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KBSA 회장 이상협은 이른 새벽부터 소란을 일으키는 비서로 인해 기분이 좋지 못했다.
어제 올림픽 야구 승자조 결선에서 최강 미국을 이기고 승자조 최종 한 팀이 되어 너무도 기분이 좋아 저녁 늦은 시간까지 다른 종목 관계자들과 한잔하지 않았던가.
그런 이상협이 지금 황당한 표정으로 아직 숙취가 가시지 않은 얼굴로 비서를 보았다.
“뭐라고? 무슨 일이 생겼다고?”
너무도 느닷없는 이야기에 황당한 기분마져 들었다.
“정대호 선수에 대한 기사 때문에…….”
비서는 붉어진 얼굴에 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선수가 저녁에 이성과 밥을 먹든 호텔에서 누굴 만나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이 난리야!”
비서에게 말을 전해 들은 이상협 회장은 그만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대체 그게 뉴스거리가 되고, 또 왜 이 난리를 피우는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번 올림픽 야구 대표 팀 선발을 두고 역대 최약체니 뭐니 떠들며 사기 하락에 큰 영향을 끼친 언론이 올림픽 메달, 그것도 최소 은메달을 확보한 시점에서 마지막 경기 만을 남겨 놓은 이 상황을 또다시 어수선하게 만들어 더 화가 나는 것도 있었다.
“그리고 뭐, 다 큰 성인이 어찌하는지 우리가 다 감시하란 소린가!”
다시 한번 소리를 치자, 비서가 쩔쩔매며 말했다.
“일부 팬들이 정대호 선수에 대해 커버를 해 주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기사의 논조가 대회 기간 중 일탈을 저지르는 선수라는 식으로 서술하다 보니, 부정적인 의견이 우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비서의 말을 들어 보면, 아직 올림픽 경기가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 젊은 선수가 혈기를 참지 못하고 여성을 호텔로 불러들였다는 식으로 여론이 흘러가는 듯했다.
게다가 유명 스포츠 스타의 유명세를 이용해 여자를 부른 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나이는 어리지만 현재 올림픽 야구 대표 팀에서 누구보다 큰 활약을 해 주고 있는 정대호에 대해 올림픽 대표로써 자격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처음 기사를 냈던 고선일보의 경우 이 사건을 더욱 키우려는지 몇몇 극렬 시민 단체와 손을 잡고 분위기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 씨X! 이 새끼들은 우리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는 건지… 매번 이러네.”
이상협은 숙취로 인해 두통이 밀려오는 중 처음 대호에 대한 비난 섞인 기사를 내보낸 고선일보를 떠올리자 더욱 골치가 아파 와 양 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대표 팀 추 감독 연결해 봐!”
이대로 있을 수는 없기에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 감독 추인수에게 자초지종을 들을 필요성을 느꼈다.
KBSA 회장인 이상협이 그렇게 대호의 스캔들 기사로 인한 파장을 잠재우기 위해 대책을 세울 때, 또 다른 곳에서도 대호의 스캔들 기사에 대해 비상이 걸렸다.
그곳은 바로 대호의 에이전시인 제리&맥콰이어였다.
* * *
따르르릉!
늦은 저녁 시각, 미국 동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한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한창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던 맥콰이어는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보통 때라면 비서가 전화를 받았겠지만, 현재 시간은 비서도 퇴근한 늦은 시간이었다.
그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본인이 직접 받아야만 했다.
“여보세요. 제리&맥콰이어입니다.”
공동대표 중 한 명이지만 맥콰이어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사람이었기에 전화를 받는 것도 다른 일반 직원과 다름이 없었다.
“뭐?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고 그러는 거야?”
전화를 건 사람은 한국에 파견된 직원이었는데, 맥콰이어는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황당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잠시만 기다려 봐!”
맥콰이어는 파견 직원이 말한 뉴스를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조작해 인너넷 뉴스를 모니터에 띄웠다.
“…이게 뭐 어쨌다고? 스캔들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운 사진은 그저 정대호와 연인인 한나 포커스가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다 키스를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뭐가 문제라는 거지?’
그러나 파견 직원이 기사에 적힌 내용을 알려 주자, 그의 미간은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사진을 보던 맥콰이어가 중얼거렸다.
“이거 각도를 보니 도찰을 한 것 같은데?”
기사의 내용이나 사진의 각도를 보니, 기사를 쓴 기자가 작정하고 정대호를 찍어 내기 위해 쓴 기획 기사 같았다.
아니면 일부러 스캔들을 만들어 돈을 벌려는 수작이거나.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보통 기획 기사를 쓰든, 스캔들 기사를 내보내든 기자들의 목적은 대부분 돈이었다.
그렇기에 보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반적으로 기사를 내보내기 전 당사자나 에이전트, 혹은 소속 구단 등에 연락을 하여 협상을 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는 편이 더 돈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혹은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스캔들 기사가 나가면 본인이나 상대방에게 크게 악영향이 가 자칫 이미지에 손상을 입을 수도 있어 보통은 돈으로 해결을 보려는 크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기사가 나간 시각을 보니, 아직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즉, 확인 절차나 협상 없이 곧바로 기사가 나갔다는 뜻.
“알았어! 난 미스터 정과 통화를 해 볼 테니, 제이슨은 그곳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기사를 정리하도록.”
딸깍.
정보 수집과 분위기를 조사해 보라는 지시를 내린 맥콰이어는 바로 대호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한 이야기를 들어 보려 하였다.
하지만 시간을 확인하고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지금 시각이면 잠자리에 들어갈 시간이었기에 의뢰인에게 그런 무례를 저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맥콰이어는 뭔가를 고심하다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반델라 이사님. 제리&맥콰이어의 맥콰이어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가 늦은 시간 전화를 건 곳은 대호와 후원 계약을 한 대형 스포츠 브렌드 N사였다.
후원 계약을 맺은 스타가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켜 후원사와 소송에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경우는 대호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고선일보 쪽이 문제를 만든 것이기에 이를 논의하기 위해서 먼저 연락을 한 것이다.
그리고 N사에서 에이전트에 연락을 주는 것보다는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게 좀 더 유리한 입장에서 말할 수 있을 거라는 계산도 들어가 있었다.
그래야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때, N사의 도움을 받기 쉬워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 * *
이른 아침 이상협 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추인수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자고 일어났는데 대표 팀 핵심 선수라 할 수 있는 정대호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났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였다.
사실 추인수도 어제 밤 미국전 승리에 취해 코칭스태프들과 따로 2차 술자리를 가졌다.
1차로는 선수들과 함께 가벼운 파티를 하고, 선수들끼리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먼저 빠져나와 축하를 했던 것이다.
‘내가 알기로 선수들은 1차를 빨리 마치고 각자 개인 시간을 가졌다고 했는데……?’
이는 주장인 김대호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1차 축하 파티가 끝나고 선수들은 각자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고, 대호도 약속이 있다면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고 했다.
최인수가 이를 어떻게 알고 있냐면 코칭스태프들과 2차를 하기 위해 방에 모여 있을 때, 김대호가 몇몇 고참급 선수들과 함께 방에 찾아와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협 회장의 추궁을 받자 자다가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싶었다.
“염려하시는 일은 없겠지만, 제가 자세히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전화 통화를 마친 추인수는 급히 씻고 코칭스태프들을 소집했다.
* * *
한국과 미국에서 난리가 난 줄도 모르고 대호는 친한 선수들과 자신의 결혼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넌 미국에서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언제 애인까지…….”
최태경은 시즌이 끝나고 바로 결혼을 한다는 대호의 말에 좀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야, 야! 대호가 적응이 필요한 놈이냐?”
“아!”
김제경이 무표정한 말로 한마디 하자, 최태경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건 주변에 있던 김대호나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 야구 역사상 역대급 계약금을 받고 미국에 진출한 대호.
그의 소식은 한국에서도 당연히 화제가 되었고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도 한동안 이야깃거리였다.
시범 경기에서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메이저리그 시스템으로 인해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쌓기 위해 하이 싱글A로 내려간 이후 마이너리그를 폭격하며 전 세계 야구팬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 성과를 대략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불과 2주 만에 하이 싱글A를 폭파하고 더블A로 승급하고, 그곳도 초토화시키며 약물 사용 의혹까지 리얼리티 쇼를 찍으며 정면 돌파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야구 역사상 단 두 명만이 가지고 있던 기록을 세명으로 만들었다.
바로 홈런 사이클.
심지어 트리플A에서 또 한번 기록하기까지 하며 굳이 이 선수를 마이너에서 시간 낭비 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논의까지 있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마이너리그에서 전반기를 보내고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난 후반기부터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어 본격적인 메이저리거로써 기록을 쌓기 시작했다.
이런 것을 떠올리던 태경은 그냥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그럼 결혼 상대는 누구야?”
시즌 끝이라면 이제 불과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대호의 결혼 상대에 대해 알지 못하는 태경이었기에 물어본 것이다.
“응. 내가 더블A일 때 말도 안 되는 논란이 있었던 때 기억 나?”
“아, 그 스테로이드 어쩌고 하던 거?”
“맞아. 그때 구단과 에이전시에서 루머에 대해 정면 돌파를 하기로 했었거든.”
“리얼리티 쇼면 나도 본 적 있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당시 한국에서도 그 문제로 난리가 난 이후 자막 방송을 해 준 것을 떠올렸다.
“더블A 리그를 치르던 곳 지역 방송국 리포터였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사귀다 올해 올스타 브레이크 때 부모님께 허락 받았어!”
“아!”
“프러포즈는 했냐? 그거 안하고 넘어가면 너 두고두고 구박 받는다.”
대호의 이야기를 들은 김대호는 자신의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떠올리다 피가 되는 조언을 하였다.
“하하, 아직 못했지만 계획은 하고 있어요.”
“그래? 어떻게 하려고? 설마 TV에 떠도는 흔한 프러포즈를 따라하려는 것은 아니지? 그거 여자들이 싫어하는 최악의 프러포즈다.”
김대호의 말에 대호는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을 하였다.
“당연히 아니죠. 아니, 비슷하긴 한가?”
“뭐?”
“월드 시리즈까지 우승하고 청혼을 하면 가장 좋겠지만, 시즌이 끝나는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바로 공개적으로 프러포즈를 하려고요,”
“하긴 그게 야구선수로서 가장 무난하면서 상대에게 진정성을 보여 주는 것이긴 하지.”
대호의 이야기에 주변에 있던 기혼자 선수들 역시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어? 감독님과 코치님 나오신다.”
대호의 결혼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추인수 감독과 코치들이 나오는 것을 본 김제경이 소리쳤다.
어차피 오전 훈련은 회복 훈련만 할 예정이었기에, 다들 미리 몸을 풀어 둔 상황.
급한 것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이 나오는 것을 확인한 선수들은 그들을 보며 인사를 하였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인사를 받은 추인수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무슨 일이지?’
선수들은 표정이 굳어 있는 코칭스태프들을 보며 속으로 의아해 하였다.
당장 어제만 해도 최강 미국도 이기고 기분 좋게 축하 파티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데 불과 하룻밤 만에 표정들이 굳어져 있는 것이 의아할 뿐이었다.
“유 코치와 박 코치는 선수들 회복 훈련 지켜보고, 정대호! 너는 잠시 나와 이야기 좀 하자!”
굳은 표정의 추인수 감독은 코치들에게 다른 선수들의 회복 훈련을 맡기고 대호를 불러 면담을 하자고 했다.
너무도 이상한 추인수 감독의 분위기에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 대호의 등 뒤로 선수들이 코치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냐 물어보는 소리가 들렸다.
대호도 궁금증이 일기는 했지만, 조금 뒤 추인수 감독에게 들을 것이기에 참고 그의 뒤를 따라 갔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