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올림픽 금메달을 결정하는 파이널 라운드를 기다리던 3일 동안 작은 소동이 있기는 했지만, 대호와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한편, 대한민국이 승자로 결선에서 승리하고 기다리는 동안 패자조로 내려간 미국은 패자조에서 살아남아 있던 일본과 대결을 하고 다시 파이널 라운드로 올라왔다.
이날 패자조 파이널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졌는데, 그 이유는 생각지도 못한 일격을 맞은 미국이 야구 최강국이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WBSC 부회장 맥브레드 맥도웰이 팀에 방문해 한차례 난리를 친 게 큰 영향을 끼쳤다.
KBSA 회장인 이상협에게 무안을 당한 그는 그 화풀이를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 풀어 버린 것이었다.
그 때문에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은 다시 한번 한국과 경기를 하기 위해 총력을 쏟았다.
진정으로 자신들이 최강임을 증명하기 위해 투지를 벼린 것이었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또 달랐다.
그들은 전력을 보전한 채 그랜드 파이널과 이프 게임에서 미국을 상대하기 위해 일부러 패자조로 내려왔다.
한데 승자조에서 최후의 한 팀으로 남을 것이라 예상했던 미국이 한국에 패하여 패자조로 떨어져 버렸다.
이 일로 일본 지도부의 계획이 어긋나 버렸다.
패자조로 떨어질 한국을 상대하기 위해 꾸렸던 구성을 전면 수정해야만 했다.
결국 마운드 운용이 완전히 꼬여 버렸다.
그렇다고 그대로 마운드를 운용하기엔 미국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변수로 인해 일본이 조금 불리하게 경기를 치르게 되었고 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곳은 미국이지 않은가?
심판이 공정하게 경기를 진행한다고 해도 알게 모르게 홈 어드밴티지가 작용했다.
아시아의 몇몇 나라들만큼 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홈 어드밴티지는 어느 나라든 있었다.
9회 초 스코어는 7:8.
홈팀인 미국이 1점 앞서는 상황에서 일본의 마지막 공격 찬스가 주어졌다.
타순은 일본에 좋은 순번인 2번 타자부터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이런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팡!
“스트라이크!”
딱!
팟!
원아웃 1루 상황에서 일본의 4번 타자 이토 후지이가 친 타구가 유격수 앞으로 날아갔다.
살짝 3루 쪽으로 기울어 있던 수비 위치에 있던 마빈 헤들러는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원 바운드 볼을 가볍게 글러브에 포구하고, 노스텝으로 2루베 뿌렸다.
이토 후지이의 타격음을 들은 미국의 2루수 라이언 슬링 또한 2루 베이스를 밟으며 베이스 커버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포구한 뒤, 지체하지 않고 1루로 송구했다.
팡!
“아웃!”
그림 같은 643 병살이 나왔다.
“스리아웃 게임 셋!”
“와아아아!”
경기가 끝났다.
더블플레이 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6(유격수)―4(2루수)―3(1루수) 병살.
멋진 수비가 펼쳐지며 다시 한번 한국과 맞붙겠다는 미국 팀의 염원이 이루어졌다.
반면 일본의 더그아웃은 그 그림 같은 수비를 보며 눈앞이 깜깜해지는 절망감을 느꼈다.
‘그래. 우린 최강 미국 팀에 진 거다! 한국이 아닌 미국에게…….’
일본 올림픽 야구 대표 팀 감독을 맡고 있는 쿠리야마는 자신들이 한국이 아닌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게 진 것이라는 정신 승리를 하였다.
분명 한국 올림픽 야구대표팀이 미국을 이기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음에도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자신들은 미국에 졌다고 자위하였다.
* * *
미국과 일본의 올림픽 야구 대표 팀 간의 패자조 결선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은 추인수와 코칭스태프들은 경기 결과를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미국의 경기력이 우리와 할 때보다 향상되었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그랜드 파이널은 쉽지 않겠어.”
추인수 감독은 오늘 미국의 경기력을 지켜보고 그렇게 대답을 하였다.
비록 자신들과 경기를 치를 때보다는 점수가 적게 났지만, 경기력 측면에선 훨씬 안정적이고 또 짜임새가 타이트해졌다.
“그래도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투수 코치 유영진은 그런 의견을 내뱉었다.
자신이 투수 코치이다 보니, 미국 팀의 투수들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투구 내용이 별다른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야수들의 움직임은 3일 전보다 좋습니다. 하지만 투수들은 그다지…….”
그러니 현재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라면 충분히 저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물론 3일 전보다는 좀 더 힘든 경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유 코치는 그렇게 보았나?”
“예. 이전보다 확연히 살아난 미국의 공격력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3일간 휴식을 취한 투수들을 생각하면 적절할 때 투수 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감 있는 목소리, 추인수 감독에게도 믿음을 가져다주는 말이었다.
유영진은 마치 뒤가 없는 것처럼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듯 투수 운영을 머릿속에 그렸다.
어차피 상승세를 탄 미국 팀을 상대로 이번 게임이 아닌 다음을 기약하면서 경기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오만한 일이었다.
오히려 지금 투수 전력을 많이 소비한 상태에서 전력을 다해 맞서 싸우는 게 가능성이 높았다.
그 판단은 추인수 감독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 * *
하루가 지나고 올림픽 야구 그랜드 파이널 경기가 시작했다.
그랜드 파이널은 홈팀인 미국이 패자조에서 올라왔기에 먼저 공격을 하고, 승자조 최후의 한 팀인 대한민국은 수비부터 시작하였다.
1회 초 마운드에 올라온 것은 3일 전 선발로 나왔던 선동일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틀 더 쉬어 줘야 했겠지만, 지금은 올림픽이라는 특수한 상황.
단기전에서 투수 운영을 시즌 치를 때처럼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물론 추인수 감독이 혹사를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기에, 선동일은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 에이스의 모습을 보이며 4회까지만 맡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는 상태였다.
퍽!
“스트라이크!”
96.5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 몸 쪽으로 날아와 박혔다.
조니 맥도웰은 자신의 무릎 근처로 지나가는 몸 쪽 포심 패스트볼을 보며 진저리를 쳤다.
좌완 투수가 좌타자에게 던지는 몸 쪽 낮은 포심 패스트볼은 타자가 생각하기에 무척이나 무릎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 때문에 자칫 무릎에 공을 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가지게 만들었다.
보통 좌투수에게 좌타자가 유리하다고 하지만, 에이스라 불리는 투수들에게 그러한 약점은 사실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약점을 극복했기에 에이스라 불리는 것이니 말이다.
펑!
휘익!
“스트라이크!”
두 번째 투구는 체인지업이었다.
그러나 조니 맥도웰은 패스트볼을 던질 때와 똑같은 선동일의 투구 폼을 구분하지 못하고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퍽!
“스트라이크, 아웃!”
아쉬워하며 자세를 잡은 직후, 기습적인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왔다.
97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조금 전 85마일의 체인지업을 보다 무려 12마일이나 빠른 포심 패스트볼을 상대하니, 조니 맥도웰은 타격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스탠딩 삼진을 당했다.
‘크윽!’
그는 속으로 자책의 신음을 흘리고 고개를 숙인 채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에이스 선동일 투수, 미국의 선두 타자 조니 맥도웰 선수에게 스탠딩 삼진을 빼앗습니다!”
김승주 아나운서는 명쾌한 목소리로 상황을 전달했다.
“4일 전 105구의 공을 던지고, 4일만에 다시 마운드에 올라 조금 걱정했는데, 선동일 선수 역시 국내 원탑 에이스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투구였습니다.”
하구연 해설 위원도 방금 전 삼구 삼진을 보며 김승주의 말에 덧붙였다.
“오늘 그랜드 파이널도 출발이 좋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선동일 선수가 고작 3일 쉬고 선발로 마운드에 오른다고 해서 조금 걱정을 했는데, 전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네. 말씀드리는 순간, 미국의 2번 타자 크리스 보아첵 스트라이크!”
한국의 중계 부스에서 김승주와 하구연이 중계를 하고 있는 사이, 미국의 2번 타자 크리스 보아첵이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초구 패스트볼을 기다렸는지 공이 날아오기도 전에 스윙을 하였다.
그에 반해 선동일이 던진 공은 82마일짜리 커브였다.
“나이스!”
대호는 중견수 자리에 선 채 경기 초반부터 투수의 흥을 돋는 응원을 하였다.
그러면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우익수 쪽으로 이동하며 수비 위치를 바꾸었다.
좌투수인 선동일의 투구 스타일을 생각하면 우타자인 크리스 보아첵의 타구가 우익수 방향으로 날아올 확률이 높았기에 그러하였다.
따악!
다다다다!
아니나 다를까, 두 번째 투구에 크리스 보아첵이 친 타구가 우중간으로 날아오고 있었는데, 조금 우익수 방향으로 흘렀다.
하지만 대호는 타구를 보며 콜을 하였다.
“마이 볼!”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타구를 보며 뛰던 우익수는 대호의 콜을 듣고 뛰던 속도를 줄이고는 뒤로 빠질 것을 대비해 커버에 들어갔다.
한편 수비 콜을 한 대호는 빠르게 발을 놀려 낙구 지점을 행해 달려 자리를 잡고 안정적으로 포구를 하였다.
퍽!
“아웃!”
자칫 콜을 듣지 못한 2루수와 부딪힐 수도 있었지만, 미리 자리를 잡은 대호를 뒤늦게 발견한 김용호가 몸을 숙이며 피하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무튼 대호가 플라이로 타구를 잡아냄으로써 투아웃이 되었다.
둥둥둥둥!
투아웃이 되면서 관중석에서 얼굴에 태극 문양을 그려 넣은 응원단들의 북소리가 소음을 뚫고 경기장 안을 울렸다.
펑!
“볼!”
3번 타자 타이거 홈즈가 타석에 들어서고 초구가 날아왔는데, 판정은 볼이 되었다.
바깥쪽으로 하나 정도 빠지는 슬라이더였는데, 타이거 홈즈는 이에 속지 않았다.
만약 지난번 경기의 심판이었다면 대번에 스트라이크 판정이 내려졌겠지만, 오늘 주심은 그때의 주심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스트라이크 존의 차이가 있었다.
휘익!
따악!
몸 쪽으로 잘 제구된 공을 타이거 홈즈가 잘 받아쳤다.
‘크윽!’
타이거 홈즈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조금 전 2번 타자 크리스 보아첵의 타구가 우중간으로 날아갔다면, 이번 타이거 홈즈의 타구는 반대로 좌중간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잠시 타이거 홈즈의 장타력을 잊고 있던 대호는 타구를 쫓아 달리면서 자책하였다.
조금 뒤로 물러나 수비를 했더라면 조금 편하게 잡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선동일의 컨디션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지난 경기와는 다르다는 점을 잊고 있던 게 이런 위기를 만든 것이기도 했다.
‘후우!’
펜스의 바운드를 이용해 안정적으로 수비를 할까, 아니면 도전을 해 볼까 그런 생각을 하던 대호는 과감한 수비를 결정하고 몸을 날렸다.
퍽!
몸을 날린 대호는 글러브에 공이 들어오는 느낌을 받고 손을 오므렸다.
쿵!
그와 동시에 공중에 떠 있던 몸이 펜스에 부딪혔다.
‘윽!’
무방비 상태로 펜스와 부딪혔기에 몸에 그 충돌의 여파가 전해졌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손아귀의 힘을 풀지 않았다.
펜스에 부딪히고 땅에 떨어지며 이중으로 충격이 전해졌지만, 대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왼손에 낀 글러브에서 공을 빼내 자신의 곁으로 달려오는 좌익수에게 공을 던져주었다.
“아웃! 체인지!”
“와아아!”
좌중간 깊숙한 타구를 슈퍼맨처럼 몸을 날려 잡아낸 대호의 호수비에 이를 지켜보던 야구팬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전광판에서는 방금 전 대호의 수비 모습을 계속해서 송출하기 시작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