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회차는 명전이다-74화 (74/209)

74화

5판 3선승제인 디비전 시리즈 중 1차전을 휴스턴 스트로스에게 내준 오클랜드 슬랙스는 절치부심하고 2차전을 준비했다.

하지만 팀의 2선발이 출전한 휴스턴과 다르게 오클랜드는 2선발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사용했기에 2선발이 아닌 3선발을 디비전 시리즈 2차전에 내놓았다.

그러다 보니 휴스턴에 비해 마운드가 불리한 상황에서 2차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오클랜드는 디비전 시리즈 2차전도 휴스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렇게 원정에서 치른 디비전시리즈 1, 2차전을 모두 휴스턴에게 내준 오클랜드의 입장에서는 홈으로 돌아온 3차전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경기에 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 *

오클랜드 뉴슬랙스 볼파크.

홈팀 로커 룸에서 오클랜드 슬랙스 소속 선수와 감독, 그리고 코칭스태프들까지 모두 모였다.

“1시간 뒤면 올 시즌 마지막 경기가 될 수 있는 디비전 시리즈 3차전이 시작된다.”

마이크 케세이 감독은 비장한 표정을 하고 연설을 하였다.

감독의 연설을 들은 선수들은 모두 비장한 모습으로 연설을 경청했다.

‘하! 상대가 승부를 해 줘야 뭐라도 해 볼 텐데.’

연설을 들으면서도 대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휴스턴 스트로스 투수가 자신을 상대로 정면 승부를 피하는 것 때문에, 제대로 실력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상대였던 저스틴만이 자신에게 정면 승부를 걸어왔고, 휴스턴의 2선발인 랜스 맥컬스는 지능적인 플레이를 하며 타격감이 좋은 타자와는 승부를 피하고 포스트 시즌이 가까워지며 상대적으로 지쳐서 타격감이 떨어지는 타자들만 승부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점수를 따라가려 해도 제대로 점수를 내지 못한 나머지 2차전에서도 패배한 것이었다.

“상대가 승부를 피한다고 해서 화를 낼 필요 없다. 그것도 야구 중 하나이니, 너희는 너희의 야구를 하면 되는 것이다.”

감독의 말을 들은 선수들은 순간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디비전 시리즈 2차전 패배의 원인이 바로 그것 때문 아니었는가.

“이번 시즌에서 챔피언 시리즈와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다고 해도, 너희들의 야구가 끝나는 것은 아니잖나? 그러니까 다들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번 시즌에서 후회가 남지 않는 경기를 하기 바란다.”

“예, 알겠습니다.”

마이크 케세이 감독의 연설이 끝나자 선수들도 굳은 의지를 담아 대답하였다.

정말로 배수의 진을 치고 오늘 디비전 시리즈 3차전에 임하는 각오를 다졌다.

* * *

“안녕하십니까? 오클랜드 스포츠 라디오 아나운서 제레미 화이트입니다.”

“해설 존 쿠거입니다.”

오클랜드 뉴슬랙스 볼파크 장내 아나운서인 제레미 화이트와 해설 존 쿠거가 마이크에 대고 팬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잠시 후, 디비전 시리즈 3차전 경기가 시작 됩니다.”

“네, 하지만 현재 디비전 시리즈 스코어는 휴스턴 스트로스가 1차전과 2차전을 가져가면서 2:0으로 챔피언 시리즈 진출에 한 걸음 더 다가갔습니다.”

“저희 오클랜드의 입장에선 너무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맞습니다. 5판 3선승제인 디비전 시리즈를 생각하면 오늘 경기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제발 오늘 3차전을 승리하여 역전의 발판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오오오!”

제레미와 존 쿠거의 멘트에 장내 오클랜드 팬들은 일제히 환호하였다.

조금 전 그들이 한 이야기가 바로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 * *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이다 보니 디비전시리즈 3차전은 휴스턴의 공격부터 시작되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 때문에 투수 로테이션이 꼬이긴 했지만, 오늘 오클랜드의 선발로 나온 루이스 월터는 비장한 표정으로 투구를 하였다.

펑!

95마일의 구속으로 메이저리그 평균 정도였지만, 그의 시그니처 구종인 투심 패스트볼은 높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다만 그 이외의 구종은 별것 없고, 제구가 들쑥날쑥하다는 평가가 있어 오클랜드에서는 4선발에 위치하고 있었다.

펑!

“좋아!”

연습 투구를 하는 루이스의 공 끝의 낙폭은 오늘 컨디션이 매우 좋음을 나타내고 있어 지켜보고 있던 코칭스태프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만들었다.

“플레이 볼!”

연습 투구가 끝나고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선언이 있었다.

주심의 경기 시작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벼웠던 경기장 분위기는 한순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펑!

“스트라이크!”

휴스턴의 1번 타자 알렉스 브레그를 상대로 루이스는 과감하게 인코스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살짝 가운데로 몰리는 감이 없진 않았지만, 몸 쪽으로 휘는 투심 패스트볼이라 쉽게 공략하긴 힘든 공이었다.

팡!

“볼!”

두 번째 투구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유인구였는데, 알렉스 브레그는 이에 속지 않고 볼을 골라냈다.

딱!

세 번째 투구에 알렉스 브레그가 스윙을 가져가 타격하였다.

하지만 공은 배트 중심에 맞지 않고 살짝 손잡이 쪽으로 먹힌 타구가 되면서, 배트에 맞은 타구는 힘껏 뻗지 못하고 3루수 앞으로 굴러갔다.

터업!

“아웃!”

휴스턴의 1번 타자 알렉스는 그렇게 3루수 앞 땅볼로 아웃이 되었다.

1번 타자 알렉스가 아웃되고 타석에는 2번 타자 제레미 페이냐가 들어섰다.

제레미 페이냐는 좌투 좌타로 오클랜드의 선발 루이스에게 상대 전적이 앞서 있는 타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루이스는 표정을 굳히며 타석에 들어선 제레미를 한참 노려보았다.

“헤이, 루이스!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과감하게 승부해요.”

타석에 들어선 제레미를 쳐다보느라 가만히 마운드에 서 있는 루이스를 보다 못해 대호가 큰소리로 소리쳤다.

‘맞아! 아무리 상대 전적에서 내가 밀린다고 해도, 내 공을 100% 친 것은 아니니까!’

어떤 전설적인 타자도 모든 투구를 전부 쳐서 홈런이나 안타를 만들지는 못한다.

더욱이 자신의 뒤에는 메이저리그 내에서 수비라면 손에 꼽을 정도로 훌륭한 선수가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자 루이스는 저절로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풀리면서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펑!

“스트라이크!”

어깨가 가벼워지자 공에 힘이 실렸다.

그리고 쓸데없는 힘이 빠지자 제구 또한 상승했다.

따악!

공이 배트에 맞는 타격음이 들렸다.

하지만 루이스는 그것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던진 공에 배트가 밀려 제대로 뻗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었고, 타구가 날아가는 코스를 보니 센터에 있는 대호가 잡아 줄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아웃!”

루이스의 믿음은 바로 보답받았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외야는 대호가 콜업 된 이후 거의 통곡의 벽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메이저리그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대호의 수비 범위 때문에 부담이 줄어든 우익수와 좌익수들이 줄어든 가로 영역만큼 세로 영역이 늘어나며 수비를 꼼꼼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니 2루타가 되어야 할 타구가 단타로 끝나거나, 혹은 슈퍼 플레이로 아웃되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뒤로 빠지는 타구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전보단 훨씬 줄어들었다.

이렇게 뒤가 안정적으로 변하자 마운드 역시 탄탄해졌다.

장타로 이어지던 타구들이 외야 수비에 막혀 단타, 혹은 수비벽을 뚫지 못해 아웃 카운트가 늘어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투수는 무척이나 예민한 존재였다.

그런 이들이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자 투구에 변화가 생겨났는데, 보다 공격적으로 피칭을 하게 되니 수비 시간도 줄어들게 되면서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텁!

“아웃! 쓰리 아웃 체인지!”

오늘 오클랜드의 우익수 자리에는 주전 우익수인 살라가 출전을 하고 있었다.

대호의 데뷔 경기에서 선발로 나왔다가 단 1회 만에 전격적으로 대호와 교체되는 굴욕을 맛봐야 했던 선수다.

하지만 그 후로 대호와 협력 수비를 하며, 단점을 고쳐 안정적으로 외야 일부를 책임지는 주전이 되었다.

“나이스!”

휴스턴 스트로스의 1회 초 공격은 그렇게 삼자범퇴로 끝났다.

홈구장이라 그런지 원정 경기에서 보여 주던 것 보다 훨씬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탁!

“아웃!”

공 네 개 만에 오클랜드의 1번 타자 지미가 빗맞은 타구를 때리고 유격수 앞 땅볼로 아웃되었다.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은 현재 부진한 공격력을 보여 주고 있는데,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할 때까지만 해도 타자들의 타격감은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디비전 시리즈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무너지며 좀처럼 타격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 결과가 바로 디비전시리즈 1, 2차전의 패배였다.

물론 원정이었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근본적인 원인은 오클랜드 슬랙스의 선수들이 모두 지쳐 있다는 점이 제일 컸다.

분명 오클랜드는 후반기에 미친 돌풍을 일으켰다.

홈경기는 물론이고 원정 경기에서도 엄청난 승수를 거뒀지만, 체력적인 부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 상태에서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치르고 지금 디비전 시리즈를 치르고 있으니, 당연히 상태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상대인 휴스턴은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며칠이지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휴스턴의 경우 오클랜드보다 주전과 후보 간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아, 정규 시즌 동안에도 선수들의 체력 안배에 좀 더 신경을 쓸 수 있었다.

그러니 디비전 시리즈에서 오클랜드보다 훨씬 좋은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한 것이었다.

또한 오클랜드 공략의 키를 대호가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휴스턴의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은 경기 중 철저하게 대호를 격리시키는 작전을 구상했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이야 팀의 에이스인 저스틴이 나간 만큼 자존심을 세워 주기 위해 정면 승부를 허용했고, 실제로 심판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며 좋은 결과를 거뒀다.

그러나 저스틴도 마지막에 솔로 홈런을 맞은 이후에는 감독의 작전에 수긍한 상태였다.

탁!

“아웃!”

선구안이 좋은 2번 타자 리키 헨슨도 휴스턴의 내야 수비를 뚫지 못하고 1루수가 직접 1루 베이스를 밟으며 아웃되었다.

타석에 들어선 대호, 하지만 마운드에 있는 투수를 보자 오늘도 휴스턴의 작전이 어떤지 깨달았다.

‘하아… 또 이런 작전이냐!’

아니나 다를까.

대호가 자세를 잡기 무섭게 포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 물러난 뒤 포구를 하였다.

팡! 팡! 팡! 팡!

“Walk!”

휴스턴은 원정에서도 그러더니, 오늘도 시작부터 고의 사구로 자신을 내보냈다.

대호의 앞에 주자가 있건 없건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승부를 피하는 작전으로 나오니, 대호의 타격감이 어떻든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터벅터벅.

고의 사구로 1루로 걸어 나가게 된 대호는 마운드에 있는 휴스턴의 4선발 라파엘 몬테그로를 한 번 쳐다보고, 또 그 너머 휴스턴의 더그아웃 안을 쳐다보았다.

이는 자신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휴스턴 코칭스태프들에게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라도 해서 투수인 라파엘이 흥분한다면 자신과 승부를 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테니까.

툭툭.

1루에 도착한 대호가 장갑을 바꿔 끼고 있을 때, 1루 선상에 나와 있던 코치가 대호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대호, 그린라이트다.”

더 이상 길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대호의 빠른 발을 믿기 때문인지 대호에게 도루를 하고 싶으면 하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어차피 오늘 경기에서 패배하게 되면 오클랜드의 2031시즌은 모두 종료가 되는 것이기에 마지막 대호의 발에 희망을 걸어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 직접 때려내지 못하면 발로 뛰기라도 해야지.’

대호는 그린라이트를 허락받은 이상, 1회부터 본격적으로 나설 것을 결심했다.

툭툭툭.

베이스에서 세 걸음 떨어져 자세를 잡았다.

이는 명백히 투수에게 도발하는 것이었다.

던질 테면 던져 봐라, 승부를 피한 겁쟁이… 이런 식으로 말이다.

투구를 하기 전 1루를 살펴보던 라파엘은 대호의 의도를 깨닫고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을 도발하려는 것을 느끼고 화가 났지만, 더그아웃에서 이미 대호에 대한 지시를 받았고 또한 몇 수 위인 투수 저스틴조차 홈런을 얻어맞은 것을 알기에 애써 무시하고 공을 던졌다.

팡!

“볼!”

대호가 신경 쓰인 것 때문인지, 아니면 타석에 서 있는 맥 마이크와의 상성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초구는 바깥쪽으로 벗어난 볼이었다.

포수에게서 공을 돌려받은 라파엘의 표정이 조금 전보다 더 찌푸려졌다.

그것으로 보아 자신이 원하는 코스로 공이 제대로 제구가 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투수가 흥분했다.’

투수의 표정을 읽은 대호는 자신의 뜻대로 투수가 흔들린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집중해 투수를 관찰하고 다시 한번 흔들었다.

슬금슬금.

대호는 라파엘의 눈치를 보며 조금 더 2루에 가깝게 몸을 붙였는데, 너무 신경 쓰이게 만들었는지 견제구가 들어왔다.

촤악!

투수가 발판에서 발을 빼자 곧바로 1루로 몸을 날렸다.

팡!

“세이프!”

동작을 보고 미리 몸을 날린 덕에 세이프가 되었다.

툭툭!

슬라이딩을 하며 몸에 묻은 흙을 털어 내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후우!’

다다다닷!

리드를 하기 위해 베이스에서 떨어진 대호는 라파엘이 투구 동작에 들어서기 무섭게 2루로 뛰었다.

투구 동작을 하며 글러브에서 빠져나온 라파엘의 손이 보였는데, 공을 쥔 그립이 포심이나 투심 패스트볼이 아님을 깨닫고 곧바로 달린 것이었다.

한편 타석에 서 있던 맥은 대호가 뛰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몸 쪽으로 낮은 커브가 날아오는 것도 보였다.

원래는 패스트볼을 대비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대호가 도루를 하는 것을 보고 타이밍을 놓쳤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행운이 되었다.

따아악!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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