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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108화 (108/209)

108화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2회 초 공격은 또다시 1번 타자인 정대호부터 시작되었다.

1회 초 공격에서는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의 위치 정보를 알아내고, 또 솔로 홈런을 치면서 공격의 단초를 마련했다.

그러고 나서 1회 말 수비에서는 타이거 홈즈가 친 행운의 타구를 끝까지 쫒아가 안정적으로 포구를 하며 외야 플라이 아웃을 만들었다.

대호가 발이 빠르지 않고 평범한 외야수였다면, 아마도 타이거 홈즈의 타구는 안타가 되었으리라.

잘 맞건, 아니면 눈 감고 친 타구가 우연히 맞아 행운의 안타가 되었든 타자가 살아나가면 안타다.

그런 면에서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외야 플라이 볼을 안정적으로 잡은 것이었지만, 야구를 알고 있는 전문가라면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수비였음을 알 수 있었다.

“1회 초 공격에서도 선두 타자로 나와 선발투수와 수 싸움을 펼치다 솔로 홈런을 만들어냈던 정대호 선수, 수비에서도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내면서 투수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하하! 미국의 2번 타자가 친 플라이 볼이 사실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타구였습니다. 정대호 선수는 그런 타구를 정말로 너무도 쉽고 안정적으로 잡아내다니, 명불허전이군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타구였습니까?”

하구연 해설위원의 이야기를 듣던 김승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런 김승주의 반응에 하구연 해설은 부연 설명을 하였다.

“아주 어려운 타구라 보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실 정대호 선수의 빠른 발이 아니었다면 외야 플라이가 아니라 외야 안타가 되었을 타구였습니다.”

미국의 2번 타자 타이거 홈즈가 친 타구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한 하구연 해설은 중견수 앞 안타가 되었을 타구가 대호의 빠른 발로 인해 외야 플라이가 되었던 것을 덧붙여 이야기 하였다.

그러면서 국내 프로 야구선수들 중 대호와 같은 중견수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이들과 비교하는 자료를 띄우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여기 보시면 김삼영 선수의……. 그리고 서울 슈퍼스타의 박중만 선수가 8월 20일 있었던 경기를…….”

조금 전 1회말에 대호가 보여 주었던 플레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던 경기를 띄우며 비교, 분석을 해 주자 김승주 아나운서도 조금 전 그가 한 말을 이해했다.

“이렇게 자료를 보니 정대호 선수의 수비 실력을 곧바로 알 수 있군요.”

김승주도 이제는 알 수 있었다.

보기에 쉬워 보였더라도 그게 얼마나 어려운 수비였는지 말이다.

KBO에서 활약하고 있는 주전 중견수들에 비해 대호가 빠른 발을 이용해 얼마나 넓은 수비 범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점이 팀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뒤늦게 알게 되면서 감탄하였다.

“말씀 드리는 사이 선두 타자 정대호 선수, 타석에 들어섭니다.”

“하하. 정대호 선수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기대가 됩니다.”

“맞습니다. 저도 매번 정대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정말 기대됩니다.”

* * *

‘기회가 되면 무조건…….’

대호는 이왕 올림픽에 나온 것이니, 기회가 될 때 금메달을 따자는 생각에 투구 준비를 하는 투수를 노려보았다.

미국의 투수는 벌써 네 번째 투수다.

어차피 이미 동메달 확보나 마찬가지이니 전력을 다할지 알 수는 없지만, 길어 봐야 3~4회면 내려갈 것이라 생각하고 긴장을 풀었다.

그렇다고 방심을 하지는 않았다.

긴장을 풀고 자연스럽게 집중을 하면서 투수의 공을 기다렸다.

휘익!

팡!

“볼!”

안쪽 낮은 포심이었다.

구속은 92마일로 살짝 안쪽으로 휘는 투심 비슷한 공이었기에, 눈에 들어왔어도 굳이 초구에 배트가 나갈 정도의 공은 아니었다.

‘구속은 그리 빠르지 않은데, 무브먼트가 좋네!’

대호는 대기 타석에서는 보지 못했던 공의 움직임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좋은 투수라는 판단을 내렸다.

투수의 공은 구속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제구나 공의 회전수 또한 전부라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골고루 조화를 이룰 때 좋은 투구가 나온다.

그것을 생각하면 선발로 나왔던 에릭 헤밀턴보다 지금 마운드에 있는 미카엘 카브레라가 훨씬 좋은 투수였다.

비록 네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점을 내주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말이다.

‘뭐, 그렇다고 못 칠 정도는 아니네.’

그러나 대호는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미카엘 카브레라가 좋은 투수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대호가 감당하지 못할 투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그가 마이너리그에 있는 것은 그만큼 뭔가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바로 구속이었다.

더블A에서 활약하는 미카엘 카브레라의 공은 제구와 무브먼트가 좋지만, 대호는 메이저리그에서 더욱 뛰어난 투수들의 공도 홈런과 안타를 만들어 냈으니까.

스트라이크를 잡으려 그랬는지, 초구와 비슷한 코스지만 살짝 높은 공이 날아왔다.

사실 대호를 비롯해 리그 정상급 수준의 타자라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비슷한 코스의 공이 들어오면 놓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결과는 투수에게 암담한 절망감을 가지게 만들었다.

따아아악!

투구의 궤적을 읽은 대호는 몸 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온 몸의 힘을 집중해 한 점에 모아 때렸다.

1회 초 솔로 홈런을 친 타격이 바깥쪽으로 날아오던 공을 결대로 밀어 친 것이라면, 이번에는 그가 어째서 메이저리그에서 홈런 선두를 달리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타격이 나왔다.

“와아아아!”

스윙을 하고 대호는 잠시 자신이 친 타구를 지켜보았다.

맞는 순간 대형 홈런이 될 것을 알았기에 타격 후 바로 뛰던 1회와는 다르게 퍼포먼스를 보여 준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타구 감상 같은 행위를 했으면 곧바로 다음 타석, 혹은 같은 팀 동료들에게 보복구가 날아왔을 테지만, 현재는 그런 경기력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악습을 지양하고 있었기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한편 대호가 친 타구의 타격음을 들은 미카엘은 고개를 떨궜다.

소리를 듣고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자신이 던진 공이 대형 홈런이 되었음을 말이다.

타타타탓!

천천히 조깅을 하듯 마운드를 돌고 있는 대호의 달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듣던 것보다 더 엄청난 괴물이군!’

미카엘 카브레라는 1루를 돌아 2루로 향하고 있는 대호의 모습을 보고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보다 네 살이나 어린 선수였지만, 자신은 아직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반면 대호는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

그것도 단순하게 적당한 성적을 내며 그럭저럭 선발과 백업을 오가는 선수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확고히 하며 메이저리그에서도 홈런 선두를 달리고 있는 빅 스타였다.

― 오늘 경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선수는 1번 타자로 나오는 정대호다. 그는 올해 메이저리그 홈런 예순다섯 개로 홈런부문 1위고 타점 156점, 타율 0.438로 유일하게 4할을 넘긴 타자지.

말로 들었을 때는 그러한 정보가 가슴에 와닿지 않았다.

한 시즌 예순다섯 개의 홈런, 엄청나다.

타점도 아직 시즌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156점이나 되었다.

또 타율은 어떤가?

정교해진 현대 야구에선 나올 수 없다고 여겨지는 4할 대 타율을 뽑아냈다.

마치 만화에나 나올 법한 타자가 아닐 수 없었다.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투수 코치에게 주의를 들었음에도 가슴 깊은 곳에선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그러한 선수를 한 번 잡아 보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그런데 막상 당하고 나니 투수코치가 왜 조심하라고 했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자연재해는 피해야 하는데, 자신은 그러한 사실을 잊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 어쩔 수 없지.’

조금 전 홈런을 맞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초구는 볼이 되었지만 제대로 제구가 되어 들어간 공이었다.

미카엘 카브레라는 정대호도 자신의 제구된 공에 반응하지 못했다고 여겨 같은 코스, 심판이 스트라이크 콜을 부를 수 있는 곳에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게 패착이었다.

초구에 반응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공이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모두 파악해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는 걸 홈런을 맞은 뒤에야 깨달은 것이었다.

‘다음에는 실수하지 말자!’

아무리 타율이 높은 타자라도 매번 안타를 치고 홈런을 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미카엘 카브레라는 다음을 기약했다.

펑!

“아웃!”

심기일전을 한 미카엘 카브레라는 대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은 뒤에도 흔들리지 않고 2번 타자 이중호를 맞아 삼진 아웃을 잡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3번 타자 최태경을 내야 땅볼로 잡고 4번 타자 김대호에게 우익수 앞 안타를 맞기는 했지만, 5번 타자를 4구 삼진으로 잡아내며 잔루 1루를 남기고 2회를 마무리 지었다.

정대호의 솔로 홈런으로 1점을 추가하긴 했지만, 1회에 비해 공격이 약화된 상황.

그 때문인지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1회 말 공격에서는 선동일의 기세에 막혀 삼자범퇴로 끝났는데, 2회 말 공격에 들어가선 상황이 바뀌었다.

타순도 4번부터 시작되다 보니 기세가 크에 올랐다.

하지만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 에이스인 선동일도 보통 선수는 아니었다.

퍽!

“스트라이크!”

탁!

“파울!”

팡!

“스트라이크, 아웃!”

97마일의 포심 패스트볼에 이어 95마일의 고속 슬라이더, 그리고 타이밍을 뺏는 82마일의 12―6으로 떨어지는 폭포수 커브.

하나하나가 평범한 투수의 결정구급 위력을 가진 세 구종을 섞어 던지자, 어떤 공을 던지는지 파악한 타자라도 그를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알면서도 치기 어려운 투구 때문에 2회를 1점으로 잘 막아내며 상승했던 미국 팀의 분위기는 선동일의 완벽한 피칭에 밀려 수그러들었다.

“선동일 선수, 잘하고 있습니다!”

하구연 해설위원은 기세가 올랐던 미국 팀을 힘으로 찍어 누르는 선동일의 피칭을 칭찬했다.

“미카엘 카브레라 선수의 호투 덕에 자칫 흐름이 미국 팀으로 흘러갈 수 있었는데, 선동일 투수 156㎞/h 강속구와 12―6으로 떨어지는 폭포수 커브로 미국의 타자들을 잡아냅니다!”

“선동일 투수의 장점은 빠른 강속구나 위에서 아래로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커브가 아니라, 정교한 제구력과 타자의 수를 읽는 야구 지능 같습니다.”

강속구와 타자의 타이밍을 뺏는 투구 스타일을 칭찬하는 김승주의 말에 하구연 해설은 다른 설명을 하였다.

두 사람은 각기 선동일의 장점을 다르게 꼽았다.

한국에서는 제구력이란 표현을 자주 쓰는데, 미국… 아니,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제구력이란 표현보단 커맨드란 단어를 자주 쓴다.

제구력과 비슷하지만 좀 더 직관적이고 투수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선동일은 MLB에 속한 스카우터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투수이기도 했다.

다만 본인이 메이저리그 진출에 뜻이 없어 놔두고 있는 것이지, 선동일이 만약 메이저리그 진출 선언을 하기라도 하면 가장 핫 한 선수가 되리라.

물론 선동일도 완벽한 투수는 아니었다.

따악! 따악!

연속 안타를 맞고 주자를 득점권에 내보내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럴 때면 야수들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본인 스스로 위기를 극복했다.

휙!

퍽!

“아웃!”

점수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그런 것인지, 리드 폭을 좀 길게 가져갔던 1루 주자가 미처 1루로 돌아오기도 전에 선동일의 빠른 견제에 걸리고 말았다.

어이없게 역동작에 걸린 1루 주자는 자신의 손끝에 느껴지는 글러브의 감촉을 느끼며 절망했다.

‘아!’

겨우 평소보다 반걸음 정도 더 길게 가져간 것뿐인데 아웃되어 버렸다.

‘아시아의 프로 선수라고 하던데, 뭐 이리 날카로워!’

아웃된 지미 소사드는 그렇게 속으로 선동일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는 고개를 흔들며 더그아웃으로 뛰어갔다.

수비를 하기 위해 장비를 가지러 뛴 것이다.

그렇게 지미 소사드의 어이없는 견제사로 인해 상승하던 미국의 분위기는 다시 한번 가라앉고 말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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