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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54화 (154/209)

154화

우익수가 타구를 놓치고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대호는 2루를 돌아 3루에 도착했다.

그리고 3루를 지나 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주루 코치가 그를 막아 세웠다.

“대호! 멈춰!”

“네?”

“굳이 무리할 필요 없다. 멈춰라!”

주루 코치의 지시에 대호는 홈으로 달리던 것을 멈추고 3루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지?’

보통 때라면 달리는 자신을 세우지 않는다.

이미 코칭스태프, 그리고 감독에게 자신의 판단에 따라 뛸 수 있는 그린 라이트 자격을 부여받지 않았던가.

“무슨 일이세요?”

자신을 멈춰 세운 코치의 말에 대호는 궁금해 물었다.

그러자 질문을 할 것을 알았다는 듯 주루 코치가 곧바로 대답했다.

“5점 차나 나는데, 굳이 무리할 필요 없어. 더그아웃에서 무리한 주루를 하지 말라는 지시다.”

“아! 알겠습니다.”

주루 코치의 대답에 대호도 납득했다.

누가,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경기를 되짚어 보니, 자신이 많이 흥분한 상태였다는 것을 느끼고 반성하였다.

‘연초에 그렇게 다짐을 했으면서도, 경기에 들어가니 바로 잊어버렸네.’

작년 시즌 말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부상을 입고 경기를 지켜보면서 했던 다짐도 잊고 너무 경기에 몰두했다는 것을 깨달은 대호는 반성했다.

그러던 와중, 주루 코치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대호 너, 안타 하나면 기록 적립이다.”

너무도 뜬금없는 주루 코치의 말에 대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지? 기록 적립이라니… 아!’

곧바로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그렇지. 오늘 내가 첫 타석에서 홈런, 두 번째 타석에서 2루타, 그리고 이번 타석에서 3루타. 그렇다면…….’

생각해 보니 자신은 현재까지 3타수 3안타를 기록하고 있었다.

더 중요한 건 단타를 제외한 모든 안타와 홈런을 쳤다는 것.

그러니 남은 타석에서 1루타만 나오면 힛 포 더 사이클이었다.

일본과 한국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라고 칭하는 바로 그것 말이다.

물론 대호는 한 시즌에 힛 포 더 사이클을 꼭 한 번씩은 기록하곤 했지만, 사실은 타자가 일생에 한 번 달성하기도 어려운 기록이었다.

더욱이 대호의 경우 안타가 대부분 2루타 이상의 장타였기에, 단타 하나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본인 스스로 놓칠 때가 더욱 많았다.

그런데 올 시즌은 굳이 이기고 있는 상황에선 굳이 장타를 노리지 않기로 했으니, 이번 기회에 힛 포 더 사이클을 노려볼 생각이다.

‘이번 시즌에는 한나에게 했던 말처럼 기록 도전을 해 보는 것도 좋겠네.’

대호는 기왕 상황이 이렇게 된 것, 오늘 경기에서 기록을 달성하겠다고 결심했다.

* * *

“괜찮습니다.”

“네? 뭐가 괜찮다는 것입니까?”

대호가 홈으로 뛰다 말고 3루로 돌아온 것에 실망하던 김승주는 갑자기 괜찮다는 말을 하고 있는 하구연 해설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김승주의 질문에 하구연은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비록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기록이요? 무슨?”

하구연의 설명을 들었음에도 더욱 더 의문을 품게 된 김승주는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하구연 해설 위원은 일말의 귀찮다는 기색도 없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이어 나갔다.

“하하하, 김승주 아나운서님이 너무 아쉬워서 잠시 잊어버린 듯하군요. 무슨 뜻인가 하면, 바로 힛 포 더 사이클. 일명 사이클링 히트가 남아 있지 않습니까?”

“아!”

사이클링 히트란 소리에 김승주는 놀라 탄성을 질렀다.

“그러고 보니 정대호 선수, 1회 첫 타석에서 예고 홈런을 때렸고, 2회 두 번째 타석에서 2루타를, 그리고 방금 전 3루타… 하하!”

하구연 해설의 말에 잠시 대호의 타석을 복기하던 김승주는 자신이 말을 하고도 깜짝 놀랐다.

사이클링 히트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히 두 사람만 나누고 있는 게 아니었다.

미국 현지의 라디오에서도 이번 경기를 중계하며 대호의 힛 포 더 사이클 달성 가능성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오클랜드 슬랙스의 1번 타자 정대호 선수, 아쉽게도 주루 코치의 만류에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 무산되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이번 세 번째 타석에서 3루타를 기록하면서 힛 포 더 사이클까지 안타 하나만을 남겨 두게 되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보다는 힛 포 더 사이클이 타자 입장에서 더 자랑할 수 있는 기록이지 않습니까?

또한 뉴슬랙스 볼파크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경기장 안에 퍼지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은 또다시 대호의 이름을 불렀다.

“대호! 대호! 대호!”

대체 오늘 뉴슬랙스 볼파크 안에 대호의 이름이 연호되는 것이 몇 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불리고 있었다.

이제는 LA데블스 팬들까지 라이벌 구단의 선수인 대호의 이름을 함께 부르고 있을 지경이었다.

* * *

대호의 3루타로 1루에 있던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스코어는 0:5가 되었고, 급기야 LA데블스에서는 투수 교체를 감행했다.

어제에 이어 팀의 원투 펀치가 모두 규정 이닝인 5이닝을 넘기지 못하고 마운드를 내려오게 되었다.

LA데블스 구단 입장에서는 팀의 최고 에이스인 1선발과 2선발이 라이벌 구단에게 밀려 무너졌으니 굴욕감을 느끼지 않을 수 가 없었다.

더욱이 반대로 오클랜드 슬랙스 투수들은 LA데블스의 타자들을 상대로 완벽하게 막아 내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강력함을 알 수 있었다.

팡! 팡!

교체된 투수의 연습 투구가 끝나고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마운드가 불펜 투수로 바뀌고 타석에 들어선 지미 울프, 그는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리라는 메이저리그 격언대로 투수가 던진 초구를 노려 배팅을 가져갔다.

따악!

살짝 빗맞은 타구이기는 했지만, 지미 울프가 친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 2루 베이스 뒤 중견수 중간에 떨어졌다.

일명 텍사스 안타라 불리는 내야수와 외야수 중간 지점에 떨어지는 행운의 안타가 나온 것이다.

타다다다.

지미의 행운의 안타로 인해 3루에 있던 대호는 여유 있게 홈을 밟았다.

이로써 오클랜드는 6점째 득점을 하였다.

1회에 이어 5회에 연속 득점이 나왔다.

그렇게 점점 경기의 분위기는 오클랜드 슬랙스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오클랜드는 계속해서 득점이 늘어나는 반면, LA데블스의 타선은 타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타자가 안타를 치고 진루를 하여도 후속으로 연타가 나오지 않으면서 타오르려던 불꽃은 오클랜드 슬랙스 야수들의 수비에 막혀 타오르지 못하고 꺼져 버렸다.

어느새 경기는 7회 말, 또다시 대호의 타석이 되었다.

오늘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주자도 없는 가운데 편안한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 대호의 타석에 팬들의 응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마치 태풍의 중심처럼 경기장 안은 고요했다.

‘나 참. 무슨 내가 퍼펙트 경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랬다.

지금 경기장이 조용해진 것은 안타 하나로 대호가 오늘 힛 포 더 사이클이란 기록을 세울지 말지 하는 기로에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타자의 기록에 대해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메이저리그 야구팬이지만 오늘 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예고 홈런에 이어 히트 포 더 사이클이란 기록을 써 낸다면, 대호의 이름은 다시 한번 미국은 물론이고 야구를 하는 많은 나라에 울려 퍼질 게 뻔했으니까.

그러한 자리에 자신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에 팬들도 대호의 기록 도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숨을 멈췄다.

이런 팬들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대호는 조용히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런 대호의 모습을 확인한 투수는 저도 모르게 긴장 되어 공을 던지는 것이 늦어졌다.

“볼!”

투수 투구 규정으로 인해 주자가 없을 때, 투수는 14초 안에 투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는 공을 던지는 유무에 상관없이 주심은 볼 판정을 내린다.

방금 전 상황도 바로 이런 규정에 의거해 볼이 선언된 것이다.

‘으으…….’

규정에 의해 볼이 선언되자 투수는 더욱 공을 던지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너무도 빈틈이 없는 대호의 타격 폼에 좀처럼 공을 던질 구석을 잡지 못했기에 그러했다.

하지만 또다시 투수 투구 규정으로 인해 볼이 선언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기에 투수는 공을 던졌다.

급하게 던지다 보니 컨트롤은 형편이 없었다.

팡!

“볼!”

또 한 번 판정은 볼이 선언되었다.

“후우!”

공을 돌려받은 투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쉽게 공을 던지진 못했다.

이런 모습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포수는 주심을 보며 타임을 요청했다.

“타임!”

주심이 타임을 선언하자 포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운트로 뛰어갔다.

마운드로 올라온 타이스는 투수를 진정시켰다.

“이미 스코어는 쫓기 힘들 정도로 벌어졌다. 그러니…….”

타이스는 힘들어하는 투수를 보며 부담 없이 공을 던지라고 하였다.

어차피 이미 경기를 뒤집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말하며, 최대한 투수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알겠어!”

바리아 하이머는 타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오늘 경기는 이미 오클랜드에게 넘어갔다.

5회에 잠깐 흔들리던 상대 팀 선발 레프리 그로스도 다시 살아나며, 7회를 마무리했다.

8회에 또 올라올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오클랜드 슬랙스의 마운드는 물론이고 내야와 외야 수비 모두 완벽에 가까운 수비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들의 수비는 구멍 뚫린 방패와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실수를 하고, 뒤로 공을 흘리는 등 실수 연발이었다.

‘그래. 어차피 경기를 뒤집기에는 늦었고, 홈런을 맞으면 어때!’

타이스의 말에 정신을 차린 바리아는 홈런을 맞건 안타를 맞건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자신은 승패와 상관이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니 정말로 마음이 편해지면서 투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펑!

“스트라이크!”

95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타자 안쪽 낮은 코스로 의도한 곳에 정확하게 꽂혔다.

‘좋았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제구가 되자 바리아의 표정이 밝아졌다.

‘할 수 있다.’

볼카운트는 2B 1S였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투구하는 것이 쉬웠다.

펑!

“스트라이크!”

이번에는 바깥쪽 낮은 패스트볼이다.

안쪽으로 던졌다면, 다음 공은 바깥쪽이란 공식을 확실하게 지키며 카운트를 유리하게 만들었다.

팡!

“볼!”

5구째는 방금 전 4구와 비슷한 코스였지만, 패스트볼이 아닌 바깥으로 흘러 나가는 고속 슬라이더였다.

유인구를 던졌지만, 대호는 속지 않았다.

볼카운트는 방금 투구로 인해 풀카운트가 되었다.

공 하나면 결판이 나는 중요한 순간, 투수는 자신의 최고의 공을 던졌다.

빠르게 몸 쪽으로 파고드는 공이었다.

대호는 이를 포심 패스트볼로 판단하고 스윙을 가져갔다.

하지만 홈플레이트가 다가오면서 공의 궤적이 살짝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커터다.’

패스트볼처럼 보였던 공은 포심 패스트볼이 아닌 컷 패스트볼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은 대호의 몸 쪽으로 휘면서 배트 안쪽에 부딪혔다.

따닥!

공이 컷 패스트볼이란 것을 깨달은 대호는 최대한 팔을 몸에 붙이고 스윙을 하였지만, 공은 배트 중심이 아닌 손잡이 위쪽 좁아지는 부분에 맞으면서 제대로 힘이 실리지 못했다.

다다다다!

자신이 휘두른 스윙이 정확하게 공을 때리지 못했다는 것을 타격음으로 알게 된 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1루로 뛰었다.

한편 3유간으로 향한 타구는 바운드와 함께 낮게 깔리며 느린 속도로 날아갔다.

타앗!

LA데블스의 유격수 앤드류 벨라스미는 왼손을 쭉 뻗어 3유간을 빠져나가려는 타구를 잡았다.

그리고 역동작으로 점프를 하며 공을 1루로 뿌렸다.

턱!

다다다다.

“세이프!”

유격수가 뿌린 공과 대호가 1루 베이스를 밟은 것은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지만, 1루심의 판정은 세이프였다.

이에 1루수는 양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비디오 판독을 마친 심판은 양손을 옆으로 벌리며 원심 그대로 세이프를 선언했다.

“와아아아!”

주심의 세이프 판정이 선언되자 경기장은 팬들의 환호에 잠겼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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