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49화 (149/209)

149화

2033년 4월 8일 대망의 메이저리그 개막일

미국에 있는 야구팬들은 작년, 그러니까 월드 시리즈가 끝난 2032년 11월 6일을 기점으로 이날만을 기다려 왔다.

그리고 이는 대호 또한 마찬가지다.

오클랜드 슬랙스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패하고 결혼 준비와 병역 문제 해결을 위해 제대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어찌 되었든 바짝 몸을 만든 후 스프링캠프에서 실력을 뽐냈다.

메이저리그 시즌은 단거리 경기가 아니다.

마라톤과 같은 165경기를 치러야 하는 장기 레이스였다.

그렇기에 겨우내 다른 스케줄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2032시즌 동안 무리했던 몸에 휴식을 주었다 생각하니 심리적으로 평안해지는 효과를 낳았다.

오히려 지금은 작년 이맘때보다 체력 상태가 더 좋았다.

‘상태창도 그렇게 말해 주고 있지.’

겨우내 훈련을 받던 때에는 최대 스탯에서 조금 떨어지는 수치를 기록한 정신과 내구력이 모두 맥스를 채운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물론 리그가 시작되고 경기를 치르면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어찌 됐든 현 상태는 최고조라는 뜻이었다.

“자기, 벌써 일어났어?

잠깐 일어나느라 뒤척인 것 때문에 아내인 한나가 깬 듯했다.

“한나, 아직 이른 시간이야. 좀 더 자도 괜찮아.”

“아니야, 나도 오늘은 일찍 나가 봐야 해!”

한나는 자신을 신경 써 주는 대호에게 그렇게 말을 하며 기지개를 켜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긴 오늘이 메이저리그 개막일이니, 리포터인 한나도 바쁘겠지.’

미국 4대 스포츠 중 하나라 불릴 정도로 메이저리그의 인기는 대단하다.

겨우내 움츠려 들었던 몸을 가볍게 하며, 야외 활동을 하기 좋은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메이저리그 개막전.

경기 결과는 물론이고 메이저리그 전반을 송출해야 하는 리포터라는 직업 특성상, 한나도 일찍 집을 나서기로 했다.

* * *

현관 앞.

“자기야, 조금 있다 봐!”

“한나! 운전 조심해!”

조금 뒤 경기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겠지만, 집을 나서기 전 신혼인 대호와 한나는 아련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이별을 하였다.

“그럼 나 먼저 출근할게!”

“응, 있다 봐.”

먼저 출근을 하는 한나를 배웅한 대호는 차고로 가서 자신을 차를 꺼냈다.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구입한 주택이었지만, 한나와 자신이 타고 다닐 차 두 대를 주차할 수 있을 정도로 주차장이 잘 갖춰진 단독주택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너무 급히 구하는 바람에 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마당은 없었다.

그것 말고 딱히 불만은 없었다.

사실 신혼이면서 직장 때문에 다른 도시에 서로 떨어져 지낼 생각까지 했던 대호다.

아내인 한나는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맨션을 마련하고, 자신은 구단이 제공하는 호텔에서 지내려고 했다.

그러다 한나의 승진으로 인해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 불편한 점이 있더라도 충분히 참고 지낼 만했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집이 좁았음에도 오히려 두 사람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때때로 더 좋을 때도 있었다.

“그럼 나도 이제 가 볼까?”

왠지 기분 좋은 느낌에 살짝 심장이 두근거렸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맑은 날이었지만, 대호의 기분은 평소보다 훨씬 업 되어 있었다.

* * *

“와아아아아!”

경기가 시작도 되기 전부터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구장인 뉴슬랙스 볼파크는 열광의 도가니로 들끓었다.

“안녕하십니까? 메이저리그 야구팬 여러분!”

김승주는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카메라에 대고 인사를 하였다.

“2033시즌 메이저리그 개막전 경기가 잠시 뒤 시작 됩니다.”

“안녕하십니까, 메이저리그 해설 위원 하구연 인사드립니다. 올 한해도 저희 KBC스포츠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해설 위원인 하구연도 아나운서 김승주에 이어 인사를 하는데, 정작 KBC 직원인 김승주도 하지 않은 인사를 하구연이 해 버렸다.

“아니, 하 위원님. 언제 저희 방송국에 취직하셨어요?”

“취직이라니요? 그런 일 없습니다.”

“하하하, 직원도 아니시면서 KBC스포츠를 많이 사랑해 달라고 하시나요? 제가 할 멘트를 빼앗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랬나요? 하하하!”

순간 두 사람은 만담을 하며 개막전이 시작되기 전 가득 차 있는 긴장감을 날려 버렸다.

“참, 그러고 보니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저희 대한민국 출신 메이저리거는 이곳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 정대호 선수 한 명뿐이죠?”

마침 생각이 났다는 듯 김승주는 올 시즌 메이저리거 중 한국인은 대호 혼자라는 것을 언급했다.

“네.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지만, 국내에 복귀한 선수들과 부상을 당해 마이너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한 선수들이 있어 당분간 메이저리거는 정대호 선수 혼자입니다.”

“국내 메이저리그 팬의 입장에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군요.”

사실 김승주가 한 말은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산 KBC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었다.

한국의 메이저리그 팬은 다른 나라의 메이저리그 팬과는 조금 다른 응원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특정 구단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출신 메이저리거가 포함되어 있는 구단을 응원하곤 했다.

즉,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구단들은 상대적으로 한국에서의 반응이 떨어졌다.

그러니 방송국으로써는 비싼 돈을 주고 사들인 방송 중계권이 무용이 될 위기에 놓여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호가 뛰는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오클랜드 슬랙스의 경기야 시청률이 잘 나오겠지만, 오클랜드 슬랙스의 경기가 끝난 뒤의 빈 시간은 어떻게 될까?

이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일당백 정대호 선수의 활약만이 국내 메이저리그 팬의 마음을 위로해 줄 것이라 봅니다.”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따낸 KBC스포츠의 입장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김승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야기를 하였다.

“정대호 선수라면 저희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우리의 마음을 잘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구연 해설도 김승주의 말에 동조를 하듯 이야기를 하였다.

대호도 홀로 남은 메이저리거의 활약을 기대하는 국내 팬들의 기대를 잘 알 것이라고 말이다.

* * *

2032시즌에 오클랜드가 지구 우승을 거둬서인지 작년과 다르게 올 시즌 개막전은 홈경기로 치르게 되었다.

홈팀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상대는 작년 개막전 상대이자 라이벌인 LA데블스였다.

그 많은 팀 중에 하필이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라이벌인 LA데블스를 맞아 대호는 두 눈을 반짝였다.

작년 개막전에 대호는 첫 타석에서 빈볼을 맞았다.

하지만 그 볼의 판정은 파울이었다.

볼이 몸에 맞으면서 배트에도 부딪쳤기 때문이다.

‘잭 크루거였나?’

오늘 개막전 선발은 작년 LA데블스의 선발인 잭 크루거가 아니었다.

하지만 왠지 잭 크루거가 생각나는 대호였다.

척!

홈 개막전이다 보니 이번 시즌은 공격이 아닌 수비부터 시작이었다.

그라운드 가장 뒤 자신의 자리에 위치한 대호는 마치 자신이라는 벽을 넘을 수 없을 거란 사실을 알리듯 저 멀리 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제 막 LA데블스의 1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플레이 볼!”

주심으로부터 경기 시작을 알리는 콜이 선언되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발은 팀의 에이스이자 1선발인 에디 프랭크.

퍽!

“스트라이크!”

에디 프랭크의 초구는 안쪽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LA데블스의 1번 타자를 상대로 전혀 굴하지 않고 안쪽에 과감하게 찔러 넣었다.

“좋았어, 에디!”

대호는 초구가 스트라이크로 선언되자 뒤에서 마운드에 있는 에디를 큰 목소리로 응원했다.

그런 대호의 외침을 들었는지, 에디 프랭크 역시 투구 동작에 들어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씨익.

서로 미소를 주고받은 뒤, 에디 프랭크는 포수를 보고 투구를 하였다.

펑!

“스트라이크!”

초구는 95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보다 2.5마일이나 빠른 97.5마일의 바깥쪽 꽉 찬 스트라이크였다.

“어? 에디 저 녀석, 1회부터 무리하는 거 아냐?”

더그아웃에서는 그런 말이 나올 정도였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에이스, 에디 프랭크의 최고 구속은 98마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개막전에서 벌써 97.5마일의 강속구를 던졌다.

하지만 에디 프랭크는 결코 자신의 한계 이상으로 무리하며 구속을 늘리는 투수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던지는 것은 에이스, 혹은 1선발이 할 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디 프랭크가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유망주나 불펜 투수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벌써부터 자신의 한계 구속에 가까운 공을 던지자, 더그아웃에서는 우려하는 한편, 기대감 역시 들어 있는 표정으로 그의 투구를 지켜보았다.

“에디 프랭크 투수, 자신의 최고 구속에 고작 0.5마일 부족한 97.5마일짜리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승주는 잘 알려진 에디 프랭크의 최고 구속을 언급하며 물었다.

“제가 보기에는 에디 프랭크 선수가 무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네? 날씨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개막전인데 저게 무리한 것이 아니라고요?”

김승주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하며 물었다.

그리고 그건 오늘 오클랜드 슬랙스와 LA데블스의 개막전을 지켜보는 야구팬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지금 공을 던지는 에디 프랭크 선수의 표정을 보십시오.”

다른 설명 없이 하구연 해설은 그저 화면으로 보이는 에디의 표정을 보라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카메라맨이 줌 인을 하자, 에디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김승주 역시 그제야 하구연이 하는 말의 뜻을 알 수 있었는데, 에디 프랭크는 자신의 한계 구속 가까이 공을 던지면서도 결코 힘들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유가 가득한 미소만이 입가에 걸려 있었다.

이윽고 에디 프랭크는 97~98마일을 오가는 강속구를 뿌려 대며 일곱 개의 공으로 1회 초를 마무리 지었다.

LA데블스의 공격이 삼자범퇴로 끝나고, 오클랜드 슬랙스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선두 타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대호였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1번 타자로써 타순을 배정받았다.

대호의 등장을 알리는 테마곡인 ‘Roar’가 울리자, 뉴슬랙스 볼파크 안이 흥분의 도가니로 들끓었다.

“빅 타이거! 빅 타이거!”

타석에 들어서던 대호는 자신의 등장에 환호하는 팬들을 위해 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스포츠 스타의 팬 서비스에 다시 한번 경기장 안이 팬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우와아아아!”

“인크레더블!”

빅 타이거, 그리고 인크레더블이라는 외침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척!

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대호는 타석에 들어서 배트를 정면을 향해 들어 보였다.

예고 홈런이었다.

이번 타석에서 기필코 홈런을 칠 것이니 승부를 피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LA데블스 베터리의 표정이 굳었다.

‘이런 건방진!’

저게 도발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LA데블스의 선수들이었지만, 안다고 해서 도발의 위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선수였다면 곧바로 보복을 당할 행동이었지만, 정대호의 이름값은 그것을 막아 주는 효과도 있었다.

다만 LA데블스의 1선발을 상대로 예고 홈런을 치겠다는 건, 그들을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

그러나 화가 난 배터리와는 다르게 오클랜드의 팬들은 더더욱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들의 자랑인 정대호라면 충분히 예고 홈런을 쳐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