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12화 (112/209)

112화

추인수 감독의 뒤를 따라 들어온 방, 대호는 긴장된 표정으로 조용히 자리에 섰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추인수는 의자에 앉도록 지시를 한 뒤 한쪽에 놓인 노트북을 가지고 와 인터넷 뉴스를 펼쳤다.

“흠흠… 정대호, 너무 긴장하지 말고 잠시 이것 좀 봐라.”

“네?”

느닷없이 노트북을 켜고 보라는 말에 대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잠시 추인수 감독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그의 말대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엇!”

화면을 본 대호는 자신도 모르게 새된 비명을 질렀다.

노트북 화면에 자신과 한나가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대호가 놀란 것은 그 사진 때문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자세히 보니 화면엔 인터넷 뉴스 기사가 떠 있었고, 거기엔 말도 안 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놀람도 잠시, 대호가 뉴스를 읽고 난 뒤 든 감정은 오직 분노였다.

“무슨 일 있는 거냐?”

분노한 표정을 짓는 대호의 얼굴을 보고 추인수 감독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침 일찍 이상협 회장으로부터 질타 아닌 질타를 받으며, 자세한 사항을 보고하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선수의 사생활에 관한 내용이기에 아무리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청소년 대표 팀을 이끌 때 감독과 선수로서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 이렇게 따로 불러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었다.

“약혼녀와 저녁을 먹고 데이트하는 건데 누가 이걸…….”

“응? 약혼녀?”

대호의 대답을 들은 추인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약혼녀라는 그의 말에 자신이 모르고 있던 정보를 듣게 되자 놀란 것이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데?’

추인수도 다른 선수들이 처음 대호의 결혼 계획을 들었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여기 사진 속 여성이 네 약혼자라고?”

너무도 믿기 힘든 이야기였기에 다시 한 번 물어보았다.

“네, 부모님들께는 모두 허락받았습니다. 그리고 저, 이번 시즌 끝나면 결혼해요.”

“……!”

대호는 언제 화를 냈었냐는 듯 밝게 웃는 얼굴로 자신이 이번 시즌 끝나고 결혼을 할 예정임을 밝혔다.

“그, 그래? 그런 거라면… 아! 일단 결혼 축하한다.”

“네, 감사합니다.”

“음. 아무튼 이 사진은 기사처럼 뭐 네 명성을 이용해서 여성을 데려오고 그런 게 아니라, 약혼녀와 저녁 먹고 데이트하는 거란 말이지?”

“예, 그런데 이 기사 정말 뭡니까? 보니까 어제저녁 호텔 식당 같은데.”

대호는 기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또다시 화가 치밀어오르는 듯했다.

따르릉!

갑자기 방 안 전화기에서 벨이 울렸다.

‘회장님이 급하셨나?’

이상협 회장과 통화한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감독실에 전화벨이 울리자, 추인수는 이상협 회장이 사안의 다급함 때문에 재차 전화를 건 것이라 생각했다.

“여보세요, 추인수입니다.”

하지만 전화를 건 상대는 이상협 회장이 아니었다.

“음, 네. 알겠습니다.”

추인수는 대호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받아 봐라.”

“누군가요?”

“네 에이전시라고 하던데.”

“아!”

대호도 생각해 보니, 이런 사안이 터졌다면 당연히 자신의 에이전시에서도 대책을 세울 게 뻔했다.

작게 감탄사를 내뱉곤 곧바로 추인수 감독이 건네주는 전화기를 받았다.

한동안 조용히 에이전시인 맥콰이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호는, 그가 이번 사태에 대한 대응을 어떻게 할지 물어보자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네. 맥콰이어 씨, 우선 말도 안 되는 추측성 기사는 내려 달라고 부탁하고 사실을 얘기해 주세요. 그리고 최초로 기사 올린 곳, 여기는 단호하게 대응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그건 당연한 거고요. 제가 말한 건 어느 정도 수위까지 대응할지에 대해서였습니다.]

맥콰이어는 대호의 말에 동의하며 가이드라인을 정해 달라는 말을 꺼냈다.

상대는 언론사였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약자라 할 수 있는 대호에게 무턱대고 끝까지 가자고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한 스포츠 스타인 대호에게 언론이란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리할 수도 없는 존재였기에 이번을 계기로 삼아 대응 수위를 물어본 것이었다.

“최대한!”

[네? 뭐라고요?]

“최대한 강하게요. 아까 얘기했듯이 그냥 기사를 퍼다 나른 언론사들은 정정 보도를 내는 선에서 그치게 하지만, 최초 보도를 한 곳은 엄정 조치를 요구합니다.”

대호는 다른 언론사는 어찌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보고 있는 고선일보의 기사는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물론이고 이전 2회차와 3회차 때 역시 자신과 관련된 모든 언론 플레이를 시작한 곳이 바로 이 고선일보였다.

사진 제공을 한 사람의 이름 이안용.

그 이름을 보자 더욱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놈이네. 뒷돈은 엄청나게 밝히고, 나와 누나에 대해 악의적 기사를 쓰던 그 쓰레기…….’

다만 의문인 것은 지금은 기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자신과 대립할 때도 예전에 문제가 많아 잠시 퇴출되었다고 했는데, 아마 그 시기가 지금쯤인 듯했다.

“대호야! 언론사를 상대로 그냥 적당히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에이전시에 언론사와 최대한 강경하게 가라고 요구하는 대호의 모습에 추인수는 걱정되어 괜찮겠냐는 물음을 던졌다.

대호가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잘 나가는 스타라 하지만 상대는 언론사였다.

언론사를 상대로 척을 진 이후 제대로 꽃을 피운 스타가 없다.

그게 연예계가 되었든 스포츠 스타가 되었든 결국엔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언론사의 입맛대로 흘러가기 마련이었다.

그 때문에 추인수는 자신의 제자와 같은 대호가 그런 고행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만류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호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계속해서 메이저리그에서 지금과 같은 활약을 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언론사라 해도 결국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자신은 현재 혼자가 아니다.

수십만의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고, 또 많은 메이저리그 팬이 자신을 인정하고 있다.

한국에서야 악의적인 기사로 인해 편이 갈려 싸우고 있다고 하지만, 진실이 알려졌을 때 욕을 먹는 것은 저들이고 현재 자신은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한 게임만 남겨 두고 있었다.

여기서 자신이 뭔가 액션을 취한다면 큰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경기에 져서 올림픽 야구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도 되고 경기에 이겨 금메달을 따건 자신은 잃을 것이 없었다.

‘잘못 건드렸어!’

대호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자신을 잘못 건드렸다 생각했다.

2, 3회차와는 상황이 너무도 달랐다.

그때도 나름 유명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대호의 인기는 당시 국내에 한해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상태.

즉,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고선일보와 거기에 소속된 기자 이안용을 상대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예전처럼 저연차라는 점은 같지만, 성적은 역대급 한국인 메이저리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더군다나 올림픽에서도 빼는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 최소 은메달을 확보한데다가 야구팬들의 지지도도 탄탄했다.

그뿐만 아니라 에이전시와 후원사들의 후광을 입고 있었다.

지금이라면 아무리 거대 언론사라고 해도 질 수 없는 싸움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대호 자신이 활동하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 자리하는 언론사일 뿐이다.

즉 대호에게 큰 영향을 주긴 힘들지만, 반대로 대호가 영향력을 행사하기 편한 상대란 소리다.

그래서 맥콰이어가 물었을 때 ‘최대한’이라 말한 것이기도 했다.

“감독님!”

“응?”

“제 주 무대는 미국이에요.”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대호는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추인수에게 그리 말했다.

“네 각오는 잘 알았다. 그럼 나도 협회를 통해 힘을 보태마!”

대호의 결심이 굳건하다는 것을 알게 된 추인수 감독은 자신도 손 놓고 있기 보단 협회를 통해 한 손 돕기로 하였다.

* * *

대호의 에이전시에서 내놓은 정정 보도 기사가 나가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처음 고선일보에서 대호에 대한 스캔들 기사가 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대체적으로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나간 선수가 부적절한 처신을 취했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사진 속의 여성이 대호와 곧 결혼할 약혼녀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부적절하다는 말은 쏙 들어가 버렸다.

그와 함께 한창 잘하고 있는 선수의 멘탈을 흔들기 위해 특정 세력이 언론을 조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음모론까지 나올 정도였다.

대호도 생각지 못한 영향이었지만, 사실 너무나 뜬금없는 스캔들 기사였기에 진실을 안 이후의 여론이 그러했다.

또 대호의 에이전시인 제리&맥콰이어는 단순히 고선일보에 항의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대호를 후원하던 후원사들을 통해 금전적 압박까지 함께 들어간 것이었다.

줄소송.

N사를 비롯한 각종 후원 업체들은 고선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만약 이안용의 입김이 닿은 악의적인 기사 내용이 사실이었다면 후원 업체들이 품위 유지 위반 조항을 들어 대호에게 소송을 걸었겠지만, 그게 아니라 조작을 통해 대호의 명예를 깎아내렸으니 당연한 조치였다.

더불어 기존에 넣고 있던 광고를 빼고 다른 언론사에 몰아주며 고선일보 내에서의 분위기도 좋지 않게 만들었다.

* * *

「2032년 9월 21일자 고선일보의 기사 중 정대호(20) 선수에 대한 스캔들 기사가 거짓으로 밝혀졌다. 기사의 사진 속 상대 여성은 정대호 선수와 올해 2032시즌이 끝나는 대로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임을 정대호 선수의 대리인 제리&맥콰이어에서 알렸다. (중략) 한나 포커스는 울프TV의 메이저리그 리포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정대호 선수와는 작년 전반기에 불거진 불법 약물 사용 의혹 해명 과정에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였다.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구단 관계자와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것으로, 고선일보의 기사처럼 부적절한 관계는 전혀 아니었다. …(하략) 2032년 9월 22일 우리겨레일보 김아람」

대호사랑: 김아람 기자 역시 개념 있는 기자네.

대호부인: ㅠㅠ 결혼을 한다니… 뭐가 그리 급해서 벌써 결혼해!

대호애인: 오빠! 나두고 어떻게 그럴 수 있어!(덜렁덜렁.)

⤷ 아 씨! 눈 버렸네.

⤷ 이건 또 뭔 개또라이 같은 놈이야?

대리기사키보드: 헐… 중립 기어 박기 참 잘했네. 괜히 뇌피셜 씨부렸다가 나도 소송 걸리 뻔했네.

⤷진짜로 잘한 선택이었음. 지금 고선일보 난리 났음.

⤷고선일보만 아니라 기사 썼던 그 기레기하고 사진 제공한 놈도 대호 에이전시하고 후원사들이 소송 걸었대!

⤷허위 사실로 악플 단 놈들도 함께 걸렸다고 함. 그런데 그 소송 금액이 어휴…….

대호가 에이전시인 맥콰이어의 전화를 받고 최대한 싸워 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이 그대로 핵폭탄이 되어 떨어졌다.

처음 기사를 낸 고선일보와 이안용, 그리고 그 기사에 악플을 달고 대호를 조롱했던 이들 모두에 대해 소송이 걸려 버렸다.

물론 악플을 달았다고 대호가 무차별적으로 소송 난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대호 자신을 향해 욕하던 이들은 수위가 아주 심하지 않은 이상 넘어갔지만, 약혼녀 한나를 비롯해 가족들에 대한 언급을 하던 무개념 악플러들은 모두 소송 당했다.

그런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악플러들이 대량 고소를 당했어도 대호에게 비난을 가하는 이는 없었다.

* * *

“야, 정대호. 다행이네.”

태경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몸을 풀고 있던 대호에게 다가와 그렇게 말을 걸었다.

“다행은 무슨… 당연한 결과지.”

위로의 말에 대호는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하지만 태경은 대호의 대범함에 놀라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과 척을 지고 이렇게 무사히 넘어가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경은 그와 같은 구단에 있던 선배 중 한 명이 언론에 의해 커리어가 갈기갈기 찢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그렇기에 대호에 관한 스캔들 기사를 뒤늦게 듣고 그를 무척이나 걱정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스타라 해도 언론과 척을 지게 되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옆에서 보았기에 무척이나 걱정되었는데, 단 하루 만에 이렇게 반박 기사와 함께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반전이 일어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튼 이렇게 된 거, 얼른 털어 내고 금메달 따서 돌아가자!”

“난 바로 리그 복귀해서 한국 안 간다.”

태경은 곧바로 메이저리그 시즌에 복귀한다는 대답에 겸연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렇지.”

잠시 머쓱한 표정을 짓던 태경과 눈이 마주친 대호는 웃음을 빵 터뜨렸다.

“푸하하핫!”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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