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오클랜드 슬랙스와 텍사스 레이스의 경기는 대호의 67호 홈런으로 열기가 불타올랐다.
기록 도전을 하고 있는 대호가 또다시 대기록에 한 발 더 다가갔기 때문이다.
오클랜드 슬랙스 팬의 입장에선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한 발 다가가는 것도 좋았고, 60―60클럽에 다가가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좋았다.
그래도 역시나 야구는 홈런을 보는 것이 더 좋았던 것인지, 대호의 67호 홈런을 본 팬들은 이제 겨우 경기가 시작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와아아!”
대호가 홈으로 들어오고도 두 명이 더 홈을 밟았다.
1회에만 오클랜드는 텍사스 레이스로부터 3점을 뽑아냈다.
오클랜드의 1회 말 공격이 끝나고 텍사스에서도 2회 초 공격을 했지만, 주전 선수는 물론이고 백업까지 모두 빠진 마이너리거들로 채워진 오클랜드의 수비벽을 뚫지 못한 채 잔루 1, 2루로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오클랜드의 2회 말 공격.
8번 타자부터 시작된 오클랜드의 공격은 2루수 앞 땅볼과 유격수 앞 땅볼로 빠르게 투아웃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투아웃이 되었음에도 더그아웃에 있던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5번부터 9번까지 타순에 있던 타자들은 모두 마이너에서 뛰던 선수들이었다.
이미 지구 우승을 확정지은 오클랜드 슬랙스 코칭스태프들은 팀의 노장 선수나 과부하가 걸린 주전 선수들 위주로 휴식을 주었다.
7일짜리 짧은 IL(부상자 명단)로 원래는 10일짜리였지만, 시즌이 남은 일정이 일곱 경기였기에 7일로 한 것이다.
아무튼 노장 선수 위주로 IL을 짜고, 또 디비전 시리즈를 대비하기 위해 시즌 중 과부하가 의심이 되는 선수들은 모두 부상자 명단에 넣어 재활과 휴식 목적으로 빠진 상황이다 보니, 전력에 많은 누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남은 주전 선수들이 중심을 잡아 주고 있어 오클랜드의 전력 누수는 그렇게 크게 와닿지 않는 듯했다.
“와아!”
조금 전보다 더욱 커진 함성이 뉴슬랙스 볼파크 안을 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구장 안을 울리는 다음 타석에 들어설 타자의 테마곡이 그들의 귀에 너무도 익었기 때문이다.
I see it all, I see it now
I got the eye of the tiger, a fighter
후반기 들어 새롭게 바뀐 대호의 테마곡은 가사에 호랑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그런지 이전 전반기에 사용했던 슈퍼노바보다 팬들에게 훨씬 인기가 좋았다.
대호의 테마곡에 팬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정대호 선수, 투아웃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섭니다.”
김승주는 타석에 들어서는 대호의 모습을 보며 기대감이 듬뿍 담긴 목소리로 떠들었다.
“방금 전 들은 곡이 정대호 선수의 후반기 테마곡이죠?”
“네. 시즌 전반기에는 정대호 선수의 누나가 속한 그룹의 노래를 사용했었는데, 후반기에는 2013년에 미국의 팝가수가 부른 ‘Roa’란 곡으로 바꾸었죠.”
“전반기 슈퍼노바도 좋았는데, 이 곡도 정대호 선수와 무척이나 잘 맞는 것 같습니다.”
김승주는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하였다.
“곡도 그렇고 가사의 내용도 빅 타이거, 정대호 선수와 찰떡궁합이라 할 수 있죠.”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정대호 선수로 인해 그 가수도 19년이 지난 지금 다시 조명 받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정대호 선수로 인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대호가 자신의 테마곡으로 사용한다는 이유만으로 20년 전에 발표가 되었던 곡이 재조명을 받으며 다시 팝 차트 순위에 올라 인기몰이 중이었다.
한편 대호의 등장에 마운드에 있던 다니엘 가자는 다시 표정이 굳어졌다.
앞선 8번과 9번 타자를 잡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 되었다.
‘제길, 벌써 이놈의 타석인가?’
대호와 두 번째 대결을 벌여야 하는 것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런 다니엘의 모습을 보면서 대호는 자연스럽게 몸에서 힘을 빼고 타격 자세를 잡았다.
몸에 힘을 잔뜩 준다고 해서 타구가 힘이 실리는 것도 아니고, 또 멀리 날아가는 것도 아니다.
아니, 오히려 쓸데없이 많은 힘 때문에 스윙이 부자연스럽게 되면서 방해가 되어 타구가 제대로 뻗지 못해 아웃될 가능성만 높아진다.
그렇기에 타자들을 가르치는 타격 코치나 인스트럭터들은 타자들에게 몸에 힘을 빼라고 가르친다.
그런 측면에서 대호는 이들의 가르침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실행하고 있어 타격 코치나 인스트럭터를 놀라게 하고 있다.
‘어디 던져 봐!’
대호는 오늘 홈런 한 방을 때렸기에 욕심이 별로 없었다.
때리기 좋은 공을 던져 줘도 좋고, 아니면 고의사구에 의한 볼넷도 상관이 없었다.
‘다니엘! 그냥 던져라!’
텍사스 레이스의 포수 하프 하임은 망설이고 있는 다니엘 가자를 보며 사인을 보냈다.
그런 포수의 사인을 받은 다니엘 가자는 한숨을 쉬고 투구를 하였다.
펑!
“볼!”
초구는 인코스 무릎 밑으로 들어오는 포심이었다.
‘좋아! 그렇게만 던져!’
비록 볼이 되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들어와 타자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한편 자신의 무릎 밑으로 들어오는 패스트볼에 대호는 하마터면 배트가 나갈 뻔하였다.
볼이 되기는 했지만 너무도 기막힌 코스로 들어오는 볼이라 대호도 깜짝 놀랐다.
‘예상 밖의 공이었다.’
위축된 것으로 생각했던 투수가 의외의 코스로 절묘하게 컨트롤한 공을 던졌다.
휘익! 휘익!
가볍게 허공에 스윙을 한 대호는 다시금 감각을 예리하게 다듬고 다음 투구를 기다렸다.
휘익!
팡!
“스트라이크!”
방금 전에는 1회 말 타석에서 홈런을 때렸던 코스와 비슷하게 날아오는 공이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스윙을 하였는데, 이번에는 투수의 공에 속아 헛스윙을 하였다.
투수가 던진 공은 같은 코스였지만, 1회에 던진 포심 패스트볼이 아닌 체인지업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으로 날아오던 공이 홈 플레이트 가까이 날아오다 회전이 풀리며 속도가 줄었다.
물론 대호의 배트 컨트롤이라면 충분히 스윙 코스를 바꿔 떨어지는 타구를 쫓을 수 있었지만, 대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도 아니고 득점 찬스 순간도 아닌데, 굳이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차피 헛스윙을 한다고 해도 원 스트라이크일 뿐이지.’
그러니 어렵게 배트 컨트롤로 떨어지는 공을 따라가기 보단 다음 투구를 상대하기로 하고 힘을 빼고 배트가 나가는 방향 그대로 스윙을 한 것이다.
볼카운트는 1B 1S가 되었다.
하지만 대호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다음 공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팡!
“볼!”
바깥쪽 빠지는 슬라이더였다.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호의 눈에는 공의 회전축이 다 보였다.
패스트볼의 회전이 아닌 슬라이더의 회전이었기에 바깥쪽으로 빠져나가는 볼이라 판단해 그냥 지켜보았다.
심판에게서 볼 판정이 나오자 대호는 다시 한번 타격 자세를 풀고 루틴을 가져갔다.
그가 가져가는 타격 루틴은 전혀 어색함이 없는 자연스러움과 간결함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위압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휘익!
네 번째 투구가 날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도 바깥쪽으로 날아오는 공이었다.
그것을 본 대호는 투수가 더 이상 자신과 맞상대를 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확인하고 기습적으로 번트를 댔다.
틱!
다다다다!
몸이 앞으로 나가면서 타구가 1루 쪽으로 향하게 하는 기습 번트.
설마 대기록을 써 나가고 있는 대호가 여기서 기습 번트를 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텍사스의 선수들은 번트에 대한 반응이 너무 늦어 버렸다.
대호가 이미 1루에 3분의 2가량 달려갔을 때 투수와 포수, 그리고 1루수가 공을 쫓았으니 말이다.
사실 이때는 포수나 투수 둘 중 한 명이 주도적으로 콜을 한 다음에 공을 쫓아야 함에도 너무 당황하다 보니 어느 누구도 콜을 하지 못하고 공만 쫓았다.
“세이프!”
뒤늦게 공을 잡은 포수가 급히 1루로 공을 던지려 하였지만 1루에는 아무도 없었고, 주자는 1루를 통과한 뒤였다.
“하하하! 이게 뭔가요. 정대호 선수, 기습 번트에 성공합니다.”
중계석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승주는 대호의 기막힌 번트 성공을 보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정대호 선수, 기습 번트로 1루로 나갔다는 것은 이번에 도루를 하겠다는 뜻이겠죠?”
김승주는 방금 전 대호가 기습 번트를 성공한 것을 두고 의미를 부여하며 물었다.
“아무래도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하구연도 김승주의 말에 같은 동의를 하였다.
장타력이 있고 또 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도전을 하고 있는 대호가 굳이 이 순간 기습 번트를 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투아웃 상황에서 다음 타자에게 공격을 이어 간다고 하는 것도 뭔가 어색했다.
그렇기에 방금 전 대호의 번트는 다른 뜻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바로 또 다른 기록 도전인 60―60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 것이다.
두 사람의 생각은 지금 1루에 있는 대호의 움직임만 봐도 맞아떨어짐을 알 수 있었다.
1루 베이스에서 세 걸음 정도 떨어져 자세를 낮추고 있는 모습만 봐도 그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 확실했다.
“HO! HO! HO! HO!”
대호가 1루 베이스에서 떨어져 자세를 잡는 모습을 본 팬들이 일제히 대호의 이름 끝 한 글자를 연호했다.
그것은 마치 증기기관차가 증기를 내뿜고 달리는 듯한 소리와 비슷하게 들렸다.
“하하하! 팬들도 정대호 선수에게 도루를 요구하는 것 같군요.”
중계 카메라를 보고 있던 김승주는 느닷없이 들리는 팬들의 함성 소리에 고개를 들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팬들도 원하는 것 같은데, 정대호 선수 뛰나요?”
자신의 가슴속에 담아 둔 이야기를 그대로 마이크에 대고 떠들었다.
뛸까 말까 자세를 잡고 있던 대호도 느닷없이 들리는 팬들의 소리에 베이스를 밟고 고개를 객석으로 돌리며 팬들의 모습을 살폈다.
한편 마운드에 있던 다니엘 또한 느닷없는 팬들의 이상한 구호에 놀라 자세를 풀고 관람석을 둘러보았다.
지금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에 있는 야구팬의 이상한 구호는 그 유명한 애틀랜타 워리어스의 특이한 응원인 토마호크 촙을 연상케 만들었다.
붉은 한손 도끼를 들고 대규모 인원이 내려찍는 듯한 동작을 하는 토마호크 촙은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 오클랜드의 야구팬들이 일제히 ‘HO’라며 대호의 이름 한 글자를 동시에 연호하는 있는 모습 또한 이를 듣는 이로 하여금 비슷한 느낌을 들게 하였다.
하지만 대호는 팬들이 무엇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인지 알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좋다.’
마치 팬들에게서 에너지라도 충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에 몸에 힘이 들어갔다.
척척척!
가볍게 몸을 한차례 풀고는 베이스에서 걸어 나와 자세를 잡았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다니엘은 더욱더 압박감을 느껴 머리가 띵! 하고 어지러워졌다.
팬들의 소란으로 잠시 중단 되었던 경기가 속행되었다.
팡!
“볼!”
팬들의 구호와 대호의 움직임으로 인해 집중력을 잃은 다니엘의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한참 벗어난 볼이었다.
하지만 대호는 이것을 보면서도 뛰지 않았다.
예상을 벗어난 공이었기에 아무리 스트라이크 존에서 멀었다 해도 포수가 포구한 이상 뛰기에는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타임!”
텍사스 레이스 더그아웃에서 타임 요청이 들어왔다.
아직 2회 말이었지만, 위축이 된 선발투수로 인해 타임을 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투아웃을 잡았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던 투수가 대호의 기습 번트 이후로 집중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에, 더그아웃에서 마운드 점검을 위해 타임을 요청한 것이다.
겸사겸사 시간을 벌어 불펜도 준비시키려는 의도도 느껴졌다.
그렇게 투수 코치와 포수까지 마운드에 모였다.
그러한 모습을 1루에서 지켜본 대호는 도루를 시도할 타이밍이란 판단이 섰다.
‘이번 투구에 간다.’
투수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갔으니 분명 불펜을 준비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는 말은 투수가 어떻게든 시간을 벌기 위해 타자를 상대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정상적인 투구가 아니라 변화구 위주로 타자를 상대를 하면, 패스트볼을 던지더라도 존 외각을 노려 던지려 할 것이다.
다만 이때는 실투를 막기 위해 구속을 조금 줄여서 덜질 것이 분명했다.
‘조금 더 리드를…….’
평소보다 반 보정도 더 1루에서 떨어져 2루 베이스와 가까이 리드를 잡았다.
이는 투수가 던지는 구종이 예상과 다른 패스트볼을 던지더라도 도루를 하겠다는 의지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러고 나서 마운드에 있는 다니엘이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자신이 평소보다 반 보 더 길게 리드를 가져간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바로 투구를 하려는 모습을 보았다.
다다다다!
방심을 한 것인지, 아니면 시간을 벌어 달라던 투수 코치의 부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투수는 1루 주자인 대호를 신경 쓰지 않고 투구를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바로 드러났다.
촤아악!
투수가 던진 공을 받은 하프 하임은 공을 바로 미트에서 빼내 2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팡!
“세이프!”
포수가 바로 공을 던졌지만,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바로 2루로 뛰기 시작한 대호의 발을 이길 수는 없었다.
2루심의 판정이 끝나자 대호는 바로 2루 베이스에 무릎을 꿇고 만세를 불렀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오클랜드 더그아웃과 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와아아!”
56번째 도루 성공이었다.
60―60까진 네 개의 도루만을 남겨 두게 되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