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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56화 (156/209)
  • 156화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 조엘은 사장인 데이비드 포트와 함께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오클랜드 슬랙스의 구단주인 존 피셔였다.

    “요즘 어때?”

    구단주인 존 피셔는 스테이크를 썰며 물었다.

    그러자 조엘은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역대급으로 잘 흘러가고 있습니다.”

    “잘 흘러가고 있다?”

    조엘의 대답을 들은 존 피셔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한편 구단주와 단장인 조엘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오클랜드 슬랙스의 사장인 데이비드 포트는 좌불안석이었다.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가 흘러가고 있는 방향을 보면 굳이 긴장하지 않아도 될 것이지만, 데이비드의 입장에선 또 그렇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전적으로 대호 때문이었다.

    조엘이 2030년 해외 유망주 계약을 맺을 때, 그는 반대편에 서서 대호와의 계약을 반대했던 경력이 있었다.

    당시 데이비드는 아시아인에게 그렇게 비싼 계약금을 들여 계약을 할 필요가 있냐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중남미에서 활약하고, 오랫동안 메이저에스 증명된 라틴계도 아니고, 내구력이 떨어지는 동아시아 유망주에게 700만 달러를 지급하는 건 너무 오버라는 것이다.

    사실 조엘과 오클랜드 구단이 그 1년 전인 2029년, 일본의 역대급 유망주 히데오 소이치로에게 접근했다가 불발되고 보스턴에게 하이 재킹을 당한 것도 데이비드 사장의 방해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 조나단이 머뭇거렸기 때문에 보스턴보다 적은 금액을 부르게 된 것이지만, 그가 그렇게 소극적일 수밖에 없던 이유에는 사장의 영향력이 컸다.

    조엘은 그런 경험을 겪었기에 대호와 계약을 따낼 때에는 이전 히데오 소이치로의 상황을 빗대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겨우 성사시킬 수 있었다.

    “현재 구단 가치는 2030년에 측정한 값보다 40%나 올랐습니다.”

    보고를 하는 조엘은 굳이 2030년에 측정했던 구단 가치와 현재의 가치를 비교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구단 가치는 2030년 메이저리그 통산 29위로 12억 2천만 달러였다.

    그런데 2033년 현재, 구단 가치는 17억 8백만 달러나 되었다.

    무려 4억 8천 8백만 달러 상승한 금액이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은 구단주인 존 피셔도 잘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하진 않았다.

    “그리고 구단 가치는 지금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조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구단주를 보며 담담하게 이야기하였다.

    그런 조엘의 보고를 듣고 있는 데이비드 사장의 표정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구단 가치가 갑자기 폭등하고, 또 지금도 오르고 있는 이유가 한 선수의 존재 때문이라는 것인가?”

    존 피셔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는 듯 넌지시 한 선수를 언급했다.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구단주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그 선수로 인해 연간 티켓과 유니폼 판매 수익이 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당연한 말이지만, 구단의 가치란 보유한 선수가 얼마나 뛰어나느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선수의 이름이 새겨진 저지와 포토 카드, 그리고 관련 캐릭터 상품 등의 판매금과 경기 티켓 판매율 등이 종합되어 평가되는 금액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유명 선수를 많이 보유하고, 거기에 우승 경험까지 쌓이면 구단 가치가 오르게 된다.

    2030년 대호가 오클랜드 슬랙스와 계약을 하기 전까지 오클랜드 슬랙스의 구단 가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리 높은 순위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밑에서 세는 게 빠른 수준.

    같은 리그에 속해 있는 뉴욕 킹덤즈가 32년 연속 메이저리그 구단 가치 1위를 달성하며 81억 달러로 책정받은 것에 비해 6분의 1도 되지 않았지만, 구단주인 존 피셔에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흠, 그렇단 말이지?”

    “네. 그러니 이번 겨울 연봉 계약 협상을 두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판단됩니다.”

    오늘 조엘이 사장인 데이비드와 함께 구단주인 존 피셔를 만난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2033시즌이 개막한지 겨우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가 싶겠지만, 사실 진작 논의했어야 할 내용이었다.

    현재 대호의 가치는 날로 상승하고 있는 상황.

    또 지난 몇 년간 오클랜드 슬랙스는 리빌딩 중이었지만, 대호가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기 전까지는 포스트시즌을 밟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31시즌 후반기에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면서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을 경험했다.

    비록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과하고 디비전 시리즈에 패배를 하면서 금방 끝났지만, 어찌 되었든 대호의 힘으로 몇 년 만에 포스트 시즌을 경험한 것이다.

    또 작년 2032시즌에는 어떠했는가.

    구단의 2선발이 시즌 초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되었을 때, 많은 전무가들이 오클랜드 슬랙스의 가을 야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호언장담과는 반대로 오클랜드는 100승 이상을 거두며 지구 1위로 진출하였고,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올라갔다.

    막판에 대호의 부상으로 역전패를 당하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몇 년간 챔피언십 시리즈는 물론이고 디비전 시리즈도 진출하기 힘들어하던 구단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것만 봐도 한 선수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이대로 둔다면 그는 구단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자신의 의견을 구단주에게 이야기하던 조엘은 말을 하다 말고 테이블에 놓인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아니, 대호의 재능을 생각하면 페이 롤이 작은 저희가 그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음!”

    “그러니 그 전에 좋은 관계를 맺고 다른 구단에 비싼 값으로 판매를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조엘은 자신이 할 말을 마치고 조용히 구단주를 쳐다보았다.

    이제는 그의 판단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할 말을 마친 조엘이 조용히 앉아 구단주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을 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데이비드도 첨언을 하였다.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무리한 연봉 계약은 다른 선수들의 불만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는 말이었지만, 말 자체는 이해 가는 부분도 있었다.

    다만 조엘의 생각이 정반대라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팀의 어느 누구도 대호의 연봉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걸 조엘 단장 당신이 어떻게 아나?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다 물어봤어?”

    데이비드는 얼굴을 붉히며 따졌다.

    “그 정도는 계산하지 않아도 드러난 결과입니다.”

    너무나 확언하는 대답에 존 피셔가 스테이크를 썰던 손을 멈췄다.

    “대호는 저희와 계약한 이후 계속해서 역사를 써 가고 있습니다.”

    ‘역사라…….’

    존 피셔는 조용히 조엘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 * *

    따아아악!

    6회 초,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려 타격을 하였다.

    몸 쪽 낮은 포심 패스트볼이었는데, 대호는 이를 앞에 놓인 왼발을 살짝 밖으로 이동을 하여 공이 가운데로 향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 허리의 회전만으로 배트의 스윙 속도를 높여 타격하였다.

    배트의 히팅 포인트에 맞은 공을 끝까지 팔을 휘두르는 것도 잊이 않았고 말이다.

    스케일 70이 넘는 힘과 민첩, 그리고 체력까지 집중된 스탯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투수의 공임에도 불구하고 구위에 눌리지 않았다.

    “와아아아!”

    쭉쭉 뻗는 타구를 보며 원정석에 앉아 있던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은 경기장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환호했다.

    누가 봐도 이번 대호의 타구는 홈런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정도로 멀리 날아갔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호의 타구에 반응하려던 텍사스 레이스의 외야수들 역시 펜스 근처에서 조용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홈런!”

    심판의 홈런 선언에 이곳 글로브 라이프 필드에 온 야구팬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정대호! 정대호!”

    “하하하, 정대호 선수. 드디어 세 번째 타석에서 홈런을 쳤습니다.”

    대호의 일곱 경기 연속 홈런에 이름만 계속해서 연발하는 김승주, 그리고 하구연 해설은 그 옆에서 동네 아저씨처럼 행복하게 너털웃음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정대호 선수, 개인 통산 113번째 홈런이자 2033시즌 8호 홈런. 동시에 일곱 경기 연속 홈런을 때려냅니다.”

    “하하하, 이번 홈런으로 정대호 선수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마이크 트라우티의 기록과 동률을 이룹니다.”

    “하구연 해설 위원님,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은 여덟 경기이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세계 기록은 우리 대한민국의 전설인 이대호 선수가 가지고 있는 아홉 경기 연속 홈런입니다.”

    대한민국의 전설인 이대호의 기록도 이제 점점 눈앞에 다가오고 있는 상황.

    두 사람의 대화 톤도 어느새 굉장히 높아져 있었다.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던 와중, 김승주가 방금 깨달았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기존의 세계 기록인 아홉 경기 연속 홈런을 친 선수도 이름이 대호군요.”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습니다.”

    연속 경기 홈런 기록을 떠들던 두 사람은 급기야 실없는 농담까지 하며 대호를 칭찬했다.

    * * *

    중계 부스에서 대호의 일곱 경기 연속 홈런 기록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돈 대호는 조용히 타석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미 울프와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그러고 나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기 전 다함께 도열해서 경기 축하를 해 주는 팀 동료와도 기쁨을 나누었다.

    “대호, 연속 경기 홈런 축하한다.”

    “역시나 인크레더블한 모습이었어.”

    “이번 시즌도 빅 타이거가 홈런왕과 중견수 실버 슬러거 자리는 예약인가?”

    축하하는 와중, 누군가는 이제 겨우 시즌 초임에도 불구하고 연말에나 판가름 나는 홈런왕과 실버 슬러거를 언급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던 중 대호는 감독이 내민 주먹에 자신의 주먹을 가져다 댔다.

    툭!

    “축하한다.”

    자리로 돌아가는 대호의 등 뒤로 마이크 케세이 감독의 축하가 이어졌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대호는 차분하게 숨을 골랐다.

    담담해지려 했지만, 기록에 한 발 다가갔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기 때문이다.

    남은 경기를 위해서라도 흥분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한 발자국 남았다.’

    메이저리그 연속 경기 홈런 기록까지는 한 경기 남았다.

    물론 가능하다면 세계 기록인 아홉 경기 연속 홈런 타이 기록도 세우고 싶고, 될 수 있다면 열 경기로 갱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기록이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에 흥분을 가라앉히고 객관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 * *

    한편 오늘도 오클랜드 슬랙스를 따라 MVP 인터뷰를 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한나 정은 울프TV에 할당된 부스에서 남편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머! 홈런이야!’

    한나는 타구가 펜스를 넘어가는 순간 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남편의 홈런에 기뻐했다.

    “한나 씨, 축하합니다.”

    한나와 함께 온 카메라맨이 기뻐하는 한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제임스!”

    카메라맨 제임스 커트는 돌아온 한나의 답변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랜 기간 카메라맨을 하면서 지켜본 한나와 대호의 모습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부부였다.

    비록 아내인 한나가 나이가 많기는 했지만, 그가 보기에는 정신 연령이 높은 대호와 그리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아니, 어떤 때는 어린 대호가 더 성숙해 보여 놀랄 때가 많았다.

    그러니 이상할 것도 없고 너무도 천생연분인 부부란 생각뿐이다.

    “대기록까지 한 경기 남았군요.”

    “그런데 가능할까요?”

    한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보통 메이저리그에서 대기록을 기록하는 선수가 있으면 회피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200년이 넘어가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그러한 불문율이 모두 지켜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빅 타이거라면 어떻게 해서든 꼭 이뤄 낼 것입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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