다.
그 말은 지미 울프도 대호 못지않은 빠른 발을 가진 선수란 소리다.
“세이프!”
또다시 한 점을 더 붙였다.
“오클랜드 슬랙스, 6회에 그동안 막혔던 한풀이라도 하듯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 투수를 상대로 맹타를 휘두릅니다.”
“하하, 완전 불타오르고 있네요.”
하구연 해설의 말에 김승주도 이에 맞장구를 치며 흥분해 소리쳤다.
“버닝입니다. 버닝!”
노아웃 주자 2루, 점수는 4:0, 타석에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가 눈빛을 반짝이며 투수를 노려보고 있다.
이미 경기의 분위기는 오클랜드 슬랙스로 넘어간 지 오래다.
시원한 홈런은 나오지 않았지만, 연속 안타가 터지면서 벌써 4점 차로 벌어졌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더그아웃이 급하게 불펜을 돌려보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선 홈런 브레드는 투수의 공을 차분하게 지켜보다 자신이 원하는 코스에 공이 들어오자 그대로 당겨 쳤다.
따아아악!
“와아아아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홈런이 터져 나왔다.
물론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이 기다리던 홈런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자신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팀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가 오랜만에 홈런을 쳤다.
그랬기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주장인 홈런 브레드의 투런 홈런으로 또 다시 2점을 획득한 오클랜드 슬랙스는 이날 6회에만 무려 10점을 몰아쳤다.
10:0으로 앞서 나가게 된 오클랜드 슬랙스는 6회까지 잘 던진 선발 체프 벤을 내리고 불펜을 가동했다.
점수 차도 많이 나는데, 굳이 귀중한 선발 자원을 무리시킬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불펜을 올린 것이다.
그렇게 7회부터 가동된 오클랜드 슬랙스 불펜진은 9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 타선을 상대로 2실점만 하고 경기를 끝냈다.
경기 스코어는 13:2로 오클랜드 슬랙스는 앙숙인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를 상대로 11점 차 대승을 거뒀다.
대호는 이날 4타수 3안타를 쳤지만, MVP 인터뷰는 그의 몫이 아니라, 6회 투런 홈런을 비롯해 7회에도 솔로 홈런을 친 홈런 브레드에게 돌아갔다.
실로 오랜만에 MVP 인터뷰를 하게 된 홈런 브레드는 얼굴이 붉게 상기된 상태로 인터뷰를 하게 되어 동료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 * *
<상태창>
이름 : 정대호(22살)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69
힘 73/77
민첩 68/72
체력 63/72
지능 62/69
정신 61/70
순발력 63/71
컨택 64/70
내구력 66/70
― 과도한 스킬 사용으로 전체적으로 스탯이 떨어져 있습니다.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마사지까지 받은 뒤 홀로 숙소로 돌아온 대호는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무리하지 않아서 그런지 조금은 회복이 됐네.’
시합 중 확인했을 때보다 1~2포인트 씩 회복된 스탯들을 보며, 그제야 안심하였다.
‘그게 그렇게까지 몸에 무리를 주는 스킬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로 깜짝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연속 경기 홈런 기록 달성을 할 때는 무척이나 유용했던 스킬이었는데, 그것이 이렇게나 큰 영향을 미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효과는 무척이나 좋았다.
그 스킬로 인해 레벨 업도 했고, 메이저리그 세계 기록도 달성하면서 스탯도 많이 올랐다.
그래서 몸에 무리가 가는 줄도 모르고 스킬을 사용했다.
메이저리그 열한 경기 연속 홈런을 달성하며, 자신의 목표에 한 발 더 다가갔다.
하지만 이틀을 쉬고 경기에 나간 오늘 처음 알았다.
짧은 기간 성적을 내는 것에는 좋은 스킬이지만, 장기간 사용한다면 몸에 무리가 생겨 탈이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스킬임을 말이다.
‘그렇지만 이 스킬을 봉인해 두고 싶은 생각은 없지.’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보다 빠르게 이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덜컹!
한참 스탯을 살피고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기야! 나 왔어!”
한나가 퇴근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응, 한나. 나 여기 있어!”
아직 샤워를 마치고 화장실에 있던 대호는 아내인 한나에게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아니, 화장실에서 뭐하고 있었던 거야?”
한나는 방금 전 샤워를 하고 있었다고 보기에는 대호의 몸에는 물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물었다.
“응, 좀 생각할 것이 있어서 좀 오래 있었나 봐!”
대호는 별것 아니란 듯 생각할 것이 있어 그렇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자기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이 끝났네.”
기록 달성이 끝난 것이 아쉽다는 듯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한나에게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인 대호가 대답하였다.
“기록은 또 세우면 되는 거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기로 했어.”
아쉬워하는 아내를 보며 대호는 어른스럽게 이야기를 하였다.
기록보단 자신의 목표 달성이 더 중요한 일이었기에 더 이상 기록에 대해 연연하지 않기로 말이다.
그러자 한나는 대호의 말을 듣고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를 속이는 것 같아!’
분명 자신이 대호보다 일곱 살이나 연상임을 알고 있었다.
동양인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적게 느껴진다고 하였기에 결혼 전 자세히 알아보기도 해, 대호의 정확한 나이를 알고 있음에도 종종 이런 느낌을 받았다.
“아직 저녁 전이지?”
퇴근하고 바로 왔기에 아직 저녁을 먹지 못했을 한나에게 대호는 저녁을 먹었는지 물었다.
“응, 퇴근하고 바로 와서 아직이야! 자기는?”
“나도 당연히 한나랑 먹으려고 브렛과 켈리가 붙잡는 것도 뿌리치고 왔어!”
쪽!
대호의 대답에 한나는 바로 그의 입술에 키스하고 안겼다.
“잘했어! 자기!”
남편이 동료들이 같이 먹자는 것도 뿌리치고 자신을 기다렸다는 말에 감동하였다.
사실 그녀도 퇴근하고 동료가 함께 저녁을 먹자는 제의를 거절하고 온 것이기는 했지만, 시간상 남편은 훨씬 일찍 일이 끝났을 시간이었다.
그 말은 정말로 친구들이 하는 말을 거절하고 자신을 기다려 주었다는 이야기였다.
한나도 대호의 친구들을 잘 알고 있다.
더블A는 물론이고 트리플A 시절에도 대호를 취재했었기에 그의 친구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정이 많은 대호는 많은 친구가 있었고, 또 친구 관계에 누구보다 진심이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브렛과 켈리와 저녁을 먹을 수도 있음에도 자신과 함께하기 위해 기다렸다는 말에 감동했다.
* * *
대호와 한나가 둘이서 알콩달콩 깨를 볶고 있을 때, 지구 반대편에서는 오늘 경기에 대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정대호(22)선수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기록 열한 경기로 막을 내리다. <중략>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와 인터리그 첫 경기에서 홈런 없이 5타석 4타수 3안타 볼넷 한 개로 경기를 마쳤다. ― 대한스포츠 박은혜 기자」
⤷ 정대호 새끼, 결국 실력이 뽀록났군!
⤷ 위에 놈은 뭐냐? 홈런 못 치면 실력이 없는 거냐?
⤷ 그러게 말이야. 4타수 3안타는 보이지도 않나 보다.
이틀 쉬고 경기에 나온 대호가 홈런 없이 안타만 세 개를 쳤다는 것에 일부 팬들은 대호의 실력에 대해 의심을 하는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많은 팬이 반박하였지만, 어디에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반골들이 있다 보니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