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43화 (143/209)

143화

스프링캠프가 열리는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 먼저 입성한 대호는 바로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대호가 이렇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부인인 한나에게 전화 한 번만 한 뒤 곧바로 피닉스로 날아와 몸 만들기에 들어간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현재 몸 상태가 165게임이나 되는 정규 시즌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군부대에서 대호의 사정을 감안해 자유 시간을 보장해 주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시즌을 준비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물론 이런 점을 모두 예상했기에 미리 인스트럭터를 구하는 등의 준비를 한 것이기도 했다.

대호의 최종 목표인 명예의 전당 초회 입성.

최근 대호는 목표를 한 단계 더 올렸다.

바로 선정인단 전원 만장일치라는 것으로 말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몇 명 없는 이것을 달성해야 야구에 대한 모든 욕구가 해소될 것 같았다.

혹자는 대호 정도의 임팩트를 주었는데 왜 아직도 명예의 전당을 걱정하고 있는지 궁금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메이저리그에는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이 남아 있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은 이제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은 아직 존재했기 때문이다.

분명 기록상으로는 충분히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수 있는데, 탈락한 예가 몇몇 있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객관적인 기록을 저버리고 아시아인에 대한 신체적 편견을 들어 그들의 공헌을 폄하한 결과, 현재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있는 아시아인은 일본의 혼다 이치로가 최초였다.

그것도 겨우 헌액 기준 75%를 달성해 입성했으니, 차별이라고 말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아시아인이란 핸디캡을 달고 있는 대호로서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다.

* * *

스프링캠프가 소집되는 2월 25일까지 정확하게 5주가 남은 상황.

그러니 대호는 못해도 4주 안에 작년 2032시즌에 준하는 수준까지 신체 능력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그리고 남은 기간은 그것을 체화하면서 내구도를 올릴 계획을 세웠다.

“앞으로 하나 더! 하나만 더!”

계약한 인스트럭터는 ‘하나 더’를 외치며 대호를 다그쳤다.

그런 인스트럭터의 요구에 대호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아무런 반항 없이 따랐다.

“좋아요. 마지막으로 하나!”

분명 하나만 더라고 했음에도 또다시 ‘하나 더’가 나왔지만, 이번에도 대호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몸을 움직였다.

“굿! 수고했어요.”

카밀라 그레이시는 밝은 미소를 띠며 대호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며 말을 건넸다.

“후우! 수고하셨습니다.”

카밀라는 특이하게도 메이저리그에 많지 않은 여성 인스트럭터였는데, 더욱이 그녀의 주전공이 야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카밀라가 유명한 것은 그녀의 집안의 명성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

브라질의 유명한 주짓수 명가인 그레이시 가문의 일원으로 어려서는 주짓수와 유도를 하였고, 대학에서는 스포츠 역학을 전공하고 마사지 및 테이핑, 영양학을 부전공으로 삼아 학위를 취득하고, 재활 치료사 자격증 등 각종 자격증을 획득했다.

특이하게도 카밀라는 야구 인스트럭터를 하기 전에는 종합 격투기 선수로도 활동을 한 이력이 있었다.

그리고 현재 최종적으로 야구 인스트럭터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다.

대호가 카밀라를 자신의 인스트럭터로 삼아 계약한 것은, 3회차 때의 경험을 떠올려 이번 2033시즌을 준비하기 위함이었다.

짧은 기간에 몸을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인스트럭터가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병역 문제로 4주 동안 군사훈련을 받기 때문에 시즌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니,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메이저리그를 준비하던 때부터 인연이 있는 밀러에게 부탁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으니 카밀라와 계약을 하였다.

능력도 뛰어나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인스트럭터 중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마사지 받는 것 빼먹지 말아요.”

훈련이 모두 끝나고 카밀라는 마무리로 마사지를 받아야 함을 주지시키고 자리를 떠났다.

대호는 마무리 운동을 하는 것 대신 언제나 훈련의 마무리로 마사지 받곤 했다.

많은 스포츠 관계자들이 운동 후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의견을 냈다.

다만 예전에는 공통적으로 주장하던 이야기들이 바로 본격적인 훈련 전의 준비운동과 마무리 운동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많은 지도자들이 주장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그게 틀렸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오면서 설전이 벌어졌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인간의 신체는 모든 부분이 소모성 자원이다.

그러니 훈련의 마지막에 마무리로 또다시 운동을 하게 되면 점점 기능을 깎아 먹게 되고, 이런 것 대신 최대한 아껴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기존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주장은 선수의 부상 빈도를 높이는 아주 위험한 이론이라며 반박했지만,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조금씩 후자에 힘을 실어 주기 시작했다.

사실 기존의 이론에 따라 마지막까지 몸을 혹사시키는 것은 인간의 신체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나온 것으로, 이것을 따르다가 무리한 훈련으로 인해 망가진 선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대호 역시 기존의 이론보다는 휴식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나처럼 상태창과 스탯의 도움을 받는 사람도 몸과 근육이 지치는 걸 느끼고 부상을 입는데, 보통 선수들은 어떻겠어?’

대호는 인간의 신체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최선의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좋은 성과를 낸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마무리 운동보다는 마사지를 통해 뜨겁게 달아오른 근육과 인대를 풀어 주는 것을 선호했다.

카밀라가 인스트럭터가 된 이후, 가장 잘 맞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전문적인 재활 치료사 자격증도 있는 만큼, 그녀는 근육의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잘 알았기 때문이다.

* * *

한나는 결혼을 하고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오래 보지 못했던 남편과 만나기 위해서 비행기에 올랐다.

매일 적어도 한 번 이상 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또 일상을 공유했지만 그럼에도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더욱이 오늘 점심에 통화를 하던 도중, 여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리자 그러한 감정은 더욱 커졌다.

‘우리가 결혼한지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었는데… 아니겠지?’

너무도 잘난 남편이었고, 또 자신보다 일곱 살이나 어렸기에 한나의 불안한 마음은 가실 줄을 몰랐다.

사실 남자 친구였을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불안하진 않았다.

연애를 하다 헤어지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결혼을 한 뒤로는 남편이 자신을 떠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 와중에 두 달이나 떨어져 있었고, 또 전화기 너머로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 것만으로도 불안감에 휩싸여 애리조나로 직접 날아가기로 한 것이었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가는 건데, 괜찮을까?’

한나의 머릿속은 여러 생각이 얽혀 복잡함이 가시지 않았다.

* * *

오후 6시 40분.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눈앞에 있다면 그 누구라도 당황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대호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나! 여긴 어쩐 일이야?”

자신의 앞에 하얀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오는 검정색 치마를 매치한 정장 차림의 그녀가 나타나자 대호가 놀라 말했다.

한편 한나는 자신을 보며 놀란 눈으로 이야기하는 남편의 모습을 직접 보자, 더욱 마음이 불안해졌다.

더군다나 지금 대호의 상태는 벌거벗은 상체에 허리에는 목욕 타월을 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방금 샤워를 했는지 물에 젖은 머리까지, 분명 무슨 일이 있는 듯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나의 걱정이 과한 것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자, 자기야. 지금 그게 무슨 차림…….”

불안하게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보며 물어 오는 한나의 말에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어? 이거? 오후 훈련 마쳤으니까 당연히 방금 샤워했지.”

무언가 의심스러운 상황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태연할 수 없다.

아니,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껏 봐 온 대호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기에 한나의 마음도 조금 풀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얼굴을 들이밀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등장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만 보여 주고 있으니, 대호는 더욱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음, 합격!”

느닷없이 냄새를 맡다가 합격이라 말하는 한나의 모습에 대호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합격이란 소리야?”

자신의 의심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았지만, 한나는 조금 뻔뻔하게 나가기로 하였다.

“응. 나 없는 사이에 자기가 다른 여자를 방으로 끌어들였는지 확인해 봤는데, 아닌 것 같아. 그래서 합격이라고.”

“…뭐?”

한나의 대답을 들은 대호는 정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것만 같았다.

느닷없이 그게 무슨 말인가.

이번 시즌을 준비하기도 바쁜 자신인데, 여자라니.

순간 할 말을 잊을 정도로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다른 생각도 떠올랐다.

‘하긴 결혼을 하자고 했으면서 내 사정만 생각하고……. 이젠 연애가 아니지.’

현재 그녀와 자신은 부부다.

그런데 자신은 인생의 목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성에 목매어 잠시 그녀를 잊고 있었다.

쪽!

“미안!”

대호는 그녀를 안고 가볍게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그러고는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였다.

다정한 남편의 행동에 한나는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 들었던 걱정들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저녁 전이지?”

저녁 7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LA에서 이곳 피닉스까지 오는 시간을 따져 보면, 가장 빠른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해도 2시간 가까이 걸린다.

그러니 한나는 아마도 저녁을 먹기 전일 것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입에서 아직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말이 들려왔다.

“방송국에서 바로 오느라 아직 안 먹었어!”

예상한 답변이 들려오자 대호는 그녀를 방 안으로 이끌며 말했다.

“하하하, 그럴 줄 알았어. 그럼 나 옷 갈아입을 동안 잠시만 기다려 줘.”

“응, 알겠어.”

이미 기분이 풀린 한나는 갑자기 찾아온 자신에게 저녁을 함께 하자는 남편의 말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 * *

달그락달그락.

대호와 한나 부부는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두 달여 만에 만난 이들은 가벼운 일상의 대화를 하며, 즐겁게 저녁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정말로 어쩐 일이야?”

대호는 방금 전 한나의 말은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한나가 있는 곳에서 여기까지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올 수 있다고 하지만,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상태에서 여기까지 날아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응, 그게…….”

대호의 질문에 한나는 순간 동작을 멈추고 얼어 버렸다.

방금 전 대호가 묵는 호텔 방 앞까지 갔을 때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낮에 통화를 하며 들린 여자의 목소리 때문에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해가 풀리고 오랜만에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다 보니, 그러한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식사하는 동안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최대한 화제를 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바람은 새벽녘 바다의 거품처럼 사라졌다.

“응? 그게 뭐?”

뭔가 당황하는 한나의 표정에 대호는 짓궂게 물었다.

그런 대호의 반응에 한나는 더욱 당황해 말을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그게, 그러니까… 내가…….”

“뭐야! 뭘 그리 당황해?”

당황하는 한나의 모습에 대호는 고개를 더욱 갸웃거리다 설마 설마하며 물었다.

“진짜 여자 만나는지 의심되서 온 거야? 설마 낮에 통화를 하다 들린 목소리 때문에?”

낮에 막 오후 훈련에 들어가기 전, 그녀와 통화를 하던 중 인스트럭터인 카밀라와 이야기를 하던 것이 생각났다.

“어, 어! 맞아…….”

한나는 남편의 질문에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호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이 되었지만, 곧바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하, 한나. 그 사람은 내 인스트럭터야.”

“인스트럭터?”

“응. 물론 여자긴 하지만, 한나보다 아름답진 않다고.”

대호는 한나가 듣고 싶어 하던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연상을 좋아하긴 하지만 5살까지가 마지노선이야!”

“5살? 그럼 나는?”

대호와 자신의 나이 차가 무려 일곱 살이나 나는 것을 떠올린 한나가 물었다.

“한나야 내가 반해서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이니 예외지.”

“그게 뭐야!”

대호의 대답에 한나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정말 다른 걱정하지 마. 내 인생에 여자는 한나뿐이니까!”

쪽!

무엇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깨달은 대호는 그렇게 자신의 인생에 여자는 한나뿐이라고 대답을 하고 증거로 키스를 하였다.

그런 대호의 기습 키스를 받은 한나의 볼은 그 어느 때보다 붉어졌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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