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대호의 메이저리그 2031시즌이 모두 끝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 진출을 한지 불과 반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하고, 33홈런 28도루, 타율 0.367, OPS 2.304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이런 엄청난 기록에도 불구하고 대호는 2031년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대호가 속한 아메리칸 리그의 올해 신인상은 보스턴 블루삭스의 히데오 소이치로가 수상을 하였다.
히데오 소이치로, 작년 9월에 40인 로스터로 메이저리그 첫 데뷔를 해 작년에는 신인상 후보에 해당되지 않았다.
그래서 올해 후보에 든 것이었다.
타격 지표에서는 대호가 확실히 우위에 있었지만, 히데오는 올해 전 경기에 출장했고, 대호는 후반기 이후에 들어왔기 때문에 투표인단에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도 했지만, 히데오 소이치로의 2031시즌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었기에 납득하고 넘어갔다.
0.325의 타율과 42개의 홈런, 그리고 120타점은 누가 뭐라 해도 메이저리그 신인상 수상하기에 충분했으니까.
대호 역시 자신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수긍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풀타임으로 뛰면 더 나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겠지만, 어찌 됐든 이번 시즌에서는 절반 이하로 경기한 게 맞았으니.
놓친 상은 머릿속에서 지우고, 대호는 한국에 귀국한 상태였다.
따악! 따악!
CH베이스볼파크의 타격 훈련장에 시원한 타격음이 울렸다.
“와… 저것 좀 봐. 시원하게 날아간다.”
타격 훈련장에 있던 관계자는 물론이고, 시즌을 마친 뒤 훈련을 하고 있던 선수들도 지금 대호의 타격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빙글빙글.
열 개의 공을 타격한 대호는 왼손을 들어 허공에 원을 그리듯 빙글 돌렸다.
피칭 머신을 조작하고 있는 이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직구, 즉 패스트볼에 대한 타격감은 어느 정도 잡았으니 이제는 변화구를 던져 달라는 신호였다.
이에 대호의 신호를 받은 인스트럭터가 피칭 머신을 조작해 공을 던졌다.
위이이잉!
조금 전과는 다른 모터 소리가 울리며, 잠시 후 머신에서 공이 날아왔다.
커브였다.
조금 전까지 153㎞/h의 직구를 상대하다 바로 130㎞/h대의 커브가 날아오니, 보통 선수들이라면 쉽게 감을 잡기 어려운 공이었다.
하지만 대호는 그런 것을 무시하는 것처럼 가볍게 타격을 가져갔다.
따악!
사실 투수가 직접 던지는 볼이었다면 대호도 곧바로 대응하기는 어려웠을 터.
그러나 자신이 변화구를 요청한 것이기에 손쉽게 쳐 내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변화구가 슬라이더인지, 커브인지, 혹은 다른 구종인지의 문제였을 뿐이다.
따악! 따악!
대호가 시원스레 타격하는 모습은 구경꾼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 주었다.
“하하, 계약하고 바로 이듬해 후반기에 메이저로 콜업 되려면 저 정도는 쳐야겠지.”
언제 온 것인지 18세 청소년 대표 감독을 지낸 추인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바로 작년 대호를 데리고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에 출전을 해 준우승을 거두었다.
그때도 뛰어난 유망주였지만, 저 정도 실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불과 1년 사이 이렇게나 변하다니, 그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추인수 본인도 메이저리그에서 10년 넘게 메이저리거로 활약을 하다 국내로 돌아와 은퇴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대호가 보여 주는 타격 폼을 감상하면서 감탄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어렴풋이 ‘대단하다’라고 느끼고 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추인수는 패스트볼이든 변화구든 타격 폼이 흐트러지지 않고 휘두르는 모습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따아악!
마지막 배팅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아주 맑은 타격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타격을 마친 대호는 바로 속으로 환호했다.
‘좋았어!’
화가 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머리로는 인정했다고는 하지만, 대호 역시 심적으론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히데오 소이치로!’
이전 회차에도 자신과 항상 비교되던 라이벌.
솔직히 대호도 이번 시즌에는 그리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냥 열심히 하고 빠르게 메이저리그에 콜업 되길 바랐을 뿐.
그런데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좋기는 했지만, 너무 이른 시기에 콜업 되는 바람에 생각지도 못한 상대와 맞닥뜨린 것이었다.
자신의 숙명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보스턴 블루삭스의 히데오 소이치로를 말이다.
원래 계획대로 40인 확장 로스터에서 올라왔다면 부딪힐 일이 없었겠지만, 7월 후반기에 콜업을 받다 보니 동부지구에 속한 보스턴과 두 경기를 치르게 되면서 히데오 소이치로와 대결 아닌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나도 우리 두 사람이 한국인과 일본인이기에 언론에서 라이벌로 미는 거라는 사실 정도는 아는데…….’
그래도 계속 비교되는 만큼 신경이 쓰였다.
두 차례 있었던 경기에서는 대호가 조금 우위에 섰다.
홈런 1개를 포함해 8타석 4안타를 친 반면, 히데오 소이치로는 4개의 안타를 쳤지만 홈런은 없었기 때문이다.
속으로 자신이 라이벌 보단 우위를 차지했다 생각했지만, 경기 결과는 1승 1패로 동률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2031시즌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신인상은 라이벌에게 빼앗겼다.
그 때문에 속에서 울화가 치밀었었다.
그러던 것이 타격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풀리긴 했다.
“대호, 오랜만이다.”
“예, 감독님. 안녕하셨어요?”
“그래, 근데 무슨 화나는 일 있었냐?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던데?”
좋은 타격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아는 대호의 타격은 좀 더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스윙이었기에 물어본 것이었다.
“하하, 올해 신인상을 일본의 그 천재 타자에게 뺏겼거든요.”
“아하!”
대호의 대답에 추인수는 알겠다는 듯 웃었다.
“하하, 나도 그건 좀 아깝더라! 다른 때 같았으면…….”
33개의 홈런을 치고 또 호타준족이라 불리는 20―20 클럽에도 가입했는데, 신인상을 받지 못한 것은 그가 생각하기에도 억울할 만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호가 말한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한 히데오 소이치로는 그보다 많은 42개의 홈런과 32개의 도루를 성공하면서 30―30을 기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대호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비록 대호가 히데오 소이치로와 다르게 후반기 70경기에서만 기록을 했다고 해도 이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대호가 속한 오클랜드 슬랙스가 만약 아메리칸리그가 아닌 내셔널리그였다면 어쩌면 대호가 내셔널리그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을지도 몰랐다.
내셔널리그에서 올해 신인상을 수상한 돈 메이스의 성적은 30홈런 121안타 103타점에 타율 0.321이었기 때문이다.
안타의 수에서 대호보다 10여개 더 많지만, 홈런이나 타율 면에서 대호가 앞섰기 때문에, 내셔널리그였다면 대호에게도 충분히 수상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클랜드는 내셔널리그가 아닌 아메리칸리그 소속.
이렇게 대호의 성적에 안타까워하는 것은 비단 추인수만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죠.”
“하하,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야. 국내 야구 관계자들도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 오클랜드에서는 아무 말도 없었어?”
“음… 단장님이 살짝 귀띔해 주시긴 했죠. 프런트에서도 더 빨리 올렸어야 한다는 말도 있고, 아니면 아예 40인 확장 로스터 때로 미뤘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고요.”
“내가 살짝 알아봤는데, 오클랜드 팬들도 비슷한 의견이라고 하더라.”
추인수의 말이 끝나자 대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 입으로 하긴 좀 쑥스러운 얘기지만… 제가 늦게 올라왔다면 저희 팀이 가을 야구를 할 수 있었을까요? 전 좀 회의적인데요.”
“하하하! 그것도 그렇네. 신인상도 중요하지만, 팀 성적은 더 중요하지.”
사실 오클랜드를 제외한 다른 팀의 팬들의 의견은 대부분 그러했다.
전반기에는 마이너 경험을 시켜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고, 만약 대호를 늦게 올렸으면 아예 활약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을 거라고.
오클랜드 슬랙스의 2031시즌 전반기 성적은 45승50패였다.
승률이 50%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가을 야구를 하기에는 어려운 성적이었다.
더욱이 오클랜드 슬랙스 내 선수층이 좋은 상황도 아니었다.
주전 야수들은 과도한 피로에 지쳐 있었고, 또 선발진이나 불펜도 불안했다.
전반기 45승 50패를 거두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올스타 브레이크가 끝나고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오클랜드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변화라고는 겨우 트리플A에서 활약하고 있는 외야수 1명이 콜업 되고, 기존 외야수 중 1명이 DL로 마이너로 내려갔을 뿐인데 말이다.
그 돌풍의 주역이 바로 정대호였다.
수비면 수비, 타격이면 타격, 공수 가리지 않고 대활약을 보여 주었다.
팀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슈퍼 플레이를 하면서 위기에서 구해 냈고, 또 꽉 막힌 타선에선 상대 투수를 흔들어 빈틈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불가능해 보이던 포스트시즌에 오클랜드를 데려갔다.
물론 오클랜드가 포스트시즌 진출을 하는데, 대호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다.
선발과 불펜, 그리고 다른 선수들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팀 승리에 이바지하였다.
그렇지만 구단의 코칭스태프들과 감독, 그리고 선수들도 자신들의 중심에 대호가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호가 비록 후반기에 콜업 된 뉴비이기는 했지만, 정말이지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급 활약을 해 준 것도 맞았기 때문이다.
“비록 신인상은 받지 못했지만, 내년에는 다를 겁니다.”
“흠, 올해 한 것만큼만 해. 그럼 내년 시즌은 너의 해가 될 테니까.”
추인수는 직감하고 있었다.
이미 대호가 오클랜드 슬랙스의 붙박이 주전이 되었음을 말이다.
신인상 수상에는 실패했어도, 그 사실이 대호의 실력을 저평가할 이유가 되진 않았다.
정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내년 오클랜드 주전 센터 자리는 대호의 차지가 될 공산이 컸다.
“네, 감사합니다.”
추인수도, 지켜보던 야구 관계자들까지 떠났음에도 대호는 베이스볼파크의 구석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올해 신인상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더 이상 없었다.
어차피 원래 세웠던 목표는 초과 달성했으니까.
‘더 중요한 건 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단서를 잡았다는 거지.’
대호는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휘황찬란한 스탯.
이것들만 봐도 대호가 메이저리그 평균 이상의 우수한 선수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남들은 보지 못한다는 게 최대 단점이지만.
그러나 부족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내구력.
스카우터들이 아시안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인 내구력 문제가 대호에게도 발생한 것이었다.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고작 후반기만 뛰었는데도 막판엔 나도 좀 힘들었어.’
마이너리그에서 뛸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일이었다.
아무리 한 번 경험한 무대라지만 메이저에서 받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고, 대호의 체력을 예상보다 더욱 빠르게 소진시키기에 충분했다.
막판 경기 운영에서 방해가 된 것도 당연했고 말이다.
‘칫, 내구력을 포인트로 올릴 수 있기만 했더라면…….’
사실 내구력이라는 스탯은 2, 3회차 때에는 프로 달성 이후 개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업적 달성으로 인해 먼저 개방되어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었지만, 그래도 부족함을 느꼈다.
대호가 가장 큰 아쉬움을 느낀 건 바로 디비전 시리즈였다.
체력의 모자람을 보충할 수 있었더라면 휴스턴의 에이스 저스틴과의 맞대결이나 마지막 세 번째 경기에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승승장구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아쉬움을 정리한 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짜악!
두 손으로 얼굴을 세게 때린 대호는 씩 웃었다.
“내년에는 또 달라질 거야. 정대호 파이팅이다!”
으아아아!
빈 훈련장에서 고함을 지른 대호는 당당하게 걸어 나갔다.
기대 이상의 성적, 신인상을 타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말이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