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35화 (135/209)

135화

뉴욕 킹덤즈 더그아웃에 앉아 있던 감독 에런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마운드를 지켜보았다.

‘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에런 번은 이번 2032시즌 디비전 시리즈를 돌아보며, 궁리를 해 보았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분명 많은 전문가들은 자신이 지휘하는 뉴욕 킹덤즈가 상대인 오클랜드 슬랙스보다 전력 면에서 우세하고, 모든 면에서 짜임세가 단단하다 평했다.

또한 자신과 오클랜드의 마이크 케세이와 비교를 해 봐도, 작전 능력에서 비슷하거나 자신이 좀 더 우위에 있다고 평가했지 않은가?

그런데 결과는 그 반대로 나왔다.

우세하다는 자신들이 오클랜드 슬랙스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

디비전 시리즈 1, 2차전은 물론이고, 현재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3차전의 경기 내용도 이제 겨우 2회임에도 일방적이었다.

스코어는 0:4였지만, 이제 겨우 2회 말인데 자신의 에이스는 이미 지쳐 버렸다.

그에 반해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발은 최소 5회까지는 더 던질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8회까지 공을 던졌다 해도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라면 최소 6회까진 마운드를 지켜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것도 빗나가 2회에 교체를 해야 할 정도로 였으니까.

“데이브! 투수 교체한다고 알려!”

에런은 그렇게 투수 코치에게 알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운드로 걸어갔다.

감독이 마운드로 간다는 것은 투수 교체를 알리는 것이기에 심판이 타임 요청을 받아들이고 잠시 경기를 중단시키자, 마운드에 있던 헤르만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2회에 4점이나 내준 것만 해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건 분명했다.

한편 뉴욕 킹덤즈에서 투수 교체를 신청하자 오클랜드의 더그아웃에선 변화가 생겼다.

예상보다 빠르게 상대가 행동에 들어가자 고심에 잠긴 것이었다.

“뉴욕에서 투수 교체를 하려고 하는데, 누굴 것 같아?”

홈런 브레드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대호를 보며 물었다.

“슈미트 클라크나 그렌트 와셔트가 나오지 않을까요?”

대호가 언급한 투수들은 모두 좌완 투수들로 96마일의 강속구를 자랑하는 불펜 투수였다.

다만 패스트볼과 변화구 구종을 하나씩 가진 투 피치 투수라 한계가 분명한 이들이기도 했다.

말리지만 않고 여유 있게 상대를 한다면, 충분히 쳐 낼 수 있었다.

“슈미트와 그렌트란 말이지…….”

대호의 이야기를 들은 홈런 브레드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조금 뒷면 자신도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기에 그 둘의 특징을 떠올려보았다.

‘패스트볼만 노리고 들어가면 되겠군.’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투 피치인 슈미트와 투심 패스트볼과 슬러브 투 피치인 그렌트.

당연히 메이저리그 소속 투수인 만큼 커브와 체인지업 역시 간간이 던졌지만, 모든 구종을 대비할 필요성은 없었다.

그저 그들이 가장 자신하는 구종만 노리고 들어가면 되었다.

홈런 브레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곤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그라운드를 보고 있는 대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들어온 것일까?’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2년 차였으며, 나이는 아직 음주도 금지된 스무 살이었다.

그런데 구단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은 자신 이상으로 컸다.

아니, 이제는 자신도 대호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팀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그 어느 방면에도 치우치지 않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며, 때로는 자신 이상으로 동료들을 이끌었다.

분명 겉모습을 보면 이제 겨우 하이스쿨 재학생 같아 보이는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행동에서 나타나는 것은 자신 이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구른 베테랑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 말 한 마디마다 무게가 상당했다.

* * *

2회 말, 뉴욕 킹덤즈에서 먼저 투수 교체가 있었다.

“하구연 해설 위원님, 뉴욕 킹덤즈에서 에이스 헤르만 도밍게즈 선수를 내리고 슈미트 클라크를 다음 투수로 올렸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투수 교체를 하는 뉴욕 킹덤즈를 보며, 김승주는 앞으로의 전망을 물어보았다.

“솔직히 교체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네?”

“킹덤즈의 입장은 알겠는데, 투수 교체를 하려고 했다면 1회에 바로 교체를 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구연 해설은 자신이 생각한 투수 교체 타이밍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킹덤즈는 리키 헨슨 선수에게 안타를 맞아 2:0이 되었을 때 교체를 했어야 합니다. 더 빨랐다면 좋았겠지만 고작 한두 타자 만에 교체를 하는 것도 마이너스니 어쩔 수 없었겠죠.”

그가 이런 판단을 내린 것에는 디비전 시리즈가 단기전이라는 사실에 기인했다.

4점, 결코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점수 차였다.

단기전에서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 팀을 꺾기가 매우 힘든 만큼, 1점이라도 더 벌어지기 전에 교체를 했어야 한다는 것이 하구연의 판단이었다.

“킹덤즈의 감독도 물론 이런 판단을 내린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좀 더 지켜보는 게 낫겠군요.”

아니나 다를까 경기는 하구연 해설의 말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따악!

9번 타자가 바뀐 슈미트 클라크의 초구를 노리고 스윙을 하여 안타를 뽑아냈다.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짧은 안타였지만, 2루에 있던 주자는 빠르게 3루를 지나 홈으로 들어왔다.

이 또한 우익수의 방심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홈에서 승부를 걸어 볼만도 했지만, 너무도 평범한 우익수 앞 안타다 보니 주자가 있던 것을 깜빡하고 공을 잡은 뒤 홈이 아닌 자신의 앞에 있는 2루수에게 공을 토스한 것이다.

안 되는 집안에는 그럴 이유가 있다고 했던가?

뜻하지 않은 우익수의 본 헤드 플레이로 뉴욕 킹덤즈는 너무도 쉽게 1점을 헌납했다.

“와아아아!”

너무도 쉽게 점수를 얻은 오클랜드 슬랙스 팬은 뉴욕 킹덤즈의 우익수가 한 어처구니없는 플레이에 환호하고 박수로 그를 조롱했다.

고작 2회인데 벌써 타자가 일순해 1번 타자인 대호가 타석에 들어갔다.

‘느낌이 좋네.’

타석에서 준비를 하는 대호는 그런 예감이 들었다.

오늘도 게임이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쉽게 풀려 간다고 말이다.

* * *

따아악!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잘 받아쳤다.

맑은 소리를 내고 중견수 방향으로 날아가는 타구를 쫓아 대호는 펜스로 달렸다.

타다다다.

타구의 높이를 봐선 펜스를 넘어가는 타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펜스 상단을 맞출 가능성은 높아 보였다.

‘후우!’

타앗!

워닝 트랙을 지나 펜스 가까이 달려간 대호는 글러브를 낀 왼팔을 높이 들고 점프를 하였다.

퍽!

왼손에 낀 글러브 웹에 묵직한 무게감을 느낌과 동시에 손아귀에 힘을 주어 글러브를 쥐었다.

쿵!

왼쪽 어깨와 옆구리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지만, 그의 입가엔 미소가 어렸다.

“아웃! 게임 셋!”

대호가 공을 잡은 글러브를 낀 왼손을 높이 들자 심판은 아웃을 선언한 다음, 게임이 끝났음을 알렸다.

디비전 시리즈 3차전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승자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서부 지구 1위로 포스트시즌에 들어선 오클랜드 슬랙스였다.

이 때문에 야구 전문가들은 다시 한번 야구팬들에게 난타를 당했다.

물론 그들도 할 말은 있었다.

아무리 이번 시즌 오클랜드 슬랙스가 보여 준 승률이 역대 최고라고 해도, 전통의 명문인 뉴욕 킹덤즈와 비교하면 한 수 아래라 생각했다고.

더군다나 야구 전문가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킹덤즈의 우세를 평했기에 지금 쏟아지는 오클랜드 팬들의 비난은 부당한 면도 있었다.

어찌 됐든 1, 2, 3차전을 연속으로 승리하여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오클랜드는 어째서 자신들이 2032시즌 최고 승률을 기록했는지 증명했다.

* * *

“야구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야구팬들에게는 야구 여신이라고 불리는 스포츠 리포터인 김혜은이 카메라를 보며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이성일 위원님!”

“안녕하십니까? 혜은 씨.”

“안녕하십니까? 이상범입니다.”

스포츠 중계를 하는 케이블 TV 채널 베이스볼 포에버의 아나운서와 리포터, 그리고 해설 위원들이 카메라를 보며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KBO리그 포스트 시즌 경기 내용을 간추린 이야기를 시작으로 경기 내용과 선수들의 활약 등을 야구팬에게 전달했다.

“국내 프로야구 소식은 이것으로 마치고, 메이저리그 소식을 전합니다.”

이상범 아나운서가 자연스럽게 국내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경기 내용을 마무리하고 이어 야구팬들의 관심사인 메이저리그로 포커스를 넘겼다.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인 메이저리거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이때다 싶었는지, 이성일 해설 위원이 나서서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한국인 메이저리거라면… 정대호 선수요?”

코리언 메이저리거라는 말에 김혜은이 얼른 끼어들었다.

올해 프로야구의 최고 이슈는 누가 뭐라고 해도 바로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중인 정대호였다.

메이저리그 오클랜드 슬랙스에 소속된 대호가 올해 거둔 성적은 그야말로 역대급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인 최초로 70홈런을 기록하고,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2위에 올랐다.

또 단 한 사람도 기록하지 못한 50―50은 물론이고 60―60까지 달성하면서 전설의 한 획을 그었으니 말이다.

“네. 정대호 선수 말입니다. 정규 시즌에 거둔 기록도 정말 대단해서 저희가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고 분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클랜드 슬랙스의 가을 야구, 디비전 시리즈가 드디어… 아니, 드디어라고 말하면 아주 오래 끈 것 같으니 말을 바꿔야겠군요. 오늘로 결판이 나 버렸습니다.”

“아하? 분명 어제까지 오클랜드가 2연승을 달리고 있어서 1경기만 더 이기면 끝나는 상황이었는데 그 말씀은…….”

김혜은이 말꼬리를 흐리자, 이성일 위원이 살며시 웃었다.

“네. 오늘로 3연전 3연승을 거둬 오클랜드 슬랙스가 가장 먼저 챔피언십 시리즈에 발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와아! 정대호 선수의 이름과 함께 말씀하셨다는 건 당연히 정대호 선수가 오늘도 그 주축에 서 있었다는 말씀이시겠죠?”

김혜은과 이상범, 이성일의 이야기는 점점 더 열기를 띄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았지만 올림픽을 통해 더욱 인기가 치솟은 상황.

약간의 트러블에 휘말려 조금 유명세가 깎이긴 했지만,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가을 시즌에 접어들며 다시금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대호의 인기였다.

“네. 오늘 경기의 시작과 끝을 마무리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영상 한 번 보시고 가시죠.”

이성일 해설의 말과 함께 화면에 대호의 1회 말 솔로 홈런과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는 순간이 나왔다.

잠시 대호의 플레이를 감상하던 세 사람, 곧바로 감탄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헤르만이라는 강적을 만났는데도 전혀 밀리지 않네요. 열두 개의 공을 던지게 만들면서 결국은 홈런까지. 헤르만 선수의 표정을 한 번 보시죠. 완전히 넋 나간 것 같지 않습니까?”

“으음… 확실히 이 이후로 연속 안타와 4번 타자 홈런 브레드의 홈런포로 인해 완전히 무너진 것 같습니다. 늘 그렇듯이 정대호 선수가 선두 타자로 나가서 상대를 뒤흔든 영향이겠지요.”

“정말 보면 볼수록 놀라운 플레이네요!”

“자, 첫 번째 타석에서의 솔로 홈런, 그때의 자세를 한 번 보시죠.”

베이스볼 포에버에서 대호를 찬양하고 분석하는 것은 방송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야구팬들은 또 한 번 정대호의 대단함을 알게 되었고 말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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