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2회 말 오클랜드 슬랙스의 공격.
스코어는 0:2로 2점 앞서 가고 있는 상황, 아웃 카운트는 1사 2루일 때 대호는 세 번째 타자로 들어섰다.
‘후우…….’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점점 무거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뉴욕 킹덤즈와의 디비전 시리즈를 3:0으로 끝낸 뒤, 4일이라는 휴식을 취하고 챔피언십 시리즈에 임하는 것인데 무언가 탈이 난 듯했다.
‘5회까지만 버텨 보고 아니다 싶으면 교체를 해 달라고 말씀드려야겠다.’
지금 상태에서는 억지로 버티는 게 팀에 훨씬 더 큰 손해를 입힐 것이다.
대호는 그런 판단을 내리고 타석에 들어섰다.
펑!
“볼!”
펑!
“스트라이크!”
첫 번째 공은 바깥쪽 빠지는 볼이었지만, 두 번째 공은 인코스 꽉 찬 스트라이크였다.
평소 같았으면 놓치지 않았을 공이었는데, 오늘은 몸이 무겁고 컨디션이 100%가 아니라 그런지 컨택 능력도 평소보다 떨어져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휘익!
펑!
“스트라이크!”
방금 전 세 번째 공은 체인지업이었다.
두 번째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던 공과 비슷한 인코스로 들어오는 공이었는데, 대호는 이를 패스트볼로 판단해 스윙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 공은 체인지업이었다.
보통 때라면 무릎을 굽히며 스윙을 늦추고 체인지업을 인식하자마자 배트 컨트롤로 쳐 냈을 텐데, 오늘은 전혀 되지 않았다.
‘하, 안 되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선발 보리스 브로스키가 사용하는 구종 중 분명 체인지업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일찍 던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헛스윙을 해 버렸다.
팡!
“볼!”
이번에는 바깥쪽 낮은 코스의 볼이 나왔다.
바깥쪽에 후한 심판이었다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수도 있을 만큼 잘 제구가 된 공이었는데, 다행히도 주심이 그런 성향의 심판이 아니었기에 볼카운트는 2B 2S가 되었다.
따악!
인코스로 들어오는 체인지업, 대호는 이번에는 이를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하지만 타구의 방향이 좋지 못했다.
3유간으로 날아간 타구는 바닥에서 튀어 오르려다가 다이빙한 유격수의 글러브에 걸렸다.
다다다다!
타구가 내야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유격수의 글러브에 걸리자 대호는 최선을 다해 1루로 달렸다.
다행이라면 주자는 미리 스타트를 끊은 덕분에 세이프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때문에 디트로이트의 유격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급히 1루로 송구를 하였다.
휘익!
퍽!
“세이프!”
그렇지만 정대호 역시 메이저리그 최속을 자랑하는 선수, 빠르게 1루 베이스를 먼저 밟았다.
“윽!”
대호는 1루 베이스를 밟고 지나가자마자 쓰러졌다.
웅성웅성!
“크으윽…….”
그라운드에 쓰러진 대호는 자신의 발목을 잡고 신음을 흘렸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이라 급히 뛰다 보니, 제대로 베이스를 밟지 못하고 발목이 삐끗한 것이었다.
“타임!”
대호가 1루 베이스 뒤에 발목을 잡고 쓰러진 모습을 본 코치는 급히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더그아웃을 보며 손짓을 하였다.
선수의 부상으로 잠시 경기가 중단되고 의료진이 다가와 그를 부축해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부상당한 대호를 대신해 오클랜드 더그아웃에선 대주자를 내보냈다.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을 치르고 있는 중, 그것도 2회에 팀의 핵심 선수인 대호가 부상을 입자 더그아웃에선 난리가 났다.
“발목을 좀 삔 것 같습니다.”
대호는 죄송한 표정을 하며 자신의 상태를 감독에게 이야기하였다.
“왼쪽 발목 염좌입니다.”
대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팀 닥터가 대호의 상태를 언급했다.
“일단 병원에 가서 자세히 검사하고, 치료받도록.”
마이크 감독은 왼쪽 발목 염좌라는 의사의 말에 대호를 보며 그렇게 지시를 내렸다.
“아닙니다. 더그아웃에 남겠습니다.”
대호는 부상을 입은 것에 대한 자책감과 첫 챔피언십 시리즈라는 아쉬움이 겹쳐 경기장에 남고 싶다고 하였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 같았으면 당장 중요한 경기를 위해서, 또 팀워크를 생각하는 마음씨에 대호를 칭찬했겠지만 마이크 케세이는 달랐다.
“대호, 그동안 너무 무리한 감이 없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네 컨디션이 걱정되었는데, 이참에 동료들을 믿고 푹 쉬어!”
감독의 배려에 대호는 정말로 미안한 표정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중요한 때, 그것도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 중도 부상으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것이 너무도 미안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무조건 승리해서 월드시리즈에 진출할 테니까, 그때까지 몸조리나 잘하라고.”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는 자신들을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대호를 향해 위로를 하였다.
한편, 대호가 부상으로 인해 오클랜드의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자,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코칭스태프들은 눈을 반짝이며 3루 쪽 오클랜드를 바라보았다.
아직까지 대호의 부상 정도를 알지 못하기에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다른 선수들은 그리 겁나지 않았다.
하지만 1번 타자인 대호는 너무도 겁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2032시즌 그가 보여 준 성적은 그 누구라도 두려워할 만한 것이었으니까.
그러니 디트로이트 코칭스태프들은 물론이고 선수들까지 대호의 행보에 귀추를 모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대호가 가진 전력은 오클랜드 슬랙스가 가진 전력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현재 그가 가진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공격은 물론이고 외야 수비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비록 오늘 경기에서는 교체가 되어 더 이상 경기에 나오지 않는다 해도 이후 2차전과 남은 챔피언십 시리즈를 구상하기 위해선 보다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만약 예후가 좋지 않다면… 디트로이트의 입장에서는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 정도는 사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니 말이다.
* * *
“가벼운 염좌입니다.”
의사는 대호의 왼쪽 발목에 붕대를 감아 주며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이미 경기장에서 팀 닥터에게 들었고, 또 자신도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대호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부목을 대고 고정시키고 다시 한번 주의를 받았다.
“무리하게 되면 상태가 더 오래갈 수 있으니 최대한 움직이지 마시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 바랍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가장 지키기 힘든 당부에 대호는 한숨을 내쉬고 대답하였다.
“후우! 알겠습니다.”
결과가 이럴 줄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의사에게 직접 확답을 들으니 마음이 너무나 착잡했다.
챔피언십 시리즈는 물론이고 앞으로 월드 시리즈도 있을 텐데, 정작 자신은 너무 목표에 몰입되어 체력 분배를 하지 못해 막판에 부상당해 버렸다.
60―60이라는 기록에 매몰되어 시즌 막판에 무리를 했고, 또 60도루를 넘기자마자 또 다른 욕심이 생겨 버렸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70―70도 가능할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노력 덕분에 67개의 도루에 성공하긴 했지만, 몸에는 차근차근 피로가 쌓이고 있었고 결국 부상을 당해 버린 것이었다.
만약 그때 무리하지 않고 체력 분배를 잘했더라면, 디비전 시리즈가 끝나고 휴식을 취하면서 충분하게 체력을 보충했을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역대 최고라는 생각에 매몰되서 컨디션 관리에 소홀하다니… 반성해야지.’
의사의 주의를 듣고 대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 위해선 단기간의 임팩트만으로는 무리였다.
그러한 것을 잘 알면서도 목표에 매몰되어 버렸다.
물론 전부 헛된 짓은 아니었다.
분명 단기간의 임팩트가 명예의 전당 입성을 확정 짓는 요소는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대중과 전당 입성을 평가하는 기자들에게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에는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대호는 야구 역사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으니 무척 유리한 위치에 섰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기존 일본인 출신 유명 메이저리거 이치로가 세운 안타 기록 역시 경신했고 말이다.
‘적어도 일단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 위한 1단계는 올랐겠지.’
현실은 게임이 아니지만, 대호가 자신이 올해 세운 기록을 되짚어 보았을 때 그 정도는 될 거라는 확신이 내심 있었다.
명예의 전당으로 입성하기까지의 과정을 10단계로 나눈다면 자신은 이제 1단계에는 올랐을 거라고 말이다.
* * *
2회 말, 두 번째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나갔던 대호가 발목 부상으로 빠진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은 홈팀인 오클랜드 슬랙스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를 상대로 3:8이라는 스코어를 거두며 승리를 가져갔다.
다만 오클랜드 슬랙스에게 악재가 나왔는데, 그것은 팀 전력의 절반이라 할 수 있는 대호가 왼쪽 발목 염좌로 인해 다음 경기 출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3, 4차전 출장도 불투명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왼쪽 발목 염좌가 단순히 시합에서 접질린 것으로 인한 부상이 아니라 그동안 쌓인 피로가 원인이라는 의사 소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 관리를 했다간 남은 챔피언십 시리즈가 문제가 아니라, 올해에 계속해서 부상 회복에만 힘써야 할지도 몰랐다.
“자기, 움직이지 말고 필요한 것 있으면 내게 말해.”
한나 포커스는 대호가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간호하기 위해서 여기까지 찾아왔다.
“아니, 내가 해도 된다니까?”
대호는 자신을 걱정해 LA에서 이곳 오클랜드까지 날아온 그녀의 마음씨는 잘 알겠지만,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 해 주려는 모습에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나는 그런 대호에게 무서운 얼굴을 하며 이야기하였다.
“의사 선생님 말씀 못 들었어? 무리하면, 부상이 더 오래간다고 한 말!”
“아, 알았어. 미안해!”
너무도 단호한 그녀의 말에 대호는 순간 움츠러들었다.
‘한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그동안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기에 대호는 살짝 당황했다.
더군다나 연애에 있어서도 항상 자신이 리드하다 보니, 이번 생에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걱정하며 굳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하는 말에 대호는 꼼짝할 수 없었다.
“알았어. 그럼 난 거실에서 TV 좀 보고 있을게.”
하는 수 없이 대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오늘 있을 오클랜드 슬랙스와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챔피언십 시리즈 2차전을 보기로 하였다.
구단에서는 왼쪽 발목 부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대호에게 굳이 경기장에 나오기보단 숙소에서 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한나?”
대호는 무슨 생각이 난 것인지 급히 한나를 불렀다.
“응?”
“그런데 우리 결혼하면 집은 어떻게 하지?”
올해 11월 30일에 두 사람은 양가 가까운 친척과 친한 친구들만 불러 결혼식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정작 두 사람이 결혼 후 살 집에 대해선 이야기를 나눈 것이 없었다.
원칙대로라면 결혼식 이전에 그 문제부터 결정을 했어야 하는데, 두 사람이 너무도 바쁜 나머지 정작 살 집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의논하고자 했다.
“아! 그것도 그런데…….”
대호의 질문을 받은 한나는 집에 관한 이야기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직장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호를 사랑하기에 결혼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재 입사한 방송국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아직 생각해 둔 것이 없다면 내 이야기 좀 들어 보지 않겠어?”
대호는 그동안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방송국에 들어가고 내년에는 메이저리그 리포터로 활동을 할 것 같다고 했었잖아?”
“응.”
“그렇게 되면 대체로 서부 지역에서 활동할 텐데, 집은…….”
한나가 울프TV로 이직을 하고 벌써 2년이 지났다.
그동안 마이너리그를 중심으로 활동을 했는데, 내년 2033시즌부터는 메이저리그 리포터로써 활동을 할 것이란 약속을 받았다.
즉 승진한 것이다.
그 때문에 더욱 한나는 LA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