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메이커 중 하나인 N사의 회장, 존 도나휴는 인상을 찡그리며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탁!
“아직도 개선 방안을 찾지 못했나?”
존 도나휴 회장이 이렇게 화가 난 것은 갈수록 떨어지는 매출 때문이었다.
특히나 야구 용품의 경우 매출이 20%나 줄어들어, 결국 최근엔 경쟁사인 A사에게 매출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스타 마케팅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사 중 한 명이 스포츠 스타 마케팅을 다시 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동안 N사는 특정 스포츠 스타를 내세운 마케팅을 중단하고, 다양한 종목의 스타들을 한데 묶어 광고 촬영을 하여 마케팅에 활용했다.
하지만 그런 홍보 전략은 초기에나 먹혀들었지, 최근 들어 점점 효과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경쟁자들에게 하나둘 자리를 내주고 점점 매출이 줄어들게 된 것이었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야구는…….”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4대 스포츠라고 하면, 미식축구(NFL)와 야구(MLB), 농구(NBA), 그리고 아이스하키(NHL)가 있다.
NFL이나 NBA, NHL등은 특정 선수를 이용한 스타 마케팅이 잘 통하는 종목이다.
그런데 수많은 스포츠 스타가 즐비한 MLB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분명 특정 선수에 대한 팬이 있고, 인기가 있는 것은 맞는데, 그렇다고 다른 종목처럼 맹목적인 지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3대 스포츠와는 다른 방식으로 마케팅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그게 통하겠나?”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음에도 무슨 수라도 내야 현 상황을 타파할 수 있다고 여긴 도나휴 회장은 처음 안건을 꺼낸 이사를 보며 물었다.
“예, 최근 엄청난 화제를 몰고 있는 선수가 한 명 있습니다.”
“그래? 그게 누군데?”
도나휴 회장은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외야수인 대호 정입니다.”
“대호 정?”
“음!”
“아!”
대호의 이름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묵직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왜 자신이 먼저 그를 떠올리지 못했나 하는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어리지 않나?”
도나휴 회장도 대호에 대한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생각하기에 정대호는 이제 겨우 메이저리그 2년차에 들어가는 스무 살짜리 어린아이였다.
지금 상황이 급하다고 해서, 당장의 성적에 현혹되어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 N사의 간판으로 내세우기에는 부족한 감이 많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닙니다.”
처음 안건을 낸 이사는 바로 반박하였다.
회장이 어리다고 말하였지만, 그의 생각엔 오히려 그 어린 나이가 플러스 요소라고 판단되었으니까.
“아니다?”
“예. 오히려 그 점이 마케팅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플러스알파라고 판단했습니다.”
“어린 나이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알파란 말이지?”
이사의 이야기에 도나휴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런 회장을 보면서 닐슨 반델라 이사는 왜 자신들이 대호를 광고 모델로 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늘어놓았다.
“미스터 정은 빌리 빈 단장의 신화가 있는 오클랜드가 구단 사상 최고의 계약금을 주고 계약한 해외 유망주입니다. 또…….”
구구절절 대호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신들과 오클랜드, 그리고 정대호 간의 상호작용에 대해 설명한 닐슨은 정대호만이 현재 지지부진한 매출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 * *
올스타 경기는 7회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따악!
7:6 상황.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이 1점 앞서나가는 중, 7회 말 원아웃 상황에서 뉴욕 킹덤스의 빌리 루이스가 안타를 치고 1루에 진출하였다.
대호는 오늘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서면서,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의 여섯 번째 투수인 필라델피아 펠리스의 선발 리치 애반스를 노려보았다.
오늘 대호의 성적은 3타석 3타수 2안타 1홈런이었다.
아웃 카운트가 하나 있기는 했지만, 2안타 중 홈런이 하나 있고, 또 나머지 하나도 2루타였기에 상당한 활약을 펼치는 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팡!
“볼!”
초구는 무릎 밑으로 낮게 들어왔다.
배트를 끌어내는 유인구를 던지고 싶었겠지만,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인지 한눈에 봐도 낮은 공이었기에 대호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두 번째 볼은 그냥 지켜보지 않고 바깥쪽으로 반 개 정도 빠지는 슬라이더를 그대로 밀어 쳤다.
따아악!
비록 스트라이크 존에서 반 개 정도 빠지는 볼이었지만, 대호는 타석에 바짝 붙어 있던 참이라 크게 제약을 받지 않고 배트 중심에 맞출 수 있었다.
올스타 경기가 치러지는 LA다윈스의 홈구장인 다윈스 스타디움의 좌우 폴 대까지의 거리는 100m.
규정보다 큰 구장이었지만, 대호가 밀어 친 타구는 100m 거리를 훌쩍 넘겨 우측 폴 대를 맞추는 투런 홈런이 되었다.
“와아아!”
다다다다!
홈런을 침과 동시에 경기장엔 관중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대호는 그걸 들으면서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았다.
“홈런! 정대호 선수, 우측 폴 대를 맞추는 투런 홈런을 만들어 냈습니다.”
“하하! 1회에 솔로 홈런, 그리고 지금 7회 말에 투런 홈런을 쳤군요.”
“4회에도 2루타 하나가 있지 않습니까?”
“네. 정대호 선수는 오늘 4타수 3안타를 쳤는데, 그중 솔로 홈런과 방금 전 투런 홈런까지 두 개의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김승주와 하구연은 갑자기 흥분을 하며 조금 전 대호가 친 투런 홈런을 이야기하다 급기야 오늘 대호의 타격 기록을 언급했다.
이들이 이렇게 흥분을 하는 이유는 두 개의 홈런과 2루타 하나 덕분에 현재 올스타 경기의 MVP로 선정되기 가장 유리한 위치에 올랐기 때문이다.
오늘 올스타 경기는 예년에 비해 홈런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한 선수가 두 개의 홈런을 친 것은 대호 혼자뿐이었다.
그러니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경기 MVP는 대호가 받을 것이 분명했다.
역대 올스타 경기 MVP 중에 아시아인은 2007시즌 혼다 이치로가 유일하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 더욱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올스타 경기 MVP를 수상했던 혼다 이치로의 포지션 역시 지금 대호가 맡고 있는 중견수였다.
그러니 만약 올 시즌 올스타 경기 MVP로 대호가 수상하게 된다면 또 한바탕 이슈가 날 게 분명했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가깝고도 먼, 그러면서 애증이 가득한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현재 경기 스코어는 다시 7:8이 되어,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팀이 앞서기 시작했다.
다만 후속 타자가 터지지 않아 7회 말에 더 이상 점수는 내지 못하고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의 공격으로 공수 교대가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메리칸리그의 투수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체프 벤으로 교체되었다.
탁!
“대호, 뒤는 잘 부탁한다.”
그라운드로 나가던 대호의 머리를 톡 친 체프는 대호를 보며 그렇게 말하였다.
대호 역시 체프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글러브를 낀 왼손을 들어 보인 뒤 외야로 뛰어 나갔다.
체프 벤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잘 막아 주겠지.’
휙! 휙!
좌투 좌타를 하는 체프 벤이었는데, 어제 무리하게 많은 수의 공을 던진 것 때문인지 어깨가 조금 뻑뻑한 감이 있기는 했다.
물론 홈런더비가 끝나자마자 안마를 받고, 또 얼음찜질 역시 받은 상태라 서른 개 정도는 충분히 던질 만했다.
휘익!
팡!
“스트라이크!”
맞아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가볍게 던진 공이었는데, 욕심 때문인지 타자의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스윙이 나왔다.
그 결과는 한참 벗어난 헛스윙.
‘오스틴 완스, 올스타전이라 그런지 힘이 잔뜩 들어갔네.’
내셔널리그 올스타팀 타자인 오스틴 완스의 스윙을 지켜본 체프 벤은 눈을 반짝였다.
시즌 경기도 아니고 이벤트 경기인 올스타 경기다 보니, 마음을 편하게 먹어서 투수들은 물론이고 타자들의 스윙에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 때문에 점수도 평소보다 많이 나오고 홈런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체프 벤은 다른 투수들처럼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던질 이유가 없었다.
어제 너무 많은 공을 던졌으니 안타를 맞더라도 적당히 힘을 빼고 던지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그런 체프의 생각은 적중했다.
펑!
“스트라이크!”
적당히 빼는 공도 없고 타자의 배트를 끌어내는 유인구도 던질 생각이 없는 그는 연속해서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다만 로케이션을 다양하게 가져갈 뿐이다.
휘익!
딱!
기습적인 인코스 하이 패스트볼이다 보니, 오스틴 완스가 휘두른 스윙은 제대로 힘이 실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의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유격수의 글러브에 막혔다.
터업.
“아웃!”
유격수 앞 땅볼로 가볍게 원 아웃을 잡은 체프 벤은 두 번째 타자를 맞아 피칭을 하였다.
이번에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투구를 하였다.
펑!
가볍게 던지고 있음에도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는 그의 공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94.5마일? 좋은데!’
체프 벤의 공을 받고 있는 보스턴 블루삭스의 잭슨 맥과이어는 그의 공이 무척이나 괜찮다고 생각했다.
팡! 팡!
그래서 저도 모르게 오른손 주먹으로 미트의 웹을 두드렸다.
지금 포수의 행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는 체프 벤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비록 같은 팀은 아니지만, 현재 자신의 공을 받고 있는 포수가 자신의 공이 좋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기분이 나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공에 자신감이 붙은 체프 벤은 마지막 타자를 잡고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에 투구에 조금 힘이 들어가고 말았다.
휘익!
따아악!
방심을 해서 그런지, 어깨에 힘이 들어가다 보니 공의 무브먼트가 조금 전과는 다르게 툭어 밋밋하게 날아갔다.
오늘 경기에 나오는 메이저리거 중 이러한 실투를 놓칠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
타구는 쭉쭉 뻗어 나가며 우중간으로 깊이 날아갔다.
다다다다!
타자가 친 타격음을 들은 대호는 지체하지 않고 방향을 잡고 뛰었다.
“마이 볼!”
우익수와 수비 범위가 겹치는 지점에 접근하자, 대호는 콜을 하고는 떨어지는 타구를 향해 다이빙을 하였다.
팡!
“아웃!”
“와아아!”
대호의 원래 계획은 오늘 경기에서 무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 타구는 어제 홈런더비에서 자신을 위해 무리하게 공을 던졌던 체프 벤의 실투였다.
그래서 그의 어깨를 가볍게 해 주기 위해 더 이상 공을 던지지 않도록 아웃을 잡아내기로 하고 전력을 다했다.
메이저리그 올스타들의 경기라 슈퍼 플레이가 많이 나올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올스타 경기가 이벤트 경기다 보니 타격에서는 공격적으로 스윙이 크고 화려하지만, 수비에서는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부상 위험이 있는 플레이는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방금 전 대호는 그런 것도 잊고 몸을 날렸다.
짝!
“고맙다.”
공수 교대가 되면서 먼저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체프 벤이 뒤늦게 들어오는 대호와 손을 마주치며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하였다.
“뭘요. 어제 체프의 도움으로 큰 금액을 기부할 수 있었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죠.”
대호는 자신이 어제 체프에게 받은 도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8회 초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의 공격이 끝나고, 8회 말 대호가 속한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7회에 2점을 뽑아냈던 것에 반해, 8회 말에는 내셔널리그 올스타가 체프 벤에게 막혔던 것처럼 애리조나 레틀스네이크 소속 루스 곤살레스에 말려 삼자범퇴로 끝났다.
그리고 내셔널리그 올스타팀의 마지막 경기인 9회 초가 되었다.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의 마무리를 맡은 텍사스 레이스의 마무리 투수 에반 로드리게스가 마운드에 올랐다.
최고구속 100.5마일에 평균구속 98마일로 메이저리그에서도 알아주는 마무리였다.
그가 자랑하는 구종은 투심 패스트볼과 95마일의 고속 슬라이더.
펑!
“아웃!”
마무리투수여서 그런지, 에반 로드리게스의 투구는 군더더기가 전혀 없었다.
그저 스트레이트 패스트볼로 아웃 카운트를 잡아낼 뿐.
에반 로드리게스의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94마일의 공을 보다가 갑자기 그보다 5마일 정도 더 빠른 패스트볼을 봐서 그런지, 내셔널리그 타자들은 에반 로드리게스가 던지는 공을 제대로 쳐 내지 못했다.
“아웃!”
9회 2아웃에 마지막 아웃 카운트만을 남겨둔 상황, 에반 로드리게스는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보며 신중하게 공을 던졌다.
앞선 타자와 다르게 그가 신중하게 공을 던진 이유는 다름 아닌 이번 타석에 들어선 타자와 그의 상성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따아악!
잘 맞은 타격음이 그라운드를 울렸다.
자신이 던진 공이 타자의 배트에 맞는 소리를 들은 에반 로드리게스는 그만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보지 않아도 타구가 어디까지 날아갈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
다윈스 스타디움에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솔로 홈런이 되면 동점 상황으로 바뀌기 때문인지 내셔널리그 팬들의 함성이 커졌다.
하지만 중견수 수비를 보고 있는 대호는 더 이상 경기 시간이 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다다다다!
펜스를 향해 타구를 쫓아 달리던 대호는 워닝 트랙으르 지나 펜스를 밟고 뛰어 올랐다.
그리고 하늘 높이 글러브를 낀 왼손을 들어 올렸다.
퍽!
글러브의 웹에 타구가 들어오는 느낌을 받은 대호는 공이 튀어 나가지 못하게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와아아아!”
또 다른 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