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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58화 (158/209)

158화

신중하게 포수의 사인을 확인한 잭 그레이는 심호흡을 한 다음 공을 던졌다.

‘후우… 하압!’

최대한 긴장하지 않고 공을 던진 잭 그레이는 타자가 자신의 공에 속기를 바랐다.

한편 정신을 집중해 투수를 관찰하던 대호는 이전과 또 다른 현상에 잠시 주춤했지만, 홈으로 날아오는 공을 보면서 생각을 멈추고 타격에 집중했다.

‘역시 스플리터다.’

조금 전 투수를 관찰할 때 보았던 대로 잭 그레이가 던진 구종은 스플리터였다.

스윽!

왼발을 앞으로 이동을 하고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낮게 떨어지는 스플리터란 구종의 특성을 생각하며, 공이 떨어지기 전 미리 배트가 마중을 나가 타격을 하기 위한 자세였다.

공과 배트가 마주치는 순간 마치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구부렸던 무릎을 펴며 팔을 끝까지 휘둘렀다.

따아아악!

대호가 자신이 던진 스플리터에 스윙을 가져가자 미소를 짓던 잭 그레이는 예상치 못한 타격음에 깜짝 놀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히 자신이 던진 공은 제구가 제대로 된 스플리터였다.

그 말은 조금 전 타자의 스윙에 맞으면 안 되는 공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맞는 순간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젠장! 괴물이군!’

심지어 잭 그레이는 자신이 던진 스플리터가 맞는 순간, 그 타구가 홈런이 될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와아아아!”

텍사스 레이스의 홈구장인 글로브 라이프 필드의 한쪽에 모여 있던 한인 교포들은 대호의 홈런에 일제히 환호하며, 들고 있는 태극기를 흔들었다.

타다다다!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던 대호는 관람석 한쪽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는 교포들을 보고는 오른손을 들어 흔들었다.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아 준 교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정대호 선수, 태극기를 들고 응원을 온 교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고 있습니다.”

중계 부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김승주는 눈물을 글썽이며 소리쳤다.

“정대호 선수, 이것으로 여덟 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 내며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갱신합니다.”

“헉! 제가 그걸 깜박하고 있었네요. 정대호 선수, 정말로 엄청난 선수입니다.”

김승주는 자신이 무엇을 깜박하고 있었는지 뒤늦게 깨닫고 얼른 사과의 말과 함께 정확한 정보를 중계했다.

“조금 전 정대호 선수의 타격 자세가 조금 특이했는데, 그건 투수가 던진 투구 때문인가요?”

홈런을 치기는 했지만, 아직 의문은 남아 있었다.

대호의 타격 자세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살짝 무너진 것처럼 보였고, 마지막 순간 일어서는 동작이 보였기 때문에 김승주가 물어보았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여기를 보시죠.”

중계석에 마련된 모니터를 통해 조금 전 대호의 타격 자세가 느리게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확실하네요.”

“뭐가 말입니까?”

하구연이 자세한 설명을 미루자 김승주가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제야 하구연 해설은 대호의 타격 자세가 왜 그러했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여기를 보시면, 방금 텍사스의 투수 잭 그레이가 던진 공은 그의 결정구인 스플리터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스플리터요?”

“예. 예전에는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이라고 불리며 패스트볼이라 분류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변화구로 평가받는 구종이죠. 포크볼에서 낙폭은 조금 줄었지만, 속도가 더 빠른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 일명 고속 포크볼이라고 불리는 그것이군요.”

김승주 역시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며 방금 전의 스플리터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구연 해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네. 사실 메이저리그보다는 NPB와 KBO에서 더 많이 던지는 구종입니다. 패스트볼과 비슷한 궤적을 그리다가 밑으로 꺾이는 만큼 타자들을 속이기 좋다고 말할 수 있죠.”

양손을 써 가며 공의 변화를 설명하는 하구연의 모습에 김승주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정대호 선수가 스윙을 할 때 무릎이 구부러진 것이었군요.”

“맞습니다. 거기에 여기를 보시면…….”

하구연은 다시 한번 화면을 뒤로 돌려 속도를 낮춰 플레이 시켰다.

그러자 조금 더 대호의 타격하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가 있었다.

“여기입니다.”

“아!”

하구연 해설이 화면을 정지시키고는 들고 있던 볼펜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것을 본 김승주는 대호의 타격 자세가 평소와 왜 다르게 보였는지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공이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지점에 배트를 가져가기 위해 앞으로 이동을 하였군요.”

“맞습니다. 이렇게 공이 떨어지기 전 먼저 다가가 배트를 가져가게 되면, 스플리터라고 한들 속도가 조금 느린 패스트볼이나 다름이 없게 되죠.”

“하하하하!”

대호가 홈런을 때려 낸 과정을 느린 화면으로 확인한 김승주는 저도 모르게 크게 웃어 버렸다.

자신들이야 중계 화면을 통해 느리게 볼 수 있고, 또 이미 결과가 난 공이기에 말로 설명할 수 있지만, 대호는 이 모든 것을 타석에서 찰나의 순간에 보고 판단하여 스윙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런데다가 홈런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하니, 저도 모르게 소름이 끼치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 * *

한편 KBC스포츠 중계 부스와 조금 떨어져 있는 어느 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어떻게 저런 자세에서 홈런이 나올 수 있지?”

울프TV 카메라맨인 제임스 커트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가 울프TV에서 카메라를 잡고 메이저리그를 취재한 것만 10년이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야구 경기 촬영만 10년인데, 그동안 그가 봐 온 결과 잘못된 자세에서 타격을 해 봐야 제대로 된 타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 대호의 타격 폼은 그가 아는 상식을 완전히 깨부숴 버렸다.

저 멀리 뻗으며 홈런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제임스의 표정이 이렇게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이 된 것이다.

“한나, 당신의 남편은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입니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를 확인한 제임스가 한나에게 물었다.

“제임스! 당신은 우리 그이가 팬들에게 어떻게 불리는지 잊었나요?”

“네? 그게 무슨… 아!”

“인크레더블, 바로 인크레더블이라 불려요.”

인크레더블.

말 그대로 믿을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아닌 너무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칭찬의 별명이었다.

그것이 바로 대호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허허!”

한나의 말에 제임스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하며 웃었다.

“이제 겨우 시즌 초반인데, 벌써 메이저리그 역대급 기록 하나를 갱신했네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대호의 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쫓으며 중얼거렸다.

― 한나. 이번 시즌에는 최소 두 개 이상 기록을 갈아 치울 거야!

한나의 귀에 개막전이 열리기로 한 날 오전에 집을 나서기 전 남편이 했던 말이 맴돌았다.

그날 대호는 먼저 출근을 하는 한나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했었다.

마치 이번 2033시즌에 임하는 각오를 다짐하듯 자신에게 했던 그 말이 잊히지 않았다.

* * *

대호의 홈런으로 1회 초부터 한 점 앞서 나가기 시작한 오클랜드 슬랙스는 여세를 몰아 득점을 하였다.

“좋았어!”

기습 번트로 진루를 했던 지미 울프가 후속 타자들의 연속 안타로 홈으로 들어오면서 스코어는 2:0이 되었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거기까지였다.

아쉽게도 5번 타자로 나선 파냐의 빗맞은 타구가 더블플레이가 되면서 투아웃이 되었고, 이어지는 6번 타자 시몬 역시 내야플라이로 아웃되며 1회 초 공격이 마무리되었다.

공수 교대가 되고 대호는 더그아웃에 남아 동료들이 수비를 하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대호는 오늘 지명타자로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연속 경기 홈런에 도전하는 대호를 생각해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타격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집어넣은 것이었다.

― 대호, 지난번에 얘기한 적 있었지? 네가 없을 때 외야수들이 어떤 수비 능력을 보여 주는지도 체크해야 한다고.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를 기억해.

그의 말대로 대호가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부상을 당한 뒤, 오클랜드 슬랙스의 외야진은 최악의 수비 능력을 자랑했다.

과연 그들이 2032시즌 지구 우승팀이 맞는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형편없었으니까.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수비 범위가 꼬여 버린 외야수들이 에러를 범하면서 마운드가 급격히 무너졌다.

그 모습은 마치 2031시즌 전반기 어수선한 오클랜드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후반기에 대호가 메이저리그 콜업 되면서 외야가 안정되었는데, 그가 부상으로 빠지자마자 바로 원위치 된 것을 감독은 경계했다.

물론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중점적으로 점검하여 혹시라도 대호에게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중견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도록 수비 능력을 길렀다.

오늘은 그것을 실전에서 점검하는 한편, 대호를 기록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거양득을 노리는 셈이었다.

대호의 입장에서도 감독의 그런 생각에 동의를 하였다.

또 대기록 도전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더그아웃에 남아 동료들이 수비를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려니 조금 불안하기도 한 것이 뭔가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뭐지?’

배려에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마치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왜, 불안해?”

그런 대호의 기분을 알고 있기라도 하듯 그라운드를 지켜보던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고개를 돌려 대호를 보며 물었다.

“네? 네! 조금 이상합니다.”

감독의 질문에 대호는 바로 수긍을 하며 자신의 기분을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대호의 대답에 케세이 감독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였다.

“넌 충분히 네 몫 이상을 하고 있으니 그만하면 됐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어떤 면에선 단호하게 현 상황을 파악하고 대호를 설득했다.

“네 목표가 명예의 전당이라고 했으니 지금처럼만 하면 넌 분명 목표를 이룰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동료들을 믿고 기다리면 된다.”

작년, 너무 무리한 나머지 막판에 부상을 당한 대호를 보며 마이크 케세이는 많은 생각을 했다.

혼자서 베테랑 두 사람 이상으로 시즌을 제패하던 대호를 보유했으면서도 챔피언십 시리즈를 제압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했다.

그리고 어떻게 대호를 활용해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야구 천재라도 165경기를 풀로 돌린다면 충분히 과부하가 걸릴 수 있다는 점을 잊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어떻게 활용해야 가장 잘 쓸 수 있을지 연구했다.

그 고심의 결과가 바로 오늘처럼 지명타자로 출전시키는 것이었다.

대호가 가진 뛰어난 공격력은 계속해서 활용하면서도 적당히 수비 부담을 덜어 주며 체력을 보존한다.

다만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선 외야수들의 수비 포지션이 멀티 포지션이어야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좌익수 포지션인 시몬 몬데스와 백업인 JJ 스티븐이 있어 걱정을 덜었다.

이 두 사람은 외야 어느 곳에 데려다 놔도 1인분을 할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중 시몬 몬데스의 원래 포지션은 중견수였다.

대호 때문에 포지션에서 밀려 좌익수를 보고 있었는데, 오늘은 대호가 지명타자로 수비에서 빠지면서 오랜만에 본인의 포지션을 찾은 것이다.

펑!

“스트라이크!”

오늘 오클랜드 슬랙스의 투수는 3선발인 체프 벤으로 작년 이맘때는 2선발 레프리 그로스가 부상으로 인해 선발에서 빠졌을 때 그의 빈자리를 채워 넣으며 쏠쏠한 활약을 보였던 투수다.

다만 오늘 대호가 수비에서 빠졌다는 것으로 인해 조금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펑!

“스트라이크!”

다행이 1회다 보니 긴장한 듯 보이지만 아직까지 걱정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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