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20화 (120/209)

120화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 정대호(20) 선수가 올림픽 그랜드 파이널 경기 이후 4일 만의 복귀전 경기에서 라이벌 구단인 LA데블스를 상대로 3회 말, 두 번째 타자로 나와 통산 홈런 66호 홈런을 쳤다. (중략) 현재 메이저리그는 2032시즌 165경기 중 157경기를 치른 상태로, 마무리까지는 고작 여덟 경기를 남겨 둔 상태이다. 현재 정대호 선수는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인 73개까지 일곱 개만 남은 상황으로, 한 경기당 한 개의 홈런을 쳐 낸다면 신기록 수립도 가능한 수치다. (하략) 기원을 바란다. 한민족일보 주아람」

대호사랑: 역시… 기다리고 있었다고.

대호부인: 설마! 우리 대호가… 정말로 이번 시즌 홈런 최다 기록 갱신 가능할까?

⤷ 미친X아, 그게 가능하겠냐? 어떻게 한 경기에 홈런 하나씩… 아무리 입 야구라도 정도가 있지.

⤷ 못할 건 또 뭐냐! 대호라면 한 경기에도 몇 개씩 몰아칠 실력이 있는데.

⤷ 그건 맞지. 대호가 삘 받으면 한 경기에서 홈런 네 개 친 적도 두 번이나 된다고.

⤷ 아! 나 그거 알아. 작년 마이너에 있을 때 그거! 사이클링 홈런!

⤷ 정확하겐 홈런 사이클이라고 하죠.

⤷ 참 나! 홈런 하나 친 것 가지고 겁나 빨아대네. 인성 개새낀데.

⤷ 방금 캡처했다. 악플러 신고!

⤷ 뭐래? 그래 많이 신고해 봐라! 내가 대빨이 놈들 협박 한두 번 당하는 중 아냐?

⤷ 한글이나 떼고 와라!

* * *

시즌 마무리를 아홉 경기 남겨 두고 복귀한 대호가 복귀전에서 곧바로 홈런포를 가동하자, 메이저리그 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이제 여덟 경기를 남겨 둔 상태에서 한 시즌 홈런 기록인 73개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는 몇 명 있었다.

그러나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바로 대호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타자는 한 경기에 최소 세 번의 타석에 들어갈 수 있고, 운이 좋다면 네 번에서 다섯 번 정도 가능했다.

즉, 이론상 남은 여덟 경기에서 24~40번의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 중 삼분의 일만 홈런을 친다고 해도 8~13개의 홈런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론 1위 대호의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는 선수도 62개의 홈런을 쳤으니 가능성이 0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솔직히 다들 힘들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더욱이 기록을 위해 상대 투수가 정면 승부를 해 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아니, 홈런의 숫자가 70개를 넘어가게 되면 그때부터는 아마도 승부를 피하는 투수가 많아질 것이 분명했다.

어느 누구도 역사적 기록의 희생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그럴 것이다.

1998년 마크 맥콰이어가 60개의 홈런 기록을 세울 때도 그랬고, 현재까지 한 시즌 홈런 최다 기록 1위를 가지고 있는 배리 본즈가 73개의 홈런을 칠 때도 그랬다.

솔직히 야구팬들은 대호가 약쟁이 배리 본즈가 세운 73개의 기록을 완전히 지워 주기를 바라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추월할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있었기에 이에 열광하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이 아닌 다른 구단의 투수에게서 그런 기록을 만들기를 기원하고 있다.

* * *

직장인은 언제나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그건 어떤 직종에서 일하든지 모두 다 같은 마음이리라.

한나 포커스 역시 빠르게 보고서를 쓰고 데스크에 올린 뒤 퇴근 준비를 하였다.

그런 한나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다.

“한나! 벌써 퇴근 준비하는 거야?”

말을 건 사람은 울프TV 아나운서 중 한 명인 앤더슨 실버였다.

아직은 메인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인기를 가지고 있는 아나운서 중 한 명이었다.

앤더슨 실버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미녀인 한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내 중 한 명이었다.

물론 한나는 자신이 애인이 있음을 이미 알린 상태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그 이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에 반해, 그는 그런 사실을 무시하고 거리낌 없이 들이대는 중이었다.

“아, 네.”

자신에게 말을 건 사람이 앤더슨 실버란 것을 확인한 한나는 작게 움찔하고 표정을 숨기고는 짧게 대답했다.

“나도 퇴근하려는 중인데, 함께 저녁 어때?”

같이 저녁을 먹자는 앤더슨 실버의 말에 한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약혼자와 먹기로 해서요. 죄송해요.”

애인이라 말할 수도 있었지만, 끈덕지게 달라붙는 앤더슨 실버를 떼어 내기 위해 일부러 약혼자라는 말을 강조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의 오늘 일과에 대호와 함께 저녁을 먹는 것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대호는 올림픽을 마치고 시즌에 복귀했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앤더슨 실버가 너무도 집요하게 데이트 신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기와 위치를 이용해 추파를 던지고 있는 그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마음 같아선 구질구질하게 이러지 말라고 하고 싶지만, 단호히 사실을 밝혔음에도 계속해서 이러는데다가 울프TV 내에서 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도 했다.

“약혼자? 에이, 거짓말하는 것 아냐? 한나에게 무슨 약혼자야!”

약혼자와 저녁 데이트가 있다는 한나의 말에도 앤더슨은 이를 믿으려 하지 않고 더욱 집요하게 추근거렸다.

‘하!’

관심도 없는 남자에게 대시를 받는 것은 정말이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대호의 사진을 보여 주고 그가 애인이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는 현재 미국에서 너무나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되었기에 쉽게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자신과 대호의 나이 차이는 솔직히 한나 본인이 생각하는 콤플렉스였기에 결혼 전까진 숨기고 싶었다.

“그럼 약혼자에게 연락해서 함께 하지. 두 사람의 약혼을 축하하는 의미로 내가 저녁을 살 테니까. 어때?”

참으로 무례한 말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에 한나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고 하던 일을 마무리한 뒤 코트와 백을 들고 퇴근했다.

그런 한나의 뒤로 앤더슨 실버는 끈덕지게 따라붙었다.

로비를 지나 현관문을 나올 때까지 그러한 모습은 계속되었다.

* * *

LA데블스와 홈경기를 마치고 대호는 급히 울프TV 캘리포니아 지부로 왔다.

복귀전 홈런을 친 것을 한나와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일주일 전 저녁을 함께하기는 했지만, 그녀를 본지 벌써 8일이나 지났다.

시즌이 끝나고 바로 결혼하기로 약속을 했기에 결혼 준비를 할 것도 많았는데, 그동안 올림픽 출전과 시즌 복귀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했었기에 혼자 준비를 하는 그녀에게 너무도 많은 부담을 안겨 주었다.

대호는 그 사실이 미안해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연락 없이 찾아온 상태였다.

‘지금 나오네!’

차에서 내리려던 중, 현관문이 열리며 그녀의 뒤로 누군가 따라 나오는 것이 보였다.

덜컹!

“한……?”

한 백인 남성이 그녀를 따라 나오자마자 팔을 붙잡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호는 그녀를 부르다 말고 조용히 걸어갔다.

“왜 자꾸 이러는 거죠?”

한나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앤더슨 실버를 보며 소리쳤다.

“왜라니? 그냥 데이트나 하자는 거지.”

회사를 나오자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대뜸 데이트를 하자고 말을 하는 앤더슨.

그런 앤더슨 실버의 태도에 한나는 더욱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 앤더슨 씨와 그럴 생각 전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자꾸 이러면 성추행으로 신고할 거예요.”

한나는 조금 전보다 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더 이상 추근거린다면 성추행으로 회사에 신고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런 한나의 말에 앤더슨 실버는 웃고 있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아나운서로 자리를 잡았고 또 어느 정도 인기도 높다 하지만, 사내 성추행 문제로 구설수에 휘말렸다가는 자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외적인 조건이 뛰어난 미녀이고, 또 자신의 취향에 맞다고 생각해 데이트를 해 보고 싶어 접근했다.

그러나 자신 정도면 충분히 넘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철벽을 치는 한나에게 더욱 오기가 생겨 지금에 이르렀다.

앤더슨 역시 한나에게 애인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애인이 있으면 어떤가?

결혼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서로 즐기자는 건데, 애인이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였다.

솔직히 한나의 반응이 너무 예민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애인이 있다고 해도 자신 정도면 애인을 버리고 자신과 사귀는 것이 훨씬 좋은 것이 아닌가.

앤더슨 실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와 동시에 무언가 모를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걸 느꼈다.

‘이 빌어먹을 년이 감히……!’

앤더슨은 순간적인 화를 해소하기 위해 저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잠깐!”

막 앤더슨의 손이 한나의 얼굴로 향하려던 찰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대호였다.

“당신 뭐야!”

대호는 빠르게 한나의 곁으로 달려가 그녀와 앤더슨의 사이를 막았다.

“넌 또 뭐야!”

이미 분노로 눈이 뒤집힌 앤더슨 실버는 대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한나는 아니었다.

“자기야!”

한나는 막 앤더슨이 휘두르려는 손에 맞을 찰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소리쳤다.

“자기?”

한나에게 폭력을 가하려던 앤더슨은 자신의 앞에 나선 사내로 목표를 바꿔 주먹을 휘두르려다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더욱이 생각보다 상대의 키가 훨씬 컸기에 겁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대호는 그런 비겁한 앤더슨의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

저벅!

196㎝의 커다란 덩치의 대호가 한 걸음 더 다가가 시선을 아래로 꼬나보았다.

“당신 뭐야!”

목소리를 낮추고, 시선을 아래로 하며 윽박지르는 대호.

그런 대호의 목소리에 앤더슨 실버는 조금 전 솟아올랐던 분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현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열심히 굴려 보았다.

5.9(180㎝)피트인 자신보다도 6인치는 더 커 보이는 상대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슨 운동을 한 것인지 피부가 구릿빛으로 강인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자기야! 그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우리 가자!”

앤더슨 실버를 윽박지르고 있는 대호를 막아선 것은 한나였다.

괜히 유명 스포츠 스타인 그가 구설수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가 나선 것이었다.

대호는 자신의 팔을 붙잡으며 만류하는 한나의 모습에, 화가 났음에도 이곳이 그녀가 다니는 회사 앞이란 것을 떠올려 더 이상 일을 키우지 않기로 하였다.

“후! 알았어. 당신 조심해!”

한나의 만류로 화를 삭인 대호는 고개를 돌려 앤더슨을 보며 마지막 경고를 하였다.

“우리 저녁이나 먹으러 가요.”

대호의 화가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자, 한나는 얼른 그와 앤더슨을 떼어 놓기 위해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래.”

자신의 팔을 끌며 보채는 그녀를 뿌리칠 수도 없으니, 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끌려갔다.

한편 대호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놀라 움찔했던 앤더슨은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정말로 약혼자가 있었어?’

한나 포커스는 울프TV 캘리포니아 지부에서도 인기가 상당한 편이다.

현재는 마이너리그를 취재하는 리포터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메이저리그 취재 리포터로 승진할 게 확실시 된 상황.

더군다나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미녀라 호기심 반, 재미 반으로 접근했는데 계속해서 거절하자 자신의 관심을 더 끌기 위한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지금 보니 모든 건 자신의 망상에 불과했다.

‘젠장… 그런데 누구지?’

앤더슨은 아직까지 조금 전 자신을 압박하던 대호를 알아보지 못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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