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오클랜드 슬랙스 마케팅 대리인 게리 뮬러는 오늘 있을 행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바로 현재 팀 내 최고 인기 스타인 대호를 위한 특별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오클랜드의 팬들을 위한 행사이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마케팅 담당자 중 한 명인 그로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식순이 시작되면 여러분이 국가를 불러 주시고, 또 미스 정이 시구를 해 주시면 됩니다.”
게리는 오늘 초대 게스트인 N―AGE 멤버들을 보며 간략하게 설명을 하였다.
그러자 미호를 포함한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아이돌 그룹은 프로페셔널하다고 했으니 잘 하겠지. 그나저나 빅 타이거의 누나라 했었나? 상당한 미인이군.’
대호의 누나 미호는 미국인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동양 미인과는 완전히 다른 타입이었다.
게리는 보통 아시안계 여성들을 보며 아름답다기보다는 귀엽다는 인상이 강했는데, 그 편견이 오늘 완전히 깨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하이힐을 신고 있긴 했지만, 180㎝인 자신과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 신체 비율 또한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정대호 선수도 상당한 미남이지. 동양인 특유의 얼굴에 강인한 느낌도 있고 말이지.’
속으로 남매의 뛰어난 외모에 대해 생각하던 게리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그럼 행사 시작 전까지 편하게 쉬시길 바랍니다.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 주시고요.”
오늘 행사 담당자인 그가 계속해서 N―AGE 멤버들만 보고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방에 남은 N―AGE 멤버들과 스피릿 엔터에서 파견된 홍예지 홍보실장은 그제야 한숨을 쉬었다.
“휴우!”
“후아!”
“우리가 말로만 듣던 역주행의 주인공이 되다니…….”
“그러게. 대호가 우리 노래를 테마곡으로 사용하고 싶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 그런 생각 정도는 했어. 그런데 이 정도로 대박이 날 거라곤 전혀 예상 못했어.”
미호는 멤버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한마디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설마 저 멀리 미국 오클랜드에서부터 자신들의 노래가 성공한 게 한국으로 수입되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역주행을 할 거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솔직히 소속사에서도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조금 더 이름이 알려지고 예능 출연 몇 번이나 행사를 좀 더 뛸 거란 기대 정도만 있었겠지.
“언니, 그런데 왜 대호 씨가 우리 노래를 메이저리그 등장곡으로 쓴다는 걸 안 알려 준거야?”
N―AGE 멤버 중 대호와 동갑인 정은지는 미호의 중얼거림을 듣고 물었다.
“방금 말했잖아. 이 정도로 대박 날 거라곤 예상 못했다고. 그리고 괜한 기대감 심어 줬다가 잘 안 되면 어떡하니? 그냥 회사하고만 얘기했지.”
“정말이지… 한국에서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정은지에 이어 홍보실장인 홍예지도 한마디 덧붙였다.
“음, 그러니까 한 달 정도 전이었나? 대호가 메이저리그 개막 직전에 전화해서 물어봤었죠. 그리고 실장님도 제가 전달해 드리니까 좋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렇지.”
분명 그동안 각종 음악 방송 PD들과의 연락, 행사 섭외 등으로 엄청나게 바빴지만, 사실 이거야말로 스피릿 엔터에서 바라던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멤버들한테까지 숨겼다는 사실에 홍예지는 물론이고 다른 N―AGE 멤버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미호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 실내에 침묵이 흐를 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그러자 홍예지는 방금 전에 나간 오클랜드 슬랙스의 홍보팀 담당자가 다시 온 건 줄 알고 들어오라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덜컹!
“실례합니다.”
대호는 문을 열고 대기실로 들어가며 인사를 하였다.
“어머!”
“우와!”
“정대호 선수다.”
“왔어?”
대호의 인사에 N―AGE 멤버들은 각자 개성 있는 반응을 보이며 그를 맞았다.
“바쁜데 여기 와도 괜찮아?”
경기 전 시간을 내 자신을 찾아온 동생을 보며 미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동생이 야구 선수이다 보니, 그녀 역시 야구 규칙이나 메이저리그에 대한 정보에 어느 정도 능통했다.
미호가 알기로 오늘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에서 동생이 속한 오클랜드 슬랙스와 경기를 펼치는 상대 구단이 바로 숙명의 라이벌 LA데블스였기에, 걱정되었던 것이다.
오클랜드와 LA데블스의 경기는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 라이벌 경기보다 훨씬 치열하고, 또 사고가 많이 발생하였기에 당연한 물음이었다.
“오전 훈련 다 끝내고 온 거라 상관없어.”
“그래?”
“응. 그건 그렇고… 아직 시합이 시작하기까지 2시간도 더 남았는데, 점심은 아직이지?”
대호는 자신을 걱정하는 누나를 보며 가볍게 응대한 뒤 식사를 했는지 물었다.
물론 오늘 행사 진행에 관해 이야기를 하느라 점심을 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기에 일부러 챙겨 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응. 아직이긴 한데…….”
대답을 하던 미호는 슬쩍 이번 미국 일정의 책임자인 홍예지 실장을 돌아보았다.
무려 미국까지 가는 일정이다 보니, 홍보실장이 직접 동행하게 되었는데 N―AGE 멤버들은 꽤나 눈치가 보였다.
원래 함께하는 로드 매니저보다 아득히 높은 직급이었으니까.
스윽.
홍예지는 자신을 쳐다보는 대호의 시선이 느껴지자 곧바로 인사하였다.
“어머! 그렇지 않아도 만나면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했는데, 좀 늦었네요.”
“아닙니다. 곡을 사용하게 허락을 해 주셨으니 제가 더 감사해야죠.”
솔직히 누나만 아니었다면 대호가 N―AGE의 곡을 사용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호는 N―AGE와 스피릿 엔터에 대해 감정이 좋지 못했다.
1회차 당시, 가진 것 없는 집안의 장녀이다 보니 미호는 제대로 된 케어를 받지 못했다.
외모로 인해서 주목을 받는 건 분명 미호였지만, 소속사에서는 다른 멤버를 주력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별 볼일 없는 작은 규모의 엔터에서 데뷔해 무명 걸그룹으로서의 삶을 살고,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던 누나 미호였다.
그러나 대호의 회귀와 성공으로 인해 인기 스포츠 스타 가족이 생기자 소속사의 대우도 달라졌다.
‘내가 연예계에는 별다른 인맥이 없어서 회귀 초에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고, 또 2회차와 3회차의 경험이 있으니까 가만히 두는 거지. 안 그랬다면…….’
그래서 대호는 속으로 조소했다.
이전 회귀 때 한 번 화제성을 불러일으키자 역주행, 다음 신곡 대박 등등 선순환을 하며 무조건 성공이 보장된 게 아니었다면, 대호는 무조건 누나를 스피릿 엔터에서 빼 왔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감사와 호감을 표하는 홍예지와도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아직 식사 전이면 제가 잘 아는 맛집이 있는데, 같이 가시죠.”
대호는 스피릿 엔터도, N―AGE 멤버도 아니라, 거의 반 년 만에 보는 누나를 위해 식사 초대를 하였다.
“와! 정대호 선수와 같이 점심 먹는 거예요?”
대호의 점심 초대에 N―AGE의 막내 김미나가 반색을 하며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그건 비단 미나만이 아니라 다른 N―AGE 멤버들 모두 비슷한 기분이었다.
비슷한 또래이기는 하지만, 대호와 자신들의 인지도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었다.
요즈음 인지도가 오른 것 역시 모두 대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자신들의 곡을 테마곡으로 사용한 영향 아니겠는가.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 * *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
We`ve no less days to sing God`s praise
Than when we`d first begun.
“와아아아!”
짝짝짝짝!
오클랜드 슬랙스와 LA데블스의 경기에 앞서, 특별 이벤트로 한국의 아이돌 가수를 초청해 국가를 부르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물론 갑자기 동양의 무명 걸그룹을 부르기엔 무리가 가는 일이었기에 오클랜드 소속 슈퍼스타 정대호의 누나가 속한 그룹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했고 말이다.
그 덕에 N―AGE는 입장부터 관중들에게 많은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미국의 국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열창하자,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야구팬들은 더욱 뜨거운 환호성을 보냈다.
“하하하! 인크레더블, 너도 너지만 네 누나도 대단하군!”
오클랜드 슬랙스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는 자리에 서서 국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완창되길 기다리고, 축가가 끝나기 무섭게 대호를 부르며 칭찬을 보냈다.
정대호와 고작 두 살 차이가 나는 누나가 속한 그룹.
그런데 방금 전 노래는 이제 겨우 20대 초반의 젊은 가수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가창력이었다.
홈런 브레드는 메이저리거로 오랫동안 활동한 만큼, 수많은 가수들의 축가를 들은 적 있었다.
그런 그가 듣기에도 오늘 노래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또한 모국어로 영어를 쓰지 않는 나라임에도 이렇게나 진한 감동을 느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말이다.
“맞아, 주장! 카일라만큼 치명적이고, 러브 화이트만큼이나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졌어!”
대호와 주장의 대화에 끼어든 것은 지미 울프였다.
지미 울프가 말한 카일라와 러브 화이트는 미국의 초유명 가수들이었는데, 지미는 그 두 사람과 비교할 정도로 감동을 받은 듯했다.
“하하, 그런 말하기 전에 지미는 얼른 다음 순서 준비하세요.”
누나에 대한 칭찬을 하는 주장과 지미 울프의 이야기에 대호는 방긋 웃으며 지미에게 다음 이벤트 준비를 하러 가라는 말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N―AGE의 축가에 이어 경기 시작 전 미호의 시구가 있는데, 지미 울프가 시타로 타석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 맞다!”
대호의 이야기에 자신이 뭘 잊고 있었는지 깨달은 지미 울프는 급히 더그아웃으로 뛰어가 배트를 가지고 나왔다.
한편 지미 울프가 배트를 가지러 더그아웃에 간 사이, 축가를 마친 미호는 행사 담당자인 게리 뮬러의 안내를 받아 마운드로 향했다.
야구 경기장의 그 어떤 포지션과도 다른 높이를 가지고 있는 마운드.
그곳에 오른 미호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였다.
‘후우! 후우!’
그래서 곧바로 심호흡을 반복했다.
보통 여성 시구자는 마운드에서 시구를 하는 경우가 적다.
그도 그럴 것이, 포수가 있는 홈까지 공이 날아가지 않기 때문에 그보다 짧은 거리에서 시구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호는 일부러 마운드에 섰다.
야구 선수를 가족으로 두고 있는 그녀였기에 혹시라도 동생 대호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이곳 오클랜드 슬랙스와 스케줄을 조율할 때부터 준비를 했다.
예전 동생인 대호에게 들었던 기억들과 인터넷 동영상, 그리고 인맥을 이용해 알게 된 투수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받아 철저히 준비를 하였다.
휘익!
팡!
“스트라이크!”
야구 선수처럼 강력한 패스트볼은 아니었지만, 아마추어가 던진 공이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뛰어난 공이었다.
더욱이 던진 공도 공이지만 투구를 하는 폼이 무척이나 정석적이라 이를 지켜보는 수많은 야구팬으로 하여금 박수를 이끌어 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