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97화 (97/209)

97화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2032시즌 후반기가 시작되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후반기 시작은 전반기 2032시즌 개막전처럼 원정 경기였는데, 그 상대 팀은 LA다윈스였다.

내셔널리그 소속인 LA다윈스와 원정 경기였기에 지명타자 없이 투수도 타석에 들어가야만 하였기에 조금은 불리한 경기를 할 수도 있었다.

따아악!

1회 초, 첫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마치 데자뷰와도 같이 후반기 원정 첫 경기 첫 타석에서 초구 솔로 홈런을 쳤다.

“정대호 선수, 유리아스 에반스 선수의 초구를 그대로 받아 쳐 홈런을 기록합니다!”

김승주 아나운서는 대호의 솔로 홈런을 보며 열정적으로 떠들었다.

그런 김승주 아나운서의 모습에 질 수 없다는 듯 하구연 해설도 호응하였다.

“지금 보고 있는 정대호 선수의 타구를 보면 개막전 LA데블스를 상대로 선두 타자로 나와 첫 타석에서 솔로 홈런을 친 것이 떠오르는군요.”

“아! 그러고 보니 개막전 첫 타석에서도 초구에 곧바로 홈런을 쳤었죠?”

“네, 맞습니다.”

“하하하!”

LA다윈스와 오클랜드 슬랙스의 경기를 독점 중계하는 KBC스포츠의 아나운서인 김승주와 해설 위원 하구연은 대호의 초구 홈런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호는 묵묵히 그라운드를 돌고 있었다.

타다다다!

‘후반기도 출발이 좋은데?’

2루 베이스를 돌던 대호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올해는 스프링캠프를 시작으로 시범 경기인 캑터스 리그와 개막전까지 타석에 들어서는 느낌 모두가 좋았다.

특히나 원정 경기로 시작하는 개막전의 경우, 첫 타석에 들어가면서 뭔가 좋은 예감에 초구에 배트를 휘둘렀고, 그대로 홈런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제로 집중력을 높이는 기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는데, 온몸에 감각이 곤두세워졌다.

짝!

“대호! 어떻게 된 거야?”

홈으로 들어온 대호와 하이파이브를 하던 지미가 대호에게 물었다.

“뭐가?”

주어가 빠진 질문을 하는 지미를 보며 물었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지미 울프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유리아스의 공을 그렇게 쉽게 쳤잖아.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거야?”

오늘 경기 선발인 LA다윈스의 유리아스 에반스.

내셔널리그에서도 알아주는 에이스 투수로, 현재 내셔널리그 사이영상에 유력시되는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대호는 그런 유리아스의 공을 힘도 들이지 않고, 게다가 이 넓은 다윈스 스타디움에서 홈런을 쳐 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뭐… 특별한 비결은 딱히 없고, 그저 배트 중심에 정확하게 가져다 댄 것뿐이야!”

“응?”

“그러니까… 음, 유리아스의 공이 98마일이잖아?”

“그렇지.”

“그 정도 구속이라면 굳이 힘들이지 않고 배트 중심에만 맞춘다면, 그 반발력만으로 장타를 얻어 낼 수 있어, 그리고 구위에 밀리지 않고 끝까지 제 스윙을 할 수 있다면, 그 다음은 공이 알아서 멀리 담장 너머로 날아가게 돼 있어.”

“…….”

대호의 장황한 설명에도 지미 울프는 납득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젠장! 이래서 천재들이란…….”

그러고 나서 지미는 고개를 흔들며 타석으로 들어갔다.

대호는 살짝 뻘쭘해져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정말로 그렇게 해서 홈런을 쳤으니까.

물론 상태창과 스탯의 도움 없이 고교 야구부에서 끝냈던 1회차에는 자신도 비슷한 반응이었으리라.

“뭐야? 왜 그러고 있어?”

살짝 머리를 긁적거리고 있을 때, 대기 타석으로 나오던 리키 헨슨이 대호에게 다가와 물었다.

그는 홈런을 치고도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지 않고 지미 울프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대호를 보며, 또 여느 때와 같이 투수에 대해 무언가 알려 줄 정보가 있는지 궁금해져 말을 건 것이었다.

대호는 리키 헨슨의 질문에 방금 전 지미와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들려주었고, 리키는 지미와 마찬가지인 태도를 보여 주었다.

“어쩐지…….”

리키 헨슨은 가볍게 혀를 차고 지미처럼 대기 타석으로 가 버렸다.

‘칫… 하긴 내가 생각해도 너무 말 안 되는 건 맞네. 무슨 수능 만점 받은 사람이 교과서만 보고 공부했어요, 이런 거나 마찬가지니까.’

대호는 두 사람을 잠시 번갈아 돌아보다가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탁탁!

“대호, 후반기 시작부터 한 건 했구나!”

오클랜드 슬랙스의 수석 코치 그렉 헥슬러는 뚱한 표정으로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대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홈런을 칭찬했다.

그는 후반기 시작부터 또다시 홈런포를 가동하는 대호의 모습에서 밝은 오클랜드의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오클랜드 슬랙스가 페이 롤이 작은 스몰마켓 구단으로써 유능한 선수를 키운 뒤 적당히 활용하다 다른 구단에 팔아 운영을 한다고 해도, 눈앞에 있는 대호는 앞으로 최소 삼 년은 더 오클랜드에서 활약을 할 것이라 생각하니 든든했다.

비록 대호는 나이도 어리고 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지도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팀의 중심이 되어 그 영향이 지대한 선수다.

주장인 홈런 브레드 보다 더 팀에 공헌도가 높고 영향력 또한 그 못지않았다.

현재 오클랜드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직도 팀은 리빌딩 중에 있었다.

‘만약 리빌딩이 끝난 후라면 우리 오클랜드는 어쩌면 전성기라고 불리던 1970년대, 그리고 머니 볼이라고 불리던 1990년대 후반~200년대 초에도 이루지 못한 왕조의 꿈을 이룰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비단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만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 코칭스태프는 물론이고, 프런트 상부 관리자들의 모든 판단이 그러하였다.

그리고 더블 A와 트리플 A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마이너리거들이 기대만큼 더 커 준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따악!

“와아아아!”

2번 타자 지미 울프에 이어 3번 타자 리키 헨슨의 연속 안타로 오클랜드 슬랙스는 1회 초 노아웃에 벌써 점수를 2점이나 뽑아냈다.

그것도 LA다윈스의 에이스 유리아스를 상대로 말이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후보로 가장 유력시되고 있는 그를 상대로 홈런을 포함해 연속 안타를 만들어 내자 장내의 분위기가 뜨거워졌다.

물론 관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LA다윈스의 팬들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게다가 오클랜드의 찬스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4번 타자 홈런 브레드가 타석에서 신중하게 공을 고르고 있고, 5번 타자 레이지 잭슨까지 대기 타석에서 유리아스의 공을 노려보며 공략 포인트를 찾고 있었으니까.

오클랜드의 확실한 득점원인 이 두 사람이 노아웃 2루 찬스에서 무조건 점수를 내줄 것이란 믿음이 있기에,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는 오늘 경기가 참으로 편하게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브레드! 이름값 좀 하실 때 되지 않았어요?”

조금 전까지 더그아웃 자신의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던 대호가 느닷없이 펜스 앞에 나와 소리쳤다.

한편, 타석에서 투수의 공을 고르고 있던 홈런 브레드는 귓가에 들려오는 묘한 소리에 깜짝 놀랐다.

‘뭐? 이름값을 하라고?’

타석에서 자신의 이름값을 하라는 대호의 목소리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홈런 브래드, 그리고 그건 비단 그만이 아니라 더그아웃 입구 자리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마이크 케세이 감독이나 그렉 헥슬러 수석 코치도 마찬가지였다.

대호가 외친 이름값이란 바로 홈런이지 않은가.

홈런이란 특이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 때문에 많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는 그였다.

학창 시절이나 메이저리거가 된 초창기에는 이름 때문에 놀림도 많이 당했었다.

그 때문에 사실 브레드는 자신의 이름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야구를 좋아했던 그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홈런 타자가 되라는 뜻으로 이름을 홈런이라 지어 주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이름을 개명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 이름을 고수하였고, 지금에 이르러선 이름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할아버지의 염원처럼 캐딜락을 타는 홈런 타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오클랜드에서 주장에 이를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지금, 구단에서 가장 어린 대호가 자신을 놀리고 있음에도 어쩐지 화는 나지 않았다.

‘하긴 이름값을 한 번 할 때가 되긴 했지.’

나이 때문이란 변명으로 체력을 비축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기는 했다.

그런데 후반기 시작을 알리는 경기에서까지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팀 내 막내가 그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후우!’

대호의 일침에 정신을 차린 홈런 브레드는 심판을 보며 타임을 걸었다.

각오를 되새기기 위해서였다.

“타임!”

주심을 보며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에서 물러나 더그아웃으로 다가와 배트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스윙할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녀석이었다.

배트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다시 타석에 들어선 브레드의 눈빛은 처음 타석에 들어갔던 눈빛이 아니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와 같은 사냥꾼의 눈이 되어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노려보았다.

그런 브레드의 눈빛에 놀란 것인지 이번에는 유리아스가 타임을 요청했다.

홈런 브레드가 상대인 LA다윈스의 선발 유리아스 에반스의 기를 죽이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고 타석에 들어섰던 것처럼, 이번에는 타자의 집중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투수인 유리아스가 타임을 요청한 것이다.

타자와 투수의 싸움은 일명 가위바위보라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근본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투수와 타자는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혹은 집중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노력을 하는데 이때 타임을 자주 이용하였다.

그런데 유리아스의 타임요청은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레드는 이미 팀의 막내인 대호에게서 들었던 질타 아닌 질타로 인해 집중력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다.

팀 내 최고 고참에 속하는 홈런 브레드다.

그런 그가 막내인 대호에게서 이름값을 할 때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얼마나 창피하겠는가.

그것도 오래 전 잊어버렸던 별명을 다시 들었으니, 그것이 의도한 것이건 그렇지 않게 브레드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꼭 치고 만다.’

첨예하게 벼린 그의 정신은 어떤 공이 오던 펜스 너머로 날려 버릴 것을 다짐했다.

* * *

“브레드! 이름값 좀 하실 때 되지 않았어요?”

총 5만 6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윈스 스타디움에 빈자리는 얼마 보이지 않았다.

그런 야구팬의 함성 소리를 뚫고 대호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음? 이게 무슨 소리죠?”

김승주는 느닷없이 라디오 부스에 들리는 목소리 때문에 깜짝 놀라 물었다.

“허허! 정대호 선수, 엉뚱한 면이 있군요.”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었기에 하구연 위원은 얼른 다른 말로 커버를 쳤다.

“주장인 홈런 브레드 선수와 친하다고 하더니 저런 장난도 치는군요.”

“맞습니다. 허허허!”

해설하면서 허구연이나 김승주는 진땀이 났다.

메이저리그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는 정대호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데, 어린 선수가 팀의 주장에게 이름값을 하나는 황당한 말을 하였으니 당연했다.

그때였다.

따아아악!

마치 벌목꾼이 나무를 쪼개는 듯한 맑은 소리가 다윈스 스타디움 안을 울렸다.

“허억!”

“와우!”

긴장을 하며 지켜보던 김승주와 하구연은 타석에 서 있던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이자 4번 타자인 홈런 브레드의 타격을 보고 헛바람 빠지는 듯한 탄성을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전 타구는 대형 홈런 중에서도 대형 홈런인 장외 홈런이었기 때문이다.

중앙 스탠드를 넘어가는 대형 홈런을 친 홈런 브레드는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러는 와중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은 조용히 난간에 매달린 대호와 홈런을 번갈아 보았다.

“오우! 주장, 빅 홈런이네요.”

장외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홈런 브레드를 향해 오른쪽 팔을 돌리며 환호하는 대호의 모습이 방송용 카메라에 잡혔다.

“하하하! 우리의 정대호 선수, 오클랜드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 선수가 자신의 요구대로 홈런을 치자 열렬히 환호를 하고 있군요.”

천만다행으로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 홈런 브레드가 대호의 주문처럼 홈런을 친 것에 김성주와 하구연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멘트를 날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크게 기뻐하고 있습니다.”

홈런 브레드의 장외 홈런으로 2루에 있던 리키 헨슨까지 모두 홈으로 들어온 뒤, 홈 플레이트 옆에서 홈으로 들어오는 그를 기다렸다.

짝짝짝!

1회가 시작 된지 불과 5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LA다윈스의 1선발 유리아스 에반스는 홈런 두 개와 안타 두 개로 4실점을 하고 말았다.

그것도 아웃 카운트 하나 잡지 못하고 말이다.

그 때문인지 LA다윈스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로 올라갔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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