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2032년 미국 올림픽 야구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 스타디움에서 전해진 대한민국과 미국의 승자조 결선 결과를 듣고 모두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한민국이 미국을 20:10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이겼기 때문이다.
승자조 결선과 패자조 한 팀을 가르는 경기부턴 콜드게임이 없고 무조건 9회까지 경기를 정상적으로 치러야 하기에 변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이 세계 최강의 야구 리그를 가지고 있는 미국 팀이 무조건 승리를 하고 유리한 고지에서 패자조 최후의 한 팀을 기다릴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국이 이겨 버렸다.
미국은 한국에 패해 패자조로 떨어져 버렸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방심한 미국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패했다고 대서특필하였다.
하지만 일부 야구팬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핫한 공격력과 수비 능력을 가진 정대호가 속한 팀을 너무 약하게 본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
올림픽이 있기 전까지 메이저리그 홈런 부문 1위를 달리고, 타점과 타율 부문에서도 1위였으며, 안타의 개수도 1위를 달리는 그야말로 메이저리그 최강의 타자를 보유한 한국 팀을 약팀으로 분류한 것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판단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일부 팬들의 주장은 올림픽 기간 동안 대호가 기록한 성적이 알려지면서 호응을 얻어 가기 시작했다.
* * *
내일은 홈런왕: 이게 정말 올림픽 경기 네 경기 만에 이룬 성적이냐?
대호부인: 17타석 15타수 13안타 7홈런 2볼넷 6도루… 혼자 야구 게임하네!
⤷그러게, 야구 경기가 아니라 혼자 게임하는 줄.
게임폐인: 야구 게임하지 그럼 뭐 함?
⤷아재요. 댓글 좀 보고 글 쓰세요.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글입니다>
한국산호랑이: 내가 그랬지, 정대호는 진짜라고?
⤷네가 언제?
⤷너 누구냐? 네가 누군데 정대호가 진짠지 가짠지 함부로 말하냐?
* * *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을 승자조 결선에서 이기자 대한민국 야구팬은 물론이고 올림픽을 구경하고 있던 국민 모두가 깜짝 놀랐다.
솔직히 처음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 꾸려졌을 때까지만 해도 비판의 말이 정말 많이 나왔다.
이 스쿼드로 올림픽 메달을 따는 게 가능하냐는 것이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선수들이 예전의 일부 사례처럼 빼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아메리칸리그에서 홈런 부분을 비롯한 모든 공격 지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정대호의 선발은 그나마 대표 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올림픽에 들어가면서 야구 대표 팀의 실력이 자신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 드러나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올림픽 승자조 최종 한 팀에 이름을 올린 상황.
미국에 이기고 3일의 휴식이 주어지면서 전력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은 느긋하게 패자조에서 이기고 올라올 상대를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모두 어떻게 생각해?”
추인수 감독은 코칭스태프들을 보며 물었다.
“아무래도 일본보단 미국이 올라올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유영진은 자신이 생각한 일본과 미국의 전력을 비교하며 그렇게 의견을 냈다.
“그렇지. 일본보단 미국이 전력 면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니.”
“그건 모르는 일입니다. 일본의 감독인 쿠리야마를 생각하면…….”
타격 보조 코치인 최인섭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일본의 쿠리야마 감독은 작전에 능한 감독이었다.
일본 야구를 표현할 때 흔히 스몰 야구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만큼 별의별 작전을 많이 쓰곤 했다.
대표적인 것이 클린업트리오라고 불리는 3, 4, 5번 타자에게도 거리낌 없이 희생번트를 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필요하다면 고의 사구도 거침없었다.
그런 일본야구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이번 일본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감독 쿠리야마였다.
이러한 쿠리야마 감독이 이끄는 일본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라면,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을 이기고 결선에 올라올지도 몰랐다.
“하기야… 솔직히 일본 팀의 성격도 그렇고, 메이저리거가 없는 미국 팀이라면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길지도 모르겠군.”
추인수가 중얼거리자 코칭스태프들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떤 팀이 올라오든 이길 수 있게 준비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게 코칭스태프와 감독은 마지막 결선을 위해 한참동안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였다.
* * *
한편 그 시각, 대호는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자신의 연인인 한나였다.
두 사람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야?”
한나의 가족에게 인사하고 결혼 승낙을 얻은 뒤, 두 사람은 말을 놓게 되었다.
“왜? 내가 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울프TV의 스포츠 리포터인 한나는 지금 시간이라면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 한창 메이저리그 경기를 따라다녀야 할 때였다.
그런 그녀가 메이저리그 경기가 있는 텍사스가 아닌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오다니 이상했다.
그러자 한나는 남자친구의 반응에 샐쭉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내 말은, 반갑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괜찮냐는 뜻이지.”
대호는 당황하며 대답하였다.
“호호, 장난친 거야!”
한나는 당황하며 변명하는 대호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응? 장난?”
장난이란 한나의 말에 대호는 당황했다.
평소에 장난을 잘 치지 않는 그녀가 보여 준 뜻밖의 태도에 그저 가만히 눈만 깜박거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놀라운 변화였다.
나이가 많다는 것 때문에 언제나 자신의 앞에서 어른스러운 모습만 보이려고 하던 그녀가 어느 순간부터 자신과 어울리기 위해 장난도 치고 또 애교도 부리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응. 장난.”
“아 장난이었구나. 놀랐잖아!”
“뭘 그런 걸 가지고… 아 참, 늦었지만 결선에 오른 것 축하해!”
한나는 남자친구인 대호가 고국의 야구 올림픽 대표 팀으로 차출되어 경기에 나가 활약을 하고, 또 결선에 오른 것을 기뻐하며 축하해 주었다.
“내가 미국 팀을 이기고 올라간 건데, 그래도 괜찮아?”
“뭐 어때!”
자신의 조국인 미국 대표 팀을 이기고 올라갔음에도 한나는 너무나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그냥 대호가 신경을 쓰지 않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아무렇지 않아 보여 오히려 대호가 당황했다.
“정말로 아무런 느낌 없어?”
“그렇다니까! 어차피 이번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라고 해 봐야 아마추어들 아냐?”
“아마추어까진 아니고, 마이너리거들이지.”
“아마추어나 마이너리거나 비슷하지. 메이저리거들이 진 것도 아니고 별로 상관없어.”
한나는 미국 야구의 진정한 실력자들은 메이저리그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패배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듯했다.
아니, 사실 그녀에겐 메이저리거로 야구 대표 팀이 구성되었다고 한들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남자는 대호였고, 그가 속한 팀이 한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었기에, 응원은 하지 않더라도 이긴 것에 대한 축하는 해 줄 수 있었다.
“고마워!”
쪽!
대호는 한나의 대답에 고맙다는 말을 듣자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하였다.
애정이 듬뿍 담긴 키스를 받고 한나 역시 빙그레 미소 지었다.
* * *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나눌 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어? 저거 정수호 아냐?’
그는 고선일보에 있다가 무리한 취재로 인해 구설수에 올라 그만두고 미국으로 도피한 기자 이안용이었다.
원래가 연예부에 소속된 기자였다 보니, 기삿거리가 보이자 눈을 반짝였다.
‘여자친구? 아니면 그냥 가볍게 만나는 사이? 어찌 됐든…….’
그는 대호의 나이를 떠올리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이란 것을 기억해 냈다.
‘돈 좀 되겠는데.’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돈이었다.
대형 언론사였던 고선일보에 다니면서 인터넷 찌라시를 아무렇게나 뉴스로 가져다 쓰던 것도 모두 돈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팩트 체크도 없이 언론사의 뒷배만 믿고 문제가 터져 도피했음에도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원래 그런 망종이었기에 그저 지난번에는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찰칵! 찰칵!
기자를 그만두었으면서도 언제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그였기에 대호와 한나의 데이트 하는 장면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회사에서는 잘렸지만, 이 정도 소스를 넘기면… 크흐흐!’
* * *
「고선일보 2032. 9. 21. 13:00
올림픽이 한창인 지금,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여성과 밤늦은 시간에 호텔에서…(중략)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J씨는 20일 저녁 9시, 샹그릴라 호텔에서 밀회를 가졌다. 아직 어린 선수가 벌써부터 여성과 늦은 시각 호텔에…(중략)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말 안타깝다.」
LA는데블스: 씨X!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이니셜이 J씨면 딱 나왔네. 참 나, 이제 겨우 주민등록증에 잉크나 말랐을까 말까한 어린놈이… 말세다 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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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보면 식당 같은데, 도촬이네!
⤷ 도촬이든 어쨌든 국가 대표로 대회에 나가서 저래도 되나?
⤷ 안 될 건 뭐야! 성인인데, 국가 대표라고 해도 여자친구 좀 만날 수도 있지.
⤷ 아직 대회가 끝난 것도 아닌데 늦은 시간에 호텔이라니. 그건 좀…….
대호사랑: 사진 속 주인공은 정대호 선수와 울프TV의 리포터인 한나 포커스 같네요. 두 사람 무척 친해요. 작년 정대호 선수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할 때부터 인터뷰하고 그랬어요.
⤷ 맞아! 한나 포커스. 미국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선 야구 여신으로 통하지.
⤷ 야구 여신이건 어쨌건 늦은 시각 호텔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거지.
⤷ 성인 두 명이 만나는 게 뭐가 부적절하다는 건지 모르겠네. 젊은 남녀가 좋은 감정이 생기면 호텔에서 데이트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무슨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참견인지…….
올림픽 기간 동안 사람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예상치 못한 활약으로 더욱 인기를 끄는 선수가 늦은 시각 이성과 호텔에서 만났다는 기사가 나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러고 나서 늦은 시각, 호텔이라는 자극적인 코드에 언쟁이 벌어졌다.
한 사람이 시작한 악플에 원래부터 악플을 달던 악플러나, 대호를 싫어하는 이들 중 일부가 이 기사에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말은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가 대회 중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 대호를 좋아하는 야구팬은 악플에 맞서 성인이 이성을 만나는 것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취지로 실드를 쳤다.
그러다 보니 양 진영은 대호를 두고 더욱 불타올랐다.
* * *
승자조 결선이 끝나고 3일의 휴식 기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선수들은 휴식 기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이른 새벽 시간 평소와 같이 루틴대로 움직였다.
새벽 운동을 하고, 간단한 샤워를 한 뒤 아침 식사를 하고, 소화를 시키기 위해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고 오전에는 함께 모여 팀 훈련을 하였다.
“대호 너, 어제 저녁에 누구 만났냐?”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대호의 곁으로 다가온 최태경이 선배들의 눈치를 보다 물었다.
“응? 어. 여자친구가 시간이 돼서 오랜만에 만났지.”
대호는 어제 저녁 한나와의 저녁 식사를 떠올리며 대답을 하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더 오래 시간을 보냈겠지만, 현재 올림픽 기간이고 자신은 국가를 대표해 대회에 참가하고 있으니 다른 선수들과의 관계를 생각해 그러지 못했다.
한편 순순히 대답을 해주는 대호의 대답에 최태경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게 사실이야? 너 그거 선배들이 알면 어쩌려고?”
“응? 그게 뭐? 일 때문에 멀리 떨어졌던 약혼녀가 시간이 나서 찾아와 축하를 해 주는데 그럼 만나지 않고 돌려보내?”
대호는 뭔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대답했다.
“응? 약혼녀?”
“엉, 나 이번 시즌 끝나면 바로 결혼할 거다.”
대호는 별것 아니란 듯 자신의 결혼 계획을 들려주었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인데 결혼을 하겠다고?”
너무 놀란 태경이 새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누가 결혼을 한다고?”
오전 훈련을 하기 전 단체로 몸을 풀던 중 들린 태경의 목소리에 다가온 김대호가 물었다.
“아… 예. 저 이번 시즌 끝나면 결혼해요.”
대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하였다.
“그래? 아직 스무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결혼을 하겠다고?”
조금 전 최태경이 대호의 이야기를 듣고 한 말을 그대로 하는 김대호였다.
“좋아하는 이성이 있고, 그 사람 또한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굳이 나이 생각해서 결혼을 늦출 이유가 있나요.”
대호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뭐 그렇긴 한데, 이르지 않냐?”
대호의 나이가 스무 살임을 알고 있는 김대호로서는 그렇게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호는 이번이 4회차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인생 경험이라면 앞에 있는 김대호 보다도 더 많았다.
“저희와 같은 운동선수는 빨리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 좋잖아요.”
그렇다고 그런 말을 할 수도 없으니, 별다른 설명을 하기보단 원론적인 대답을 함으로써 김대호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