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푸에르토리코와 대한민국의 야구 승자조 3라운드의 승자는 모두가 예상했던 것처럼 그 결과도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 팀의 승리였다.
다만 경기 내용은 예상 외였다.
처음엔 그래도 승자조까지 올라간 푸에르토리코와 접전을 펼칠 거라고 했는데, 1:12로 7회에 콜드게임이 선언되었으니까.
이번 올림픽 야구에서 두 번 나온 콜드게임이 모두 대한민국의 경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도 경기에서 콜드게임을 만들지 못했는데, 약체라 분류되었던 대한민국이 패자조도 아니고 승자조 경기에서 콜드게임을 거두자 야구계는 들끓기 시작했다.
물론 첫 1라운드에서 나온 대만을 강자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접전을 예상한 푸에르토리코까지 압살하면서 대한민국은 일약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이제 남은 것은 승자조 최후의 한 팀을 뽑는 4라운드 뿐이었다.
승자조 4라운드 경기가 끝나면 승리한 팀은 이틀의 휴식기를 가지고, 패자조 최후 승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그에 반해 패배한 팀은 고작 하루를 쉰 뒤 패자조에서 승리한 팀과 시합을 하고, 그 경기의 승자가 금메달 결정전을 치른다.
물론 전에도 언급했듯, 승자조 최후 승자가 경기에 승리하면 상관없이 그대로 메달 색깔이 결정되지만, 승자조 최후 승자가 패배하게 되면, if game이라고 해서 다시 한번 경기를 치르고 최후 승자를 가린다.
이게 바로 더블 엘리미네이션 토너먼트 방식이었다.
* * *
“그동안 시합을 치르느라 수고했다.”
추인수는 선수들을 모아놓고 격려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내일 하루, 딱 하루만 더 바짝 긴장을 놓지 말고 힘내 보자!”
이미 초창기 목표였던 올림픽 메달은 확보했다.
내일 미국과 치르는 승자조 4라운드 경기에서 패배하고, 또 패자조에 내려가 다시 경기에 패배한다고 해도 동메달은 획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왕 올림픽에 국가 대표로 출전을 한 마당에 고작 병역면제 요건만 만족하고 멈추고 싶은 생각은 추인수에게 없었다.
그리고 그건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록 상대가 최강, 야구의 종주국 미국이라고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욕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알겠습니다.”
추인수 감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장 막내인 대호가 큰 소리로 대답하였다.
“뭐야, 여기서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막내인 정대호 뿐인가?”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추인수 감독의 말에 여기저기서 대답이 터져 나왔다.
“아닙니다.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맞습니다. 이왕이면 금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의 말은 선수단 모두가 한 말이고, 그다음 말은 주장인 김대호의 말이었다.
은퇴가 얼마 남지 않은 김대호다.
그동안 야구 국가 대표로 많은 대회에 참가했다.
아시안게임도 있고, 이번처럼 올림픽도 있었다.
또 WBSC(세계 야구소프트볼 총연맹)에서 주관하는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참가했다.
그렇지만 그가 대한민국 야구 대표 팀으로 참가했던 모든 대회에서 지금과 같은 성적을 낸 것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니 은퇴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우승, 혹은 금메달을 목에 걸어 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남들은 역대 최약체 대포 팀이라 부르고 있지만, 김대호가 생각하기에 지금처럼 금메달을 목에 걸기 좋은 때가 없었다.
신세대와 구세대 간의 갭이 조금 큰 것이 약점이라면 약점일 수 있지만, 신인들의 재능이 무척이나 뛰어나 베테랑인 선배들과 실력 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특히나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정대호의 경우 현 대표 팀 내에서 그에 견줄 만한 선수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인품으로 팀의 중심을 잡아 주고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일은 베테랑인 선배들이 해야 할 일인데, 현재 대표 팀에선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정대호가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그로서는 마음 편하게 한 가지만 집중하면 되었다.
바로 팀의 부족한 화력 말이다.
“좋은 말이다. 이왕 올림픽에 출전했으면 금메달이지.”
“맞습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태평양을 건너가야죠.”
“와하하하!”
마지막 각오를 다지기 위해 만든 자리였는데, 선수들이 잘 따라 주다 보니 분위기가 무척이나 좋았다.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은 추인수 감독이 말했다.
“내일 선발은 선동일이 나간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내일 미국을 상대할 선발투수는 국내 다승 1위인 선동일이었다.
그가 아니면 최강 미국전에 선발로 자신 있게 내보낼 투수가 없었다.
좌타 좌투에 지옥에라도 찾아가 뽑는다는 98마일의 좌완 파이어볼러.
거기에 더해 98마일의 포심 패스트볼과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80마일 커브, 그리고 횡으로 크게 꺾이는 94마일의 고속 슬라이더가 일품인 국내 1위의 천재 투수였다.
올 시즌에는 투구의 변화를 주기 위해 체인지업도 익혀 종종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고교 시절에도 메이저에 가도 통할 것이란 말을 들었고, 프로에 와서도 메이저리그 구단이 노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본인은 메이저리그 진출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아 야구계에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는 투수였다..
아무튼 그런 선동일이 내일 있을 미국전에 선발으로 출전하게 되었다.
자신이 미국전에 선발 출전을 한다는 사실을 듣게 된 선동일은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흥분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언어의 문제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공이 메이저리그에도 통한다고 자신하고 있다.
‘드디어 증명할 때가 왔군!’
비록 미국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 메이저리거가 아닌 마이너리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래도 그중 몇 명은 조만간 메이저리그 콜업이 확실시될 정도로 재능 넘치는 선수들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럼 이만 해산하고 쉬어라!”
“예, 알겠습니다.”
드르륵!
추인수 감독의 해산하라는 말에 선수들은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승자조 최후의 한 팀을 가르는 4라운드 경기.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경기가 펼쳐질 샌프란시스코의 타이탄 스타디움의 4만 5천석 전 좌석이 매진되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만원이었다.
“하! 정말 꿈만 같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 팀이 올림픽 무대에서 메달을 걸게 된 것이 몇 년 만인지…….”
하구연 해설 위원은 아직 경기가 시작도 되기 전에 감격해서 눈물을 글썽였다.
야구란 종목은 참으로 올림픽에서 우여곡절이 많은 종목이다.
중간에 퇴출이 되기도 했고, 필요에 의해 다시 편입되기도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건 대한민국 야구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미국이나 일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따기도 하고, 국제대회인 프리미어12나 WBC(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우승과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국민 스포츠라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한국 야구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국제 대회에서 예선 탈락을 하는가 하면, 국내 프로 구단과의 선수 선출 문제를 두고 트러블이 발생해 선수 차출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경기력 저하로 탈락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한때는 최강은 아니더라도 강국으로 통했는데, 어느 순간 쿠바처럼 썩은 준치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역대 최약체라 불리던 올림픽 야구 대표 팀이 예상을 뒤엎고 다크호스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강 미국을 상대로 승자조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이 모든 오욕의 세월을 경험한 하구연으로서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미국을 상대로 선발로 나오는 선동일 투수, 이 선수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김승주 아나운서는 눈을 반짝이며 하구연에게 물었다.
“선동일 투수, 두말하면 잔소리라고 하겠습니다.”
자신을 향해 질문하는 김승주를 보며 하구연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음… 부연 설명을 하자면, 타자 중에 최고라면 정대호 선수가 있죠?”
“예. 메이저리그에서는 물론이고 이번 올림픽에서 세 경기 동안 홈런 다섯 개를 치고, 타점도 무려 13점이나 내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정대호 선수가 이렇게 공격과 수비에서 맹활약하며 중심이 되었다면, 투수 중에선 바로 선동일 선수가 그런 역할을 해 주는 선수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전 선발인 선동일에 대해 설명을 부탁했던 김승주는 해설 위원인 하구연으로부터 비교 대상으로 정대호가 언급되자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선동일의 이번 올림픽 선발 등판이 처음이기는 하지만, 그가 가진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깨닫기에는 충분했다.
“오늘 다른 포지션에선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선동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김승주는 선발투수를 제외하고 다른 포지션에서 변화가 없자 이에 대해 언급했다.
“잘하고 있고, 또 부상도 없는데 굳이 변화를 줄 이유가 없죠.”
“그렇습니까?”
설명을 들은 김승주도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굳이 라인업을 바꿀 필요 없다는 말에 동의한 것이었다.
“말씀드리는 사이 대한민국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로는 1번 타자 정대호 선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경기가 시작되었고, 타석에 대호가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 * *
대호는 타석에 들어서다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를 보았다.
그러고 나서 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의 얼굴이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 이것도 인연인가?’
마운드에 선 미국 팀 선발은 2년 전 WBSC U―18 경기에서 마주했던 그 투수였다.
‘에릭 헤밀턴이었나?’
WBSC U―18 대회 이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얼굴을 보니 그 이름이 떠올랐다.
상대를 알자 타석에 별다른 걱정이 없어졌다.
휘익!
팡!
“볼!”
WBSC U―18 때 보다 공은 빨라졌지만, 약점인 제구력은 아직 극복하지 못한 듯 보였다.
‘아직도 제구가 제대로 잡히지 못한 것 같네.’
구속이 95마일을 기록하긴 했지만, 스트라이크 존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팡!
“스트라이크!”
두 번째 공은 그냥 보냈는데, 이번에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이게 스트라이크라고?’
공 하나 정도 바깥쪽으로 빠진 공이었는데, 주심은 이를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렸다.
팡!
“스트라이크!”
이번에도 볼 판정은 스트라이크를 받았다.
‘뭐야! 이것도 스트라이크라고?’
대호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바깥쪽으로 공 하나 빠진 볼도 스트라이크 콜을 하더니, 이번에는 인코스로 공 반개 정도 깊게 들어온 공을 또다시 스트라이크를 불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타자가 판단하기에 스트라이크 폭이 너무도 넓게 느껴져 공을 고르기 힘들어진다.
‘설마 위아래도 그런 것은 아니겠지?’
대호는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에 의문을 표하면서 설마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 그런 생각이 맞는다면, 오늘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은 태평양만큼 넓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후한 판정이 홈팀인 미국에만 적용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공평하게 자신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팡!
“볼!”
4구째 들어온 볼은 다행히 볼 판정이 내려졌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낮은 볼이었는데, 동시에 밑으로도 많이 처지는 것이었다.
만약 이 정도 공에도 스트라이크 콜을 했다면 타자는 바깥쪽 공은 하나도 손댈 수 없었으리라.
대호는 그건 아닌 듯하여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휘익!
‘어! 이건…….’
틱!
이번 5구째 공은 조금 전 세 번째 볼처럼 인코스로 들어오면서 공 반 개 정도 깊은 쪽으로 들어오는 공이었기에 커트하였다.
“파울!”
볼 카운트는 2B 2S 그대로였다.
틱!
“파울!”
주심의 스트라이크 콜이 들어온 코스와 비슷한 공은 모두 커트를 했다.
그러다 보니 투수의 투구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팡!
“볼!”
‘아차!’
대호는 순간 깜짝 놀랐다.
인코스 높은 스트라이크로 판단해 배트를 가져가다 공이 안쪽으로 휘는 변화를 확인하고 스윙을 멈췄다.
주심이 볼이라고 판정을 내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윙 체크 부탁드립니다,”
대호가 스윙을 가져가다 멈췄기에 포수는 얼른 심판에게 스윙 체크를 부탁했다.
“세이프!”
1루에 있던 루심은 팔을 양쪽으로 벌리면서 배트가 돌지 않았음을 알려 왔고, 심판은 이에 세이프 선언을 하였다.
한편 이번 공으로 대호는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을 모두 체크하게 되었다.
‘다행히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위아래까지 넓은 건 아니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