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홈런더비가 끝나고 더비 우승 인터뷰 중 발생한 대호의 갑작스러운 깜짝 발표로 인해 야구팬은 물론이고, 미국 전역과 대한민국도 발칵 뒤집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호가 자신의 1년 연봉보다 많은 홈런더비 우승 상금 전액을 집이 없는 노숙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봉사 단체인 푸드뱅크에 기부한다고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사실 대호가 올스타 브레이크 이벤트 경기인 홈런더비에 나와 홈런을 한 개 칠 때마다 100달러씩, 그리고 열 개가 쌓일 때마다 500달러씩 추가로 기부한다고 이미 구단과 에이전트에서 홍보하였기에 이미 많은 관심을 끈 상태였다.
메이저리그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 흥행하는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 등 여러 스포츠에서 활약하는 스타들이 자주 하는 것이었기에 처음에는 홈런 개수에만 신경이 쏠렸다.
하지만 막상 대호가 총 백 개의 홈런을 치며 더비에서 우승을 하고, 인터뷰 중 우승 상금까지 모두 기부를 한다고 하자 관심이 폭발한 것이다.
아무리 물가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100만 달러는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정대호 본인도 아직 서비스 기간이라 성적에 비해선 푼돈이라 할 수 있는 7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으면서 그보다 많은 100만 달러를 흔쾌히 기부를 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스포츠 스타의 재산이 꼭 연봉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되었든 대호가 100만 달러의 돈을 본인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기부를 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대호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호감으로, 발전해서 팬심으로 바뀌었다.
* * *
“와아아아!”
올스타 브레이크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올스타 경기가 펼쳐지는 다윈스 스타디움.
이곳에는 야구팬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2032시즌 메이저리그 올스타 경기가 치러지는 LA다윈스의 홈구장인 다윈스 스타디움입니다.”
올스타 경기 중계권을 획득한 KBC스포츠의 아나운서인 김승주가 카메라를 보며 소개를 하였다.
“하구연 위원님, 어제 있었던 홈런더비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김승주의 질문에 옆에 자리하고 있던 하구연 해설위원이 흥분한 듯 상기되어 대답을 하였다.
“맞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랑인 정대호 선수가 홈런더비에서 1등을 했지요.”
“하하하! 단순히 홈런더비에서 1등을 한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정대호 선수는 더비에서 1등을 한 것도 모자라, 우승 상금까지 기부를 한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오늘 올스타 경기를 해설하기 위해 자리한 하구연 위원은 마치 아들의 선행을 자랑하는 아버지처럼 대호가 어제 기습 발표한 우승 상금 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말했다.
“허 참! 제가 정대호 선수를 청소년 대표 때부터 지켜보았지만, 정말이지 배포가 보통이 아닙니다.”
2030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 대표로 출전했던 대호, 그리고 그 경기를 중계했던 KBC스포츠였기에 하구연 해설위원은 대호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역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한국 선수 중 가장 특별한 재능을 가진 천재입니다.”
“야구 천재란 것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알 수 있었지만, 이렇게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사회에서 좋은 영향을 펼치는 것이 보기 좋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정대호 선수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을 갓 넘은 어린 선수 아니겠습니까? 보통 사람들이라면 대학교 1~2학년밖에 되지 않는 나이인데, 하는 행동은 프로 10년차 베테랑급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사실 어린 선수들은 정대호 선수의 이런 점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구연 위원은 김승주 아나운서의 말을 받아 쓴소리를 하였다.
요즘 젊은 스포츠 스타들 중 자신들의 본분을 잊고 제 마음대로 행동을 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팬들의 사인 요청을 거부한다든가, 경기가 끝나고 퇴근을 할 때 팬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차에 오른다든가 하는 무성의한 태도는 너무나 유명했고, 몇몇 인기가 많은 스타의 경우 이성 팬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에 반해 방금 전 언급한 대호의 경우 기본적으로 팬들의 요구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응했고, 특히나 어린 팬들의 요구는 어떤 바쁜 일이 있어도 잠시 멈춰 눈높이를 맞춰 주었다.
거기에 어제 한국 돈으로 치면 12억 원이 넘어가는 엄청난 돈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부하였다.
그것도 자신의 연봉보다 많은 액수를 말이다.
사람이라면 아까운 생각이 들 터인데도 정대호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 인터뷰 도중 발표해 버렸다.
“하하하! 확실히 위원님 말씀이 맞군요. 그런데… 이벤트 경기에 나와 공을 던져 준 오클랜드의 제 2선발인 체프 벤 선수는 단순히 공 몇 개 던지는 걸로 알고 나왔다가, 한 경기에 던지는 한계 투구까지 던졌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알려진 얘기로는 정대호 선수의 홈런이 하도 시원시원하게 터지다 보니, 본인도 그렇게나 많은 공을 던진 줄 몰랐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까?”
뒤늦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된 김승주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그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야구팬 모두가 같았다.
* * *
올스타 경기를 치르기 전, 더그아웃에 모여 있는 아메리칸리그 선수들은 친한 선수들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체프! 어깨는 좀 어때요?”
대호는 어제 무리한 체프 벤을 보며 물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공을 던졌으니 당연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응. 좀 뻐근하기는 하지만, 어차피 오늘은 한 회만 던질 예정이니 상관없어.”
내셔널리그 올스타를 상대로, 체프 벤은 오늘 한 회만 던지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문제없다는 반응이었다.
또한 올스타 경기는 팬을 위한 이벤트 경기였기에 여기서 홈런을 맞든, 안타를 맞든 별 의미가 없었기에 체프 벤의 어깨도 비교적 가벼워 보였다.
사실 체프가 어제 많은 공을 던진 것을 알고 있는 케빈 캐쉬 감독이 8회만 맡긴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래도…….”
대호는 아무리 이벤트 경기라서 적당히 힘을 빼고 던진다곤 하지만, 이틀 연속해서 공을 던지는 것은 투수에게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계속해서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렇게 걱정이 되면 네가 내 어깨를 위해 도움을 주면 되잖아!”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막아 볼게요.”
자신의 욕심 때문에 무리한 팀 동료를 보며 대호는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서 단단히 각오가 서린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고 이 대화는 대호를 2032시즌 올스타 경기에서 MVP로 만들어 주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 * *
따아아악!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중 3번 타자로 나선 대호는 선발로 나온 LA다윈스의 워커 홀리의 인코스 낮은 체인지업을 받아 쳐 홈런을 만들어 냈다.
앞선 1번과 2번 타자가 삼진과 내야 땅볼로 2아웃이 된 상황에서 1B 1S의 볼카운트.
그때 기습적인 인코스 낮은 체인지업이 들어왔음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무릎을 굽혀 손목 힘만으로 솔로 홈런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정대호 선수, 투수 워커 홀리의 체인지업에 속지 않고 무릎을 구부리며 받아 쳐 홈런을 만들어 냅니다!”
김승주는 워커 홀리의 체인지업을 쳐 홈런을 만든 대호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의 말을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분명 대호는 워커 홀리의 공에 속았지만, 배트 컨트롤을 이용해 홈런을 만들어 냈으니까.
그리고 하구연 위원 역시 그렇게 해설해 주었다.
“아닙니다. 정대호 선수는 워커 홀리의 세 번째 공을 몸 쪽 낮은 직구로 판단해 스윙을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들어오는 궤적이 체인지업임을 깨닫고 무릎을 구부려 자세를 낮춘 뒤, 손목 힘으로 홈런을 만들어 낸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잠깐만요 위원님. 지금 말씀이 맞다면, 정대호 선수의 손목 힘은 대체 어느 정도라는 말씀이십니까?”
해설을 들은 김승주는 입을 떡 벌리고 그렇게 얘기하였다.
현재 정대호의 프로필상 스펙은 이러했다.
196㎝에 90㎏.
그렇기에 겉으로 보이는 체형은 근육질이라기보다는 호리호리하고 탄탄한 편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많은 야구 관계자들은 대호의 전반기 활약을 보며 후반기에는 홈런 개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지금 가볍게 손목 힘만으로 홈런을 치는 것을 보면, 김승주는 그 예측이 틀렸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괜히 마이너 시절에 불법 약물 의혹이 나온 게 아니었구나. 저 몸에 저런 힘이 말이 돼?’
하지만 대호는 메이저로 올라온 지금까지도 잦은 도핑 테스트를 빼먹은 적이 없었고, 단 한 번도 양성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실시하는 부정기적 테스트는 물론이고 구단에서 실시하는 테스트에서도 말이다.
“하하하, 정대호 선수는 겉보기엔 소위 똑딱이, 혹은 호타준족에 가까운 몸매를 하고 있지요. 그렇지만 전반기에 마흔다섯 개의 홈런을 친 슬러거입니다. 당연히 손목 힘도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정도일 겁니다.”
“와… 제가 다른 종목도 해설하면서 운동선수들의 놀라운 신체 능력에는 감탄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끝이 없군요. 게다가 타 종목의 경우 겉보기에도 대단한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대호 선수는…….”
계속해서 감탄하는 김승주를 보며 하구연이 가볍게 이야기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 때문에 작년의 그 유명한 스캔들이 있었던 거 아니겠습니까? 불법 약물 의혹 말이죠.”
“아, 확실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클랜드 프런트에서도 차기 프랜차이즈 스타를 그렇게 허술하게 관리할 리 없으니, 그저 성적이 안 되는 선수들이나 타 구단 팬들이 내놓는 루머 취급밖에 못 받는 거겠죠.”
“우선 방금 장면을 다시 한번 보시죠.”
하구연은 조금 전 대호가 체인지업을 받아 쳐 솔로 홈런을 만든 순간을 중계 화면으로 보며 설명하였다.
“아까 잠시 언급해 드렸지만, 이렇게 급하게 무릎을 굽히면 사실 잘 힘이 안 들어가는 게 맞습니다. 그러니 김승주 아나운서께서 하신 말처럼 속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즉, 메이저리그 톱에 올라 있는 힘이 제대로 발휘되었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국내에서도 홈런 마흔다섯 개면 KBO 톱 선수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리그 수준 차이를 생각하면 그냥 산술적으로는 백 개의 홈런도 가능하다는 말이 되죠. 물론 정말로 그 정도를 치지는 못하겠지만, 올해 정대호 선수의 기록이 약물 복용 선수의 기록을 깰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하하… 저도 예전엔 게리 본즈의 메이저 경기를 보며 좋아했던 적이 있는 만큼, 실망감도 컸는데요. 그런 약쟁이의 이름을 완전히 지워 버리는 게 우리나라 선수라는 점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하구연은 그 말을 듣고 또다시 빙그레 웃었다.
“메이저에서도 타자의 타입에 따라 다르지만, 홈런을 열 개도 치지 못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강타자라고 말하기 위해서 홈런 서른 개 정도는 필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KBC스포츠 채널인 것을 망각한 듯, 한동안 대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의 항의는 거의 없었는데, 그들 역시 오랜만에 나온 한국인 메이저리거 올스타에 열광하고 있었고, 방금 전 말도 안 되는 위력의 손목 힘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