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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44화 (144/209)

144화

2033년 2월 18일.

“후우! 후우!”

스프링캠프 소집까지 이제 고작 일주일 남은 시간, 대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그만!”

카밀라 그레이시는 정해진 훈련량이 끝나기 무섭게 훈련을 멈췄다.

쿵!

들고 있던 덤벨을 바닥에 내려놓자 육중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인크레더블, 너도 수고했어!”

어느새 두 사람은 편한 사이가 되어 말을 놓고 있었다.

비록 카밀라가 대호보다 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이미 더 나이 많은 이들과 친구가 된 경험이 많은 대호와, 높은 정신 연령에 감탄한 카밀라는 친해진 상태였다.

“대호 너 덕분에 이번 연구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군요.”

인스트럭터는 단순히 돈을 받고 선수를 훈련시키는 트레이너와는 다르다.

자신의 연구 논문을 바탕으로 실천을 통해 보완을 하며, 이론을 완성하는 학자와도 같은 사람이다.

물론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시즌 중이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하하! 물론 돈을 받고?”

“물론, 그건 당연한 거지. 나도 땅 파서 장사하는 것은 아니라고. 조교 월급도 줘야 하고 말이지.”

대호의 농담에 카밀라 또한 이를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웃으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그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연구 논문을 쓰면서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카밀라도 자신을 도와줄 팀을 꾸리고 있었다.

이번 대호의 훈련도 그런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램을 짜고 준비를 하여 완성한 것이었다.

또 이렇게 모인 측정값을 취합하여 논문을 완성하는데 사용했다.

“오늘로 우리의 계약이 마무리되었는데, 남은 기간 동안 어떻게 할 생각이야?”

계약된 기간이 모두 끝나자 카밀라는 조금 걱정이 되어 물었다.

자신이 꾸린 연구 프로그램의 결과는 확실한데,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까지 아직 일주일 정도 텀이 생겼다.

혹시나 대호가 이 기간 동안 키워 놓은 능력을 까먹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물은 것이다.

“남은 일주일은 근육과 체력 회복을 위해 영양 보충과 휴식을 병행할 계획입니다.”

“그래? 그럼 회복 프로그램까지 짜 줄까?”

카밀라는 그동안 지친 몸을 회복시키겠다는 말에 선뜻 제안을 하였다.

“그렇게 해 주시면 저야 당연히 좋죠.”

전문가가 회복 프로그램을 짜 주겠다는 제안을 먼저 하자, 대호는 얼른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대호는 스프링캠프까지 남은 시간을 회복 훈련과 결혼 후 조금 소원해진 것 같던 한나와의 결혼 생활을 위해 사용하였다.

* * *

2033년 2월 25일,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일제히 2033시즌 스프링캠프를 열었다.

대호도 소속팀인 오클랜드 슬랙스가 개최하는 스프링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호호캄 스타디움에 왔다.

“다들 안녕!”

로커로 들어간 대호는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였다.

“어, 대호!”

여기저기서 대호를 보며 인사를 하였다.

그중 브렛은 대호를 보며 늦었다고 말하며 그와 얼싸안았다.

“대호, 좀 늦었네?”

“하하하, 어쩌다 보니까. 브렛, 넌 겨울동안 잘 준비한 거야?”

이번 시즌에는 메이저리그 풀 시즌을 노리고 있는 브렛의 목표를 알고 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당연하지. 이번 시즌에는 무조건 전 경기 출전하겠어!”

너무도 당찬 각오를 나타내는 브렛의 모습에 대호는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의 브렛은 조금 우유부단한 성향을 보였지만, 자신과 어울리면서 영향을 받았는지 한층 성장한 상태였다.

“그런데 베테랑들이 많이 보이지 않네?”

정말 대호의 말처럼 로커 룸에 짐을 옮기면서 본 이름표에는 작년 2032시즌에 함께 했던 몇몇 선수들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뭐야? 대호 너, 아무 것도 듣지 못한 거야?”

“아무 것도 듣지 못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브렛의 물음에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 대호의 물음에 브렛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을 하였다.

“기존 메이저리거 중 성적이 부족한 선수 몇 명이 다른 구단으로 트레이드 됐거든.”

“……!”

자신이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동안, 프런트에서 선수 몇 명을 다른 리그와 구단으로 트레이드 했다는 것이다.

“트레이드를 하는 건 좋은데, 그럼 새로 오는 선수는 누가 있는데?”

대호는 오클랜드의 빈자리를 프런트에서 어떻게 채웠을지, 그리고 새로운 얼굴은 누가 올지 궁금해서 브렛에게 물어보았다.

“새로 우리 구단으로 오는 선수는 플로리다 마린스의 2선발이었던 허크 해리스라고 들었어.”

“허크 해리스?”

“응. 아마도 작년 챔피언십에서 마운드가 무너진 것 때문인 듯싶다.”

“허크 해리스 하나만 보강이 된 거야?”

“맞아. 허크 해리스만 트레이드로 데려왔다고 들었어.”

브렛의 말에 대호는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세 명의 선수가 다른 곳으로 떠났는데, 팀에는 투수 하나만 데려왔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야 한 명하고 외야 두 명이 트레이드 되고, 투수 한 명을 데려오면서 남은 돈은 구장 보수비로 사용한다는 것 같아!”

“그게 정말이야?”

“뭐… 그건 정확한 소식은 아니야. 나도 뉴스에 나온 기사로 들은 것이니까…….”

어느새 준비를 마친 브렛은 그렇게 말하고는 로커를 빠져나갔다.

대호도 얼른 준비를 하고 그 뒤를 따라갔다.

‘리빌딩을 다 끝낸 것이 아니었어?’

복도를 걸어가면서 대호는 머릿속으로 그렇게 궁리를 하였다.

오클랜드 슬랙스는 오래 전부터 리빌딩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동안 제대로 성공을 하지 못해, 2030년에 과감하게 투자를 하여 유망주 계약을 했다.

그게 바로 대호였고, 대호와 계약을 하면서 최소 2~3년 동안 리빌딩을 완성하는 기간으로 잡았다.

물론 2~3년은 대호가 마이너리그에서 완성되는 기간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프런트의 예상과는 달리, 2~3년이 아니라 대호가 너무 일찍 터져 버렸다.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그 때문에 여전히 리빌딩은 진행 중인 일이 되었다.

오클랜드의 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대호와 그를 구단으로 올 수 있게 과감한 투자를 한 단장 조엘에 대해 일제히 환호할 뿐이었지만, 프런트로서는 머릿속이 복잡해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구단 상황을 정확하게 나타내 준 것이 바로 작년 2032시즌이었다.

물론 월드 시리즈까지 가지 못했을 뿐이지 기대 이상의 성적을 보여 주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완벽하게 리빌딩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 상황에서는 그 정도가 한계선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호라는 거목이 사라진 뒤의 경기 결과만 봐도 그러했다.

그렇기에 대호는 기존 주전 선수를 세 명이나 트레이드 했으면서 보충한 선수는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 조금 아쉽고 불안했다.

하지만 내야수인 브렛의 입장에서는 이런 오클랜드의 트레이드가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자가 줄어들었으니 첫 풀 시즌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백업으로만 출전을 했는데, 경쟁자가 사라졌으니 이는 당연했다.

* * *

그라운드로 나가니 벌써 많은 선수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다만 메이저리거들은 그들대로, 마이너리거들은 또 소속 리그 선수들끼리 모여 있었다.

“후우! 많네.”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스프링캠프 기간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볼 수가 있었다.

“헤이, 인크레더블! 오랜만이야!”

대호가 그라운드 안에서 선수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 누군가 대호의 별칭 중 하나로 그를 부르며 다가왔다.

다가온 사람은 바로 오클랜드 슬랙스의 4선발인 라이언 헤밀턴이었다.

작년 이맘때 LA다윈스에서 오클랜드로 트레이드 되어 온 투수였다.

2선발 레프리 그로스가 데드 암이라는 불의의 부상을 당해 시즌 초반 팀에서 이탈했을 때, 마운드 강화 차원에서 주전 2루수였던 아론 헤들러와 맞트레이드 되어 팀에 합류한 이였다.

라이언이 이렇게 대호를 반갑게 맞이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이적생인 그에게 대호가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팀 적응은 물론이고 경기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LA다윈스에서 3선발을 할 때 그의 최고 성적은 13승 8패, 평균자책점 4.38로 그리 좋은 투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클랜드 슬랙스로 트레이드 된 2032시즌 성적은 20승 7패로 승수가 무려 7이나 올라갔다.

그뿐만 아니라 평균 자책점도 1.89로 무려 2.49나 내려갔다.

이는 일반적으로 있을 수 없는 기록이었다.

물론 세이버매트릭스에 따른 것이 아닌 클래식 스탯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20승과 평균 자책점 1점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라이언이 이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 야수들의 수비에서 비롯되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최고로 넓은 수비 범위를 가진 중견수 대호가 외야 중심에 자리하고 있고, 그로 인해 좌, 우익수는 좁은 수비 범위만 책임지면 되니 외야가 안정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내야 또한 뒤쪽이 안정되어 있으니 좀 더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수비를 봤고, 결론적으로 마운드 위에 있는 투수도 보다 편하게 공을 던질 수 있었다.

이러니 라이언이 대호를 보고 반갑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라이언의 모습에 스프링캠프에 초청된 마이너리거들은 대호를 주시하였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스프링캠프에서 중심을 맡고 있는 선수가 누군지 말이다.

더욱이 오클랜드의 주전 선수 모두가 대호를 주목하고 있으니 마이너리거들의 입장에서도 당연한 일이었다.

“오! 라이언, 오랜만이에요. 몸이 작년보다 더 좋아진 것 같네요?”

다가오는 라이언 헤밀턴을 보며 인사를 했다.

“당연하지. 작년에 너무 아쉬웠잖아!”

몸이 좋아졌다는 대호의 말에 라이언은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하였다.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 패배와, 6차전 총력전에서 힘을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패한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하! 그렇죠.”

대호도 그가 어떤 경기를 언급하는지 알기에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정말로 자신이 시리즈 첫 경기에서 부상만 당하지 않았더라도 챔피언십 시리즈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1차전에서 피로로 인한 부상을 입어 시리즈 모든 경기에 불참함으로써 디트로이트에 역전패를 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했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우리 오클랜드의 자랑 빅 타이거 아냐?”

대호가 작년 챔피언십 시리즈에서의 아쉬움을 떠올리고 있을 때, 누군가 큰 목소리로 떠들며 다가왔다.

“어? 주장!”

큰 목소리로 떠들며 다가온 사람은 다름 아닌 오클랜드 슬랙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주장인 홈런 브레드였다.

이제는 30대 후반으로 은퇴를 앞두고 있는 나이였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아직 쌩쌩해 보여서 몇 년 정도는 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을 만큼 건장한 체격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번 시즌에는 은퇴를 한다고 떠들더니, 올해도 스프링캠프에 나오셨네요.”

작년 2032시즌 시즌 내내 주장인 홈런 브레드는 올해만 하고 내년에는 편하게 집 거실에서 TV로 메이저리그를 보겠다고 떠들었었다.

그런데 이렇게 스프링캠프에서 보게 되니 대호는 반가우면서도 농담을 건넸다.

“뭐, 나야 편하게 그러고 싶었는데… 보스가 하도 이번 시즌만 나와 달라고 해서. 흐흐흐!”

홈런 브레드는 뻔뻔한 얼굴로 감독인 마이크 케세이를 언급하며 대답을 회피했다.

“브레드, 무슨 말이야? 말만 하라고! 쉬고 싶으면 자넬 놔줄 테니.”

언제 다가왔는지 감독인 마이크 케세이가 브레드의 뒤에서 그리 이야기를 하였다.

“하하! 아닙니다. 저도 야구에 인생을 건 사람입니다. 은퇴를 하더라도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는 껴 봐야죠.”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홈런 브레드는 얼른 꼬리를 말고 비굴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하였다.

그런 주장의 모습에 대호는 웃음이 나와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주장, 그게 뭐예요.”

“그러게나 말이다. 저 나이 먹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우승 반지가 가능할까?”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철없는 홈런 브레드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감독의 말을 들은 대호가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우승 반지는 당연히 차지해야죠.”

“그렇지.”

“맞아요. 올 시즌에는 챔피언십 우승은 물론이고 월드 시리즈까지 제패해야죠.”

조금 큰 목소리였지만, 주변에 있던 메이저리거, 마이너리거 할 것 없이 모두가 방금 대호가 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그 말이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왠지 그렇게 될 것만 같은 예감에 심장이 뛰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이는 대호의 말이 있기 전, 감독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하던 홈런 브레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구단 내 그 누구보다 목표 의식이 강한 대호가 나서서 올 시즌 목표를 리그 우승이 아닌 월드 시리즈 우승을 언급하자, 이들 모두의 머릿속에 강렬한 단어가 각인된 것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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