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27화 (127/209)

127화

1회 초 대호의 솔로 홈런으로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은 뉴욕 킹덤즈를 상대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서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비록 이어지는 타자들은 허무하게 아웃되어 1점밖에 얻지 못했지만, 그래도 안타를 기록하기는 한 게 고무적이었다.

대호의 솔로 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한 오클랜드 슬랙스의 1회 초 공격이 끝나고, 홈팀인 뉴욕 킹덤즈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되었다.

딱!

“아웃!”

뉴욕 킹덤즈의 1번 타자 카이너 팔레마는 성급하게 배트를 휘두르며 유격수 앞 땅볼로 공 두 개 만에 허무한 아웃을 당했다.

이어지는 2번 타자의 공격.

따악!

잘 맞은 타구가 나왔다.

투수의 키를 넘기며 중견수 앞으로 날아가는 공.

다다다다!

“와아아아!”

2번 타자 토레스 레이의 투수 키를 넘기는 안타성 타구에 킹덤 스타디움을 찾은 야구팬들이 환호했다.

하지만 오직 한 명, 대호만큼은 타구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쫓아갔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앞에서 떨어지는 공의 낙구 지점을 향해 슬라이딩 캐치를 하였다.

촤아아악!

조금 짧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대호는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과감하게 슬라이딩을 시도했다.

퍽!

모두가 안타라 생각했을 때, 대호와 투수 에디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가 나왔다.

“아웃!”

“와우!”

심판의 아웃 선언이 들리자마자, 마운드에 있던 에디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환호했다.

대호를 믿고 있는 것과 실제로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사실 에디가 기대한 정도는 원 바운드로 타구를 잡아 내 장타를 단타로 막아 내는 수준이었다.

설마 그걸 완전히 뛰어넘는 수준의 수비 실력을 보여 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짝짝짝!

에디 프랭크는 글러브를 낀 손으로 박수를 치는 액션을 보이며 대호의 수비에 감사를 표했다.

팀의 1선발로써 팀 막내의 호수비에 찬사를 보낸 것이다.

대호 역시 그걸 보자마자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답을 해 주었다.

‘이런 사소한 거 하나하나가 동료 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일이니까.’

대호의 호수비에 에디도 안정을 찾으면서 뉴욕의 세 번째 타자를 맞아 첫 삼진을 잡아냈다.

펑!

“아웃!”

호수비에 이은 삼진으로 오클랜드는 뉴욕 킹덤즈를 상대로 가볍게 1회 말 수비를 끝냈다.

그리고 위기 뒤에는 기회란 야구의 오랜 격언처럼 오클랜드 슬랙스는 2회 초 공격에 들어가며 또다시 득점할 기회를 맞았다.

따악! 따악!

7번 타자부터 시작된 오클랜드 슬랙스의 2회 말 공격은 선두 타자부터 연이어 안타를 만들며 진루타를 만들어 냈다.

노아웃 1, 3루의 득점 기회를 맞아 타석에 선 것은 9번 타자 밥 존슨.

‘어떻게든 나를 더블플레이로 잡을 생각을 하겠지.’

밥 존스는 타석에 들어서면서 생각했다.

투수가 어떻게 자신을 상대할지 궁리를 한 것이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더블플레이를 하기 위한 유인구를 던질 거라는 예상이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밥 존스 자신이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많은 고민이 되었고, 더그아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더그아웃에선 어떠한 작전 지시도 나오지 않았다.

‘내게 모든 걸 맡긴다는 뜻이군.’

NPB, 그리고 KBO와는 다른 메이저리그만의 야구 스타일이었다.

스윽!

밥 존슨은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번트 자세를 취했다.

수어사이드 스퀴즈를 하려는 것처럼 자세를 취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밥 존슨의 작전이었다.

더블플레이를 만들기 위해 몸 쪽으로 투심을 던지기 직전, 타자의 자세를 본 1루와 3루수는 급히 앞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투구가 날아오자 밥 존슨은 자신의 작전이 통한 것을 확인하며, 번트 자세에서 타격 자세를 바꿔 스윙을 하였다.

따악!

3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가 나왔다.

이에 유격수가 급히 3루 쪽으로 이동을 하며 몸을 던져 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아아아!”

3루에 있던 주자는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왔고, 1루에 있던 주자는 2루를 돌아 3루로 뛰려다 몸을 돌려 2루로 돌아왔다.

이는 좌익수가 달려오며 공을 잡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밥 존슨은 1루 베이스를 밟았다.

노아웃 상황에서 7, 8, 9번이 연속 안타를 치며 득점을 하자, 얼마 없는 오클랜드의 원정석은 일제히 환호했다.

일반적으로 하위 타선에서 기대하기 힘든 폭발력이 터졌기 때문이다.

“오늘의 오클랜드 슬랙스는 뭔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김승주는 후반 타순에서 연속 안타와 득점이 나온 것에 고무되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희의 예상과 다르게 오클랜드 슬랙스가 뉴욕 킹덤즈에게 선취 득점은 물론이고 2회 초 공격에서 연속 안타로 1점을 가져옵니다.”

“하하하, 뉴욕 킹덤즈의 위기는 이제부터라 할 수 있겠습니다.”

타자가 일순하고 다시 1번 타자의 순서가 되었기에 이를 언급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타석에 들어선 것은 우리의 자랑, 대한민국의 보물, 정대호 선수입니다.”

하구연 해설은 만면에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호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와아아아!”

“빅! 빅! 빅!”

“타이거! 타이거! 타이거!”

한 쪽에서 빅이란 단어가 들리면, 반대쪽에서 타이거란 단어가 들려왔다.

야구팬들이 타석에 들어선 대호를 연호한 것이다.

얼마 없는 오클랜드 슬랙스 원정 팬은 물론이고, 킹덤즈 팬이 아닌 다른 구단 팬들이 함께 만든 광경이었다.

“들리십니까? 지금 팬들이 뉴욕 킹덤즈의 홈구장에서 정대호 선수를 연호하고 있습니다!”

김승주는 주변을 둘러보며 감정이 격해져 소리쳤다.

그런 김승주의 감정을 읽기라도 했는지, 운동장에서 커다란 타격음이 울렸다.

따아아악!

김승주와 하구연이 주변 야구팬의 반응을 살피고 있을 때, 타석에 있던 대호는 레리 킹의 투구에 집중해 그랜드슬램을 만들었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오늘은 무언가 잘되는 날인 듯했다.

1회 초 첫 타석에서 솔로 홈런을 친 것처럼 2회 초에도 레리 킹의 투구를 다시 한번 지켜보았다.

그러고 나서 바깥쪽에 살짝 걸치는 코스로 날아오는 포심 패스트볼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배트 중심에 가져다 댔다.

솔로 홈런을 쳤던 첫 타석에서 만큼은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훨씬 집중이 잘 되었다.

그러다 보니 배트의 스윗 포인트에 공을 맞출 수 있었다.

타다다다.

맞는 순간 그것이 홈런이 될 것을 알았기에, 대호는 1회 초와 다르게 덤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돌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선취점을 따내긴 했지만, 이제 겨우 2회, 그리고 2점 앞서 있었으니까.

1, 2, 3루에 있던 주자가 모두 홈으로 들어온 뒤, 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짝짝짝!

홈베이스를 밟고 들어온 대호는 타석 밖에서 줄지어 대기를 하고 있는 동료들의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탁탁탁!

하이파이브에 이어 동료들은 대호의 헬멧을 두드리며 축하해 주었다.

1회 초 솔로 홈런에 이어 2회 초 만루 홈런을 친 대호.

동료들의 축하도 당연했다.

그리고 이중 가장 강하게 대호의 헬멧을 두드린 것은 단연 오늘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선발인 에디 프랭크였다.

현재 스코어는 6:0.

노아웃에 6점이나 났으니 오클랜드의 에이스 에디 프랭크는 도저히 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 고맙게 가져간다.’

에디 프랭크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비단 에디 프랭크만이 아니었다.

오클랜드의 감독인 마이크 케세이 또한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 구단 단장 사무실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오클랜드의 디비전 시리즈를 구경하고 있었다.

“호우!”

조엘은 TV 화면으로 본 대호의 그랜드 슬램에 소리쳤다.

“와! 악의 제국을 상대로 저렇게 일방적인 상황을 만들다니. 역시…….”

시즌이 끝나고 잠시 구단에 들린 조나단은 뉴욕 킹덤즈와 치러지는 디비전시리즈를 잠시 구경하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건 뭐, 큰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이번 1차전은 우리가 가져갈 것 같네요.”

크리스 마틴은 이제 겨우 2회 초 공격임에도 그렇게 이야기하였다.

경기장에 있는 오클랜드 관계자들을 제외하고 프런트 사람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6점이라는 점수 자체가 크기도 하지만, 스코어 6:0으로 일방적인 상황이었기에 당연한 추론이었다.

더욱이 아직 노아웃인 만큼 오클랜드의 공격은 계속되며 타순 역시 2번 타자와 클린업트리오로 이어지니 말이다.

조엘과 크리스가 그런 말을 하며 TV에 시선을 떼지 못할 때, 타석에 지미 울프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반면 겨우 2회 초임에도 홈런 두 방으로 인해 6점을 내준 뉴욕 킹덤즈의 선발 레리 킹은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듯했다.

* * *

1루 쪽 뉴욕 킹덤즈 더그아웃에선 난리가 났다.

설마 자신들의 2선발이 오클랜드에 무너질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준 점수를 보면 당장 투수를 바꿔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정작 불펜은 아직 가동되지 않았다.

그만큼 레리 킹을 믿고 있었고, 이제 고작 2회 초였기도 했다.

안일한 생각은 더그아웃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당장 타임 걸고, 카를로스 코치는 당장 불펜에 연락해 준비시켜!”

더 이상 점수가 벌어진다면 아무리 악의 제국이라 불리는 자신들이라 해도 오클랜드를 따라가기 힘들었다.

투수 코치인 매트 브레이크가 타임을 요청하고 마운드에 올라간 사이, 카를로스 코치의 연락을 받은 불펜이 급히 가동되기 시작했다.

‘젠장!’

뉴욕 킹덤즈의 감독 애런 본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책을 하였다.

설마 자신들의 2선발이 겨우 스무 살의 애송이에게 이렇게 무너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그 애송이가 이번 시즌에 보여 준 괴물 같은 성적에는 경계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규 시즌과 포스트 시즌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1년과 단기전은 엄연히 차이가 있는 법이니까.

애초에 그동안 많은 선수들이 시즌 중 MVP로 꼽히곤 했지만, 가을에 말아먹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의 활약은 그 예상을 벗어나도 너무나 벗어나는 것이었다.

* * *

오클랜드 슬랙스는 뉴욕 킹덤즈의 선발 레리 킹이 교체되고도 2회에 2점을 더 빼앗아 스코어를 8:0으로 벌렸다.

그에 반해 2회 말 수비에서 에디 프랭크는 뉴욕 킹덤즈의 4번 타자 저스틴 스텐트에게 2루타를 맞은 것 말고는 다음 타자들을 모두 삼진 처리하며, 잔루 2루로 마무리 지었다.

그런데 3회 초 공격에 들어가 대호는 또 다시 타석에 섰고, 이번 타석에서도 투런 홈런을 쳤다.

이 때문에 팬들 속에서 난리가 났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적 대기록인 홈런 사이클까지 3점 홈런 한 방만 남겨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호는 마이너 시절 두 번이나 홈런 사이클을 친 전력이 있었다.

작년 마이너리그 더블A와 트리플A에서 각각 한 번씩 말이다.

그러나 마이너와 메이저에서의 위상 차이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메이저에서 기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더군다나 그 상대가 악명 높은 악의 제국, 뉴욕 킹덤즈라면 야구팬으로서 환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뉴욕 킹덤즈의 팬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역사적 첫 기록의 달성 상대로 남게 되면 언제든지 다시 얘기가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었으니.

아직 대호의 타석은 두세 번 남은 상황.

킹덤즈의 팬들은 조마조마한 가슴을 붙잡고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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