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2032년 메이저리그 포스트 시즌.
아메리칸리그 디비전 시리즈 진출 팀은 동부 지구 우승팀인 보스턴 블루삭스와 중부 지구 우승팀인 디트로이트 라이온스, 서부 지구 우승팀인 오클랜드 슬랙스 그리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이기고 올라온 뉴욕 킹덤즈다.
그리고 대호가 속한 오클랜드 슬랙스가 상대해야 할 팀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이기고 올라온 뉴욕 킹덤즈로 결정이 되었다.
이는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한 팀 중 가장 승률이 높다 보니 그렇게 결정되었다.
이 때문에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승리해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온 뉴욕 킹덤즈의 경우, 라이벌 구단인 보스턴 블루삭스와 경기를 치르기 위해선 오클랜드 슬랙스를 이기고 챔피언십 시리즈로 올라가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 * *
“와아아아!”
디비전 시리즈 첫 경기가 치러질 뉴욕 킹덤즈의 홈구장인 킹덤 스타디움.
메이저의 인기를 자랑하듯 만원 관중을 이루었다.
그도 그럴 것이, 뉴욕 킹덤즈는 비록 올해 와일드카드 결정전까지 내려오긴 했지만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메이저리그 구단 중 전통적인 인기 구단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도 메이저리그 하면 야구팬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구단이기도 했다.
그에 반해 좋지 않은 별칭으로 ‘악의 제국’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것은 킹덤즈를 폄하하기 위해 다른 구단 팬들이 붙인 것이었다.
물론 그럴 만한 행보를 걷기도 했다.
예를 들어 킹덤즈의 프런트는 너무나도 욕심이 많아 구단 운영에 큰돈을 투자해 야구 스타들을 마치 수집하듯 사들이곤 했다.
축구로 치면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 구단 같은 운영을 시도했던 것이다.
갈락티코라고 불리며 레알 마드리드가 최강의 스쿼드를 꾸렸던 것처럼 뉴욕 킹덤즈 역시 슈퍼스타들을 포지션 별로 꾸렸다.
이 때문에 구단 명을 빗대 악의 제국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킹덤즈에서도 이런 네이밍을 은근히 즐기는지, 필요하다면 사치세까지 지불해 가며 선수들을 모으고 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또한 킹덤즈 팬들 역시 그러한 운영 덕에 뉴욕 킹덤즈가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었기에 악의 제국이라며 비꼬는 것도 오히려 명예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야구 스타들이 각 포지션에 위치해 있고, 그것을 발판으로 지구 우승은 기본이고 챔피언십 시리즈 우승과 월드 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쥐었으니 좋지 않은 별명이라고 거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자신들을 무서워한다는 반증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열흘 붉은 꽃이 없듯 뉴욕 킹덤즈의 전성기는 영원하지 못했다.
아무리 뉴욕 킹덤즈가 돈이 많아 유명 야구 스타를 각 포지션에 배치하려고 해도, 돈만 바라보고 가지 않는 선수도 있고, 팀의 프랜차이즈를 고집하는 선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세월이 흐르면서 뉴욕 킹덤즈의 독주도 도전을 받고 언제나 승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는 라이벌 구단 보스턴 블루삭스에 밀려 지구 2위에 그치기도 하고, 디비전 시리즈나 혹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뉴욕 킹덤즈의 팬은 응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다시 한번 영광의 시절로 자신들을 이끌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올 시즌도 라이벌에 밀려 2위를 했지만,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이겨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했으니 말이다.
“와아아아!”
그들은 오늘도 이렇게 킹덤즈 스타디움에 나와 응원한다.
* * *
KBC스포츠는 2032시즌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딴 방송국으로써 디비전 시리즈를 중계하기 위해 미국 뉴욕 킹덤 스타디움까지 나왔다.
“야구를 사랑하는 한국의 야구팬 여러분! 김승주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KBC 야구 해설 위원인 하구연입니다.”
김승주와 하구연은 2032년 메이저리그 정규 시즌 중계는 물론이고, 포스트 시즌 중계도 직접 뉴욕까지 날아와 중계를 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포스트시즌의 경우 메이저리그 메인 중계 채널인 ESPN에서 보내 주는 것을 받아 이원 중계했을 터이지만, 이번 시즌은 그렇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속한 팀이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작년 2031시즌에도 대호가 속한 오클랜드 슬랙스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고 디비전 시리즈에 오르긴 했지만, 당시에는 설마 오클랜드가 포스트 시즌에서 좋은 성적을 낼지 몰랐기에 다른 시즌처럼 이원 중계를 했다.
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시즌 초부터 대호가 있는 오클랜드 슬랙스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1위를 고수하며 쾌속 질주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호는 오클랜드의 1번 타자와 중견수 자리를 맡아 역사를 썼다.
한국에서 몇몇 논란으로 인해 인기가 한풀 꺾였지만, 그래도 올림픽의 영웅이었기에 비교적 높은 관심을 끌고 있었다.
“올 시즌 역대급 성적을 찍은 정대호 선수, 그리고 정대호 선수의 소속 팀 오클랜드 슬랙스가 뉴욕 킹덤즈를 맞아 디비전 시리즈를 치릅니다.”
“네. 전통적인 강팀 뉴욕 킹덤즈를 맞아 과연 어떤 경기를 펼칠지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김승주와 하구연은 경기 해설의 포문을 열었다.
한국의 메이저리그 팬들은 대호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시청자 게시판을 비롯해 여러 SNS에서 실감 나는 중계를 요구했다.
그러한 야구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KBC가 현지 중계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허 위원님!”
“네, 말씀하세요.”
“위원님 말씀대로 뉴욕 킹덤즈는 전통의 강팀이죠. 비록 뉴욕 킹덤즈가 라이벌 구단인 보스턴 블루삭스에 밀려 지구 2위로 떨어지고,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며 올라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오클랜드의 전력으로 오늘 경기, 이길 수 있겠습니까? 스포츠란 게 선수 한 명으로 모든 걸 이룰 정도로 만만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김승주는 경기의 흥을 올리기 위해 이를 언급했다.
“네, 그 말씀이 맞습니다. 비록 이번 시즌에서는 조금 미미한 활약을 보였고, 뉴욕 킹덤즈가 현재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고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온 상대이긴 하지만 결코 얕볼 수 있는 팀은 아닙니다.”
하구연 해설은 무슨 이유로 김승주가 그런 질문을 했는지 잘 알고 있기에 뉴욕 킹덤즈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메이저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하구연의 말에 중계석에 있는 김승주는 물론이고 시청자들 역시 그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디비전 시리즈 1차전 공격은 원정팀인 오클랜드 슬랙스로부터 시작되었다.
선두 타자는 시즌 중과 마찬가지로 정대호.
올 시즌 오클랜드 슬랙스와 뉴욕 킹덤즈는 한 차례 경기를 치르긴 했지만, 오늘 뉴욕 킹덤즈의 선발로 나온 레리 킹은 대호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다만 대호는 레리 킹과 대결을 한 경험이 있었다.
3회차 당시, 대호가 뉴욕 킹덤즈에서 생활하며 팀 내부적으로 경기를 했을 때였다.
즉, 정식 경기에서 투수와 타자로서 대결하는 건 단연 처음이었다.
‘레리! 오랜만인걸.’
마운드에 선 레리 킹의 모습을 본 대호는 감회가 새로웠다.
더욱이 지금의 레리 킹은 대호가 3회차에 만났을 때보다 7년은 젊은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펑!
“스트라이크!”
초구는 포심 패스트볼로 98마일의 매우 빠른 강속구였다.
‘오우! 7년이나 젊어서 그런지 공에 힘이 넘치네!’
3회차에 같은 팀으로 만났을 때보다 구위가 무척이나 좋은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치지 못할 공은 아니란 판단이 섰다.
‘좋은 공이지만… 못 칠 공은 아니야!’
팡!
두 번째 공은 바깥으로 빠지는 유인구였다.
하지만 대호는 그런 유인구에 속지 않았다.
92마일의 바깥쪽으로 빠지는 고속 슬라이더였지만, 레리 킹이 어떤 구종을 던지는지 잘 알고 있는 대호였기에 전혀 속지 않았다.
‘슬라이더 각도가 좋기는 하지만, 아직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갖추기 전인가 보네.’
슬라이더가 안에서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변화구라고는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횡적 변화만 있는 슬라이더는 몇몇 스페셜리스트 투수의 것을 빼고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 때문에 뉴욕 킹덤스의 2선발인 레리 킹도 2년 뒤에는 종적 변화까지 가미한 슬라이더를 완성한다.
하지만 지금은 스케일 50~55점 정도 줄 수 있는 구종일 뿐이다.
당연히 레리 킹도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슬라이더는 가끔 패스트볼을 노리는 이들에게 타이밍을 뺏기 위해 던지는 정도로 던지고 있었다.
뉴욕 킹덤즈의 2선발이라고 하지만, 대호가 느끼기에 그리 위협적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레리 킹의 실력은 노련함까지 갖춰졌을 때 완성되는 것인 듯했다.
팡!
“볼!”
볼카운트는 2B 1S가 되었다.
레리 킹의 입장에선 대호가 비록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2년차에 스무 살이란 것이 무색하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의 올 시즌 성적을 보면 그야말로 역대급 선수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지 않은가.
분명 다른 투수들이라고 멍청이가 아니니 2년차인 올해는 방심하지 않았을 테지만, 저렇게 홈런을 내줬다는 뜻이니 더욱 조심해야만 했다.
레리 킹은 호승심과 걱정이 뒤섞인 마음을 정리하고, 신중하게 투구하였다.
‘하아! 하아!’
다만 어떻게든 평온을 찾고 경기에 임하기는 하지만, 그가 받고 있는 압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제길, 이제 겨우 스무 살 애송이에게서 배리나 지미와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네.’
레리 킹이 말하는 배리는 바로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배리 브라운으로 내셔널리그 홈런왕을 가리키는 이름이었고, 지미는 지미 헬릭스로 지금은 은퇴한 보스턴 블루삭스의 프랜차이즈 선수다.
레리 킹이 뉴욕 킹덤즈의 2선발이 되기 전 4~5선발을 오가던 시절, 지미 헬릭스는 보스턴 블루삭스의 간판타자로 명성이 자자한 선수였으며, 아메리칸리그에서도 알아주는 홈런 타자였다.
그런데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2년차에 불과한 대호에게서 그런 베테랑 선수의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레리 킹도 대호를 쉽게 생각하고 말고 할 것 없이 전력을 다해 상대했다.
휘익!
탁!
회심을 다한 인코스 빠른 포심 패스트볼이었지만, 파울이 되고 말았다.
아니, 홈런이 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 정도로 잘 맞은 타구였지만, 1루 베이스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파울이었다.
‘좀 늦었네.’
파울 타구를 친 대호는 자신의 스윙이 타이밍이 조금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좀 더 집중하기로 하였다.
‘으음…….’
스윙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하기 무섭게 뭔가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것은 사용하고 나면 후유증이 꽤나 커서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있던 그 감각이었다.
‘이건…….’
조금씩 느껴지는 고양감과 더욱 민감해진 촉각.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의도적으로 일으킬 때는 이 정도의 효과가 나지 않았는데, 역시나 갑작스런 발현은 지금처럼 엄청난 위력을 보여 주었다.
‘좋았어!’
고양감은 대호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따아아악!
대호의 예감은 맞았다.
레리 킹이 던진 인코스 체인지업에 맞춰 그대로 받아쳐 솔로 홈런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방금 전에는 바깥쪽 빠른 볼에 조금 늦게 휘둘러 파울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에 속지 않고 그대로 받아쳐 홈런을 만든 것이다.
“아아아아!”
이곳이 홈구장이 아니다 보니, 대호의 홈런 타구에 들리는 것은 짙은 아쉬움이 섞인 탄성이었다.
하지만 이를 듣고 대호는 입가에 만연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뛰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타타타타.
‘하루빨리 이 감각을 내가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대호는 지금 만큼의 수준으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다짐하였다.
한편 3루 오클랜드 슬랙스의 더그아웃에서는 1번 타자인 대호의 솔로 홈런으로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사실 아닌 게 아니라 아무리 자신들이 서부 지구 우승을 하고, 또 역대 최고의 승률로 디비전 시리즈에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전통의 강호 뉴욕 킹덤즈를 맞아 약간 주눅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팀의 막내인 대호가 1회 선두 타자로 나와 홈런을 치는 모습에 긴장감은 어느 세 사라지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