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오클랜드 슬랙스는 뉴욕 킹덤즈와의 디비전 시리즈 1, 2차전을 모두 승리하고 홈인 오클랜드로 돌아왔다.
통쾌한 2연승 덕분에 홈에서 치러질 3연전 중, 단 1승만 거두더라도 아메리칸리그의 우승팀을 가리는 챔피언십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오클랜드 슬랙스는 거의 10년이 넘어가는 기간 동안 챔피언십과는 인연이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가장 좋은 성적이 디비전 시리즈 5차전까지 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니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은 모두 축제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장 작년에만 해도 어떠했는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이기고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였지만, 3전 전패로 그쳤다.
그런데 올해는 여유롭게 지구 우승을 하고, 또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원정 1, 2차전을 모두 승리하고 돌아왔다.
이제 남은 것은 홈 3연전에서 1승을 추가하고 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것 뿐.
물론 팬들의 바람은 챔피언십에서도 우승을 하고, 더 나아가 월드 시리즈에서도 우승을 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우선 오클랜드의 경우, 공격력은 정대호를 비롯한 타선이 인정받는 수준이었지만, 마운드의 경우 가장 약체라고 평가되었다.
물론 디비전 시리즈에서 전력이 더욱 우세한 뉴욕 킹덤즈에게 2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선두 타자인 대호가 상대 선발을 조기에 무너뜨리면서 기선을 제압한 면이 컸기 때문이다.
최초에 오클랜드의 약세를 점쳤던 야구 평론가들은 이제 대부분 플루크라는 단어를 꺼내고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뉴욕 킹덤즈가 다른 전술을 펼쳤더라면, 이라는 전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만약 뉴욕 킹덤즈가 정대호 선수와 정면 승부를 벌이지 않고 철저히 걸러 냈다면 어땠을까요? 또 리드를 길게 가져가든 말든 타자에게만 신경 써서 아웃 카운트를 제때 잡아냈다면요?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 겁니다.”
“확실히, 정대호 선수라는 한 명에게 너무 휘둘린 감이 없지 않았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뉴욕 킹덤즈의 투수나 지도부, 혹은 프런트에서 오클랜드를 너무 무시한 나머지 정면 승부를 걸어옴으로써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만 입증되었을 뿐이었다.
더욱이 대호는 타격 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작전 수행 능력은 물론이고, 발도 빨라 언제 어느 때건 팀에 필요한 때 결정적 역할을 해 주면서 상대를 제압했다.
뉴욕 킹덤즈의 2선발인 레리 킹과 3선발인 라이언 홈즈, 두 사람은 무리하게 대호와 정면 승부를 펼치다 무너졌다.
물론 2차전에 선발로 나왔던 라이언 홈즈의 경우 그래도 4회까진 잘 버텼다.
볼넷을 내줘도 되니 어렵게 승부를 하라는 코칭스태프의 지시가 있기는 했지만, 어찌 되었든 전날 레리 킹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뉴욕 킹덤즈의 더그아웃과 팬들에게 기대감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4회까지 잘 막아 오던 것도 살짝 피어 오른 욕심으로 인해 무너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대호에게 힛 포 더 사이클이란 기록까지 헌납하게 되었다.
그 뒤로 뉴욕 킹덤즈는 악의 제국이란 이름값도 못하고 무너져 내렸으며, 1차전에 이어 2차전 또한 12:2란 두 자릿수 점수 차로 패하고 말았다.
그 때문인지 3차전이 벌어지는 이곳 오클랜드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뉴욕 킹덤즈의 원정 팬의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에 반해 디비전 시리즈 원정 두 경기를 모두 쉽게 압승을 거둔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은 빈틈없이 뉴슬랙스 볼파크를 메우고 있었다.
* * *
“와아아아!”
오클랜드의 가을 하늘도 천고마비라는 말이 통하는지, 무척이나 맑고 깨끗했다.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 오클랜드 슬랙스와 뉴욕 킹덤즈, 3차전이 펼쳐지는 오클랜드의 홈인 뉴슬랙스 볼파크에서 아나운서 김승주 인사드립니다.”
“해설 하구연입니다.”
김승주와 하구연은 어제까지만 해도 뉴욕에 있었지만, 급히 비행기를 타고 동부에서 이곳 서부까지 날아와 중계를 하고 있다.
“어제 디비전 시리즈 2차전도 우리의 자랑인 정대호 선수가 속한 오클랜드가 12:2, 10점 차로 승리를 거둠으로써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진출까지 이제 1승만을 남겨 두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출신 메이저리거로써 오랜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선수가 나온 것도 나온 것이지만, 현재 대호가 속한 오클랜드 슬랙스의 기세가 자못 무서웠다.
그러다 보니 중계를 맡은 김승주나 하구연 해설의 표정이 한껏 상기되었다.
“이 기세라면… 이번 디비전 시리즈는 물론이고 챔피언십 시리즈도 충분히 노려볼만 하지 않습니까?”
김승주는 자신이 지켜본 오클랜드 슬랙스의 기세가 전문가들이 사전에 했던 예측을 완벽하게 뛰어넘은 것에 대해 언급했다.
“맞습니다. 현재 오클랜드의 전력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하구연 해설 또한 디비전 시리즈에 들어가기 전, 오클랜드 슬랙스의 전력을 분석하고 여느 전문가와 별반 다르지 않은 판단을 했었다.
다만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면, 그는 정대호라는 인물이 일으킬 변수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2032시즌 MVP를 탄 것은 물론이고 홈런, 타점, 출루율 등등 각종 타격 지표에서 1위를 달렸으니 말이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시즌 60―60을 달성한 선수를 뉴욕 킹덤즈에서 간과한다면 큰 코 다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런데 마치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듯 뉴욕 킹덤즈는 디비전 시리즈 1, 2차전을 10점 차 이상으로 져 버렸다.
이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변수를 이야기했던 하구연 위원 또한 이 상황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디비전 시리즈 3차전을 맞아 더욱 흥분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네?”
“어제 정대호 선수가 디비전 시리즈에 들어서면서 첫 힛 포 더 사이클을 기록하지 않았습니까?”
김승주는 이 말이 하고 싶었다는 듯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이야기를 하였다.
“맞습니다.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진출 2년차, 그것도 올 시즌 스무 살의 어린 나이로 포스트 시즌 첫 힛 포 더 사이클을 기록했습니다. 정말로 장합니다.”
김승주는 어제도 그렇더니 오늘도 대호의 힛 포 더 사이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바로 장하다는 말을 하며 대호를 찬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호가 그의 아들인줄 알 정도로 과한 칭찬이었다.
하지만 이를 보고 있는 TV 카메라 너머에 있을 한국의 야구팬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 * *
오클랜드 슬랙스 로커 룸
홈팀 로커 룸은 뉴욕 킹덤즈의 원정팀 로커와는 비교가 될 정도로 넓고 깨끗했으며, 각종 편의 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모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표정으로 자리하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들의 보스인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 굳은 표정으로 서 일장 연설을 펼치고 있었다.
“봐라!”
마이크 감독의 손에 들린 것은 바로 오늘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 출전할 선수 명단이었다.
그런데 오클랜드 슬랙스가 아니라 뉴욕 킹덤즈의 선수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어째서 그가 이것을 들고 있는지 선수들은 궁금해했지만, 곧바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저 악의 제국이라 불리던 놈들이 어떻게든 이번 디비전 시리즈를 뒤집기 위해 예정된 선발을 바꿨다.”
다른 포지션은 그대로였지만, 선발투수 부분에서 예상과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원래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 뉴욕 킹덤즈는 4선발이 나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1, 2차전을 모두 져 버린 상황.
1패만 더 기록한다면 뉴욕 킹덤즈의 가을 야구는 여기서 끝이었다.
작년 오클랜드 슬랙스가 그랬던 것처럼, 디비전 시리즈는 5전 3선승제였기에 내리 세 번 져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렇기에 뉴욕 킹덤즈는 애매한 4선발보단 배수의 진을 치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출전했던 헤르만 도밍게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악의 제국에서 로테이션을 꼬아 내일 일정에 오르기로 했던 헤르만과 오늘 선발로 던지기로 했던 루이스 세베뇨를 바꿨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일장 연설을 하는 마이크 감독의 표정은 흥분한 듯 떠들고 있지만, 겉과 달리 속마음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평온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흥분한 듯 격렬하게 떠는 것인지는 명백했다.
전적으로 선수들의 정신 고양을 위해서였다.
혹시라도 디비전 시리즈 1, 2차전을 승리한 것에 고무되어 나태해지진 않았을까하는 염려에서 나온 작전인 것이다.
사실 뉴욕 킹덤즈에서 원래대로 출전 선수 명단을 제출한 뒤였다면 이런 식으로 선수 교체가 되지 않았겠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바뀐 명단을 제출 시한 전에 냈기에 간으한 일이었다.
‘솔직히 내가 뉴욕 킹덤즈의 감독이라도 이런 상황에선 변칙적인 수를 썼겠지.’
상대가 선발 로테이션을 꼬아 가며 무리하게 1선발을 출전하게 만들었지만, 자신 역시 여기서 경기를 끝내는 게 좋았다.
그렇기에 선수들을 모아 놓고 다독일 필요가 있었고, 뉴욕 킹덤즈의 상황을 낱낱이 공개한 것이었다.
“아무리 포스트 시즌이라 컨디션 조절을 한다고 해도, 4일 등판이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헤르만의 상태는 정규 시즌보다 나쁠 거다.”
“…….”
선수들은 조용히 감독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했다.
악의 제국의 넘버원, 헤르만 도밍게즈는 분명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난 투수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5선발 체제가 잘 돌아가고 있는 상태에서 4일 만에 등판한다면, 100%를 내기는 힘들 터.
마이크 케세이 감독을 그것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폭탄선언을 하였다.
“뉴욕 킹덤즈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 또한 그에 맞게 선수 운용을 할 것이다.”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그렇게 눈을 반짝이며 선언을 하였다.
“체프!”
“예, 보스!”
체프 벤은 자신의 으름을 부르는 감독의 말에 얼른 대답했다.
“오늘, 선발인 자네에게 5회까지만 부탁하지.”
“5회 말입니까?”
느닷없이 5회까지만 던지라는 감독의 말에 체프 벤은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뉴욕 킹덤즈도 그렇지만, 나 또한 오늘 경기로 이번 디비전 시리즈를 마무리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상황에 맞는 마운드 운영이 필요하다.”
“알겠습니다.”
이미 다년간 선발로 활약을 했기에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고맙다.”
자신의 말에 수긍하는 체프 벤의 대답에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계속해서 자신의 작전을 설명했다.
“체프가 5회까지 책임지면, 루브가 릴리프로 이어 받아 6~8회를 맡는다.”
“……!”
자신의 이름이 호명이 되자 루브 월터가 낮게 침음성을 터뜨렸다.
올 시즌 초반 2선발이었던 레프리 그로스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3~4선발로 활약하다 그가 돌아오면서 5선발로 자리를 옮겼었다.
그 때문에 이번 디비전 시리즈에서 릴리프로 보직을 받아 공을 던졌다.
다만 1, 2차전에선 그가 크게 활약할 수가 없어 공을 던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1, 2차전에선 점수가 너무 크게 벌어지다 보니 굳이 불펜을 적극적으로 가동할 필요가 없었다.
루브 월터 역시 디비전 시리즈를 치르는 동안 불펜에서 대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늘 릴리프로 6회에 출전을 할 것이란 통보를 받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툭!
감독의 말에 긴장하여 정신이 없을 때, 누군가 자신의 팔꿈치를 치는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팀의 막내이지만 이제는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대호가 있었다.
씨익!
루브 월터는 자신을 향해 아무런 말없이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 짓는 대호를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이 순간에도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있지?’
너무도 환한 대호의 미소에 루브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고 포스트 시즌은 작년에 콜업 되어 잠깐 경험한 정도다.
그때야 모르니까 밝게 있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번 시즌은 얼마나 많은 팬의 기대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함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저렇게 웃고 있는 모습에 놀랐다.
한편 대호는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공이나 제대로 던질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루브에게 신호를 보냈다.
‘너무 걱정하지 마!’
긴장을 하게 되면 제 실력을 100% 발휘할 수가 없게 된다.
그렇기에 대호는 어떻게든 긴장한 루브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보겠다고 생각하며 팔꿈치를 쳐 돌아보게 한 뒤, 안심할 수 있도록 미소를 지어 보인 것이었다.
자신만 믿으라는 신호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