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따악!
1루에 있던 주자는 체프 벤의 팔이 휘둘러진 순간, 곧바로 뛰기 시작했다.
히트 앤드 런 작전을 시도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타자가 때린 타구의 질도 너무나 좋았다.
우중간 깊은 곳으로 날아가는 타구다 보니, 달리기 시작한 1루 주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됐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자만심 가득한 행동이었다.
작년 후반기 메이저리그에 콜업 된 이후, 타격으로도 유명했지만 완벽한 수비를 보이며 수많은 타자들에게 통곡의 벽으로 불린 대호의 수비 범위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촤아악!
타격음을 듣자마자 재빨리 달린 대호는 타구가 그라운드에 떨어지기 직전, 슬라이딩을 하며 글러브를 펼쳤다.
터업!
글러브 안으로 묵직한 무게감이 걸린 것을 느낀 대호는 곧바로 손을 오므려 웹에 들어온 공이 놓치지 않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일어나 1루로 힘차게 송구했다.
쉬이익!
“아웃!”
“…….”
멋진 더블플레이였지만 어째서인지 뉴슬랙스 볼파크는 조용했다.
시작부터 흔들린 선발을 보며 시즌 첫 홈경기임에도 실망하던 관중들이 태세 전환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와아아아!”
“빅 타이거, 역시 최고다!”
장내에는 대호의 슈퍼 플레이를 보고 감탄한 팬들의 환호로 가득 찼다.
동시에 대호의 이름도 연신 연호했고 말이다.
“공수 교대!”
결국 텍사스 레이스의 1회 초 공격은 아무런 소득 없이 안타 하나로 끝나 버렸다.
기대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였다.
솔직히 외야에 대호만 없었더라면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으리라.
한편,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던 체프 벤은 대호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했다.
“고맙다, 대호!”
체프 벤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고작 선두 타자 하나만 삼진을 잡았을 뿐, 개막 3연전과 달리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는데, 대호 덕분에 위기를 극복하자 그 감정이 고스란히 실린 것이었다.
“하하, 제가 뭘요? 저번에 잘 부탁한다고 했잖아요. 그건 당연히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도 포함된 거 아니겠어요?”
“하하하! 이거, 식사 대접을 대체 뭘 해 줘야 할지 모르겠는데? 당연히 공격도 최고일 텐데 말이야! 이러다가 내 지갑을 탈탈 털어 가겠어.”
고작 1회지만 자칫하면 큰 위기가 될 수도 있었던 상황.
분위기를 띄우는 체프와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수석 코치 그렉 헥슬러 또한 대호에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방금 수비 좋았다. 솔직히 나도 간담이 서늘했다. 실수 하나라도 나왔으면 초반부터 분위기를 넘겨줄 뻔했어.”
“감사합니다, 코치님.”
그렉은 순식간에 이닝을 끝내고도 겸손한 모습을 보여 주는 대호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무나 실력이 뛰어나다 보니, 대호의 저런 모습은 과도한 겸양으로 비춰지기보다는 정말 슈퍼스타의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 대호에게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수비였겠지.’
대호는 동료들의 축하를 뒤로하고 다시 장비를 챙겨 경기장으로 나갔다.
개막전 이후, 대호의 순번은 1번 타자로 고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3번 타자일 때도 좋은 모습이었지만, 오클랜드의 승률은 대호가 1번 타자일 때 더욱 높아 감독 마이크 케세이는 당분간 대호를 1번으로 쓸 것을 천명했다.
강한 2번을 넘어서는 강한 1번, 그게 대호의 역할이었다.
두두둥! 쾅!
I am oh! supernova!
supernova!
I am oh! supernova!
대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장내에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응?”
“이 노랜 뭐지?”
그러나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의 반응은 조금 떨떠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들어 보는 가수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K―POP이란 게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은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미국은 전 세계의 음악이 소비되는 나라다 보니 특정 장르를 좋아하는 음악 팬 말고는 알 수 없기도 했다.
지금 대호가 자신의 등장 곡으로 사용하는 노래, 슈퍼노바도 그러했다.
* * *
“헤이, 빅 타이거!”
원정 경기를 마치고 돌아온 대호는 퇴근하려다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가던 길을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게리?”
뒤를 돌아보니 오클랜드 슬랙스의 프런트 직원인 게리 뮬러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구단의 이런저런 일로 인해 최근 자주 보던 사이였기에 둘 사이에 어색함은 없었다.
“아, 다름이 아니라 내일 홈경기에 사용할 테마곡을 어떤 것으로 할지 아직 알려 주시지 않아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게리 뮬러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별것 아니란 표정으로 용건을 밝혔다.
“아! 테마곡…….”
대호는 전에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이번 시즌부터는 테마곡을 정해야 한다는 소식 말이다.
하지만 시범 경기와 원정 경기에 집중하다 보니 깜박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너무 늦게 올라왔고, 또 대호 또한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서 사양했지만, 올해는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하나하나의 퍼포먼스가 자신이 올라오게 된 자리를 실감할 수 있는 영역이었으니까.
인기 있는 선수, 또 그걸 뛰어넘어서 프랜차이즈 선수라는 자리 말이다.
또한 사실 팬들 역시 대호의 응원을 더욱 쉽게 하기 위해서 테마곡을 원하고 있었다.
그냥 환호하는 것과, 등장할 때 노래에 맞춰 응원하는 건 엄밀히 말해서 완전히 다른 영역이기도 했다.
‘…무슨 노래로 고르지?’
대호는 게리를 앞에 두고 잠시 고심했다.
한 번 정한다고 해서 영영 못 바꾸는 건 아니지만, 신중하게 정할 필요는 있었다.
너무 자주 바뀌는 테마곡과 응원가는 팬들이 선수에 대한 팬심을 가지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었으니까.
‘아……!’
그때, 대호의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럼 이 곡으로 해 주세요.”
곧장 핸드폰을 꺼내 대호가 튼 노래는 바로 자신의 누나 미호가 속한 그룹의 신곡이었다.
올해 초인 1월에 나와 4월인 지금, 활동 막바지에 이른 노래였다.
다만 지난 회차들과 마찬가지로 이 곡은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그저 K―POP 팬들에게나 소소하게 회자되며 행사에 몇 번 나갔을 정도였다.
이번에도 뭔가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묻히게 되리라.
대호는 그렇게 둘 순 없다고 생각했다.
기왕 메이저리그 동생을 둔 이상, 더 빨리 자신을 이용해 인기를 얻는 발판을 만들 수 있으면 좋을 테니까.
솔직히 2회차와 3회차, KBO의 특급 신인일 때도 홍보해 봤지만 생각보다 효과가 없었다.
그냥 K―POP 팬들에게 회자되던 것에서 대호의 소속 구단 팬들이 조금 늘었을 뿐.
‘이번에는 좀 다르겠지?’
아마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 중 일부만 들어준다고 해도, 조회수에는 상당한 증가가 있을 것이다.
* * *
I am oh! supernova!
supernova!
I am oh! supernova!
‘아이 엠 슈퍼노바!’
신나는 비트가 흐르고, 가사 또한 따라하기 쉬운 후크 송이었기에 대호는 저도 모르게 가사를 중얼거렸다.
‘저 노래 가사처럼, 난 초신성이 될 거야.’
퍽!
바깥쪽으로 흘러가는 낮은 슬라이더가 들어왔지만, 대호는 이에 속지 않고 그냥 흘려버렸다.
“볼!”
선구안이 뛰어난 대호를 속이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공이었다.
아무리 초구를 좋아하는 타자라도 말이다.
대호는 1번 타자지만, 1번의 고전적인 임무를 수행하지는 않았다.
강한 2번과 비슷하게,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고 클린업 트리오로 이어졌을 때 수월한 득점을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만드니까.
그리고 이런 대호의 성향은 바로 성적으로 연결되었다.
당연히 오클랜드의 감독 마이크 케세이 역시 자신의 용병술에 만족하며 대호의 배팅에 대해서는 어떠한 터치도 하지 않았다.
따악!
대호는 텍사스 레이스의 선발 이볼디 네이션이 던진 인코스 낮은 직구를 그대로 받아쳤다.
몸 쪽 무릎에 걸치는 포심 패스트볼이었는데, 살짝 가운데로 몰렸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껴 그대로 당겨 친 것이었다.
텍사스 레이스의 1루수 매튜 듀란이 점프를 하며 잡아 보려 하였지만, 타구는 그의 글러브를 살짝 벗어났다.
다다다다!
대호는 자신이 친 타구가 홈런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전력을 다해 달렸다.
‘이런!’
우익수 베티스 해리스는 예상보다 스핀이 많이 들어가 불규칙하게 바운드된 타구를 그만 잡지 못했다.
그래서 곧바로 펜스 뒤로 굴러간 타구를 잡기 위해 달려갔다.
한편, 대호는 2루를 향해 뛰면서 3루 선상에 있는 주루 코치를 보았는데, 그가 계속해서 풍차를 돌리듯 팔을 흔들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응? 3루까지 가긴 힘든 타구였는데?’
하지만 주루 코치의 지시를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
힐끗.
뒤를 돌아본 대호의 눈에 허겁지겁 굴러가는 공을 잡으러 간 베티스 해리스가 보였다.
‘운이 좋군.’
다다다다!
“우와아아아아!”
대호가 3루를 향해서 뜀과 동시에 경기장에도 환호가 울려 퍼졌다.
쉬이익!
베티스는 급히 3루로 공을 송구했다.
3루수가 공을 잡고 대호를 글러브로 터치한 것과, 대호가 슬라이딩으로 베이스에 터치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세이프!”
“아니, 어떻게 이게 세이프입니까? 아웃 아닙니까?”
심판의 선언에 3루를 맡고 있던 오스틴 마티아스가 반발하며 따졌다.
그러면서 텍사스 레이스 더그아웃을 향해 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