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2032시즌 올스타 경기의 향방은 아메린카리그 올스타 팀의 8:7 승리로 끝이 났다.
경기 결과로 인해 2032시즌 월드 시리즈의 홈 어드밴티지는 아메리칸리그로 정해졌다.
그리고 올스타 경기 MVP는 홈런 두 개에 2루타를 치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 플레이로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의 추격을 막아 낸 대호에게 돌아갔다.
“헤이, 빅 타이거!”
“왜?”
샤워를 마치고 타월을 걸친 채 샤워장을 나오던 대호는 텍사스 레이스의 마무리 에반 로드리게스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며 쳐다보았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그를 불렀던 에반 로드리게스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축하를 해 주었다.
“MVP, 축하해!”
대호가 소속된 오클랜드 슬랙스와 그가 속한 텍사스 레이스가 비록 같은 지구 라이벌 관계이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오늘은 리그를 대표해 내셔널리그와 대결을 해서 승리를 했고, 또 대호가 그 경기의 MVP로 선정이 되었기에 이를 축하해 주는 것이었다.
“고마워! 그렇지 않아도 어제 홈런더비로 피곤했는데, 에반 네 공 덕에 경기가 빨리 끝난 것 같아. 나도 고마워.”
자신의 MVP 수상을 축하해 주는 에반 로드리게스에게 대호도 웃으며 어제 경기를 핑계로 대며 감사 인사를 하였다.
“하하, 그러고 보니 너 어제 끝내 주더라!”
에반 로드리게스는 경기가 끝나고 호감이 생긴 대호가 자신의 인사를 받아 주자, 기분이 좋아진 나머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런 에반 로드리게스의 모습에 대호는 급할 것이 없어 대화를 계속하였다.
잠깐 에반 로드리게스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대호의 로커에서 전화의 진동이 울렸다.
우웅! 우웅!
“잠시만, 전화가 왔네!”
에반 로드리게스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전화가 울리자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맥콰이어? 무슨 일이지?’
액정에 뜬 발신자를 확인한 대호는 전화를 건 상대가 자신의 에이전트인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맥콰이어 씨, 무슨 일이 있나요?”
이번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은 한나 가족과 보내기로 일정을 잡았고, 이는 에이전트인 그도 알고 있는 일이라 급한 일이 아니라면 자신에게 전화할 일이 없었다.
당연히 대호로서는 무슨 일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대호! 놀라운 뉴스야!]
“놀라운 뉴스요?”
느닷없는 놀라운 뉴스란 에이전트의 말에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따라했다.
그런 대호의 반응을 미리 예상했는지, 에이전트인 맥콰이어의 웃음소리가 휴대폰 안에서 들려왔다.
[하하하하! 그 뉴스가 뭐냐면…….]
“뭐냐면?”
자꾸 뜸을 들이는 맥콰이어였다.
[드디어 N사에서 연락이 왔어!]
“N사라면… 스폰서십 계약을 말씀하시는 거죠?”
N사에서 연락이 왔다는 소리에 대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실 야구 용품 브랜드에서 대호에게 스폰서십 계약을 하자고 연락 온 것은 오늘만이 아니라 작년 마이너리그 데뷔 후 꾸준히 있던 일이었다.
하지만 대호는 그러한 이야기를 일축하고 야구에만 전념했다.
굳이 마이너리거일때 스폰서십 계약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대호의 에이전트인 마크&맥콰이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찍 해 봤자 좋은 조건을 받지도 못할 텐데 이득도 적고, 그러니 메이저리그로 콜업 된 후에 스폰서십 계약을 맺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대호는 작년 2031시즌 후반기 메이저리그 콜업이 된 이후에도 스폰서십 계약을 뒤로 미루었다.
그 이유는 메이저리그에 콜업이 되기는 했지만, 뉴비인 자신에게 큰 금액을 쓸 회사는 없을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대호가 메이저리그, 그리고 메이저리거들과 스폰서십 계약을 하는 스포츠 용품 회사 간의 체계를 알지 못했다면 작년에 콜업이 된 이후 곧바로 계약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호는 3회차 때 이미 스포츠 용품 업체와 스폰서십 계약을 맺은 전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에이전트와 스폰서십 계약을 할 회사에 속아 헐값에 계약을 하였다.
나중에 그것이 에이전트가 커미션을 받아먹고 자신을 속인 것을 알고는 에이전트 계약을 해지하기도 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대호는 메이저리그 콜업이 되었다고 바로 스포츠 용품 회사와 스폰서십 계약을 하지 않고 뒤로 미루었다.
메이저리그 적응에 전력을 다한다는 핑계로 거절하였다.
대호가 이럴 수 있던 것은 오클랜드 슬랙스와 700만 달러 +a 계약을 했던 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굳이 급하게 스폰서십 계약을 하지 않아도 돈에 여유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자신에게 시스템이 있기에 앞으로 더 성적을 내 유명해질 것이란 자신감도 한몫했다.
성공이 담보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데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건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렇게 스폰서십 계약을 미루다 오늘에 이르렀다.
[N사에서 5년 1천만 달러, 현금 1년 150만 달러에 야구용품 50만 달러 규모로 계약을 하자고 하네? 대호 네 생각은 어때?]
맥콰이어는 N사에서 제시한 계약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계약 조건을 들은 대호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였다.
* * *
올스타 브레이크 마지막 날, 이날은 공식적으로는 휴식일이다.
하지만 대호는 이날 스폰서십 계약을 위해 에이전트를 대동해 N사 임원을 만나야 했다.
‘호텔 샹그릴라… 이곳하고는 인연이 있나 보네.’
참으로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이곳 호텔 샹그릴라는 며칠 전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한나의 부모님을 만난 곳이다.
그리고 그날 디너는 무척이나 성공적이었고, 한나 부모님과도 말이 아주 잘 통해 처음 만났음에도 마치 오랜 동안 알고 지낸 것만큼이나 가까워졌다.
그런 것 때문인지 한나의 부모님도 이곳 호텔 식당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하여 오늘 저녁도 이곳 이탈리안 식당에서 하기로 했다.
그런데 N사 임원과 스폰서십 계약을 하기 위해 미팅을 하는 장소가 이곳임을 알게 된 대호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 대호의 모습을 본 맥콰이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대호,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아니, 며칠 전 이곳에서 한나의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았는데, 그날 이야기가 잘 통해 분위기가 무척 좋았거든.”
“아!”
대호의 설명에 맥콰이어도 그게 무슨 뜻인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
“응. 왠지 일이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
“뭐, 그쪽도 대호의 제안에 기분 나쁜 기색은 없었으니, 오늘 미팅은 분위기가 좋을 거야!”
맥콰이어는 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였다.
그렇게 대호는 에이전트인 맥콰이어와 가벼운 대화를 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 * *
“어서 오십시오.”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던 닐슨 반델라 이사는 방으로 들어오는 대호와 맥콰이어를 보며 인사를 하였다.
“반갑습니다.”
먼저 인사를 한 사람은 에이전트인 맥콰이어였다.
맥콰이어는 대호를 대리하는 존재였기에, 닐슨 반델라 이사를 상대로 앞으로 나선 것이다.
사실 대호가 직접적으로 할 일은 협상이 마무리되고 나중에 사인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조용히 맥콰이어가 어떻게 N사의 이사인 닐슨 반델라와 협상하는지 지켜보기로 하였다.
가벼운 인사가 한차례 돌고, 본격적인 스폰서십 협상에 들어갔다.
“저희 N사에서 대호 정 선수 측의 요구에 대해 검토를 해 보았습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N사의 대표로 나온 닐슨 반델라였다.
“어떻게 결정이 나왔나요?”
맥콰이어는 자신들의 요구 조건에 대해 검토를 했다는 닐슨 이사의 말에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맥콰이어의 물음에 닐슨 이사는 속으로 살짝 당황했다.
‘보통내기가 아니군!’
닐슨 반델라 이사는 포커페이스로 물어 오는 맥콰이어를 보며 그렇게 판단을 하였다.
물론 처음부터 에이전트를 상대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예상하고 이 자리에 나오기는 했지만, 협상에 들어가자 첫인상과는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2년 단기 계약을 하시자고 했는데, 차라리 계약금을 조금 더 올리고 계약 기간을 늘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대호는 처음 N사가 제시한 5년이란 기간에서 3년이나 줄인 2년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1천만 달러 규모의 계약금과 용품 후원을 400만 달러로 낮추자 했다.
년 2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이었기에 이를 2년으로 줄이면 400만 달러이니 그렇게 제안을 한 것이다.
하지만 N사에서는 이런 대호의 제안에 차라리 후원 규모와 계약 기간을 늘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역제안을 하였다.
“그건 저희가 받아들이기 힘들 것 같습니다.”
후원 규모를 늘려 준다는 것은 좋았지만, 계약 기간이 늘어나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특별한 사고가 있지 않다면, 시간이 갈수록 대호의 실력과 인기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이는 대호의 나이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보통 운동선수는 서른이 되기 전까진 신체 능력이 점점 향상되고, 또 경험이 늘어날수록 성적도 점차 올라간다.
그러한 점을 보면 대호는 최소 두 번의 FA(Free Agent, 자유계약선수 제도)가 가능하였고, 현재 나이를 생각해 볼 때 두 번의 FA계약이 지나도 30대 초반의 나이다.
그 말은 성적에 따라 FA가 세 번까지도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N사에서는 스폰서십 계약을 최대한 길게 가져가고 싶은 것이고, 반대로 대호의 입장에서 최대한 계약 기간을 짧게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여러 번 계약을 하고, 또 그 때마다 당시 성적을 기준으로 스폰서십 계약을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호는 조금 전 닐슨 반데라 이사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저희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약을 하지 않으셔도 상관없습니다.”
굳이 양보를 할 이유가 없었다.
스포츠 용품을 판매하는 회사는 많았고, 미국의 N사가 야구 용품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분명 크기는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회사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도 현재 대호의 에이전트인 마크&맥콰이어에 문의를 하고 있고, 그보다 작은 곳에서도 열심히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러니 가장 큰 회사인 N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른 곳과 협상을 하면 그만이다.
시간은 어차피 대호의 편이기 때문에 이렇게 배짱을 부릴 수 있었다.
“으음!”
어쩌면 단호한 맥콰이어의 대답에 닐슨 이사는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역시나 만만치 않군!’
협상에 들어가기 전 느꼈던 것이 괜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닐슨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때, 오늘 출발하기 전 도나휴 회장이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 웬만한 조건은 그냥 수용하고 무조건 계약해서 사인까지 받아!
다만 도나휴 회장이 무조건 상대의 조건을 수용하라고 했지만, 오늘 계약의 발인자가 자신인 이상 막상 나중에 일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책임은 자신이 뒤집어쓰게 되리라.
그러니 닐슨으로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계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 조건을 수락하고 계약을 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닐슨은 머리를 계속해서 굴렸다.
침묵이 길어지자, 반대편에 앉아 있던 맥콰이어는 닐슨을 더욱 압박하기 위해 살짝 미소를 짓거나, 탁자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랬다가 만약 경쟁사인 A사와 계약을 하고 대박을 터뜨린다면…….’
닐슨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다.
만약 자신이 저 조건이 무리한 것이라 생각해서 받아들이지 않고 계약이 무산되었을 때, 대호가 경쟁 업체와 계약해서 대박을 터뜨린다면?
그때 자신에게 돌아올 리스크를 계산하자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절대 안 돼!’
무조건 계약을 해야 한다.
그게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
사실 N사에서도 어차피 처음부터 5년 계약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다만 혹시라도 후원 규모를 2~300만 달러 정도 더 늘리면 가능성이 약간은 더 있을 거라 생각했을 뿐.
그런 상황에 대호 측에서 계약 기간을 줄이는 대신, 후원 규모도 적게 한다고 하니 받아들이는 게 맞다는 생각이 닐슨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좋습니다. 2년 계약으로 하고, 이번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 우선 협상자로 저희 N사를 지정한다는 문구를 특이 사항으로 넣어 주십시오.”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자, 대리인으로 협상을 진행하던 맥콰이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조금 억지라면 억지일수도 있었는데 다행이군!’
사실 신인이라 할 수 있는 대호가 현재 전반기 기록만으로 홈런 마흔다섯 개를 쳐 메이저리그 홈런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세계적인 스포츠 용품 업체에는 이름값이 밀리는 게 당연했다.
그런 곳과 1년 200만 달러라는 후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는 건, N사에서 대호를 메이저리그 상위 등급 스타로 인정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록 특약에 우선 협상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문구가 있기는 하지만, 이건 계약을 하면 어디에나 들어가는 당연한 것이었다.
“OK! 2년간 잘 부탁드립니다!”
“네! 하하하!”
N사의 대표로 나온 닐슨 반데라 이사와 대호의 대리인 자격으로 협상을 주도한 맥콰이어, 두 사람은 협상 조건에 만족하고 웃으며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두 사람의 협상이 마무리되자 계약서가 작성되었고, 최종적으로 대호의 사인이 기입되면서 N사와 대호의 스폰서십 계약은 2년 동안 연 200만 달러 상당의 돈과 야구 용품 후원을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