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세이프!”
3루심의 선언과 동시에 오스틴이 항의를 하고는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텍사스 레이스의 감독 브루스 포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심에게 다가가 비디오 판독 요청을 하였다.
그가 보기에도 판정이 애매한 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밍상으로는 아웃이 분명한데, 확신할 수는 없었다.
또한 3루심의 판정이 맞아 비디오 판독 기회가 하나 날아가더라도 초반부터 오클랜드에 끌려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란 판단에 그런 결정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텍사스 레이스에게 너무도 뼈아픈 결정이 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3루 더그아웃 위에 놓인 방송 카메라에 정확한 상황이 송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호의 손끝이 먼저 3루 베이스를 찍었고, 그 직후 우익수가 던진 공이 글러브에 들어온 것이 말이다.
물론 시간상으로는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게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었다.
판정은 명백히 세이프였다.
“와아아아!”
오클랜드 팬들은 방송 카메라가 방금 전 3루에서의 플레이를 연속해서 보여 주자, 계속해서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뒤이어 헤드폰을 쓰고 판독실에서 보내 주는 비디오 판독 결과를 들은 주심은 헤드폰을 벗으며 양 손을 옆으로 펼쳐 보이며 기존 판정을 이어 간다는 신호를 보냈다.
대호 역시 주심의 팔 동작을 보고 3루 베이스에 서서 오른손을 들어 보이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빅 타이거! 발도 빨라!”
“하하! 작년 20―20 클럽 가입자니까 당연한 거지!”
결국 흐름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오클랜드 슬랙스로 넘어오게 되었다.
따악!
1번 타자인 대호가 스코어링 포지션에 나가 집중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비디오 판독을 기다리느라 투구 타이밍이 어긋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볼디의 공은 오클랜드의 2번 타자 지미 울프에게 너무나 쉽게 얻어맞았다.
잘 맞은 타구가 3유간을 지나 좌익수 방향으로 빠져나가고, 대호는 여유 있게 홈으로 들어왔다.
그사이 안타를 친 지미 울프는 1루를 지나 2루에 레그 슬라이딩을 하며 들어갔다.
스코어는 1:0.
여전히 노아웃 상태에서 단 두 명의 타자만으로 벌써 1점을 내자 홈팬들의 반응은 정말 열광적이었다.
잘되는 팀은 어떻게든 되는 것인지, 1회 초만 해도 불안불안하던 팀이 약간의 행운이 겹쳐 순식간에 1점을 얻어 내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홈에서 하는 첫 경기이니 만큼 패배한다면 쓴맛이 강할 것 같았으니까.
아무리 그동안 돌풍을 일으켰다고 해도 고향인 홈구장에서 패배한다면 솔직히 기분 좋지 않은 게 당연했다.
* * *
따악! 따아아악!
시원한 타구가 뻗어 나가는 모습이 편집되어 송출되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정대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첫 사이클링 히트 장면을 보셨습니다.”
KBC의 간판 스포츠 시사 프로그램인 베이스볼 러브의 진행자인 김태현이 오늘 있었던 오클랜드와 텍사스의 경기에서 활약한 대호의 모습을 보여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와… 정말이지 정대호 선수의 플레이는 할 말을 잊게 만드네요.”
베이스볼 러브의 진행자인 김태현과 오랜 합을 맞추고 있는 최희애가 감상평을 하였다.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고 고작 2년차인 오늘, 드디어 힛 포더 사이클, 즉 사이클링 히트를 쳐 냈습니다.”
“맞습니다. 그 별명만큼이나 인크레더블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하, 사실 정대호 선수의 마이너 시절 기록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죠.”
“아, 사이클링 홈런 2회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지금 방송에서 두 사람이 떠드는 것처럼 대호는 이미 마이너 시절부터 다양한 기록을 세운 바가 있었다.
물론 메이저에 올라온 이후에는 오늘 달성한 사이클링 히트가 최초였지만, 대호의 잠재성을 알고 있는 만큼 앞으로를 더 기대한다는 뜻이 더 컸다.
“네, 맞습니다. 그래도 사이클링 히트 역시 달성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가장 달성하기 힘든 것이 3루타로 꼽힙니다. 오늘 정대호 선수의 3루타를 한 번 보시죠.”
이윽고 화면에는 1회 말 슬라이딩 장면이 잡혔고, 텍사스 측에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 장면과 함께 세이프 판정을 보여 주었다.
“텍사스 입장에서는 3루수 오스틴이 강하게 반발해서 한 번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악수가 되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김태현과 최희애는 그렇게 경기를 분석하였다.
“참, 그런데 오늘은 기록 말고도 특이한 것이 있었죠?”
김태현은 대호의 기록 이외에도 국내 야구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 말을 꺼냈다.
“힛 포 더 사이클이란 기록 말고도 더 말할 이야기가 있나요?”
이미 작가가 써 준 대본이 김태현이 무슨 말을 할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최희애는 너스레를 떨며 질문하였다.
“하하, 그건 바로 정대호 선수에게도 드디어 테마곡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테마곡이요?”
“야구선수에게 테마곡이란, 그 팀에서 어느 정도의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렇다면 그만큼 선수로서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또 팬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는 선수의 증표라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와! 불과 프로 2년차에 그런 인정을 받는다니, 정말로 정대호 선수는 놀라운 선수이군요.”
“예, 정말로 정대호 선수는 팬들이 붙여 준 별명 그대로 인크레더블한 선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김태현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선수가 이제 겨우 20살이라니, 앞으로 한국 야구에 있어서도 정말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화가 길어지다 보니, 경기 내용과는 다른 대호에 대한 신변잡기 같은 내용이 방송에 송출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작진 중 그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의 대화를 막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실 한국 야구팬들에게 있어 정대호라는 주제는 시청률 제조기라고 불릴 만큼 화제성이 높았기에 방송국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는 진행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송의 여파로 인해 다른 곳에 불똥이 튀게 되었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 * *
따르릉! 따르릉!
대호의 누나 미호가 멤버로 있는 걸그룹 N―AGE가 소속된 스피릿 엔터의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한 전화로 인해 스피릿 엔터의 홍보실장 홍예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속한 스피릿 엔터의 유일한 연예인인 N―AGE가 이제 며칠 후면 3개월의 활동을 마치고 휴식기에 들어가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N―AGE를 찾는 문의 전화가 폭주한 것이다.
N―AGE는 1월 중순에 컴백한 이후 그저 그런 음원 성적을 거둬 방송보단 행사 위주로 활동을 했다.
솔직히 스피릿 엔터의 규모는 그리 큰 회사도 아니고, 대한민국에 흔한 중소… 아니, 겨우 걸그룹 하나를 보유하고 있는 작은 엔터 회사였다.
그 때문에 자본금도 작고 소속 연예인에게 푸쉬도 제대로 해 주지 못해,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성적도 100위권에 밖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N―AGE에 대한 문의 전화로 전화기가 쉬지 않고 울린 것은 그녀가 스피릿 엔터에 입사하고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실장님! 뮤직센터의 김영운 PD라는데요.”
그녀가 여기저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머리를 감싸고 있을 때, 부하 직원 한 명이 그녀를 보며 이야기를 하였다.
“아, 알았어! 여기로 돌려!”
공중파 방송국 중 하나인 MBS의 음악 방송 PD인 김영운이 직접 전화했다는 사실에 홍예지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방송국 PD에게서 걸려 온 전화는 비단 그 하나뿐만이 아니었다.
갑을 관계인 방송국과 엔터 회사의 관계상, PD의 전화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게 케이블이 아닌 공중파 방송국이라면 다른 전화를 받고 있더라도 먼저 받아야 할 입장이었다.
“아, 예 PD님. N―AGE 출연 말씀이시죠? 네 가능하죠.”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고 휴식기에 들어가기 직전인 N―AGE였지만, 공중파 방송국인 MBS 소속 김영운 PD의 부탁을 거절한다는 건 앞으로 이 바닥에서 일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후에 온 다른 공중파의 음악 프로그램 PD들에게도 모두 같은 대답을 하는 홍예지였다.
* * *
“야, 너 또 기록 세웠더라?”
자신이 소속된 스피릿 엔터가 때 아닌 전화로 인해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누나 미호는 한가롭게 대호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지방 스케줄을 끝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늘 있었던 대호의 경기를 듣고 축하해 주기 위해 전화를 건 것이었다.
“겨우 사이클링 히트 정도 가지고 뭐…….”
대호는 누나의 축하 인사에 별것 아니란 투로 대답을 하였다.
“하! 너무 담담한 거 아냐? 홈런 사이클처럼 평생 한 번도 치기 힘든 건 아니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그 첫 타격 기록인데 말하는 것 좀 봐?”
동생의 말에 미호는 타박하는 투로 말을 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어느 세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신과는 다르게 엄청난 계약금을 받고 프로 계약을 한 동생이다.
그리고 자신이 데뷔를 하고 몇 년 째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과 다르게, 동생은 계약하고 데뷔한 첫 해에 곧바로 스타가 되었다.
그냥 스타도 아니고 팀을 대표하는 슈퍼스타가 말이다.
자신이 있는 연예계로 치면, 데뷔와 함께 방송에서 1위를 하고, 또 각종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도 실시간 1위를 하며 팬 몰이를 한 것과 다름없었다.
한마디로 방송국에서도 감히 어쩌지 못하는 슈퍼 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불러 주는 방송도 없고, 겨우 지방 행사를 돌며 손에 꼽는 팬들의 응원을 받고 있는 이름 없는 아이돌일 뿐이다.
정말이지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작아지는 그녀였다.
하지만 그래도 동생이 자랑스러웠다.
너무도 잘난 동생이면서 누나인 자신을 생각해 별다른 티를 내지 않는 동생이 이제는 아버지만큼이나 든든했다.
“누나, 약속대로 내가 내 테마곡으로 N―AGE의 ‘슈퍼노바’를 사용하기로 했으니까, 이젠 누나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이야. 알겠지?”
“아하하! 뭐래, 네가 한 번 사용했다고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냐?”
미호는 동생이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생각해 가볍게 흘려들었다.
대호가 아무리 메이저리그에서 잘 나가는 슈퍼스타라곤 하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이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대호였지만, 자신의 테마곡으로 사용했다고 N―AGE의 노래 슈퍼노바가 역주행한다고 보기에는 힘들었다.
솔직히 국내에서 인기를 끈 초신성이라면 또 모를까, 메이저에서 여기까지 반응이 오기에는 너무 멀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핫, 누난 내 인기를 너무 모르는 것 같네!”
“에휴… 알았다. 알았어. 그냥 네 말이 맞다고 치자.”
미호는 괜히 자신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 때문에 괜히 동생이 신경 쓰일까 봐 그냥 동의하기로 했다.
야구 선수들이 이런 사소한 것에도 얼마나 민감한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내일이면 일어날 변화에 대해서 말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