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51화 (151/209)

151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청년, 또 한 번 기적을 쏘다.

2033년 4월 8일 미국의 메이저리그가 개막하였다. 그리고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의 영원한 라이벌 구단인 오클랜드 슬랙스와 LA데블스의 개막전이 뉴슬랙스 볼파크에서 펼쳐졌다. <중략>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청년 정대호 선수는 이날 1회 말 첫 타석에 들어와 LA데블스의 에이스 클론 잉그램의 두 번째 투구, 인코스 낮은 포심 패스트볼을 그대로 받아 쳐 장외 홈런을 만들었다. 더군다나 메이저리그의 전설 베이브 루스가 한 것으로 알려진 퍼포먼스, 예고 홈런을 똑같이 재현하며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대한스포츠 박혜나 기자」

⤷ 와… 씨! 정대호, 결혼하고 나서도 성적이 안 떨어지네? 예고 홈런이라니 대박!

⤷ 그런 미인이랑 결혼하면 나라도 일낸다.

⤷ 위에 병X들 뭐냐?

⤷ 내버려 둬요. 먹이 주면 더 미쳐 날뛰어요.

⤷ 그나저나 대호! 완전 미쳤다. 메이저리그 시즌 1호 홈런이라니… 언빌리버블!

⤷ 맞아! 대호는 거품이야! 언빌리버블! 언빌리버블!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열린 뒤 한국의 메이저리그 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코리안 메이저리거인 대호가 다른 것도 아니고 야구의 꽃이라는 홈런을 개막전 첫 타석에서 또다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2033시즌 메이저리그 시즌 1호로 말이다.

더욱 야구팬을 흥분시키는 점은 그 1호 홈런이 평범한 스윙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메이저리그에서도 잊힌 낭만이 가득한 예고 홈런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경기 MVP로 선정된 이후 인터뷰는 더더욱 화제가 되었는데, 리포터이자 자신의 아내인 한나를 위해서 보여 준 퍼포먼스라는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인터뷰를 실시간으로 본 미국을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시청하던 한국과 일본 등 바다를 건너서까지 야구팬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바로 옆에서 직접 그러한 대답을 들은 한나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과는 별개로 그날 개막전과 인터뷰는 두고두고 회자가 될 정도로 유명해졌다.

* * *

“헤이, 대호! 어젠 대단했어.”

“빅 타이거! 오늘도 어제처럼…….”

“대호! 오늘도 예고 홈런 칠 건가요?”

경기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뉴슬랙스 볼파크 입구로 걸어가던 중, 오클랜드를 응원하기 위해 몰려 있던 팬들이 대호를 보며 한마디씩 던졌다.

“하하하, 다들 고마워! 하지만 그건 특별한 이벤트였던 거고… 뭐, 오늘도 홈런을 기대한다면 경기를 지켜봐!”

그중 어린 팬이 오늘도 예고 홈런을 칠 거라는 질문을 던지자 대호는 웃으면서 사인을 하고 대답해 주었다.

“제 이름은 찰리에요, 찰리 아담스. 그런데 제 이름 말고 줄리 로메로라고 적어 주세요.”

사인을 해 주던 중, 일곱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대호의 이름이 박힌 저지를 내밀었다.

그런데 분명 찰리라는 이름을 알려 주었음에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인을 부탁한다는 요구를 했다.

“응? 줄리 로메로가 누군데?”

어린아이의 요청에 대호는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자신과 눈높이가 같아진 대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줄리는 제 옆집 친구에요. 그런데 줄리는 많이 아파 밖에 나올 수가 없어요.”

찰리의 사연은 이랬다.

자신의 옆집에 사는 여자 친구인 줄리가 몸이 좋지 못해 함께 야구 경기를 관람하러 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줄리의 최애 선수가 바로 대호 자신이라는 이야기.

원래 둘이서 작년에 약속하기로는 봄이 오면 함께 경기장에 와서 대호의 사인을 받기로 했는데, 아파서 오지 못한 여자 친구를 위해 대신 사인을 받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오! 그렇다면 당연히 해 줘야지.”

대호는 그렇게 찰리의 이야기를 듣고 경기장 입구 한 쪽에 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스텝에게 손짓을 하며 불렀다.

“젝슨! 저지 판매점에 가서 제 이름으로 저지와 사인 볼 좀 가져다주시겠어요.”

스텝에게 요청을 한 뒤 돌아선 대호는 찰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아픈 친구를 대신해 사인도 받아 주고, 찰리는 멋진 사나이구나!”

찰리의 행동에 칭찬과 함께 그가 들고 있던 저지에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젝슨이 가져온 저지와 사인 볼에 이번에는 찰리의 이름을 적어 사인해 주었다.

“이건 찰리의 마음씨가 너무 착해서 주는 선물이야. 사인 볼 하나는 줄리에게 전해 줘. 그리고 줄리의 최애 선수인 내가 얼른 건강하게 회복해서 함께 야구 경기를 보러 오길 기대한다고도 말해 주고!”

그렇게 대호는 어린 찰리에게 당부의 말을 남기고 다른 팬들에게도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 준 뒤에야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대호의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팬들은 일제히 대호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도 그럴 것이, 팬들의 요구에 전혀 짜증내지 않고 즐거운 표정으로 팬 한 명, 한 명에게 집중을 하고 이야기를 걸어 주면서 사인을 해주는 대호의 모습은 여느 야구 스타들과 뭔가 차별되는 모습이었다.

물론 메이저리그에서는 많은 스타들이 팬의 요구에 사인을 거부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대호처럼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에 화답을 하는 이는 무척이나 드물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린아이의 사연에 반응해서 자신의 사비로 저지와 사인 볼을 증정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이벤트였다.

실제로 찰리는 물론이고 찰리와 함께 온 찰리의 부모님도 감동했다.

* * *

“대호! 대호! 대호!”

“빅 타이거! 빅 타이거!”

조금 전 경기장 입구에서 있었던 일이 경기장 안까지 알려지면서, 뉴슬랙스 볼파크는 경기가 시작도 되기 전부터 대호의 이름이 경기장 안을 가득 메웠다.

“빅 타이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켈리는 경기가 시작도 되기 전 이미 경기장 안을 울리는 팬들의 연호에 놀라 대호를 보며 물었다.

“응? 나도 모르겠는데?”

팬들의 연호에 대호 본인도 놀라고 있었다.

“어제도 그렇더니, 오늘도 우리 팬들은 모두 대호만 찾는군?”

“인크레더블! 역시나 대호는 이름이나 빅 타이거란 닉네임보단 인크레더블이란 별명이 더 어울려!”

언제 다가왔는지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 홈런 브레드가 다가와 웃으면서 대호를 살짝 놀렸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로커 룸은 어제 개막식의 승리로 분위기가 좋았는데, 경기장에서 울리는 대호의 이름과 별칭으로 인해 더욱 기가 살았다.

“이렇게 팬들의 연호가 가득한데, 오늘도 저 빌어먹을 악마 놈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겠지?”

경기가 시작될 시간이 가까워지자 선수들을 모은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오늘도 혼쭐을 내서 보내야죠.”

감독의 질문에 선수들은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하였다.

“좋아! 오늘도 저 망할 악마 놈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 주자고.”

감독에 이어 주장인 홈런 브레드도 한마디 하였다.

* * *

LA데블스와 치러지는 홈 두 번째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가 치러지는 뉴슬랙스 볼파크, LA데블스 타자들은 어제 개막 경기의 여파가 남아 있는지 별다른 힘도 써 보지 못하고 1회 초 공격을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그리고 공수 교대가 되면서 대호의 테마곡이 나오자, 뉴슬랙스 볼파크는 지진이 난 것처럼 크게 울렸다.

“우와아아!”

“호! 호! 호! 호!”

대호를 연호하는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무너뜨릴 것처럼 크게 울렸다.

척!

더그아웃에서 배트를 들고 나오던 대호는 팬들의 열화 같은 성원에 손을 들고 화답해 주었다.

“와아아아!”

대호의 화답에 다시 한 번 팬들의 환호성이 울렸다.

그러던 중, 대호는 타석으로 들어가려다 출근할 때, 경기장 입구에서 보았던 찰리란 꼬마와 눈이 마주쳤다.

“대호! 홈런! 줄리를 위해 홈런을 쳐 줘요!”

경기장을 울리는 팬들의 연호 속에서도 대호는 찰리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었다.

‘하하, 찰리! 사나이구나!’

어린 찰리였지만, 아픈 여자 친구를 위해 홈런을 쳐 달라고 요구하는 게 나이를 떠나 남자답게 느껴졌다.

그래서 대호 역시 고개를 살짝 끄덕여 주었다.

한편, 대호가 타석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홈런 요구를 하던 찰리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대호! 홈런! 줄리를 위해 홈런을 쳐 줘요!”

그렇게 외쳐 봤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에 묻혔는데, 정대호 선수가 이쪽을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아닌가.

‘어? 설마 내 목소리를 들은 걸까?’

찰리의 눈에는 분명 방금 전 대호가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 것처럼 보였다.

소년은 이러한 모습을 믿을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 아빠에게 물어보았다.

“아빠! 방금 전 대호가 고개를 끄덕인 것 봤어요?”

“으음. 확실히 아빠도 대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 보였어.”

아들의 흥분된 모습에 아담은 찰리가 본 것이 맞다고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은 너무도 소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시끄러워 저 멀리 있는 대호가 듣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조금 뒤 아담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타석에 들어선 대호가 개막전에 이어 또 한 번 예고 홈런을 치겠다는 듯 방망이를 관중석으로 내밀었기 때문이다.

* * *

“아, 이게 무슨 일인가요?”

김승주는 타석에 들어선 대호의 행동을 보며 깜짝 놀라 소리쳤다.

“허허! 정대호 선수, 오늘도 타석에 들어서 예고 홈런을 알리는 포즈를 취합니다.”

하구연 해설도 황당한 나머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대답을 하였다.

“와아아아!”

개막전에 이어 또다시 예고 홈런을 알리는 대호의 모습에 이를 지켜보던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야구팬은 하나같이 큰소리로 환호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이를 지켜보는 김승주와 하구연은 물론이고 오클랜드 슬랙스 더그아웃도 같은 반응이었다.

“와, 대호 자식! 무슨 생각으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첫 타석에서 예고 홈런을 치겠다고 그러는 거야!”

타석에 서서 예고 홈런 포즈를 취한 대호를 본 켈리가 소리쳤다.

하지만 그렉 수석 코치와 마이크 감독은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렉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을까요?”

어제야 개막식이었으니 예고 홈런 퍼포먼스를 이벤트성으로 보여 주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LA데블스 입장에서 개막전에 이어 오늘도 그러는 것은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공산이 컸다.

아니나 다를까, 마운드에 있는 LA데블스 투수의 반응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런데 정작 타석에 있는 대호의 모습은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투수가 화가 났건 흥분을 했건 자신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애송이 놈이 어제 한 번 성공했다고 너무하는군!”

타격 자세를 잡고 있던 대호의 귀에 LA데블스 포수 타이스가 트래시 토크를 시전한 게 들려왔다.

심지어 그 말은 단순한 트래시 토크가 아니라 100% 감정이 들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대호는 타이스가 그러거나 말거나 투수의 투구에 집중했다.

분명 자신의 도발에 평범한 공을 던지지 않을 것이란 예감에 더욱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트래시 토크를 시전한 타이스만 뻘쭘해졌다.

‘제길, 두고 보자!’

화가 난 타이스는 타석 가까이 붙어 선 대호의 모습을 힐끗 보고는 투수에게 사인을 보냈다.

‘가슴 높이 안쪽 패스트볼!’

투수에게 요구한 초구는 가슴 높이로 오는 위협구였다.

하지만 머리끝까지 화가 난 타이스는 그게 어제와 같은 코스의 투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어제 개막전 클론 잉그램이 던진 초구는 타이스가 요구한 것이 아니라 클론이 화가 나서 던진 것이었지만 말이다.

포수와 투수가 상황만 바뀌어서 재현하고 있는 셈이었다.

팡!

“볼!”

초구는 볼이 선언되었다.

다만 어제처럼 심판이 나서지 않았는데, 대호의 반응은 어제와 똑같았다.

가슴 높이로 날아든 위협구에 눈도 한 번 깜빡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코스가 비슷했지만 얼굴까지 날아온 것도 무시했는데 가슴 높이를 무서워할 대호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집중력으로 인해 타이스가 요구한 안쪽 깊은 곳 가슴 높이로 날아든 공의 궤적을 파악한 뒤였기에 전혀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굳이 몸을 뒤로 빼며 움츠려들 이유가 없던 것이다.

팡!

“볼!”

두 번째 공은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오는 볼이었기에 대호는 이번에는 엉덩이를 뒤로 살짝 빼며 공을 피했다.

이 때문에 볼카운트는 2B이 되었다.

아직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한 만큼, 결코 투수가 좋아할 카운트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LA데블스 투수는 어쩔 수 없이 포수의 사인에 이런 투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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