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한창 조엘과 데이비드, 그리고 존 피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 누군가 조엘의 뒤로 다가와 귓속말을 하고 나갔다.
귓속말을 한 사람은 바로 조엘의 비서인 크리스 마틴 이었다.
“무슨 일이야?”
구단주인 존 피셔는 나직한 말로 무슨 일인지 물었다.
그런 구단주의 질문에 조엘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
나쁜 소식이라면 그렇지 않을 것인데,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나쁘지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드는 존 피셔였다.
“예, 아주 좋은 소식이 날아왔군요.”
조엘은 나쁜 소식이 아닌 굿 뉴스가 날아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호! 좋은 소식이라? 무슨 일인지 궁금해지는군!”
구단주의 관심에 조엘은 방금 전 크리스가 전해준 소식을 들려주었다.
“우리의 복덩이가 메이저리그 타이기록까지 고작 한 경기만 남겨 두었다는 소식입니다.”
“응? 메이저리그 기록과 한 경기 남았다? 대체 무슨 기록이기에 그렇게 기뻐하는 것인가?”
존 피셔는 너무도 궁금해 물었다.
“…설마, 오늘도 홈런을 쳤다는 말인가?”
조용히 듣고 있던 데이비드가 끼어들어 물었다.
조금 결례가 되는 일이었지만, 그 또한 오클랜드 슬랙스의 사장으로써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기에 끼어든 것이다.
“예, 그렇다고 합니다.”
“허어!”
아직까지 무슨 이야긴지 알지 못하는 존 피셔와 다르게 조엘의 그렇다는 답변을 들은 데이비드는 너무 놀라 탄성을 질렀다.
“빅 타이거가 팬들이 부르는 것처럼 인크레더블한 것은 알았지만, 설마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3년차에 대기록 도전이라니…….”
혼자서 중얼거린 데이비드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니까 뭔데?”
자신이 임명한 사장이 저렇게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모습에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한 존 피셔가 조금 더 목소리 톤을 높여 물었다.
그제야 데이비드는 정신을 차리고 대답을 하였다.
“정대호 선수가 오늘 일곱 경기 연속 홈런을 쳤다고 합니다.”
“그래? 그게 어떻다는 것이지?”
아직까지 사태를 짐작하지 못한 존 피셔는 그게 어떻냐는 질문을 하였다.
그는 메이저리그의 한 구단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일곱 경기 연속 홈런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구단주로서 너무나 부족한 지식이었다.
아니, 구단주가 아니라 일반인 레벨이더라도 일곱 경기 연속 홈런이라면 무언가 대단하다고 느낄 텐데, 전혀 그런 반응조차 없었다.
하지만 존 피셔에게 관심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이 소유한 구단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 지와 사업의 진행 뿐이었다.
“존, 잘 들으세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냐면…….”
보다 못한 조엘이 나서서 말을 꺼냈다.
“구단 가치가 최소 1백만 달러 정도는 올라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
아무것도 몰랐던 존 피셔는 조엘의 구단 가치가 올랐다는 말에 놀랐다.
존 피셔 정도의 부자에게 1백만 달러는 그리 큰돈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방금 전까지 얘기하던 금액에서 순식간에 1백만 달러가 올라갔다는 건 적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조엘의 이야기에 그는 더욱 놀랐다.
“만약 내일도 홈런을 친다면, 1백만 달러가 아니라 그때는 1천만 달러의 가치가 오를 것입니다.”
“뭐? 1천만 달러?”
“예, 1천만 달러입니다. 그리고 선수의 가치도 덩달아 오를 것이지만 말입니다.”
조엘은 어깨를 으슥하고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데이비드 사장을 돌아보았다.
그런 조엘의 시선을 느꼈는지 데이비드는 그의 시선을 외면했다.
* * *
「정대호, 메이저리그 대기록 도전
오클랜드 슬랙스는 홈 개막전을 포함한 홈경기 여섯 게임을 치르고, 같은 지구 텍사스 레이스로 원정을 떠났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정대호는 홈 6연전에서 전 경기 홈런을 치는 기염을 토했으며,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기록에 도전하게 되었다. 여섯 경기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이루고 텍사스로 떠난 정대호 선수의 활약에 주목되는 가운데, 첫 타석과 두 번째 타석에서는 각각 볼넷과 2루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대망의 세 번째 타석인 6회. 센터 방면 홈런을 치면서 일곱 경기 연속 홈런을 이어 갔다. 이로써 정대호 선수는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8경기) 기록에 단 한경기만 남겨 두게 되었다.
대한스포츠 박예나 기자」
⤷ 뭐야, 일곱 경기 연속 홈런? 그거 대단한 건가?
⤷ 당연하지.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이 아마 여덟 경기일걸?
⤷ 별거 아니잖아! KBO는 아홉 경기 홈런인데.
⤷ 뭐냐, 이놈은? MLB랑 KBO가 같냐? 야알못 인증하네.
⤷ 위에 야알못은 짜져라! 형님이 정리해 준다.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은 데일 롱이 1956년에 그리고 돈 매팅리가 1987년에 켄 그리피 주니어가 1993년에 세웠다. 그 뒤로 조이 보톰이 2021년, 마이크 트라우티가 2022년에 일곱 경기 연속 홈런을 때렸다. 그러니 이들과 타이기록을 세운 대호도 대단한 거지.
누군가 나와서 정리를 해 주자, 대호가 세운 일곱 경기 연속 홈런이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 야구팬들은 하나같이 대호를 칭송했다.
심지어 위에서 언급한 메이저리그 스타들이 야구계에서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슈퍼스타들과 같은 기록을 쓴 대호에게 호감과 경외감을 함께 느꼈다.
* * *
6회 대호의 일곱 경기 연속 홈런에 힘입어 오클랜드 슬랙스는 원정 1차전을 3:1로 승리를 가져갔다.
그리고 원정 2일 차가 되자 많은 관중이 오클랜드 슬랙스와 텍사스 레이스의 경기가 치러지는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 모여들었다.
이곳 글로브 라이프 필드를 찾는 이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검은 머리의 아시아인이라는 점이었다.
텍사스에 살고 있는 한인들과 한국 기업의 현지 파견 근로자들이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활약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관람하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텍사스 레이스에 한국인 타자가 있던 10여 년 전, 이곳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 물결치던 태극기의 향연이 다시 한번 재현되었다.
‘오, 태극기가 많이 보이네!’
경기 전 그라운드에서 몸을 풀던 대호는 관중석 곳곳에서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를 보면서 무언가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그렇게 애국자는 아닌데…….’
태극기를 보며 울컥한 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에 목메는 그였기에 애국심이란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올림픽 무대도 사실 자신의 목표에 도움이 되기에 잠시 팀에 양해를 구하고 출전했을 뿐이었다.
잘되면 병역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타지에서 태극기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너무도 이상한 기분이었기에 대호 본인도 이게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당황했다.
“정대호! 오늘도 홈런 한 방 부탁해!”
태극기의 물결을 보고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관중석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 주라고!”
누군가 그 말에 동조하며, 다시 한번 그에게 부탁하는 말이 들렸다.
자신을 향해 누군가가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 달라는 부탁을 하자, 대호는 무언가 가슴속 깊은 곳에서 뭉클한 감정이 솟구치는 걸 느꼈다.
‘하아!’
뭐라 설명할 길이 없는 느낌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이에 대호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돌려 한손을 들어 화답했다.
“우와아아!”
대호의 반응에 관중석에서 커다란 환호성이 들렸다.
팀을 떠나 대호는 어느 세 메이저리그의 스타가 되어 있었다.
비록 텍사스는 아니었지만, 메이저리그에 호령하는 대스타가 자신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을 지켜본 야구팬들은 그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하하, 오늘 이곳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 태극기가 많이 보이는 군요.”
김승주는 경기장 한 쪽에 보이는 태극기 무리를 보며 말을 하였다.
“어제 경기가 송출되면서 텍사스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많이 찾은 것 같습니다.”
하구연 해설도 태극기의 물결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오늘 경기 관전 포인트는 아무래도 정대호 선수의 여덟 경기 연속 홈런이겠죠?”
이제는 김승주도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이 가지는 의미를 알고 언급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하구연 위원님. 위원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정대호 선수가 오늘도 홈런을 칠 수 있겠습니까?”
김승주는 오늘도 대호가 홈런을 쳐,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물었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정대호 선수가 보여준 능력을 보면 충분히 홈런 기록을 이어 갈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다만, 뭐죠?”
이야기를 하던 하구연이 다만이란 단서를 붙이며 하던 말을 중단하자, 답답하다는 듯 물어보는 김승주다.
“투수가 작정하고 피한다면 기록 달성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
그 역시 하구연의 이어진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타자라고 하더라도 투수가 승부를 하지 않고 고의 사구를 던진다면, 기록 달성에는 실패할 테니까.
“그렇군요. 오늘의 관전 포인트는 투수가 우리의 정대호 선수와 정면 승부를 펼칠 것인지, 또 정면 승부를 걸어온다면 정대호 선수가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이어 갈 수 있는지가 되겠군요.”
간추린 김승주의 말에 하구연 해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이 맞다고 하였다.
“맞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경기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너무도 정확한 요약에 하구연은 더 이상 이야기를 덧붙일 필요 없이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 * *
팡!
“볼!”
1회 초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투수가 던진 초구를 지켜보았다.
바깥쪽으로 공 한 개 반은 빠지는 볼이었다.
팡!
“볼!”
두 번째도 조금 전 코스와 비슷한 바깥쪽으로 하나 정도 빠지는 볼이 날아왔다.
‘설마 나와 승부를 피하겠다는 건가?’
두 번 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볼이 날아들자 대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텍사스 레이스의 3선발 잭 그레이의 표정을 보면 뭔가 불만에 가득한 찬 듯했고, 처음 투구 역시 그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것 같아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투구는 더그아웃의 지시인 것 같은데…….’
대호가 그렇게 상대의 투구를 지켜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텍사스의 배터리도 암중으로 무수히 작전을 주고받았다.
‘잭, 굳이 기록의 희생자가 될 필요 없잖아. 그러니 여기로 던져!’
‘가비. 비록 빅 타이거가 대단한 타자란 것은 알겠지만, 경기 시작부터 이렇게 피할 필요가 있을까?’
잭 그레이는 포수인 가비 미치에게 그렇게 물었다.
‘그러니 지금은 피하는 것 아니겠어. 네가 몸이 풀린 뒤에 승부를 보면 되잖아?’
‘알겠어. 그럼 네 말대로 이번에는 네 뜻대로 던질게!’
잭 그레이는 가비 미치의 사인에 그렇게 대답을 하고 투구에 들어갔다.
그 또한 아직 자신의 몸이 100% 풀린 상태가 아니란 말에 동의했다.
‘두 번의 바깥쪽 빠지는 볼을 던졌으니 이번에는 로케이션을 생각한다면 인코스로 던지겠네.’
이런 판단을 한 대호는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투수의 몸이 덜 풀린 초반에 승부를 보기로 작정을 하고, 스킬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정신을 집중하자 점점 주변의 소음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와 자신만이 느껴졌다.
‘…어?’
고도로 정신을 집중시킨 상태에서 대호는 지난 몇 번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저런 것까지 보이는 거지?’
분명 유니폼에 가려져 있어야할 투수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보였다.
완전히 투시되는 건 아니었지만, 팔과 다리의 근육이 보인다는 건 수 싸움에서 한 발 앞서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능력이 더 좋아지면 이득이지.’
대호는 이번 공이 어떤 구종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스플리터로군!’
스플리터, 과거에는 스플릿 핑거 패스트볼이라 불리던 이 구종은 포크볼처럼 낙폭이 있지만, 더 빠른 구속을 가진 공이었다.
하지만 어떤 구종이든 투수가 던질 구종을 미리 알고 있다면 충분히 상대 가능하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