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 단장 사무실.
조엘 헌트는 굳은 표정으로 TV 화면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지금 단장실에는 비단 단장 조엘 헌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 프런트 직원 중 팀장급에 속한 이들 모두가 한자리에 앉아 4차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틱!
9회 말, 역전 투런 포가 터지면서 디트로이트의 승리로 경기가 끝나자, 조엘은 곧바로 TV를 껐다.
드르륵!
경기가 끝나자 심각한 표정이 된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런 말없이 뭔가 고민을 하는 것인지, 인상을 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 이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으니 이야기해 보자고.”
생각을 수습한 조엘은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운을 땠다.
“참… 뭐라 말하기가 그런데, 선수 한 명이 빠졌다고 우리 오클랜드가 이렇게 무너지다니 믿을 수가 없군요.”
단장의 말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시아 담당 스카우터인 조나단 센더슨이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가장 핫한 스타를 발굴한 스카우터로써 이름을 올린 그였기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조나단에게 쏠렸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조나단의 푸념에 단장인 조엘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년 후반기에 메이저리그로 콜업 된 이후 올 시즌 풀타임으로 경기를 치르면서 구단… 아니, 전 메이저리거를 뒤져 봐도 대호보다 큰 활약을 펼친 선수를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어느 정도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리그를 압도하는 선수였기에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대호의 활약을 부정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합니다. 정대호 선수가 없는 오클랜드의 전력이 겨우 저것밖에 안 되다니. 그건 작년… 아니, 2030시즌보다 못한 것 아닙니까?”
조나단은 조금 전 보았던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 결과를 보며 그렇게 판단했다.
말의 형식은 질문이었지만, 결코 누군가에게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호가 부상에서 돌아온다 해도 이건 문제가 상황입니다.”
이야기를 하던 조나단은 단호한 표정으로 장내에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리 이야기하였다.
끄덕!
조용히 조나단의 이야기를 듣던 조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하나?”
나지막한 조엘의 목소리가 실내에 퍼졌다.
‘…어떻게 하냐니?’
모두의 머릿속에는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기에 조엘의 말을 들은 사람들 모두 그런 의문 부호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뜻의 향방을 알지 못했기에 그런 것이다.
실내를 돌아보며 부서 팀장들이 자신의 의향을 알지 못했다는 걸 깨달은 조엘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질문하였다.
“조금 전 조나단이 말하지 않았나? 이대로는 안 된다고.”
“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리고 하나둘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구단주님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누군가는 조심스럽게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인인 구단주의 생각을 물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재 저희 오클랜드의 전력이 이 정도란 사실을 받아들이고 내년 2033시즌을 대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누군가는 내년을 준비하자고 하였다.
“빅 타이거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한 사람은 대호만 부상에서 회복하고 돌아온다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테니,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을 하였다.
각 팀장의 의견을 들은 조엘은 굳은 표정으로 의견들을 하나하나 취합하여 득실을 판단했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좋은 것이 있고, 버려야 할 것이 있기에 심사숙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구단주 영감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엘은 팀장들의 의견을 취합하면서 또 한편으론 구단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떠올려보았다.
* * *
병원을 오가며 물리치료와 휴식을 반복하던 대호는 느닷없이 단장인 조엘이 면담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대호! 쉬는데 미안하지만, 잠시 볼 수 있을까?]
선수와 단장이 시즌 중에 개인적으로 만나는 일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그렇기에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보통은 프런트와 선수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하여 만나기보다는, 중간에 에이전트를 통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단장인 조엘이 연락하여 약속을 잡은 것은 다른 선수들과 달리 대호를 좋게 평가하고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조엘! 무슨 일로 절 부른 거예요?”
약속 장소에 나온 대호는 먼저 자리에 나와 있는 조엘을 보며 물었다.
“하하하, 대호. 이거 섭섭한데?”
갑작스레 튀어나온 사람은 조엘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조나단이었다.
“아! 미안해요, 조나단. 조엘이 무슨 일로 부른 것인지 너무 궁금해서 미처 못 봤네요.”
대호는 느닷없이 들린 조나단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사과를 하였다.
자신을 발굴하고 또 구단과 계약을 할 때 함께 미국까지 와서 자질구레한 잡무를 대신 처리해 준 것은 물론이고, 제리&맥콰이어라는 에이전트까지 소개한 이가 바로 조나단이었기에 바로 사과한 것이었다.
“하하! 대호, 농담이야.”
얼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농담이었다는 말을 하는 조나단이었다.
“한국에서 제2의 빅 타이거를 찾고 있는데, 쉽지 않네.”
조나단은 그런 말을 하면서 대호에게 앉으라고 권했다.
그러자 대호 역시 자연스럽게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조엘, 몸조리 잘하고 있으라고 하셨으면서 무슨 일로 부르신 거예요?”
조나단의 농담을 뒤로하고 자신을 부른 용건이 궁금해 조엘을 보며 물었다.
“뭐가 그리 급해? 배고픈데 우리 밥 먹으면서 이야기하자고.”
조엘은 조급해하는 대호를 보며 미소와 함께 우선 식사부터 해결하자고 했다.
대호도 그제야 진정하고, 고개를 돌려 조나단을 보며 방금 전 농담에 대한 답을 해 줄 정도로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 제2의 빅 타이거를 찾는다는 조나단. 그래서 찾긴 찾았어요?”
대호의 질문을 받은 조나단은 낙담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젠장!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네 미친 활약에 그런 판단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고.”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조엘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인지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어, 조나단은 살짝 웃으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재작년 처음 대호를 보았을 때만큼 재능이 넘치는 유망주를 보았다고 했다.
대호와 같은 타자 유망주는 아니고, 투수 유망주로 메이저리그 평균 구속인 95마일보다 빠른 96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우완이 아닌 좌완 투수라는 점이었다.
같은 실력이면 우완보단 희소성이 높은 좌완이 더 높은 가치를 지니는 건 당연했다.
실제로 우타자가 우완 투수를 상대하는 것보다 좌타자가 좌완 투수를 상대하는 건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야구계에서는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도 데려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끼는 존재였다.
심지어 나이가 이제 겨우 고3인 그 유망주는 보통 파이어볼러들의 단점이 제구도 갖췄기에 2~3년 정도 잘 키우면 즉시 전력감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예상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구종을 습득하는 것 역시 매우 빠르다고들 했지. 보통 최소 1년에서 2~3년 간 훈련해야 하잖아? 그런데 그 절반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 정도면 정말 특급 유망주 맞는데, 왜 좋은 판단이 허공으로 날아갔다는 건가요 조나단?”
대호는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교적 마운드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라면 많은 계약금을 주더라도 데려와야 하는 유망주가 아닌가.
“그게…….”
조나단이 대호의 올 시즌 활약을 보지 못했을 때는 백금(白金)과도 같은 재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백금이 아니라 백색금(白色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일 원소인 백금(플래티넘)과 금에 이것저것을 합친 합금인 백색금은 완전히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국, 아시아의 기준으로는 특급 유망주지만 메이저의 기준으로 보면 구속이나 여러 가지 요건이 특급이라기에는 한 끗발 부족한 수준.
그렇기에 조나단은 한숨을 쉰 것이었다.
“결국 내 기대가 너무 터무니없던 거지 뭐.”
“나 참…….”
이야기를 듣던 조엘은 고개를 흔들었고, 대호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대호 자신도 상태창과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도달하지 못할 경지를 보통 선수에게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걸 알았다.
조나단의 저 태도는 욕심이 아니라 탐욕 수준이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볍게 식사를 즐겼다.
자리가 무르익자, 단장인 조엘이 대호를 부른 용건을 꺼냈다.
“내가 대호, 자네를 부른 건… 다름이 아니라 챔피언십 시리즈를 지켜보면서 우리 오클랜드에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야!”
“네?”
대호는 이야기를 듣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구단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한 것과 자신을 부른 것이 무슨 상관이 있기에 그런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의문은 금방 해결이 되었다.
“선수들이 너무 자네에게 기대고 있는 것 같아.”
“아!”
조엘이 하는 이야기를 듣던 대호는 그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깨달았다.
대호 자신은 뚜렷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팀 동료들이 매번 활약하는 것에 점차 적응하면서 정신적으로 나태해졌다는 걸 말하는 것이리라.
외야수들의 경우 조금만 더 빨리 달리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공도 중도에 포기하고, 투수들 또한 머리를 굴려 타자와 어렵게 승부하기 보다는, 대호의 수비 능력을 믿고 적당히 던지는 경향이 후반기 들어 두드러졌다.
‘그랬군. 내가 외야에 없다 보니 그런 문제점이 이번에 다 드러난 거야.’
어째서 챔피언십 시리즈 3, 4차전 당시 오클랜드의 외야 수비가 그렇게 불안정했는가.
대호는 그 이유를 깨닫자 지금 단장인 조엘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도 짐작되었다.
‘챔피언십 시리즈 5차전은 디트로이트의 홈에서 하니까 그건 포기하고, 홈에서 치러지는 6, 7차전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메이저리그의 단장정도 직위가 되면 어떤 판단을 할지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메이저리그 단장이 아니라 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구단의 이익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이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대호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조엘이 이어서 꺼낸 말은 너무도 충격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대호 너는 뒷일을 고민하지 말고 부상 회복에만 신경 써!”
“네? 그게 무슨…….”
너무도 뜻밖의 말을 들은 대호는 눈을 크게 뜨고는 되물었다.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지금 같은 접전, 혹은 위기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이기기 위해 부상을 당한 선수라 하더라도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프런트의 생리였다.
이는 지난 회차를 경험하면서 증명이 된 사실이다.
하지만 방금 전 오클랜드 슬랙스의 단장인 조엘 헌트는 그런 기조와는 전혀 정반대의 말을 한 것이다.
“이대로는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대호 네가 어찌어찌 무리를 해서 이긴다고 해도, 월드 시리즈에서는 형편없이 질 거라는 예측을 내놓았지.”
조엘이 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경청한 대호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본능적으로 그의 말에 공감한 것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