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웅성웅성!
훈련하기 위해 찾은 CH베이스볼파크, 그런데 오늘은 다른 때와는 다르게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작은 소음이 일고 있었는데, 대호는 자신이 들어오자마자 이쪽을 힐끗 쳐다보는 게 이야기의 주제가 자신인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직감은 사실로 맞아 떨어졌다.
“여! 일본의 야구천재보다 한 등급 낮은 한국의 야구천재!”
옷을 갈아입고 훈련장에 들어서는 대호를 본 최태경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응? 뭐라는 거야?”
오랜만에 만났는데 자신을 보며 엉뚱한 말을 하는 태경을 보며 대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하, 일본 애들이 널 지칭하는 말이잖아. 한국의 야구천재, 큭큭큭!”
“하, 참나! 할 일도 없다.”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은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라이벌이었다.
대호 본인도 떨치려고 하지만, 계속해서 얽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히데오 소이치로와는 운명과도 같은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솔직히 이곳 CH베이스볼파크에 오기 전… 아니, 집을 나서기 전 대호는 이미 태경이 얘기한 스포츠 뉴스를 읽은 상태였다.
또한 여러 야구 커뮤니티에서 그 칼럼을 두고 댓글을 달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사실 칼럼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오클랜드와 계약한 이후 메이저로 조기 콜업 되고 후반기 70경기 동안 역대급 활약을 펼쳤다는 내용이었으니까.
문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신인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자신과 히데오 소이치로를 비교하는 몇몇 인물들이 나와서 생긴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수상에 실패했다고 패배자라니 너무하잖아?’
대호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속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이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번 주제가 제기되자 야구팬들은 절반으로 갈려 싸웠는데, 경기 수가 적지만 대호의 컨디션이 끝까지 유지되었다면 히데오를 압도할 수 있다는 이들이 반, 어찌 되었든 히데오를 선택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수상 시스템에 승복하라는 이들이 반이었다.
또한 일본과 미국에도 이 논쟁이 퍼지며 일본인 야구팬 중 한 명이 대호를 ‘한국의 야구천재’라고 칭하며 새로운 별명이 생겨났다.
대호를 히데오에 비견할 만한 선수라고 인정은 하면서도, 결과에는 승복하라는 취지가 듬뿍 담겨 있는 별명이었다.
“큭큭! 할 일 없는 인간들이 만든 거긴 하지. 그래도… 좀 아쉬운 건 아쉽네.”
태경은 솔직히 시즌 전체를 출전한 히데오 소이치로의 성적보다 대호의 후반기 70경기가 더욱 우수하다는 판단을 내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뭐 어쩌겠어? 이미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그렇게 판단을 내렸으니 수긍을 해야지. 여기서 반발하면 더 이상한 사람이 된다고. 이미지에도 오히려 안 좋아.”
솔직히 평생 단 한 번만 수상 가능한 올해의 신인상을 라이벌에게 빼앗긴 것은 배가 아픈 게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상을 주는 주체가 그렇게 결론을 내린 것이라면 수긍을 할 수밖에 없다.
대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 주변에서 이 문제를 더 끄집어내고 있으니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할 뿐이었다.
‘…하지만 내년 시즌은 다를 거야!’
결과에 승복하면서도 대호는 한편으로 다짐했다.
2032시즌은 다른 결과를 낼 것이라고 말이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2032년 2월이 되었다.
대호는 겨울 내내 이번 2032시즌을 위해 몸을 만들었다.
작년 후반기 끝에 제대로 컨디션 조절을 하지 못해 초반 페이스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
물론 오클랜드 선수들이나 프런트,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대호 본인은 모자람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전반기 마이너리그에서 보여 주었던 활약에 비하면, 아무리 리그 간의 수준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대호는 시즌 마무리라 할 수 있는 10월에도 4~5월과 같은 체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사람의 일이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듯이, 아직 대호의 체력은 풀타임을 뛸 만큼은 되지 않아 만약 메이저리그 25인 로스터에 포함된다면 페이스 조절이 필요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참가하는 오클랜드 슬랙스의 스프링캠프.
다시 찾은 애리조나 주 메사는 2월이지만, 한국의 5~6월 정도의 날씨라 야구를 하기 정말 좋은 날씨였다.
“대호, 오랜만이야!”
오클랜드 슬랙스가 스프링캠프를 차린 애리조나 메사 호호캠 스타디움 입구에 서 있는 대호의 뒤에서 그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응? 누구지?’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를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린 대호의 눈에 하이 싱글A에서 함께 더블A팀인 미들랜드 락하운즈로 콜업 되었던 브렛이 보였다.
“브렛! 오랜만이야!”
코퍼스크리스티로 원정을 갔다가 중간에 트리플A인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로 콜업 되면서 헤어졌던 브렛을 이곳 애리조나 메사에서 다시 보게 되자 무척이나 반가웠다.
“올해는 너도 스프링캠프에 초청된 거야?”
친구인 브렛을 만나자 대호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응. 올핸 나도 이곳에 초청 선수로 왔네.”
브렛 역시 자랑스러워 보였다.
그는 오클랜드와 마이너 계약을 한 이후로 아직까지 스프링캠프에 초청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오클랜드 슬랙스 프런트에서 주목하는 유망주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드디어 올해 초청장을 받은 것이었다.
물론 락하운즈에서 브렛 만이 스프링캠프 초청장을 받은 건 아니지만, 몇 년을 구른 끝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브렛에겐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대호, 너 정말 괴물 아니야?”
브렛은 대호와 짧은 인사를 주고받고는 느닷없이 그런 말을 했다.
“무슨…….”
“라스베이거스에서 기다린다고 하더니, 바로 메이저로 가 버렸잖아!”
“하하하하!”
무슨 소린가 했더니, 브렛은 코퍼스크리스티에서 헤어지면서 했던 말을 끄집어내며 투정을 부리는 듯했다.
분명 그날 저녁, 대호는 브렛과 헤어지며 트리플A인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오클랜드의 사정에 의해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자마자 바로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어 올라가 버렸다.
그 때문에 더블A인 미들랜드 락하운즈에 남아 있던 브렛은 큰 충격을 먹었다.
대호가 분명 대단한 선수임은 잘 알고 있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또다시 한 단계 위로 올라가 버렸으니 당연했다.
솔직히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해 바로 그해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는 것은 10년 전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그 시절에도 이렇게 빠르게 메이저리그로 콜업 되는 선수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극히 드문 경우였다.
또한 그중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이는 더욱 적어 대부분 이른 메이저리그 콜업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로 리턴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이저리그 구단과 선수 협회, 그리고 사무국에서 유망주의 무리한 메이저리그 콜업을 지양하게 된 것 아니었는가.
즉, 대호는 현 메이저리그의 흐름을 완전히 역행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브렛은 오랜만에 보는 대호를 보면서도 놀랍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더욱이 대호는 메이저리그에 콜업 된 후반기, 다른 유망주들이 한 시즌에 거둔 성적을 불과 70경기 만에 이룩했다.
더군다나 그 성적은 다른 때 같았으면, 올해의 신인상 정도는 충분히 획득 가능한 기록이었다.
불행이라면 올해 오클랜드가 속한 아메리칸리그에 또 다른 괴물 신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참… 헤어진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신인상 후보까지 들고… 정말 대단해!’
브렛은 보스턴의 괴물 신인 히데오 소이치로만 없었다면 충분히 대호가 신인상을 받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사실은 풀타임으로 경쟁했다면 신인상은 물론이고 모든 상을 싹쓸이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브렛이 그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다 근거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호가 전반기에 친 홈런의 개수였다.
대호가 마이너에서 거둔 홈런 성적은 이러했다.
하이 싱글A인 랜싱 러그너츠에서 10경기에 6홈런, 더블A인 미들랜드 락하운즈에서 친 32개의 홈런, 그리고 트리플A인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서 12개의 홈런.
모두 합치면 무려 총 50개의 홈런이었다.
더욱이 이 홈런들은 상대 투수들이 대호의 타격 능력을 모를 때 친 것들도 아니고, 무수한 견제를 극복하고 친 홈런들이었다.
“그리고 대호, 정말 아쉬워.”
“응? …아, 신인상 얘기구나.”
“네 실력을 보면 무조건 신인상을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참 나. 하필이면 또 다른 실력자가 나올 게 뭐람.”
대호는 브렛의 말에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넌 안 아쉬워? 솔직히 홈런도 홈런이지만 다른 세부 스탯도 다 네가 뛰어나잖아!”
“안 아쉽다면 거짓말인데, 근데 이 말 한국에서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겹다. 그냥 올 시즌에 더 좋은 결과를 거두면 되잖아? 신인상은 물 건너 갔으니, 다른 상을 노리는 거지.”
“설마… MVP라도 노리려고?”
씨익.
“안 될 건 뭐야?”
“……!”
브렛은 입을 떡 하니 벌렸다.
“홈런 70개 정도 치면 사무국, 다른 구단과 팬들도 아무 말 못하겠지.”
대호는 별것 아니란 듯 이야기를 했지만, 한 시즌에 홈런 70개는 절대 적은 개수가 아니었다.
역대 한 시즌 최대 홈런 개수는 2001시즌 샌프란시스코 타이탄즈의 배리 홈즈가 기록한 73개로, 아직까지 그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역대 홈런 개수 2위는 1998시즌 세인트루이스 카널스의 데이비드 맥과이어가 기록한 70개.
이렇듯 한 시즌 70개의 홈런이란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으로, 사실 이 두 사람은 금지약물인 스테로이드 복용자들이었다.
그러니 내추럴인 대호가 로이더인 두 사람의 기록을 제치고 다시 한번 70홈런의 기록을 세운다면 무조건 MVP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브렛은 다시 한번 대호를 보며 그가 자신과 같은 평범한 야구선수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진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었다는 듯, 브렛은 그렇게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자자, 그만 떠들고 안으로 들어가자!”
대호는 오랜 만에 만난 브렛도 반가웠지만, 작년 후반기 함께 땀을 흘리고 또 그라운드의 흙먼지를 함께 막은 다른 선수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졌다.
* * *
브렛과 함께 오클랜드가 스프링캠프로 사용하는 호호캠 스타디움에 들어선 대호는 먼저 도착한 선수들의 면면을 살폈다.
“이거 누구야! 인크레더블 아냐?”
먼저 대호를 알아본 누군가가 그를 보며 아는 척을 하였다.
“주장, 오랜만이에요.”
대호에게 먼저 말을 건 사람은 바로 오클랜드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였다.
“옆에는 누구지?”
홈런 브레드는 대호에게 인사를 하고는 대호와 함께 캠프로 들어온 브렛을 보며 물었다.
“여긴 저와 함께 미들랜드 락하운즈에서 뛰었던 브렛이에요.”
일단 대호가 먼저 브렛을 소개하였고, 뒤이어 브렛도 오클랜드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브렛입니다. 주 포지션은 2루수고 유격수와 3루도 볼 줄 압니다.”
오클랜드의 주장인 홈런 브레드를 본 브렛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오, 그래? 브렛이라… 내야 멀티 포지션을 본다고?”
홈런 브레드는 주 포지션인 2루수 말고도 유격수와 3루수를 볼 수 있다는 말을 듣자 눈을 반짝이며 물어보았다.
요즘 들어 선수들 사이에서 자신의 주 포지션 외에 다른 포지션을 연구하는 게 유행이었다.
외야 수비를 보는 욘 헤그리드와 작년 대호의 데뷔전에서 대호와 교체된 우익수 살라 반도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이 이러는 것은 전적으로 대호의 영향이 컸다.
수비 범위가 넓은 대호는 외야 어느 곳에 세워도 충분히 1인분 이상의 활약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오클랜드에서 주전으로 경기에 출전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멀티 포지션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외야만 이랬지만, 시간이 지나자 내야 수비수들도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 다른 선수들에 대한 우위를 지키기 위해, 혹은 한 번이라도 더 경기에 나가기 위해 본인의 포지션 외에 다른 포지션도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주장 홈런 브레드가 브렛에게 관심을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