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2032년 10월 8일, 메이저리그 2032시즌 165경기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의 각 지구 우승팀과 승률이 가장 높은 두 팀까지 합쳐 모두 열 개의 구단이 가을 야구를 하기 위해 선발되었다.
이중 와일드카드로 선출이 된 네 개의 구단은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통해 각각 한 개 구단만이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한다.
오클랜드 슬랙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 1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 없이 바로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여,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이기고 올라온 구단과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그리고 정규 시즌이 끝나고 선수들의 시즌 성적이 나왔다.
대호는 이번 2032시즌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홈런을 쳤다.
아쉽게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무려 70개의 홈런을 침으로써 메이저리그 역사상 내추럴한 상태로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라는 기록을 쓰게 되었다.
그게 무슨 뜻인가 하면, 그동안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보유한 선수들과 순위권에 있던 선수들이 대부분 불법 약물을 사용하거나 스테로이드 등에 대한 사용 기준이 없던 시절에 나온 기록들이었기에 현 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최다 홈런 기록 1위부터 6위까지의 선수들 모두가 약물의 시대에 활약하던 타자들이었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불법 약물을 사용해 나온 기록을 인정해야 하느냐, 혹은 인정하지 않느냐라는 논쟁이 있었고, 결국 약물 복용자라는 표시를 달며 기록을 보여 주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도핑 테스트가 힘들어지고 그에 대한 인식도 나락으로 처박히며 순수한 선수의 능력으로 70개의 홈런을 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한 상식이 대호 덕분에 이번 2032시즌에서 깨진 것이었다.
대한민국 스포츠 방송에서도 이 결과를 연신 내보내고 있었다.
특히 이번 시즌 대호의 경기를 모두 중계한 김승주 아나운서와 하구연 해설 위원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하하, 역시 정대호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작년에 정대호 선수가 메이저리그 데뷔하고 신드롬을 일으켰을 때, 이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을 거란 예측은 나오고 있었습니다.”
“네, 그랬죠.”
두 사람의 말이 맞는 것이, 작년에 메이저리그 후반기에서 치른 경기 수는 75번.
그런데 대호는 무려 32홈런을 쳤다.
즉, 풀타임으로 시즌을 치른다면 이미 70개 이상 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었다.
또한 서른두 개의 홈런 역시 막판에는 페이스가 떨어진다고 평가받았으니 이번에 더욱 기대를 모았고 말이다.
“이야, 오클랜드의 팬들은 만약 정대호 선수가 올림픽 차출이 되지 않았다면, 충분히 73개 이상 홈런을 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더군요.”
“음. 정대호 선수의 활약 덕에 저희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이런 상황에 놓이고 보니 역시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저도 떨칠 수가 없습니다.”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 금메달, 그리고 한 번 기록하면 불멸의 성적으로 남을 메이저리그 기록.
어느 쪽이 더 가치가 높은 것일지는 자명했다.
“그래도 정대호 선수라면 내년에 또 도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김승주 아나운서가 살짝 말끝을 흐리자, 하구연 위원이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정대호 선수에게는 다른 기록이 있다. 그런 말씀이시죠?”
“네. 역시 이심전심이군요, 하하하!”
사실 다른 구단을 응원하는 팬의 입장에서는 최다 홈런 기록 갱신의 제물이 되지 않은 것에 기뻐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은 최다 홈런 기록 경신에 실패했어도 또 다른 기록인 60―60을 달성했기에 계속해서 아쉬움을 가지지는 않았다.
이번 시즌의 50―50클럽도 대호가 최초였지만, 날로 발전하는 야구의 기술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누군가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의 기록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홈런 60개, 도루 60개를 가리키는 60―60클럽은 한 선수가 이룩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보통 홈런을 많이 치는 거포형, 슬러거 타자라면 발이 느리거나 도루를 시도했을 때 부상 위험이 커 애초에 달리지를 않으니까.
그러나 대호는 시즌 막판까지 최선을 다해 도루를 하여, 60―60클럽에 필요한 60개의 도루를 넘어서 66개의 도루에 성공했다.
이렇다 보니 오클랜드 팬들은 대호가 올림픽만 출전하지 않았다면,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물론이고 70―70도 가능하지 않았나…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말이 아닐 수 없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다른 구단 관계자나 팬은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의 70―70클럽 달성까지 필요한 도루 숫자가 불과 네 개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정규 시즌 몇 경기를 빠졌다고 해도, 도루를 매번 성공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어디까지나 IF, 만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대호라면… 이런 생각이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에게는 가득했고, 또 타 구단의 팬들이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튼 대호는 2032시즌 초, 자신이 세운 목표를 초과 달성하며 정규 시즌을 마쳤다.
그렇지만 대호의 올해 계획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올라올 상대와 디비전 시리즈를 준비해야만 했고, 더 나아가 챔피언십 시리즈와 가능하다면 월드 시리즈까지 준비해야 하니까 말이다.
* * *
LA 말리브 인근 고급 레스토랑.
창밖으로 어두운 해변이 보이고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시각, 대호와 한나 포커스는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음, 이게 뭐야?”
한참 저녁을 잘 먹고 있던 한나는 입안 가득 떠 넣은 디저트에서 뭔가 이물감을 느꼈다.
그래서 입속에 느껴지는 딱딱한 물체를 저도 모르게 손바닥에 뱉었다.
디저트를 먹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한나의 모습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자기 이것 봐! 반지네?”
“반지?”
대호는 놀란 표정으로 한나가 보여 주는 손바닥 위를 보았다.
2㎜ 굵기의 별다른 장식이 없는 반지였다.
“이게 왜 여기 들어가 있던 거지?”
한나는 반지를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입을 휴지로 닦았다.
괜히 찜찜한 기분이 들어서다.
그런데 막 입안을 헹구고, 휴지로 닦으며 고개를 들던 그녀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뱉은 반지를 깨끗하게 닦은 대호가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것을 자신의 앞에 들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뭐… 뭐야?”
느닷없는 대호의 프러포즈에 놀란 것이다.
“한나! 나랑 결혼해 주겠어?”
시즌이 끝나면 결혼을 하자고 이야기를 하고, 또 양가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긴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한나에게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던 대호가 오늘 그녀에게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한 것이다.
여름에 올 시즌이 끝나면 결혼을 하자고 먼저 이야기를 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부모님께 결혼 허락을 받기 전 했던 이야기였다.
그 때문에 솔직히 살짝 서운한 감정이 없지 않았다.
아무리 개방적이고 외향적인 여자라 해도 결혼에 대해, 그리고 프러포즈에 대한 로망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아무런 프러포즈 없이 바로 결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앞으로 한 달 뒤면 결혼을 한다.
남자친구가 바쁘다는 것을 알지만, 결혼 한 달을 앞두고도 아무런 이야기가 없기에 내심 불안하기도 했었다.
지금까지 혼자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자신의 앞에서 남자친구가 깜짝 이벤트와 함께 프러포즈하는 것에 한나는 순간 울컥했다.
“흑!”
순간 울컥해 눈물이 나왔다.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지? 미안해!”
대호는 자신의 프러포즈에 울컥한 한나를 보며 얼른 사과하고 테이블 위에 놓인 휴지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공개적으로 프러포즈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주변에 있던 손님들은 선남선녀의 모습에 더더욱 시선을 주었다.
“휘익!”
짝짝짝짝!
“와우!”
놀람도 잠시, 프러포즈를 받는 한나를 위해 일어나 환호를 하고 박수를 쳐 주며 축하했다.
“아직 내 말에 대답 안 해 줬는데, 한나! 나랑 결혼해 주겠어?”
대호는 다시 한번 한나에게 자신과 결혼을 해 줄 것인지 물었다.
그런 대호의 결혼해 달라는 물음에 돌아온 것은 키스였다.
“YES!”
너무나 기쁜 나머지 한나는 이곳이 식당임을 잊고 큰 소리로 대답을 한 뒤, 대호에게 안겼다.
과감한 그녀의 저돌적인 결혼 승낙과 키스에 다시 한번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깊은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은 아직도 들리는 환호성에 얼굴이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대호였다.
그래도 남자라고 먼저 마음을 추스르고 주변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하였다.
자신들 때문에 식사에 방해를 받았을 텐데, 이렇게 축하를 해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저녁은 제가 너무도 기분이 좋아서 음식값을 대신 내겠습니다.”
미국인이나 다른 나라의 외국인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것이지만, 한국인인 대호는 이렇게 기쁜 날 자신들을 축하해 주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와하하하!”
대호가 음식값을 대신 지불하겠다는 말에 조금 전보다 더 큰 호응이 터져 나왔다.
“자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냐?”
자신들이 있는 이곳 레스토랑은 음식값이 결코 적잖은 곳이었다.
물론 대호가 메이저리거로서 적잖은 연봉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최저 연봉이었다.
그렇기에 살짝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다.
대호가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2년차에 불과하지만, 그가 얼마나 알부자인지를 말이다.
평범한 메이저리거였다면, 한나의 걱정이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회귀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그동안 야구에만 집중했다고 해서 뉴스를 비롯한 야구 외적인 정보를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가족인 누나가 속한 연예계를 비롯해 기업과 관련된 정보 등등을 말이다.
아주 많은 돈은 아니지만, 기업에 투자하고, 또 에이전시에서 가져오는 광고를 비롯한 스폰서십 계약을 통해 적잖은 수입을 거둘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
자신을 걱정하는 한나에게 귓속말로 작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는 웨이터를 불러 계산하였다.
조금 전 식당 안에 공표를 했듯, 자신이 오늘 저녁 식사는 모두 자신이 계산을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였다.
또한 식당 직원들에 대한 팁 또한 확실하게 계산을 하였다.
자신의 프러포즈가 성공을 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비용이 나가긴 했지만, 대호는 이것을 절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마음고생을 했을 한나가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자신의 기분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은 이럴 때 쓰라고 버는 거지.’
대호는 회귀하면서 야구에 관련된 목표를 세웠다.
그것만 이룰 수 있다면, 과정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솔직히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신과 가족이 풍요롭게 살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돈이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한나, 올 시즌이 모두 끝나고 11월 말에 결혼하고 한 달 동안 전국 투어를 하는 거야!”
식당 안 주변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면서도 대호는 한나의 귓가에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하였다.
그런 대호의 속삭임을 듣는 한나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