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2032년 10월 26일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이 펼쳐지는 오클랜드 뉴 슬랙스 볼파크.
많은 야구팬이 오클랜드 슬랙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을 구경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웅성웅성!
현재 오클랜드와 디트로이트의 챔피언십 시리즈 성적은 2:3으로 역전이 된 상황.
만약 오늘 디트로이트 라이언스가 승리를 거둔다면, 2032시즌 아메리칸리그는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우승으로 끝난다.
반면 홈팀인 오클랜드 슬랙스가 이기게 된다면, 스코어는 3:3으로 마지막 파이널 경기를 치르게 될 예정이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구장인 뉴슬랙스 볼파크 홈팀 로커 룸.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굳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2:3이다. 원정 세 경기에서 단 한 게임도 이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굳은 표정을 펴지 않고 있던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선수들을 돌아보다 마지막에 대호에게서 멈췄다.
― 올해는 더 이상 대호의 출전을 금지합니다. 억지로 무리를 해 봤자, 챔피언십이 한계일 테고 그렇다면 우리 오클랜드의 내년 계획에 더 지장을 줄 테니까요.
그제 밤 디트로이트 원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단장인 조엘이 한 말이었다.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얻은 부상으로 일단 출전 명단에서 제외되었던 대호는 결국 이번 시리즈 모든 경기에 출전하지 않기로 결정되었다.
처음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이크 케세이는 순간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비록 원정 세 경기를 모두 지기는 했지만, 홈으로 돌아가면 대호를 앞세워 다시 역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단장인 조엘에게 이야기를 듣고 난 뒤 많은 것을 깨달았다.
― 이제 겨우 부상에서 회복된 대호를 써야만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승리할 수 있다면, 그 뒤 있을 월드 시리즈는 어떻게 할 것인가?
조엘의 그 물음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단장의 말이 맞아.’
마이크 케세이도 그냥 허투루 야구 감독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단장인 조엘이 무슨 이유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대호가 없던 챔피언십 시리즈 3, 4, 5차전에서 보여 주었던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의 면모를 보면 참으로 가관이었다.
3차전에선 방심을 하고 에러를 남발했다.
그나마 4차전에선 혹독한 정신 무장을 다시 갖추게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명품 투수전이든 뭐든 패배는 패배였으니 말이다.
물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오클랜드 구단의 미래인 대호를 희생하면서까지 억지로 진출할 가치가 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대호를 혹사시켜 우승이라도 거둔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월드 시리즈가 아니라 고작 챔피언십 시리즈였으니까.
그런 결과로 아쉽기는 하지만, 2032시즌 포스트 시즌은 대호 없이 이대로 가기로 결정했다.
다만 내년 2033시즌에는 조금 더 전력을 보강하여, 월드 시리즈를 노리기로 합의를 보았다.
‘이 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를 한 것뿐이야!’
* * *
웅성웅성!
뉴슬랙스 볼파크 중계 부스.
엄청난 수의 야구팬으로 인해 방송 중계가 힘들었지만, 김승주나 하구연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중계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메이저리그를 사랑하는 야구팬 여러분! 아나운서 김승주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 해설을 맡은 하구연입니다.”
김승주와 하구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중계 시작을 알렸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 오클랜드 슬랙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경기 중계에 앞서, 내셔널리그 경기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김승주는 이미 먼저 끝난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의 결과를 언급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는 필라델피아 필리어스가 샌디에이고 파더스를 상대로 세트 스코어 4:1, 승리를 거두며 리그 우승을 취했습니다. 즉, 월드 시리즈의 상대는 필라델피아가 된 셈이죠. 그리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결과를 전달한 그는 오늘 경기의 결과에 따라 또 다른 월드 시리즈 한 자리가 결정이 되거나 뒤로 미루어짐을 알렸다.
“필리어스! 시즌 중에는 그렇게 마운드와 공격에서 큰 두각을 내지 못했지만, 포스트 시즌에 들어오면서 끈끈한 협동력을 보여 주었죠. 막강한 샌디에이고 파더스를 강타선을 묶어둠으로써 챔피언십 시리즈를 4:1로 가볍게 이기고 월드 시리즈에 이름을 먼저 올렸습니다.”
다사다난했던 아메리칸리그의 가을 야구처럼, 내셔널리그 또한 이변의 연속이었다.
당장 뉴욕 킹덤즈의 패배부터 시작해서, 돌풍을 일으킨 오클랜드가 밀릴 거라는 예상은 전혀 없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상대적인 전력이 하향세라고 불리던 필라델피아에서 포스트 시즌 강자라고 불리는 샌디에이고를 4:1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월드 시리즈에 올라간 것이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스포츠와 빠질 수 없는 도박, 그리고 도박사들의 이름값 역시 평론가와 마찬가지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특히나 디비전 시리즈에서 뉴욕 킹덤즈가 오클랜드 슬랙스에 패배를 한 것부터 시작해서 이변이 속출한 이번 2032시즌 포스트 시즌을 생각하면, 이번 포스트 시즌에 도박사들의 말을 듣고 배팅을 한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돈을 잃었다.
물론 도박이든, 혹은 정식으로 하는 투자이든 타인의 말만 듣고 무작정 따라가는 이들에게 일차적인 잘못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오늘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에 우리 정대호 선수의 출전이 사실상 불가능해지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오늘 출전 명단엔 우리 정대호 선수의 이름이 빠져 있었습니다.”
“혹시, 1차전에서 입었던 부상에서 다 낫지 않은 것인가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오클랜드 슬랙스 입장에선 핵심 선수인 정대호 선수의 부재로 인해 경기를 풀어 나가는데 어려워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비록 홈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정대호 선수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오늘 경기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승주는 어쩌면 이번 2032시즌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한국 출신 선수의 경기를 보는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
비록 오늘 경기에서 대호는 출전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래도 오클랜드 슬랙스에 소속된 것은 맞았기에 그는 내심 오늘 오클랜드가 젖 먹던 힘까지 내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에 가 주길 기원했다.
7차전까지 가면 혹시나 대호가 나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이미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에서 올 시즌 더 이상 대호가 경기에 출전하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좋게 말해서 대호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나쁘게 말하면 내후년 연봉 협상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해 더 이상의 경기 출전을 막았다.
* * *
비록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지만, 대호는 운동복을 입고 더그아웃에서 동료들과 함께하였다.
감독은 대호에게 휴식을 취해도 된다고 허락을 했지만, 대호 본인이 홈 2차전은 물론이고 원정 세 경기에 모두 빠진 것이 미안해 동료들과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아웃!”
대호는 더그아웃 난간에 팔을 걸치며 동료들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홈이라 그런지 출발은 아주 좋았다.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발은 프랭크였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에이스인 프랭크는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타자들을 상대로 가볍게 공 열한 개로 삼진 두 개와 유격수 앞 땅볼 한 개를 잡아냈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선발 베스트 윌 또한 괴력을 발휘하며, 비록 안타를 맞기는 했지만 네 타자를 상대로 삼진 한 개와 내야플라이 두 개로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를 막아 냈다.
그렇게 오클랜드 슬랙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챔피언십 시리즈 6차전은 팽팽한 투수전까진 아니어도 점수 또한 나오지 않아 긴장감을 만들었다.
‘제발!’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대호는 속으로 신께 빌고 또 빌었다.
자신이 속한 팀이 이기길 말이다.
그렇지만 신은 그런 대호의 기도를 받아 주지 않았다.
5회가 끝나고 6회에 들어서면서 오클랜드의 두 번째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선발 프랭크에 이어 마운드를 이어받은 투수는 시즌 중에는 4선발이었다가 부상으로 빠졌던 레프리가 돌아오면서 5선발로 밀렸던 모건 시어스였다.
2032시즌 12승 8패로 두 자릿수 승을 거두었으며, 좌투 우타에 패스트볼 구속은 95마일로 메이저리그 평균 정도 실력에 속하는 투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즌 12승이란 성적은 그가 결코 쉬운 투수는 아님을 보여 주고 있었다.
퍽!
“스트라이크!”
짝짝짝!
초구 스트라이크가 나오자 대호는 요란하게 박수치며 환호를 하였다.
“나이스, 모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요란한 대호의 응원에 고무된 모건은 자신의 기량을 100% 뿜어내며 호투를 하였다.
하지만 12승을 기록했던 모건이라고 해도, 그가 상대하는 선수 또한 산전수전 다 겪은 메이저리거였다.
따악! 따아악!
자신이 너무 과한 나머지 패스트볼을 남용했고, 연속 안타를 맞았다.
더욱 좋지 못한 것은 연속 안타에 이어 수비수들의 어이없는 실책이 함께 나왔다는 것이다.
“어! 어어어!”
3유간으로 빠지는 아슬아슬한 타구였지만, 3루수가 다이빙 캐치로 외야로 가는 것은 막아 냈다.
하지만 타구가 워낙 강력했던 나머지 공이 웹에 깊이 박히고 말았다.
이 때문에 공을 웹에서 꺼내지 못하고 2루로 토스할 타이밍을 잃어버렸다.
하는 수 없이 뒤늦게 1루로 주자를 잡기 위해 송구를 하였다,
휘이익!
그런데 급히 1루로 공을 던지다 실수가 나와 1루수가 잡을 수 있는 범위 바깥으로 던져 버렸다.
“앗! 조던 디아즈 선수, 공을 잡지 못했습니다!”
1루수였던 조던 디아즈는 최대한 팔을 높이 뻗어 보았지만, 송구된 공은 그의 수비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나 뒤로 빠졌다.
그 사이 타자 주자는 1루를 지나 2루로 뛰었고, 2루에 들어왔던 주자도 공이 빠지는 것을 보며 3루로 뛰었다.
“우우우우!”
오클랜드를 응원하던 홈팬들은 어처구니없는 실책에 야유하였다.
3차전부터 5차전까지 보여 주었던 메이저리그란 이름값도 못하는 실수가 또 한번 나왔기 때문이다.
외야로 빠질 어려운 타구를 호수비로 잘 잡았음에도 긴장한 것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3루수 더미스 가르시아는 저도 모르게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홈팀 더그아웃에서 그런 더미스의 모습을 본 대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단 한 번의 실책이었지만, 오늘 경기의 분수령이 지금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구나!’
누가 알려 준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그런 대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실책 하나로 노아웃 1, 3루 상황.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9번 타자로 그렇게 강력한 타자는 아니지만,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마운드에 있는 모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올 시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경기에서 불펜 투수로 나와 연속해서 안타를 맞으며 1, 3루 위기 상황에 처했다.
원래라면 1사 2루 내지는 더블플레이가 되었어야 할 상황이 무사 1, 3루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우우우!”
더군다나 홈팬들의 야유도 계속해서 빗발치고 있었다.
따악!
내야를 벗어나 외야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였다.
또다시 안타가 나오면서 무사 만루가 되었다.
1:0 스코어에 무사 만루 상황, 하지만 오클랜드 더그아웃은 움직이지 않았다.
연속해서 네 개의 안타가 나왔음에도 오클랜드 슬랙스 코칭스태프들은 모건에게 마운드를 믿고 맡겼다.
하지만 이는 실책이었다.
비록 시즌 중 두 자릿수의 승리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태생적으로 멘탈이 약한 모건이다.
그런 모건에게 너무도 중요한 챔피언십 시리즈 마운드, 그것도 팀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무대에서의 마운드는 너무도 부담되었다.
그러다 보니 한 구, 한 구 공을 던지는 것에 부담을 느끼며 투구를 하였는데, 야수 실책까지 나오면서 멘탈이 붕괴되어 버렸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