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와 인터리그 첫 경기,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처음 경기장에 나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었다.
어딘가 불편한 듯 살짝 굳어 있었다.
‘왜 이러지?’
경기가 없는 휴식일과 원정 마지막 경기를 쉬어 이틀간 컨디션 조절을 했는데도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다.
‘뭐, 아무리 나라도 항상 좋을 순 없지.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 거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컨디션이 나쁜 적은 4회차에 들어서고 처음이라 조금 당황한 대호였다.
그러나 이미 경기를 시작한 이상 어쩔 수 없다 판단한 대호는 우선 최선을 다하기로 결정했다.
영 좋지 않으면 교체를 부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팡!
“볼!”
바깥쪽 살짝 낮은 볼이 들어왔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오늘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바깥쪽과 낮은 쪽에 후하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메이저리그 주심들의 성향을 따져 보면, 이 정도 바깥쪽 낮은 공에 스트라이크 판정을 하는 경향이 높았다.
하지만 오늘 주심은 그렇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이런 날에 스트라이크 존이 엄격한 주심이라니, 운이 좋군.’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 대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다시 타격 자세를 잡았다.
펑!
“스트라이크!”
안쪽 살짝 깊었지만, 주심에 따라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기도 하였기에 판정에 별 불만은 없었다.
‘안쪽은 이 정도에 스트라이크를 주는구나.’
바깥쪽은 정상적이고, 안쪽은 조금 후한 편이란 판단을 내리며 존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휘익!
타이탄즈의 투수 제이콥 주닌의 패스트볼은 투심성으로 무빙을 하는 볼이라 공략하기가 조금 까다로웠다.
따악!
배트 중심에 정확하게 타격이 되지 않았지만, 대호 특유의 팔 스로를 길게 가져가는 타격으로 인해 타구가 먹히지 않고 빠르게 3유간을 뚫고 외야로 굴러갔다.
“와아아아!”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이 나오길 기대하고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았던 팬들은 비록 홈런이 나오진 않았지만, 대호의 안타에 환호했다.
하지만 오늘 오클랜드 슬랙스 타선은 마가 낀 것인지 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퍽!
“스트라이크!”
틱!
“파울!”
부웅!
“헛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2번 타자 지미 울프는 제이콥이 던진 투구에 제대로 타격을 하지 못하고, 삼구 삼진으로 물러났다.
한편 1루에 나간 대호는 잠시 자신의 상태창을 들여다보았다.
타석에 들어섰을 때, 평소와 다른 몸 상태로 인해 자칫 반응이 늦을 뻔했기에 자신의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 상태창을 켠 것이다.
<상태창>
이름 : 정대호(22살)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69
힘 72/77
민첩 68/72
체력 63/72
지능 60/69
정신 59/70
순발력 61/71
컨택 62/70
내구력 65/70
― 과도한 스킬 사용으로 전체적으로 스탯이 5~11 포인트 떨어져 있습니다.
‘……!’
상태창을 살펴본 대호는 깜짝 놀랐다.
이틀이나 휴식을 취했는데도 스탯이 전체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정신 스탯의 경우 유독 다른 스탯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짐작 가는 게 하나 있었다.
‘연속 경기 홈런 기록에 너무 몰입해 과도하게 기술을 사용한 부작용이구나!’
상태창 하단에 쓰여 있는 특이 사항의 내용을 읽은 뒤, 대호는 자신의 스탯이 왜 이렇게 떨어져 있는지 깨달았다.
‘그래. 굳이 기록에 연연하지 말자.’
이미 지금도 범접하기 어려운 세계 기록을 세운 상태였다.
괜히 오늘 컨디션도 좋지 못한데 무리를 하다 부상을 당하는 것보다는 컨디션을 챙기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곧장 편안해졌다.
아닌 척을 해도, 대호 자신 역시 기록의 경신에 부담감이 컸던 듯했다.
“아웃!”
대호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4번 타자이자 주장인 홈런 브레드까지 제이콥의 투구에 막혀 아웃이 되면서 오클랜드 슬랙스의 1회 말 공격이 끝났다.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이 타이탄즈의 선발 제이콥 주닌의 투구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있을 때, 다행스럽게도 오늘 선발로 나선 체프 벤 또한 컨디션이 좋은 것인지 타이탄즈의 강타선을 맞아 점수를 내주지 않고 꽁꽁 묶고 있었다.
6회까지 4안타를 맞긴 했지만,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 버틴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6회 말.
오클랜드 슬랙스는 첫 타자부터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1회 이후 가장 좋은 기회를 맞았다.
“오클랜드 슬랙스 선두 타자로 나선 켈리 선수가 우익수 앞 안타를 치고 나가면서 이번 6회 말, 출발이 좋습니다.”
따악!
“오! 9번 타자 시몬 몬데스 안타! 오클랜드 슬랙스, 오늘 경기 첫 연속 안타가 나왔습니다!”
하위 타선인 8번과 9번 타자가 연속으로 안타를 치고 진루에 성공하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김승주는 흥분해 소리쳤다.
공정한 중계를 해야 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에는 자신과 같은 국적의 메이저리거인 대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편파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와아아!”
대호의 등장을 알리는 테마곡이 뉴슬랙스 볼파크 내에 울리자 팬들의 환호성이 크게 들리고, 해설위원인 하구연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대호가 타석에 들어서는 것을 중계했다.
“하하, 정대호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
첫 타석에선 3유간을 뚫는 안타를 치고 출루를 하였지만, 3회 두 번째 타석에선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었다.
“우리의 정대호 선수 오늘 2타석 1안타로 조금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남들이 들으면 뭔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대호의 그간 타율이나 기록을 알고 있는 야구팬이라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후우! 후!”
탁! 탁!
심호흡을 한 뒤, 가볍게 배트 끝으로 홈 플레이트를 두드리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런 대호의 모습을 지켜본 타이탄즈의 포수 로드리고 페레즈는 조심스럽게 제이콥에게 사인을 보냈다.
‘몸 쪽 낮은 패스트볼!’
제이콥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94마일에 불과하지만, 구위가 뛰어나고 또 투심성으로 휘어 들어오기에 정확하게 타격 포인트를 잡는 것이 어려운 편이라 몸 쪽을 요구했다.
펑!
“스트라이크!”
살짝 깊다 싶었지만, 주심의 콜은 스트라이크였다.
‘운이 좋군!’
전 타석에선 볼 판정을 받았던 공이 이번에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이에 페레즈 포수는 다시 한번 같은 코스로 요구를 하였다.
볼이 되어도 좋고, 스트라이크 판정이라면 더욱 좋았기에 같은 코스로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페레즈의 실수였다.
같은 코스로 비슷하게 날아오는 공을 대호 정도 되는 타자가 놓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물론 그는 옆에서 지켜본 대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런 판단을 내렸지만, 그것이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주전 포수가 아닌 제이콥 주닌의 전담 포수라는 위치로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오른 그의 한계였다.
따악!
몸 쪽으로 파고드는 투심성 패스트볼에 대호는 양 옆구리에 팔꿈치를 붙이고 허리 회전만으로 가볍게 밀어 쳤다.
유격수와 2루수 머리 위를 살짝 넘어가는 타구가 나왔다.
2루에 있던 켈리는 대호의 타격이 있은 직후 바로 스타트를 끊고 달렸다.
켈리뿐만 아니라 1루에 있던 시몬 또한 대호의 타구를 보고는 빠르게 2루를 지나 3루로 향했다.
한편 2루에 있던 켈리가 3루를 지나 홈으로 뛰는 것을 본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중견수는 자신의 앞으로 굴러오는 타구를 잡자마자 바로 홈으로 송구했다.
촤아아악!
홈으로 들어오던 켈리는 포수의 위치를 보고 왼쪽으로 돌아 슬라이딩을 하였다.
“세이프!”
펑!
공보다 먼저 홈으로 들어와 세입이 되었다.
뒤늦게 공을 받은 페레즈는 급히 2루로 송구를 하였다.
공을 잡고 홈에서 승부를 보기엔 늦었다 판단한 그의 눈에 2루로 뛰고 있는 대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펑!
촤악!
2루가 가까워지자 대호는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였다.
“세이프!”
2루심이 손을 좌우로 넓게 펴며 세입을 선언했다.
그런데 이때, 다급하게 홈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홈! 홈!”
“와아아아!”
막 2루로 들어오는 대호에게 태그를 시도하던 타이탄즈의 2루수는 옆에서 누군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 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에 홈으로 뛰고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선수의 모습이 들어왔다.
‘무슨!’
깜짝 놀란 2루수는 급히 홈으로 송구를 하였다.
하지만 너무나 급하게 송구를 해서인지 그의 송구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포수가 잡을 수 없는 범위로 날아간 야구공을 포수의 뒤에 백업을 나가 있던 투수가 잡아 급하게 포수에게 다시 던져 주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2루수가 정확하게만 송구를 했더라면 홈에서 충분히 잡아낼 수 있던 타이밍이었는데, 폭투가 나오면서 공은 뒤로 빠졌고, 그 사이 홈으로 뛰던 시몬은 홈에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2루에 슬라이딩을 하며 들어갔던 대호 또한 2루수의 폭투로 공이 포수 뒤로 빠지는 것을 보자마자 다시 3루로 뛰었던 것이다.
뒤늦게 이를 확인하고 공을 3루로 던지려 하였지만, 페레즈는 3루로 공을 던지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는 이미 3루에 가까이 접근해 있었고, 2루수처럼 자신이 성급히 던졌다가 송구가 빗나가면 1점을 더 헌납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었다.
“세이프!”
“와아아아!”
포수가 머뭇거리는 사이 대호는 3루에 안착하는 데 성공하였다.
슬라이딩을 하며 3루에 들어간 대호는 베이스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른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비록 오늘 컨디션은 좋지 못해 홈런은 없었지만, 필요한 때에 적시타를 쳐 타점을 올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거둔 성적은 3타수 2안타 2타점.
0:0 팽팽한 투수전을 펼치다 6회 말 공격에서 드디어 점수가 터졌다.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 투수전을 펼치던 중 점수가 나오자 더그아웃에 있던 체프 벤이 자리에서 번쩍 뛰며 기뻐하였다.
이미 6회를 던진 그는 선발투수로서 승리 요건을 갖추고 있었는데, 6회 말 공격에서 점수가 나왔으니 기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정대호 선수, 안타 하나로 1, 2루에 있던 주자를 모두 홈으로 불러들이고, 본인은 3루까지 진루를 하는데 성공을 했습니다.”
“이전 타석을 보면 오늘 컨디션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닌 듯싶었는데, 필요한 때에 안타를 쳐 줍니다.”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2루수 아산 다이즈 선수의 홈 송구가 아쉬웠습니다.”
어느 정도 흥분이 가시자 하구연 해설은 안타 하나로 2점을 헌납한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수비에 대한 비판을 하였다.
조금만 침착하게 송구를 했더라면 점수를 덜 주고, 또 아웃 카운트를 하나 잡음과 동시에 주자도 2루에 묶어 둘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황하는 바람에 폭투가 나왔고, 오클랜드의 시몬은 과감한 시도를 성공시켜 점수를 뽑아냈다.
심지어 타자 주자였던 대호까지 3루에 진줄해 버렸으니 말이다.
한 번의 악송구로 인해 팽팽했던 분위기는 오클랜드 슬랙스로 확 기울어져 버렸다.
더욱이 현재 오클랜드의 6회 말 공격은 노아웃 3루 상황.
외야 플라이만 나와도 한 점 더 점수를 올릴 수 있었다.
타석에는 오늘 타격감이 살짝 떨어지는 지미 울프였다.
휴스턴 스트로스와 있었던 원정 6연전까지 타격감이 좋았던 지미 울프는 어떻게 된 것인지 홈으로 돌아와 인터리그를 펼치는 오늘, 이상하게 부진했다.
2타수 0안타 삼진과 내야 땅볼을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성적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타석에 들어선 지미 울프의 표정이 많이 굳어 있었다.
‘어? 지미의 타격 폼이 뭔가 평소와 다른데?’
3루에서 지미의 타격 자세를 보고 있던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지미의 타격 자세로 인해 평소보다 리드를 더 가져갔다.
딱!
아니나 다를까.
초구 몸 쪽 패스트볼이 날아들자 지미 울프는 기습 번트를 하였다.
오늘 자신의 타격 능력이 평소보다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고 기습적으로 번트를 댄 것이다.
다다다다.
기습 번트를 성공한 지미 울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1루로 뛰었다.
그 사이 평소보다 길게 리드를 가져갔던 대호도 번트가 나오자마자 바로 홈으로 뛰었다.
생각지도 않은 기습 번트가 나오자 3루수는 급히 공을 잡기 위해 뛰었다.
그리고 포수 또한 급히 마스크를 벗고 공을 쫓아 뛰어갔다.
그 사이 대호는 1루로 뛰는 지미가 살 확률을 높여 주기 위해 적당히 달리던 속도를 조절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