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50화 (150/209)

150화

LA데블스의 투수 클론 잉그램은 타석에 서 있는 대호를 보며 눈빛을 차갑게 빛냈다.

팀의 1선발이자 에이스인 자신을 향해 예고 홈런이라는 도발을 한 것에 대한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다.

LA데블스 뿐만 아니라,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은 메이저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투수다.

솔직히 말해서 선수들 간에 지킬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작년 어떤 기록을 기록했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잉그램은 아직 대호에 대한 분석이 끝나지 않은 시기였기에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 줄 수 있었던 것이라 판단했다.

‘타이스, 이대로 두고 볼 거야?’

잉그램은 자신의 배터리인 포수 매튜 타이스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매튜는 슬쩍 더그아웃을 향해 고개를 돌려 살피다가 그에게 신호를 주었다.

‘더그아웃에서 아무런 지시가 없으니, 그냥 기존 계획대로 해.’

물론 포수인 매튜 역시 대호의 예고 홈런에 화가 났지만, 더그아웃에서는 오늘 그냥 피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개막전 첫 타자에게 그러는 것은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이지만, 이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LA데블스 코칭스태프들도 마음 같아선 건방진 상대 타자에게 헤드 샷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그냥 일반적인 메이저리거가 아니었다.

게다가 작년 시범 경기 중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리면, 매튜 타이스도 클론 잉그램의 제안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화가 나도 작년처럼 투수 기를 살려 주려다 내가 시즌 아웃될 수는 없지.’

작년에 위협구를 날리다 대호에게 당했던 선수 중, 포수 모건 오하피는 낭심에 부상을 입고 긴급 수송되어 겨우 심각한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입었고,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하고 마이너리그에 있었다.

한편 LA데블스 배터리가 그렇게 암중에 사인을 주고받으며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대호는 아내와 약속했던 것을 실현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띠링!

‘응? 뭐지?’

순간, 느닷없이 알람이 울려 깜짝 놀랐지만 상대에게 무언가 정보를 주고 싶지 않아 표정 관리를 했다.

특별 퀘스트가 떴나 싶어 확인했는데, 상태창을 연 대호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태창!’

바로 스탯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태창>

이름 : 정대호(21)

국적 : 대한민국(ROK)

성별 : 남

투타 : 투(우) 타(우)

레벨 : 68

힘 75/76

민첩 70/72

체력 70/72

지능 67/68

정신 69/70

순발력 70/70

컨택 70/68

내구력 70/70

확인한 스탯의 변화는 놀라웠다.

지능과 정신 스탯이 각각 1씩 줄어든 반면, 컨택은 현재 최대 스탯을 오버해서 70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 설마 종종 있었던 게 이것 때문에?’

최초로 경기 중 투수의 투구 동작이 평소보다 느리게 느껴지거나 공이 천천히 날아오는 경험을 한 후, 대호는 이것을 평소에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하면 경기 중 만큼의 효과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일시적으로 다른 스탯이 줄어들고 컨택에 집중되는 것.

반대로 말하면 힘이나 민첩에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아직까지도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좋았어!’

이렇게 자신의 변화를 확인한 대호는 더욱 투수를 보며 집중했다.

휘잉!

느닷없이 공이 눈앞을 지나갔다.

하지만 고도로 집중하고 있던 대호는 투구에 자신이 맞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대호야 자신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피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96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어깨 높이로 날아들었다.

당연히 그것은 너무도 위험한 공이었다.

자칫 그런 공에 맞았다가는 큰 부상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볼! 타임!”

주심은 초구 볼 판정을 내리고 타임을 선언했다.

그러고 나서 투수를 보며 경고하였다.

“투수, 경고! 다시 한 번 위협구를 던지면 퇴장이야!”

이는 메이저리그에서 무척이나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그만큼 심판이 보기에 방금 전 공은 위협적이었다.

물론 타자가 홈런을 치겠다며 예고 홈런 퍼포먼스를 취해서 화가 난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리 가까이로 공을 던지는 건 지양해야 할 행동이었다.

MLB에서 이제는 배트 플립 등의 퍼포먼스도 자주 펼쳐지는 판국에 상대를 위협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메이저리그 흥행에 악영향을 끼친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사무국에서도 철저기 배격하고 있었다.

‘방금 나 위협 받은 거야?’

대호는 투수의 반응을 보며 기가 찼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며 전의가 불타올랐다.

‘좋아, 해보자!’

뭔가 한 방 치자는 마음이 저절로 일면서 대호의 전신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고 억지로 힘을 짜낸 것은 아니었다.

대호의 근육은 긴장감에 굳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힘이 집중될 수 있도록 릴랙스한 상태가 되었다.

언제라도 두뇌의 명령이 있다면 바로 반응할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클론 잉그램은 화를 못 이기고 포수와의 협의를 어기면서까지 위협구를 던지며 심판과 각을 세웠지만, 여기서 더 나갔다간 자신에게 더욱 불리하다는 걸 깨닫고 이번에는 정상적으로 투구하였다.

아주 깔끔한 공이었다.

몸 쪽 낮게 들어가며, 스트라이크 존을 9분할 했을 때 9번 끄트머리에 걸치는 공.

‘들어갔다.’

클론은 자신이 던진 볼에 확신이 있었다.

노리고 있는 코스에 정확하게 들어가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믿음은 금방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따아아악!

대호는 자신의 무릎 높이에 살짝 걸치는 낮은 포심 패스트볼을 보며 어퍼 스윙을 하였다.

마치 고속 카메라에 찍힌 필름을 천천히 보는 것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날아오던 공을 배트 히팅 포인트에 정확하게 맞췄다.

그러자 날아오던 공은 맑은 타격음과 함께 빠른 속도로 대기를 가르며 뉴슬랙스 볼파크의 벽을 넘었다.

단순히 펜스를 넘긴 정도가 아니라 경기장 자체를 넘어가는 장외 홈런이 되었다.

“와아아아!”

예고 홈런을 예고하고 2구째에 바로 경기장을 넘어가는 장외 홈런을 때렸으니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팬들이 기뻐하는 것은 당연했다.

“정대호! 우리의 정대호 선수! 자신이 예고한 대로 홈런을 때려 냅니다!”

“하하하, 정대호 선수. 정말로 그 별명처럼 인크레더블입니다. 인크레더블!”

“맞습니다. 우리의 정대호 선수, 인크레더블이란 별명이 정말 딱 들어맞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깝지가 않아요.”

김승주와 하구연 해설은 대호가 때려낸 홈런을 보며 흥분했다.

그리고 이는 TV를 통해 오클랜드와 LA데블스의 시즌 개막전을 시청하고 있던 야구팬 모두가 동시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중계 부스에서 김승주와 하구연이 흥분해 떠들고 있을 때, 정작 마운드에 있는 LA데블스의 에이스 클론 잉그램은 정신이 나가 버렸다.

대호가 자신이 던진 위협구에 굴하지 않고 바로 예고한 홈런을 때린 것에 깜짝 놀랐다.

아니, 정신이 무너져 버릴 정도였다.

이런 모습은 메이저리그 구단의 에이스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지만, 현재 그가 느낀 충격은 멘탈이 붕괴될 정도였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거 좋지 않은데요.”

LA데블스 더그아웃에 있던 레리 오트리가 감독을 보며 이야기를 하였다.

투수 코치인 레리 오트리의 말에 필 네빈은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상황이 똑같진 않지만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알 수 없는 기시감을 느낀 필은 미간을 찌푸리며 조용히 물었다.

“이봐, 레리. 우리 이런 비슷한 상황 경험하지 않았나? 물론 똑같진 않았지만 말이야!”

뭔가 떠오를 듯하면서 떠오르지 않아 짜증이 났지만, 애써 참으며 물었다.

“예, 저도 뭔가 기시감이 듭니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떠오를 것 같은데… 아!”

감독인 필 네빈처럼 계속해서 고민하던 레리 오트리는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곧바로 소리쳤다.

“작년 2032시즌 시범 경기!”

2032시즌을 알리는 시범 경기에서 LA데블스는 오늘 개막전 상대인 오클랜드 슬랙스와 첫 경기를 가졌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방금 전 예고 홈런을 친 대호를 상대로 위협구를 던지다 사건이 하나 터졌다.

주전 포수가 빗맞은 타구에 주요 부위를 연속해서 맞아 후송되었고, 투수도 그 뒤 마운드로 날아든 배트에 팔꿈치를 맞아 부상을 당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부상을 입었으면서도 오히려 투수가 퇴장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 뒤로도 선수들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수들에게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으며 멘탈이 무너져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런 시범 경기의 여파가 개막전에도 미쳐 2032시즌 초 LA데블스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2031시즌 지구 우승을 거둔 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경기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때 느꼈던 암담함이 점점 현실로 다가오는 것만 같아 불안했다.

“…설마.”

“예, 저도 그럴 것 같아 불안합니다.”

팀 에이스의 멍한 모습을 보는 두 사람은 오늘 개막전이 쉽지 않음을 직감했다.

그런 생각으로 어두워지는 LA데블스의 코칭스태프들과 다르게 홈팀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더그아웃은 웃음꽃이 피었다.

“허, 참! 홈런 한 번 시원시원하군!”

“인크레더블이 인크레더블했습니다.”

대호가 친 타구가 높은 담장을 넘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확인한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감상을 이야기하자 그렉 수석 코치도 맞장구를 쳤다.

오클랜드 슬랙스 내에서 고참급들은 대호를 그의 별칭 중 하나인 인크레더블이라며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동안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면서 대호처럼 믿기 힘들 정도로 재능을 보여 주는 이를 보지 못했기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건 코칭스태프들 모두가 동의하는 생각이었고, 인크레더블이라는 단어로 부르곤 했다.

이럴 때면 대호는 슈퍼 히어로처럼 포즈를 취하는 여유를 보여 주기도 했다.

지금도 그라운드를 돌아 들어와 홈팬들이 인크레더블이라 연호하자, 더그아웃 앞에서 양손을 굽혔다 한 쪽 팔을 펴고 포즈를 취해 보였다.

“와아아아!”

대호의 포즈에 팬들은 다시 한번 크게 환호했다.

자신들의 응원에 스타가 반응을 보여 주자 더욱 흥분해 환호한 것이다.

“우리의 정대호 선수, 팬들의 환호에 화답을 하듯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하, 팬 서비스도 슈퍼스타급으로 대단합니다.”

따악!

대호가 예고 홈런 퍼포먼스를 취하고 곧바로 홈런을 치면서 기선을 잡은 오클랜드 슬랙스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영혼 없는 투구를 하는 투수의 공을 난타했다.

따악! 따악!

이제 겨우 1회 말이었지만, 오클랜드 슬랙스는 LA데블스의 에이스 클론 잉그램을 상대로 무려 4점을 뽑아냈으며, 바뀐 투수를 상대로도 2점을 더 뽑아내 1회에만 무려 7점을 기록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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