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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80화 (80/209)
  • 80화

    마지막 시범경기가 있는 날, 아침 일찍 경기장을 찾은 대호는 주차장 한쪽에서 내리는 정장을 입은 커다란 덩치의 남자를 보았다.

    ‘누구지?’

    조금 먼 거리였기에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함께 생활을 했던 오클랜드 슬랙스의 동료는 아니었다.

    “오! 인크레더블!”

    대호는 상대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어쩐 일인지 저쪽은 자신을 알아보고 별명을 곧바로 불렀다.

    “죄송합니다. 절 아십니까?”

    큰 덩치에 검정 선글라스.

    정장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덩치를 보면 자신과 같은 운동선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얼굴이 보이지 않아 정체를 알지 못하기에, 대호는 곧바로 상대방에 대해서 물었다.

    “하하, 이런. 내가 소개를 하지 않았군.”

    라이언 헤밀턴은 너무도 유명한 상대를 주차장에서 보았기에 반가워 인사를 한 것이지만, 상대는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곧바로 선글라스를 벗고 씩 웃었다.

    “LA다윈스에서 오클랜드 슬랙스로 트레이드 된 라이언 헤밀턴이라고 한다.”

    ‘라이언 헤밀턴?’

    대호는 라이언을 본 순간, 갑자기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이언 헤밀턴은 대호가 3회차에도 만나봤던 투수였으니까.

    대호가 뉴욕 킹덤즈에 있을 당시 월드 시리즈에서 한 번, 그리고 10시즌을 치르는 동안 세 번 정도 상대했던 LA다윈스의 3―4선발을 왔다 갔다 하던 투수.

    “아! 트레이드… 반갑습니다.”

    일단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기에 대호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런데 오늘 트레이드 되어 왔다고요?”

    대호는 트레이드 되어 왔다는 라이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얼마 전까지 오클랜드에 메이저리그 3선발급 투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로 그런 선수가 영입되자 놀란 것이었다.

    ‘누구랑 트레이드 된 거지?’

    하지만 다른 구단에서 선수가 트레이드 되어 왔다는 말은, 오클랜드의 누군가도 떠났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3선발급 투수를 트레이드 했다면, 1:1 보다는 1:2 드레이드가 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페이 롤이 적은 오클랜드의 사정상 돈으로 선수를 사 왔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당연한 추측이었다.

    “그런데 대호, 지금 감독님을 만나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줄 수 있어?”

    라이언은 친근하게 대호를 부르며 감독실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네, 저를 따라오세요.”

    대호는 흔쾌히 대답하였다.

    누군가 트레이드 되어 떠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프로라면 이런 것을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기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동료가 될 라이언을 데리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 * *

    라이언 헤밀턴은 아침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 자신이 트레이드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처음 그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라이언은 순간적으로 누군가 뒤에서 그의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간 것 같은 황당함을 느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든 감정은 배신감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프로 운동선수인 만큼 언제든 다른 곳으로 트레이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배신감 대신 섭섭함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하, FUCK! 그런 이야기를 이런 시간에 알렸어야 했나.’

    배신감이 사라진 자리에 떠오른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굳이 이른 아침부터 트레이드 소식을 전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말이다.

    출근을 한 뒤라든가, 아니면 경기가 끝난 저녁시간이라든가, 그런 배려를 해 줄 시간적 여유도 없었나 하는 섭섭함이 라이언의 머릿속을 채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트레이드 된 메이저리그 구단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LA에서 4선발을 하고 있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구단이 있었는지 말이다.

    ― 오클랜드 슬랙스에서 3선발급 투수가 필요하다고 하더군. 자네도 알겠지만, 주전 2루수인 젝스 로빈의 부상으로 주전 2루수가 필요해 트레이드하게 되었네!

    * * *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덩치 큰 백인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조엘 단장, 내 생각보다 더 일을 잘하는군.’

    며칠 전 마이크 감독은 오클랜드의 단장인 조엘에게 3선발급 투수를 구해 달라고 요구했고, 당시 조엘은 불가능하다고 말했었다.

    솔직히 마이크 자신도 무리한 부탁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아무리 팀에 투수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제 본 시즌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대체 어디에서 주전, 그것도 3선발급 투수를 구한다는 말인가?

    4―5선발 급이라면 어찌어찌 트레이드를 통해 구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겠지만, 다른 구단에서도 3선발급 투수는 무척이나 귀한 존재다.

    다른 포지션에 갑작스러운 변고가 터지지 않는 이상, 3선발급 투수를 시즌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금 와서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을 구단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마이크 감독의 눈앞에 기적이 펼쳐졌다.

    “라이언 헤밀턴! 어서 오게!”

    라이언 헤밀턴의 실력이야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

    리그는 다르지만, 가을 야구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다른 투수들을 연구하는 것은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이니까.

    ‘생각지도 못한 대어가 들어왔군!’

    라이언이 비록 LA다윈스에서 4―5선발의 위치에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투수 왕국이라 불리는 LA다윈스에 속했기 때문이지, 오클랜드나 투수력이 약한 팀에선 2-3선발급 투수에 준하는 실력을 가졌다.

    실제로도 원래 3선발을 맡다가 현재 오클랜드의 2선발로 자리를 잡은 체프 벤보다 작년 성적이 더 좋았다.

    ERA(평균자책점)이나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등, 여러 지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라이언이 앞선 것이다.

    그러니 케세이 감독으로서는 이번 트레이드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런 라이언을 데려오느라 내야 수비의 핵이라 할 수 있는 2루수와 유격수 중 작년 후반기 맹활약을 했던 아론을 LA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론은 오클랜드의 내야를 책임질 차세대 유망주였지만, 당장 부족한 마운드를 채우기 위해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실 오클랜드에서 아론을 LA다윈스로 트레이드 하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오클랜드에는 아론 말고도 내야 수비를 잘하는 유망주가 넘쳤다.

    LA다윈스가 선발급 투수가 많은 투수 왕국이었다면, 오클랜드는 특이하게도 내야와 외야 포지션에 잘하는 유망주가 많았다.

    그러하였기에 조엘 단장은 먼저 연락한 LA다윈스 단장과 협상을 통해 내야 유틸리티가 뛰어난 아론을 내주는 대신, LA다윈스의 4선발인 라이언을 데려올 수 있었다.

    ‘저쪽도 나름대로 만족하는 트레이드겠군. 아론의 재능도 라이언 못지 않으니까. 아니… 잘 크면 오히려 라이언 이상 아닐까?’

    마이크 감독은 그런 생각을 하며 환영의 인사를 다시 한번 했다.

    “오클랜드에 온 것을 환영하네, 물론 여긴 애리조나지만 말이지. 하하하!”

    현재 이들이 있는 곳은 오클랜드가 아닌 캑터스 리그가 펼쳐지고 있는 애리조나였기에 마이크 감독은 가벼운 농담을 하며 라이언을 환영했다.

    “예, 감사합니다.”

    자신을 환영하는 감독의 모습에 라이언은 여기까지 오기 전 생긴 언짢았던 감정은 어느 새 사라지고 새로운 팀에 대한 기대감이 샘솟았다.

    “라커에 가면 자네의 이름표가 붙은 로커가 있을 거네.”

    “알겠습니다.”

    “참! 곧바로 가능한가? 오늘 경기 중 2~3회 정도 공을 던질 것이니 준비하게.”

    “예, 준비하겠습니다.”

    라이언은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트레이드 된 당일 공을 던지는 것이 조금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새로 구단에 들어온 투수를 점검하는 건 당연하다 느껴졌기에 그리 말한 것이었다.

    * * *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 마지막 경기를 하는 오늘, 재미있게도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라이벌인 LA데블스와 오클랜드 슬랙스가 맞붙게 되었다.

    그리고 두 라이벌 구단은 경기 시작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펼치며 일진일퇴를 하고 있어, 이를 지켜보는 야구팬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

    따악!

    오클랜드의 투수가 던진 공을 LA데블스 타자가 잘 받아쳤다.

    다다다닷!

    데블스의 타자는 곧바로 달렸고, 타구는 쭉쭉 뻗어 외야로 날아갔다.

    하지만 잘 맞은 타구는 안타깝게도 센터 정면으로 향해 버렸다.

    타앗!

    대호는 워닝 트랙을 지나 펜스 가까이 날아오는 타구를 제자리에서 점프해서 잡아냈다.

    텁.

    ‘후우!’

    다행히 정면으로 왔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았다간 실수하기 마련.

    대호는 뿌듯한 얼굴로 더그아웃을 향해 달려갔다.

    “빅 타이거! 빅 타이거!”

    “인크레더블! 인크레더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시범 경기를 보러 온 오클랜드의 팬들이 일제히 대호의 별명을 연호했다.

    오랜만에 나타난 오클랜드 출신 슈퍼스타.

    그를 향해 팬들은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한 수비였어!”

    더그아웃으로 들어와 공격 준비를 하려던 대호의 뒤로 먼저 들어온 선발투수 라이언이 감사의 말을 하였다.

    “뒤는 저희에게 맡기고 편하게 던져요.”

    “뭐? 하하핫!”

    라이언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고작 2년차인 선수가 자신에게 마음을 가라앉히라는 조언을 건넸으니까.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뭐니뭐니해도 정대호는 결국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한 선수 아닌가?

    더군다나 이렇게 자신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정식 시즌에도 계속된다면야 그 말대로 얼마든지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

    “알겠어. 앞으로도 기대하지!”

    그렇게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대호에게 주장 홈런 브레드가 말을 걸었다.

    “헤이, 대호! 친구가 다른 팀으로 떠난 슬픔을 홈런으로 승화시켜 봐!”

    홈런의 말대로 오클랜드 주전 중에서 유일하게 대호의 또래라고 할 수 있던 아론이 트레이드되며 이젠 다들 나이차이가 대여섯 살은 나는 선수들 뿐이었다.

    물론 친하기는 하지만, 또래끼리 나눌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주장이 직접 신경 써 준 것이었다.

    “하하하!”

    그러나 대호는 그런 주장의 걱정을 웃음 한 번에 눌러 삼켰다.

    “걱정 마세요. 그럼 다녀올게요.”

    하지만 대호 역시 내심 아쉽다는 생각은 조금 하고 있었다.

    ‘하필 아론이 트레이드 되다니…….’

    작년 처음 스프링캠프에 왔을 때부터 적응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친구 아론.

    이제 마이너에서 콜업 되어 겨우 주전으로 자리를 잡고 함께 뛸 수 있나 싶었던 때에 다른 곳으로 가 버리니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3선발급 투수 라이언이 뛰어나더라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었다.

    ‘뭐, 갑작스레 트레이드된 아론은 더 황당할 테니… 주장 말대로 홈런 한 방에 떨쳐 버리자!’

    싱숭생숭한 기분.

    분명 처음 느끼는 것도 아니건만, 대호의 머릿속은 조금 복잡해졌다.

    그리고 그런 속마음을 알아채서일까, 상대 팀 LA데블스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팡!

    “스트라이크!”

    ‘이런!’

    다른 때 같았으면 놓치지 않았을 인코스 높은 스트라이크였다.

    아무리 시범 경기라지만,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건 프로로서 해선 안 될 행동이었기에 대호는 곧바로 반성하였다.

    탁탁탁!

    손바닥으로 헬멧을 세 번 거세게 두들기는 대호를 보며, LA데블스의 포수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포수는 슬그머니 미트를 대호의 무릎 쪽으로 이동해 자세를 잡았다.

    높은 볼 다음에 올 것은 낮은 코스.

    휘익!

    팡!

    “볼!”

    두 번째 공은 볼 판정을 받았다.

    만약 대호가 급히 발을 뒤로 빼지 않았다면 무릎에 공을 맞았을지도 모를 정도로 깊숙이 들어온 볼이었다.

    히트 바이 피치가 될 뻔한 위협적인 공에 대호는 잠시 공을 투수에게 던져 주는 포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포수의 행동을 보니, 일부러 한 행동은 아닌 듯했다.

    그저 투수의 컨트롤이 좋지 못해 위험한 공이 되었을 뿐.

    휘익!

    팡!

    “볼!”

    볼카운트는 투 볼 원 스트라이크.

    그런데 이번 공은 정말이지 너무도 위험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투수는 몸 쪽 높은 볼을 대호 자신의 머리 가까이로 깊게 던진 것이다.

    빈볼.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해 보자는 겁니까?”

    두 번째 볼이 실투였다면, 이번 공은 명백한 빈볼이었기에 대호는 포수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건방진 새끼가 뭐라고 떠드는 거야!”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적반하장이었다.

    “하! 이것 봐라? 또 한 번 던져 봐! 어떻게 되나!”

    위협구를 던졌으면서 적반하장으로 뻔뻔하게 큰소리를 치는 LA데블스 포수를 보자 대호도 강하게 나갔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이 LA데블스 베터리가 완전 돌아이였다는 점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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