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오클랜드 슬랙스 단장 사무실.
단장인 조엘 헌트는 오늘도 구단 페이 롤을 낮추기 위해 고심을 하고 있었다.
덜컹!
“보스! 잠시 전할 말이 있습니다.”
오클랜드의 단장 조엘의 비서인 크리스 마틴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이야기하였다.
“왜?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부족한 운영 자금 때문에 골치가 아픈 조엘은 피곤한 얼굴로 크리스에게 물었다.
“좋은 소식이니 잠시만 시간 좀 내요.”
“무슨 굿 뉴스기에 좋은 소식이라는 거야?”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난 조엘은 커피포트에서 커피를 한잔 내리고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인크레더블이 또 한 번 홈런을 쳤다고 합니다.”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 직원들은 더 이상 대호를 그냥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불과 3년 만에 누구도 해내지 못한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구단 레전드가 될 선수이기에 다른 팬들처럼 대호를 인크레더블이라 부르고 있었다.
대호를 가장 잘 표현한 단어가 바로 그것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인크레더블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누가 먼저 시작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자연스러워 크리스도 그렇게 불렀다.
“하하하! 그럼…….”
“네. 열한 경기 연속 홈런입니다.”
휴스턴 스트로스와의 어제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기록과 세계 기록을 함께 경신하였는데, 오늘 또 홈런을 쳐 자신의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는 것에 놀랐다.
“그 때문인지 관련 상품이 무지하게 팔려 나가고 있다고 합니다.”
“으하하하!”
이야기를 들은 조엘은 그냥 웃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작년 메이저리그 MVP와 골든 글러브, 그리고 실버 슬러거를 모두 휩쓰는 바람에 대호에 관한 다양한 상품들이 품절 사태를 맞았었다.
그러던 것이 2033시즌 개막전부터 시작해 홈 6연전을 시작으로 원정 경기까지 매 경기 홈런을 치면서 또 한 번 팬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제는 오클랜드뿐만 아니라 아메리칸리그를 넘어 메이저리그 전체를 따져 봐도 손에 꼽힐 정도로 팬층을 확보한 대호다.
그 때문에 대호에 관한 상품은 오클랜드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 전국에 온라인으로 판매가 되고 있으며, 출신국인 한국에서도 많은 해외 주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오클랜드 슬랙스 구단 내 가장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프랜차이즈 스타인 홈런 브레드를 제치고 팀 내 1위를 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은 기념품의 문구를 다시 새겨야 한다는 건데…….”
“그건 들어오기 전 따로 지시를 내리고 왔습니다.”
“아니. 그냥 열한 경기 연속 홈런 기록으로 하나 더 만들어!”
조엘은 당장 어제 대호의 열 경기 연속 홈런 기록 달성에 대한 기념품을 제작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그런데 오늘 대호가 또다시 홈런을 기록함으로써 열 경기 연속 홈런 기록 달성 기념품의 의미가 퇴색되었다.
이 때문에 기념품에 들어갈 문구를 고쳐야 하는데,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 조엘은 문구를 고치는 것이 아니라 기념품을 또 하나 제작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예산이 더 들어갈 텐데요?”
크리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차피 기념품은 팬 서비스 차원에서 제작하는 것이니 상관없어!”
조엘의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달랐다.
어차피 기념품은 팬들이 구매를 하는 것이고, 구단은 그런 것을 제작하는 의미는 팬 서비스에 있었다.
더욱이 메이저리그 기록이지 않은가, 그리고 세계 기록이지 않은가?
오클랜드 슬랙스 팬뿐만 아니라 많은 야구팬이 대호의 기록 달성 기념품을 구입할 것이니 구단 입장에선 손해가 날 걱정이 없었다.
어차피 재고는 남지 않을 것이라 판단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조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아 크리스도 더 이상 예산 문제를 꺼내지 않고 대답을 하였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인크레더블,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다시 한번 경신하다. ― 뉴욕타임즈」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기록 8경기를 9경기로 경신했던 오클랜드 슬랙스의 빅 타이거! 10경기를 넘어 11경기를 달성하다. ― 오클랜드 트리뷴」
「오클랜드의 빅 타이거, 열한 경기 연속 홈런 기록 달성! ― MLB.COM」
오클랜드 슬랙스와 휴스턴 스트로스의 두 번째 경기가 끝나고 수많은 메이저리그 관련 매체에서 이날 대호가 친 홈런 기록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이걸 접한 야구팬은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 개막전 예고 홈런 퍼포먼스도 그렇고, 시즌 초부터 이렇게 메이저리그 기록을 경신하다니……. 인크레더블이란 닉네임이 틀리지 않았어!
― 하나님 아버지. 빅 타이거를 저희에게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하나님 제발 저 빌어먹을 새X 좀 사고가 나서 야구장에 나타나지 않게 해 주세요.
⤷ 너 이 새끼 누구야! 멍청한 휴스턴 스트로스 팬이냐? 아니면 우리의 인크레더블에게 기록을 상납한 텍사스 촌놈이냐? 빌어먹을 악마 추종자냐!
⤷ 알거 없다. 이 빌어먹을 오클랜드 거지 자식아!
⤷ 기다려라. 곧 널 찾아간다.
⤷ 올 테면 와 봐라 모자란 놈아!
대호가 쏘아 올린 홈런으로 인해 오클랜드 슬랙스 팬과 대호를 싫어하는 야구팬들 간의 설전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또 미국 반대쪽에서도 그와 비슷한 싸움이 펼쳐졌다.
그곳은 다름 아닌 한국과 일본이었다.
― 하하하! 한국의 야구 천재는 이번 시즌에도 MLB의 대기록은 물론이고, 세계 기록까지 경신했는데 일본의 야구 천재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한국의 MLB팬으로 짐작되는 누군가가 써 놓은 댓글 하나로 커뮤니티는 난장판이 되었다.
― 이런 바퀴벌레 같은 조선 놈이 어디서…….
⤷ 변태 오덕 쪽바리 놈이 어디서 대한국인에게 놈이라니. 그나저나 일본의 야구 천재는 뭐 하냐?
― 일본의 야구 천재 히데오 님도 홈런을 치셨다.
⤷ 그래서 느그 야구 천재는 이번 시즌 홈런 몇 개? 아니,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개수 모두 합치면 몇 개나 되냐? 한 100개는 되냐?
국적에 대한 반감으로 서로 비속어까지 써 가며 서로를 비방하는 글이 있는가하면, 언젠가 비교를 하던 일본의 야구 천재 히데오 소이치로와 대한민국의 야구 천재 정대호에 대한 비교 글을 올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MLB는 물론이고 세계 기록을 써 내려가는 대호에 대한 찬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한편, 때 아닌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는 보스턴 블루삭스의 히데오 소이치로는 상당히 훌륭한 시즌 출발을 했음에도 라이벌리가 형성된 대호가 더 엄청난 활약을 펼치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 * *
아메리칸리그 최대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보스턴 블루삭스와 뉴욕 킹덤즈의 경기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온 히데오 소이치로.
그는 호텔 입구에 몰려 자신을 기다리는 기자들의 질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히데오 선수. 서부 지구에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 정대호 선수가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또 한 차례 경신을 하였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동양인이 아니라 백인 기자들이란 것에 방심하고 있던 히데오는 질문을 받고 급격히 표정을 굳혔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질문은 그가 경기장을 빠져나올 때 같은 일본인 기자에게서 들었던 질문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일본과 한국이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하지만, 본인은 그런 것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일본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야구 선수들이 꿈에 그리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 출신뿐만 아니라 모든 메이저리거가 자신의 라이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특정 선수를 지칭하며 라이벌이라 떠들고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고 스트레스만 받았다.
“그놈이 홈런을 치든, 신기록을 세우든 그게 저와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 것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도 같은 질문이 반복이 되다 보니 히데오는 그렇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로비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히데오의 모습에 질문을 했던 기자는 물론이고 그와 함께 있던 다른 언론사 기자들은 급히 녹음기를 내리고 기사를 뽑기 시작했다.
「보스턴 블루삭스의 일본인 야구선수 히데오 소이치로, 오클랜드 슬랙스의 빅 타이거의 기록 신경 쓰지 않는다. ― 뉴욕타임즈」
「오만한 일본 출신 보스턴 블루삭스 선수,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별거 아니다. 그럼 별거인 기록은 무엇? ― 오클랜드 트레뷴」
「보스턴의 일본인 선수, 빅 타이거는 신경 쓰지 않는다. 내 갈 길만 간다. ― 뉴욕 매거진」
수없이 들은 같은 질문과 오클랜드의 한국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듯한 질문으로 인해 짜증이 솟구쳐 무심코 던진 대답으로 인해 여론은 극과 극으로 치달리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무례한 답변을 한 히데오 소이치로에 대한 질타가 대부분이었는데,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로써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말이나, 기록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답변에 대해 메이저리그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반대로 히데오의 발언에 옹호하는 측은 얼마나 그런 질문에 시달렸으면 예의 바른 그가 그런 식으로 대답을 했겠냐는 말을 했다.
물론 이런 히데오를 감싸려는 이들은 대부분 그가 속한 보스턴 블루삭스 팬과 일본인들이었다.
* * *
저녁을 먹은 대호와 한나 부부.
이들은 오랜만에 오붓한 시간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쪽!
가벼운 키스와 함께 상의를 벗은 대호의 등 위로 올라간 한나가 그의 어깨를 마사지해 주며 물었다.
“힘들지 않아?”
뭐가 힘들지 않은지 정확한 주어를 말하지 않았지만, 대호는 이런 질문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답하였다.
“물론 힘들지. 하지만 목표가 있으니 참고 나아가야지.”
대호는 마사지를 받으며, 담담히 대답을 하였다.
그런 대호의 대답에 한나는 또다시 물었다.
“내일 경기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는데, 그럼 자긴 뭐하고 지낼 거야?”
내일도 오클랜드 슬랙스는 휴스턴과 경기가 있었다.
원정 3연전의 마지막 경기였다.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는 휴스턴 스트로스를 상대로 위닝 시리즈를 확보한 상태다.
그렇기에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대호에게 휴식을 주었다.
물론 대호는 이를 거부했지만, 감독의 지시는 멈추지 않았다.
이는 대호를 위한 것이 아닌 팀을 위한 것이란 이유로 대호는 어쩔 수 없이 감독의 지시를 따라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시즌 중 투수도 아니면서 원정 기간에 휴가가 주어진 셈이었다.
“보스가 연습에 나오지 말라고 했으니 오전에는 호텔 짐에서 훈련을 하고, 훈련을 마치고 마사지를 받고…….”
질문을 받은 대호는 잠시 궁리를 하다 자신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그런 대호의 말에 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야 오클랜드와 휴스턴의 경기를 취재해야 하기에 경기가 있는 미닛 메이드 파크에 출근을 해야 하겠지만, 혼자 호텔에 남을 대호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없어도 혼자 충분히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고 운동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로 자기가 친 열한 경기 연속 홈런 기록 볼이 맞는 거야?”
한나는 테이블 한쪽에 놓여 있는 야구공을 보며 물었다.
대호가 인터뷰 중 자신에게 선물로 준 야구공의 정체가 그것이 맞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응. 프런트 직원에게 그렇게 들었어.”
“그래?”
대답을 들은 한나는 깜짝 놀랐다.
그게 사실이라면 무척이나 비싼 야구공이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수집가들이라면 높은 값을 치르더라도 구매하려고 할 가치가 충분한 야구공이다.
그런 공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준 것이기에 놀랐다.
‘아무리 부부라고 하지만 이렇게 거침없다니…….’
결혼도 쉽고 또 이혼은 더 쉬운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메일 하나로 이혼이 가능한 것도 바로 미국이란 나라였기에 재산이 많은 사람일수록 결혼 계약에 대해 아주 철저했다.
그런데 대호는 그런 것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또 해 주려 하고 있으니 한나로서는 정말로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