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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34화 (134/209)

134화

디비전 시리즈 1, 2차전을 지고, 동부에서 서부 오클랜드까지 원정을 온 뉴욕 킹덤즈는 굳은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쳐다보았다.

이들이 이렇게 굳어 있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란 생각에 원래 예정되었던 선발을 바꿔 3일 만에 다시 에이스 카드를 마운드에 세웠음에도 생각보다 상황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1회 초 공격에선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발 체프 벤에게 별다른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딱!

“파울!”

또다시 파울이 나왔다.

볼카운트는 3B 2S로 풀카운트인데, 벌써 파울만 다섯 번이나 나왔다.

1번 타자에게 벌써 열 개의 공을 던졌는데, 결판이 나지 않은 것이다.

‘젠장!’

최대한 오래 던져 줘야 할 헤르만이 벌써 10구나 던졌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8회까지 던진 헤르만을 어쩔 수 없이 하루 일찍 당겨 쓰기로 했다.

다만 부상 위험 때문에 최대 100구까지로 투구 수 제한을 건 상태다.

마음 같아선 70구 이내로 줄이고 싶었지만, 예상 밖의 오클랜드 슬랙스의 전력을 생각해 최대 100구까지로 제한을 두었다.

그래야 5차전에서 최소 30구는 던질 수 있을 것이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1회 말, 오클랜드의 공격이 시작되면서 그 계획이 흔들리고 있다.

“정대호 선수, 풀카운트 상황에서 벌써 다섯 개 째의 파울이 나옵니다.”

김승주는 다섯 번째 파울이 나오는 장면을 보며 소리쳤다.

“아주 좋습니다.”

하구연 해설은 대호가 파울을 쳤는데도 그것을 보며 아주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안타, 혹은 홈런을 쳐야죠.”

하구연 해설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던 김승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러자 하구연 위원을 설명을 하기 전,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한 템포 늦춰서 이야기하였다.

“오늘 뉴욕 킹덤즈의 선발은 원래 예정되었던 루이스 세베뇨가 아니라,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출전했던 에이스 헤르만 도밍게즈입니다.”

“네, 그렇죠.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것입니까?”

김승주도 오늘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 뉴욕 킹덤즈의 투수가 에이스 헤르만 도밍게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진 못하였다.

“지금 마운드에 있는 헤르만 도밍게즈 투수는 정상적인 로테이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장 디비전 시리즈 초반 뉴욕 킹덤즈의 예상 투수가 어땠는지를 생각해 보시죠.”

“아!”

김승주는 그제야 하구연 해설 위원이 한 말의 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위원님 말씀은 킹덤즈의 에이스 헤르만 선수에게 투구 수 테러를… 아니, 초반에 공을 많이 던지게 하여 일찍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란 말씀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오클랜드 슬랙스의 타선이 이번 디비전 시리즈에서 잘하고 있기는 하지만, 시즌 중 헤르만 투수를 상대로 그렇게 좋은 성과를 보이지는 못했거든요.”

오클랜드 슬랙스는 2032시즌 동안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 헤르만 도밍게즈와는 단 한차례 맞붙었다.

올림픽 기간이라 대호는 그때 없었는데, 오클랜드는 그날 헤르만 도밍게즈에게 완봉 패를 당했다.

또 이번 시즌뿐만 아니라 그전 2031시즌이나 2030시즌에서도 헤르만을 비롯한 뉴욕 킹덤즈의 투수들에게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대호가 팀에 있을 때는 달랐다.

헤르만 도밍게즈와 대호가 대결하지 못했지만, 다른 뉴욕 킹덤즈의 투수들을 상대로는 승리를 거뒀다.

즉 이전 상대 전적에서 밀렸던 것을 올해는 극복했다는 말이었다.

다만 뉴욕 킹덤즈의 헤르만과의 승부는 아직 미지수였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오클랜드 슬랙스의 타자들이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 헤르마 도밍게즈를 극복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리고 하구연 해설은 지금 이것을 짚은 것이다.

한편 타석에 있는 대호는 담담한 눈빛으로 마운드 위에서 투구 동작을 하는 헤르만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아직 나쁜 버릇이 남아 있을 때구나!’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 헤르만 도밍게즈는 99마일의 포심 패스트볼과 97마일의 투심 패스트볼, 그리고 95마일의 고속 슬라이더와 92마일의 써클 체인지업을 구사한다.

물론 그가 던지는 구종은 이 네 가지뿐만이 아니었고, 40―80 스케일 중 메이저리그 평균이라고 불리는 60 이상을 받은 구종이 네 가지라는 뜻이었다.

이중 포심 패스트볼과 써클 체인지업은 70과 65로 분류되어 있었다.

네 개의 구종이 스케일 기준으로 60점 이상을 받다 보니, 타자들로써는 무척이나 까다로워하는 투수가 바로 헤르만 도밍게즈다.

거기에 스케일 60에 근접하는 커브와 스플리터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헤르만의 커브와 스플리터는 다른 구종과 달리 공을 던질 때 차이가 있었다.

다른 구단이나 선수들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눈썰미가 좋은 대호에게는 그 작은 차이가 보였다.

따악!

“파울!”

3루 베이스 밖으로 벗어나는 파울볼이 나왔다.

또다시 파울이 나왔지만 타석에 서 있는 대호의 표정은 별반 변화가 없는 반면, 마운드 위에 있는 헤르만 도밍게즈의 표정은 점점 붉어지면서 굳어 갔다.

1번 타자부터 이렇게 많은 투구를 하는 것에 부담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첫 타자부터 볼넷을 주는 것은 팀의 에이스로써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더그아웃에선 힘들면 그냥 내보내라는 사인을 보내긴 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억지로 승부수를 던졌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파울이 되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나도 더 이상…….’

뭔가 결심을 한 것인지 헤르만은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그런 헤르만의 모습에 대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공을 던지기 위해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헤르만의 모습에서 어떤 공이 날아올지 읽었기 때문이다.

‘포심 패스트볼이다.’

오늘 디비전 시리즈 3차전 주심은 대호도 잘 알고 있는 심판이다.

개성이 강한 메이저리그 심판 중에서 보기 드문 정통파로, 스트라이크 존이 야구 규정에서 벗어나지 않는 몇 안 되는 심판이다.

그 말은 대호가 설정한 스트라이크 존보다 살짝 작은 크기의 존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대호와는 무척이나 상성이 좋은 심판이라 할 수 있었다.

상대가 어떤 공을 던질지 알고 있고, 또 스트라이크 존도 정직하면서도 좁다 보니, 자신이 실수하지 않으면 결코 아웃될 이유가 없었다.

따아아악!

야구에 받쳐 두고 때린다는 말이 있다.

지금 대호가 때린 타구가 바로 그러하였다.

이미 어디로 들어올지 알고 있기에 대호는 흐트러짐 없이 온몸의 힘을 온전히 배트에 실어 투구를 때렸다.

그리고 그 타구는 날아오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센터 방면 펜스를 향해 날아갔다.

“와아아아!”

1회 말 첫 타석에서 홈런포가 나왔다.

이에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 슬랙스 팬은 일제히 환호했다.

투수에게 열두 개의 공을 던지게 강요하면서 결국에는 솔로 홈런까지 만들어 냈다.

오클랜드 슬랙스 팬으로서 이런 선수를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대호! 정대호!”

“정대호 선수 쳤습니다. 홈런! 홈런! 열두 번째 투구를 솔로 홈런으로 만들어 냅니다.”

김승주와 하구연 해설은 대호가 투수가 던진 공을 받아쳐 솔로 홈런을 만들어 내자, 괴성에 가까운 큰 목소리로 떠들어 댔다.

오클랜드의 팬들이 환호하는 것에 비례해 마운드에 있던 헤르만은 고개를 더욱 떨궜다.

공을 던지기 전까지만 해도 이번에는 잡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몸 쪽 꽉 찬 하이 패스트볼을 던졌다.

공을 놓을 때, 손끝에 걸리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했는데, 이렇게 깨끗하게 솔로 홈런을 맞자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져 버렸다.

타다다다!

가벼운 걸음으로 조깅을 하듯 그라운드를 돈 대호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기 전, 2번 타자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시작이야?”

더그아웃 안으로 들어오는 대호를 보며 주장인 홈런 브레드가 한 마디 하였다.

“원래 작전은 이게 아니었잖아?”

그의 말대로 원래 계획은 뉴욕 킹덤즈의 선발로 나오는 헤르만 도밍게즈의 투구 수를 많이 던지게 해 조기에 마운드 교체를 시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1번 타자로 나선 대호가 3B 2S 상황에서 그렇게 파울을 많이 양산한 것이다.

원래 계획이라면 대호는 더 많은 파울을 쳐 투구 수 테러를 하려 하였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12구째에 홈런을 친 것이다.

그리고 대호의 이런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금방 증명이 되었다.

따아악!

대호가 솔로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고 재개된 경기, 2번 타자 지미 울프는 작전도 잊고 스윙을 가져가 펜스를 직격하는 안타를 만들어 냈다.

촤악!

“세이프!”

펜스 직격 안타를 때린 지미 울프는 2루를 지나 3루까지 진출을 하면서 3루타를 기록했다.

“와아아아!”

좀처럼 나오기 힘든 3루타가 1회 말 공격에서 나왔다.

대호의 솔로 홈런에 이어 지미 울프의 3루타로 오클랜드 슬랙스 팬은 물론이고 더그아웃까지 뜨겁게 타올랐다.

“리키! 부탁해!”

지미 울프의 안타에 더그아웃 펜스에 나왔던 대호는 타석에 들어서는 리키 헨슨을 보며 소리쳤다.

그런 대호의 응원이 있어서 그런지, 타석에서 자세를 잡는 리키 헨슨의 타격 폼이 그 어느 때보다 커 보였다.

야구 센스는 물론이고 파워도 가지고 있는 리키 헨슨은 이번 시즌에 들어 타격에 자신감이 붙은 상태다.

특히 이번 디비전 시리즈 1, 2차전을 통해 10타석 8타수 5안타 1홈런 2볼넷으로 타격감이 무척 좋았다.

따악!

자신의 타격감이 좋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리키 헨슨은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몸 쪽 낮은 곳으로 들어오는 헤르만 도밍게즈의 투심 패스트볼을 머뭇거리지 않고 스윙을 가져갔다.

다만 투심을 포심으로 착각하다 보니 배트 중심에 정확한 타격을 하지 못했다.

다다다다.

게임의 신이 있다면 뉴욕 킹덤즈가 아닌 홈팀인 오클랜드 슬랙스에 미소를 지은 것인지, 살짝 빗맞은 타구가 3유간을 뚫고 좌익수 앞으로 굴러갔다.

그 과정에서 3루에 있던 지미 울프는 홈으로 들어왔고, 타자인 리키 헨슨은 1루에 안정적으로 들어갔다.

“와아아아!”

빗맞은 안타였지만, 안타는 안타였다.

오클랜드는 리키 헨슨의 빗맞은 안타로 3루에 있던 지미 울프가 홈으로 들어옴으로써 득점을 올리며 0:2로 또 한 점 달아났다.

뒤이어 타석에는 4번 타자이자 팀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가 들어섰다.

홈런 브레드도 디비전 시리즈에서 2홈런이나 치며 뜨거운 타격감을 자랑하고 있었다.

점점 갈수록 태산이라고 대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은 뒤로 헤르만은 무언가 밀려드는 압박감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처음 마운드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오클랜드를 상대로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빨리 타자들을 요리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 쉬고 싶었을 뿐.

한데 첫 타자부터 열두 개의 공을 던지고, 결과적으로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의 메이저리그 경력 2년차에 들어서는 뉴비에게 악의 제국이라 불리는 뉴욕 킹덤즈의 에이스인 자신이 그렇게 당했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지미 울프에게 3루타를 헌납하고 말았다.

이 또한 헤르만 도밍게즈에게는 불행이었다.

평상시 뉴욕 킹덤즈의 수비라면 3루를 허용하지 않고 2루에 그쳤을 것인데, 그들도 헤르만처럼 방심을 하다 베이스 하나를 허락하였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1회 말에 2점을 내준 것도 내준 것이지만, 아웃 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이는 헤르만에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투구를 하는 데,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펑!

“볼!”

펑!

“볼!”

욕심이 앞서다 보니 어깨에는 과도한 힘이 들어가고, 손끝의 감각은 무뎌졌다.

그리고 홈런 브레드는 무너진 투수 따위에게 밀릴 정도로 약한 타자가 아니었다.

10년을 넘게 메이저에서 버틴 베테랑 타자인 그에게 지금의 헤르만은 너무나 요리하기 쉬운 선수였다.

따아악!

뉴슬랙스 볼파크를 시원하게 가르는 홈런, 스코어가 4:0이 되는 순간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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