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75화 (75/209)

75화

오클랜드의 약진은 2회, 3회에도 계속되었다.

매회 1점씩 점수를 내며 원정에서의 1, 2차전 패배의 분풀이를 한 것이었다.

완전히 달라진 타선 때문일까, 휴스턴 스트로스의 코칭스태프들과 마운드 위의 배터리 또한 실수를 범했다.

사실 3회에 점수를 낸 건 투수의 폭투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러나 지구 1위의 이름값이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배터리와 달리, 휴스턴의 타자들은 분발했기 때문이다.

2회 초, 4번 타자 호세 나자리오의 솔로 홈런과 뒤이은 5번과 8번 타자의 안타로 2점을 얻었다.

그러고 나서 3회, 3번 타자 알렉스 브레그의 적시타로 3:3 동점을 만들어 냈다.

“하하, 이번 디비전 시리즈 3차전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군요.”

“네, 정말 그렇습니다. 오클랜드가 갑자기 각성이라고 한 것처럼 활약하는 건 물론이고, 휴스턴은 1, 2차전 때 보여 준 공격력을 그대로 가져와서 팽팽한 경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어느새 다시 대호의 타석이 돌아와 있었다.

“아, 지금 타석에는 1회와 3회 Walk로 걸어 나간 정대호 선수가 들어왔습니다.”

타석에 들어선 대호는 다시 자세를 잡았지만,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휴스턴의 더그아웃에서는 대호에 대한 전략을 그대로 유지했다.

지금처럼 팽팽한 경기에서는 더더욱 수정할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

“우우우우!”

아예 승부를 포기한 모습을 보여 준 것 때문에,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오클랜드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았지만, 휴스턴은 미동도 없었다.

‘후우… 이거 긴장되는데.’

4회차 메이저리그 첫 시즌의 마지막 경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대호도 온몸에 짜릿한 긴장감이 도는 것을 느꼈다.

팡!

“볼!”

역시나 이번에도 초구는 바깥으로 빠졌다.

그러나 앞서 두 타석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꺼져라!”

“휴스턴 놈들! 너희가 이러고도 프로 팀이냐?”

방금 전까지 야유가 터져 나오던 관중석에서 욕설과 함께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한 것이었다.

게다가 오클랜드의 팬들 뿐만 아니라 휴스턴의 팬들까지 동참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휴스턴 스트로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의 우승팀이다.

당장 지금 대결하고 있는 오클랜드가 돌풍을 일으킬 때도 부동의 1위를 지키던 강팀이라는 뜻이었다.

또한 디비전 시리즈 1, 2차전에서도 일방적인 승리를 차지했는데, 타자 한 명을 계속해서 회피하자 격한 반응이 튀어 나온 것이었다.

패배하더라도 화끈한 경기에서 지는 게 낫다.

적어도 이번 경기에서 패배하더라도 아직 2승 1패로 자신들이 유리하니까.

휴스턴의 팬들은 진심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빌어먹을!’

그 광경을 지켜보던 휴스턴의 더그아웃은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오늘같이 팽팽한 승부를 달리고 있다면 더더욱 작전을 포기할 수 없다.

그러나 1, 2차전을 참고 있던 팬들까지 폭발한 것이라면 조심해야 만했다.

하지만…….

“저, 감독님.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희 팬들의 반응도 심상치 않은데요.”

“…그대로 가!”

“…….”

수석 코치가 입을 우물거리며 서 있자, 감독은 입을 열었다.

“자넨 라파엘의 실력으로 정대호를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그래, 가능성이 높진 않지만 0도 아니지. 하지만 이기면 디비전 시리즈를 가져가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한 길을 걸을 필요는 없어.”

“네, 알겠습니다.”

퍼엉!

“볼!”

두 번째 볼이 나왔을 때, 드디어 쓰레기가 날아들었다.

심판이 경기를 중지시키고, 안전 요원들이 흥분한 관중들을 제지했다.

그래서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이거 연속해서 볼을 내주니 팬들이 많이 화가 난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정대호 선수를 배제하는 작전이 오늘 경기만은 아니었죠?”

“네, 그렇습니다. 기록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떤 기록 말입니까?”

“디비전 시리즈에 들어와 지금까지 정대호 선수는 무려 여덟 개의 베이스 온 볼을 기록했습니다.”

“네? 겨우 세 경기를 치르는데 여덟 번이나요?”

이 경기를 중계한 제레미 화이트는 당연히 주요 선수 중 한 명인 대호의 기록을 알고 있었지만, 중계를 들을 팬들을 위해 깜짝 놀라는 척을 했다.

“그 말씀은 휴스턴의 투수들이 모두 정대호 선수와의 승부를 피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첫날 저스틴을 제외하고는 지금, 방금 타석의 볼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다들 피하는 중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휴스턴에서는 결국 스포츠에서 중요한 건 승리라는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허허! 이거 지금 이곳 뉴슬랙스 볼파크를 찾은 팬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야유를 하는지 알겠군요.”

제레미 화이트 또한 부스 바깥에서 성내고 있는 야구팬들과 다르지 않은 마음이었다.

물론 강력한 상대를 피하고 약한 상대를 골라 싸워 이기는 것도 야구의 전술 중 하나다.

그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디비전 시리즈 내내 그런 식으로 야구를 한다면 대체 어떤 팬이 자랑스럽게 그 구단의 팬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메이저리그의 위대한 투수들이 왜 위대한 투수로 불리는가.

그들은 모두 팬들 앞에서 당당했고, 어려운 상대라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승부한 뒤 극복했다.

만약 패배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다시 한번 도전하기도 했고.

‘참… 아무리 승리가 중요하다지만, 정말 추악한 승리군.’

만일 휴스턴이 제대로 된 승부를 보이다가 지금 한 번 걸렀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스틴을 제외하고 2차전에서 나온 모든 투수들이 대호를 고의로 내보냈다.

제레미로서는 야구라는 종목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단순히 제레미 뿐만이 아니라 지금 화를 내고 있는 오클랜드와 휴스턴의 팬들 또한 같은 마음이리라.

혹자는 그래도 게임은 이겨야 한다고 떠들지도 모른다.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분명 있었다.

그러나 만약 결과, 승리만이 중요하다면 불법 약물 검사도 필요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야유를 하던 팬들도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소음이 잦아들었고 경기가 재개되었다.

현재 대호의 볼카운트는 2B 1S로 타자에게 유리한 카운트였다.

소란이 일었다 잠잠해지는 걸 본 대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휴스턴은 안 바뀔 텐데… 에휴.’

팡!

“볼!”

‘……?’

역시나 세 번째 공도 볼이었는데, 이상하게 방금 전 공은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이건 뭐지?’

대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휴스턴의 배터리를 번갈아 봤는데, 포수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와 반대로 이를 꽉 깨문 듯한 라파엘.

투수로서의 자존심과 더그아웃에서 날아온 지시 사이에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다.

‘라파엘이 개인적으로 승부를 보려는 건가? 그렇다면……!’

휘익!

조금 전과 비슷한 코스였다.

여전히 갈등하고 있는지 심판의 성향에 따라 볼, 혹은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공 말이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우리가 불리해!’

불펜진이 약한 오클랜드로서는 전황을 뒤집을 한 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타격하긴 했는데, 살짝 자세가 무너지면서 배트 끝에 걸리고 말았다.

타다다닷!

휴스턴의 우익수가 대호의 타구를 보고 달렸다.

외야 깊숙이 날아오는 타구였기에 잡기 쉽진 않아 보였다.

‘홈런은 아니야!’

대호는 공을 때린 순간 홈런이 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웃!”

일말의 희망을 걸고 달리던 대호의 귓가에 심판의 아웃 콜이 들렸다.

달리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보니, 우익수가 슬라이딩하며 공을 캐치한 게 보였다.

‘아! 이렇게 재수가 없을 줄이야!’

그랬다.

대호가 때린 타구는 우익수 플라이로 끝나 버렸다.

고등학생 시절, 비슷하게 자세가 무너진 상태에서 홈런을 만든 경험이 있지만, 한국 고등학생과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의 실력 차는 컸다.

그렇게 대호의 세 번째 타석은 외야 플라이로 끝났다.

이제 남은 기회는 한 번뿐.

오클랜드뿐만 아니라 휴스턴까지 오늘 경기를 끝이라 생각하는 듯, 배수의 진을 친 것처럼 투수 교체를 하며 경기를 풀어 갔다.

잘 던지던 라파엘을 내리고 릴리프인 라이언 프레슬을 마운드에 올린 것이었다.

“아웃, 공수 교대!”

맥 마이크가 친 공은 담장을 넘기지 못하고 워닝 트랙에서 잡혔다.

1, 2, 3회까지 타자들의 활약으로 팽팽한 경기가 지속되었다면, 이제는 투수전이 펼쳐졌다.

오클랜드 역시 휴스턴이 잘 던지던 선발 라파엘을 내린 것처럼 공수 교대를 하면서 새롭게 투수 교체를 한 뒤 마운드에 올렸다.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정말로 로커 룸에서 말한 것을 지키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교체된 루크 윌버그는 너무나 쉽게 공략당해 버렸으니까.

한 타자 당 여덟 개의 공을 소모하며 겨우겨우 아웃 카운트를 2개 올렸는데, 세 번째 타자에게 2루타를 맞고 연속으로 안타를 허용하며 내리 3점을 주었다.

한 순간에 균형이 무너지면서 스코어는 6:3으로 벌어졌다.

급하게 원 포인트 릴리프인 바다이 블루로 투수 교체를 하고 불펜에 다른 투수들을 대기 시켰지만, 한 번 시작된 불펜의 방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9:3.

처참한 결과였다.

7회에만 무려 6점을 내주고 나서야 겨우 나머지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아내고 공수 교대를 할 수 있었다.

‘…….’

이 정도가 되니 대호의 얼굴에도 희망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대호뿐만 아니라 다른 오클랜드의 타자들의 컨디션 역시 경기 초와는 달리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고.

9회 말.

대호는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2아웃에 주자는 없음, 점수는 여전히 9:3.

휘익!

“스트라이크!”

다른 점은 휴스턴의 마무리가 공격적으로 공을 던졌다는 뜻이었다.

‘휴스턴 놈들… 어차피 경기는 끝났다 이거냐?’

대호는 마지막으로 한 방 보여 주기로 결심했다.

따아악!

한가운데로 몰린 패스트볼.

구속은 97마일에 달했지만, 너무 정직하게 들어온 타구는 대호의 힘을 이겨 내지 못했다.

‘올 시즌은 이걸로 마무리다.’

“홈런! 홈런입니다. 오클랜드의 정대호,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야, 과연 오클랜드의 차세대 스타가 될 법하군요. 정말 올해가 첫 시즌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돕니다.”

대호의 마지막 분투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의 경기는 거기서 끝이었다.

맥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기 때문이다.

“아웃! 경기 종료!”

이로써 대호의 2031시즌은 끝을 맺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시즌이었어.’

대호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후회가 남지는 않았다.

“아, 오클랜드 슬랙스, 결국 휴스턴 스트로스에게 디비전 시리즈 1, 2, 3차전을 내리 스윕 패하며 가을 야구를 마무리 짓게 되는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도 저는 오클랜드에 한 가지 큰 수확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건 아마 아쉬워하는 팬들 모두 같은 생각일거라 장담합니다.”

“하하하, 정대호 선수 말씀이군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다음 시즌, 처음부터 합류해 지구 경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기대됩니다.”

해설과 아나운서의 말을 끝으로 정말 오클랜드의 가을 야구는 끝을 맺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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