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107화 (107/209)

107화

“아웃! 체인지!”

길고 긴 1회 초가 끝났다.

미국은 가볍게 생각했던 대한민국을 맞아 1회에 무려 6점이나 빼앗기고 수비를 마무리했다.

그 과정에서 투수를 세 명이나 교체했다.

선발투수였던 에릭 헤밀턴은 타자 네 명에게 홈런과 안타를 맞고 4점을 내주고 물러났으며, 두 번째 투수는 원래부터 급히 마운드에 오르느라 원 포인트 릴리프로 올라왔다.

말 그대로 한 타자만 상대하기 위함이었는데, 그 역할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주자를 1루에 내보내고 내려왔으니 말이다.

그 뒤로 세 번째 투수가 올라와 공을 던졌지만, 그 또한 고작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고 2점을 빼앗겼다.

원 포인트 릴리프로 올라왔던 투수가 주자를 내보냈기에 그의 자책점은 1점뿐이었지만, 어찌 되었든 미국 팀으로써는 1회에만 6점을 내준 것이다.

한편 공수 교대를 하고 마운드에 올라온 선동일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였다.

“후우, 후!”

― 선배님! 오늘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은 …입니다.

그는 1회 초,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대호가 자신의 옆으로 다가와 들려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을 그렇게 자세히 알아내다니,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놀만 해!’

선동일은 대호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어째서 메이저리그에서 그토록 활약하며 주목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단 한 타석에 섰을 뿐인데, 그런 귀중한 정보를 모두 파악하는 실력을 가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자신만 해도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좌우 폭이 넓고, 상하 폭이 공 반 개씩 작다는 걸 알게 되면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은 무궁무진해진다.

하지만 그런 복잡한 심산에도 그의 입가엔 미소가 어렸다.

이는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을 상대로 승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가 그에게는 FA를 맞이하는 해였다.

에이전시에서는 그에게 올림픽에선 몸을 사리라 말을 했었다.

그렇지만 선동일은 그런 에이전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올림픽이지 않은가.

국가를 대표해서 나가는 국가 대표인데 국제 대회에서 몸을 사린다면, 국내 투수 중 넘버원이라는 자존감에 금이 갈 게 뻔했다.

그렇기에 선동일은 오늘 최강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을 상대로 최선을 다할 마아ᅟᅳᆷ을 먹었다.

더군다나 이미 후배인 정대호와 최태경이 점수를 내줘 어깨도 가벼웠다.

펑!

초구는 몸 쪽 포심 패스트볼이었다.

좌타자 상대로 무릎에서 공 반 개 가량 높은 직구였다.

이에 타자는 혹시나 무릎에 맞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겁을 먹고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스트라이크!”

심판의 콜은 스트라이크였다.

이에 타자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주심을 보았지만, 차갑게 부릅뜬 심판의 눈빛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대호가 알려 준 대로 저정도까진 허용이 되는구나.’

살짝 안쪽으로 던졌기에 평범한 스트라이크 존을 보는 심판이라면 볼이 될 타구였지만, 대호의 정보대로 흘러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자 선동일은 그 다음부턴 과감하게 공을 던졌다.

펑!

“스트라이크!”

타자의 배트가 닿지 않는 바깥쪽 낮은 볼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패스트볼이 아닌 바깥쪽으로 빠지는 94.5마일의 고속 슬라이더였다.

갑작스럽게 꺾이다 보니, 미국의 타자는 패스트볼로 판단하고 배트를 휘둘렀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삼구 삼진.

탕탕!

삼진을 당한 타자는 투수와의 수 싸움에 밀려 삼진을 당한 것을 자책하며 물러났다.

선동일이 던진 세 번째 공은 12 to 6으로 떨어지는 82마일의 폭포수 커브였다.

알고 대비를 해도 치기 어려운 것이 선동일의 커브인데, 방금 전까지 98마일 패스트볼과 94.5마일의 고속 슬라이더를 본 뒤, 무려 10마일 이상 차이가 나는 공을 보게 되니 스윙하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나이스! 나이스!”

대호는 중견수 자리에서 그러한 선배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이스!’라는 말을 연호했다.

비록 타자 한 명이지만 대한민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은 선두 타자를 삼구 삼진으로 잡아내고 흥이 올랐다.

1회 초 공격에서도 물론이고 공수 교대를 한 뒤, 1회 말 수비에서도 그 출발이 순조로운 셈이었다.

딱!

미국의 2번 타자 크리스 보아첵은 마음이 다급해 초구에 배트를 휘둘렀다.

“마이 볼!”

그러나 마구잡이로 휘두를 스윙이 제대로 맞을 리가 없었다.

그는 선동일의 공 아랫부분을 타격했고,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2루수 플라이로 잡혀 버렸다.

‘으음…….’

대기 타석에서 2번 타자의 타격을 지켜보던 타이거 홈즈는 작게 신음을 터뜨렸다.

1번 타자가 어처구니없게 삼구 삼진 당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방금 전 몸 쪽 포심 패스트볼을 타격했음에도 구위에 눌려 내야 플라이로 잡히는 것도 보았다.

2번 타자는 조급함이 겹친 결과이긴 했지만, 그 정도로도 알 수 있었다.

마운드 위에 서 있는 투수가 단순하게 아시아의 선발투수 중 한 명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에 데려다 놔도 최소 3선발급 투수는 될 것이란 것을 말이다.

이는 아주 보수적으로 본 것이고, 어쩌면 중위권 팀의 1~2선발급 투수 정도의 실력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타석에 들어서는 그의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못했다.

이미 심적으로 지고 들어가서 그런지, 뉴욕 베츠 산하 마이너리거인 타이거 홈즈는 외야 플라이로 물러나고 말았다.

따악!

“잘 맞은 타구, 쭉쭉 뻗어 나갑니다!”

미국 쪽 중계석에서 타이거 홈즈의 타구를 보며 흥분해 소리를 질렀다.

“어어!”

타이거 홈즈의 타구에 흥분하던 아나운서는 곧이어 타구를 향해 달리고 있는 대호의 모습을 보고는 당황한 목소리로 ‘어어!’ 만을 난발했다.

다다다다.

타이거 홈즈가 친 타구는 대기를 가르고 뻗어 나갈 듯 날았지만,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대호는 타구의 방향을 잡고 뛰어 자리를 잡고 서서 가볍게 포구를 하였다.

평범한 선수였다면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잡아냈겠지만, 수비 범위가 넓은 대호에게는 굳이 어렵게 수비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평범한 플라이 볼이었다.

퍽!

“아웃!”

타이거 홈즈는 배트에 공이 맞는 것을 느낌에 1루를 돌아 2루까지 뛰다가 자신이 친 타구가 대호에 의해 아웃되는 것을 보았다.

‘아!’

사실 타이거 홈즈는 투수가 던진 공을 보고 친 것이 아니었다.

97마일에 이르는 빠른 속도와 위력적인 포심 패스트볼에 대충 코스를 짐작하고 스윙을 했다.

즉, 우연히 공을 맞춘 것뿐이었다.

때문에 배트에 제대로 된 힘을 싣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타구가 끝까지 뻗지 못하고 중간에 힘이 꺾여 떨어진 것이다.

만약 타구를 끝까지 당겨 치며 힘을 실었더라면, 97마일이나 되는 빠른 공으로 인해 그 반발력이 크게 작용해 홈런이 되었을 것이지만 타이거 홈즈의 스윙은 그 정도가 아니었기에 결국 외야 플라이로 끝났다.

그리고 이런 차이가 그가 메이저리거가 아닌 마이너리거라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공 다섯 개로 1회 말 수비를 마친 선동일은 천천히 걸어 마운드를 내려왔다.

“보십시오. 우리의 선동일 투수! 마운드를 내려오는 모습에서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하하하! 거인의 발걸음이 바로 저런 것이겠죠?”

“최강 미국, 뚜껑을 열어 보니 누가 최강인지 모르겠습니다.”

김승주는 1회 초 대한민국의 공격과 방금 전 끝난 미국 팀의 공격을 비교하며 이야기하였다.

“이런 것이 우리 대한민국 대표 팀의 저력 아니겠습니까? 국위를 위해서 국제 대회에선 제 실력의 120%, 200%까지도 나오는 것 말입니다.”

“맞습니다. 그래서 한국인이란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하구연 해설의 설명에 김승주는 또 다시 맞장구를 치며 한국인이라서 자랑스럽다는 드립을 쳤다.

이들이 이렇게 너스레를 떨고 있을 때, 타이탄스 스타디움 VIP룸에서 심각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 * *

부스 밖에서는 미국의 국기인 성조기와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극기가 물결치듯 흔들리고 있을 때, 타이탄스 스타디움의 VIP룸 안에서는 굳은 표정의 외국인들이 창밖을 노려보았다.

“허! 이거 최강이란 미국 팀이 어떻게…….”

WBSC 회장 리카르도 프라커리는 작게 중얼거렸다.

스포츠 경기가 변수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야구란 종목은 그 변수의 폭이 그리 크지 않은 종목 중 하나다.

한 마디로 그 실력 차가 뚜렷하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지금 세계 최강이자 야구 중심인 미국이 아시아의 한 국가에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겨우 1회가 지났지만, 스코어는 6:0이었다.

한두 점 차도 아니고, 무려 여섯 점 차.

더욱이 미국 팀은 벌써 세 번이나 투수 교체를 한 상태였고, 한국은 선발투수가 겨우 다섯 개의 공만 던지고 1회를 마무리하였다.

이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거 이러다 또다시 올림픽에서 야구란 종목을 빼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리카르도 회장의 옆에 앉아 있던 부회장 맥브레드 맥도웰이 이야기하였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한쪽 구석에 앉아 있던 또 다른 사내가 물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올림픽 야구 종목 퇴출이란 말에 민감하지 않은 이가 없었는데, WBSC 부회장이란 사람이 종목 퇴출을 언급하자 놀라 물은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변수가 많아서야…….”

맥브레드의 말에 이를 듣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우리 한국은 올림픽에서 미국을 이기면 안 된다는 말입니까?”

KBSA 회장인 이상협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 그렇게 들렸다면 미안하군.”

입으로는 미안하다 말을 하였지만, 그의 표정에서 어떤 미안함도 보이지 않았다.

“실력이 되지 않으면 시합에 지는 것이지, 여기서 왜 올림픽 종목 퇴출이란 말이 나옵니까?”

그동안 쌓인 것이 있었는지 이상협은 맥브레드 부회장을 보며 강하게 힐난했다.

당연히 그런 이상협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던 맥브레드 부회장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하지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협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해서 쏟아냈다.

“솔직히 말해서 겨우 마이너리거들을 국가 대표라고 내보내 놓고, 프로들이 섞인 한국 팀을 이길 수 있을 거라 믿는 게 더 아이러니한 일 아닙니까?”

올림픽은 아마추어의 무대다.

하지만 이러한 아마추어리즘이 희석된 지도 한참이 지났다.

이 모든 것은 사실 미국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한창 냉전으로 미국과 소련이 대립할 때, 미국은 올림픽에 아마추어들뿐만 아니라 프로선수들도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게 IOC에 로비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미국의 노력은 회의를 통해 통과되고, 프로 선수들이 출전하면서 미국은 경쟁국인 소련을 앞서 나갔다.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해체가 된 뒤로도 미국을 비롯한 진영은 계속해서 경제적으로 우수한 점을 이용해 계속해서 프로 선수들을 올림픽에 출전을 시키고 그 바탕으로 많은 메달을 획득해 자유민주 진영이 사회공산주의에 비해 우수하다고 떠들었다.

이러한 선봉에 야구가 최전선에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야구만큼 자본주의적 색이 강한 올림픽 종목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올림픽에 출전하는 프로 선수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야구의 몰락 역시 자랑하는 자본주의적 시각에 의해 움직였기 때문이다.

프로, 즉 돈을 받고 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거들이 제일 먼저 깨달은 게 있었다.

‘올림픽에 나가 봤자 돈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선수와 구단 입장에서 비싼 자신의 몸값을 감당하며 나갔다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이 부딪쳐 결국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올림픽 참여를 선수들 개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미국 팀처럼 프로 선수들이 잘 출전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문제는 스타가 나오지 않다 보니 올림픽에서 흥행이 되지 않고, 또 미국도 큰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2008년 이후 폐지되었다가 2020년에 부활, 2024년에 다시 퇴출 등등 이걸 반복하다 보니 국제 야구 관계자들에게 방금 전 언사는 매우 무례하고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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