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템파베이 레더스와 치렀던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승리하고 디비전 시리즈에서 맞붙게 된 상대는 2031시즌 동안 한참 치고받았던 서부 지구 우승팀인 휴스턴 스트로스.
어떻게 보면 복수전이라 할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오클랜드 슬랙스 선수들은 이번 디비전 시리즈를 벼르고 있었다.
정규 시즌 중에는 한 번도 그들을 앞질러 본 적이 없었으니까.
물론 휴스턴과의 경기에서 승리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후반기의 미친 돌풍에도 결국 선두 자리는 빼앗지 못한 게 아마 지금의 의욕을 북돋는 효과를 내는 듯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 이기면 한 해의 울분을 모두 푸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전력 평가에서 오클랜드를 약세로 놓았다.
‘저게 맞지.’
대호 역시 그 분석표를 보며 똑같이 생각했다.
자신이 있는 외야 수비 정도만 약간, 정말 약간 우위에 있을 뿐, 타자와 투수 모두 전체적으로 밀렸으니까.
이기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깨닫는 게 중요한 법이기에 대호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 * *
팡!
“스트라이크!”
휴스턴 스트로스의 에이스 저스틴 발더는 1회부터 자신의 특기인 100마일이 넘는 포심 패스트볼과 96마일 고속 슬라이더를 앞세워 오클랜드 슬랙스 타자들을 찍어 눌렀다.
선두 타자로 나온 지미 울프를 삼구 삼진으로 물러나게 하고, 2번 타자인 리키 헨슨은 유격수 앞 땅볼로 잡았다.
뿐만 아니라 정규 시즌 후반기에 콜업 되어 타율 0.378 홈런 31개 도루 28개를 기록한 대호를 상대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며 결코 쉽게 내보내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팡!
“스트라이크!”
저스틴의 두 번째 공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대호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판정에 불만을 표현했다.
분명 볼 판정이 심판의 재량인 것은 맞다.
하지만 방금 전 공은 정규 시즌에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지 않는 코스였는데, 이번에는 스트라이크가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직 한 시즌도 치르지 않은 선수가 자신의 실력만 믿고 바로 심판에게 따질 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고개만 갸웃거리고 더 이상 어필을 하지 않았다.
‘호! 이놈… 정말로 신인 맞아?’
볼 판정에 불만이 있으면서도 고개만 갸웃거리고 마는 대호의 모습에 휴스턴의 포수 크리스 바스케스는 속으로 감탄했다.
정규 시즌에 대호를 만나 대결해 보기도 했지만, 정말 보면 볼수록 신인 같지 않은 신인이었다.
‘다행히 주심이 볼 판정에 넉넉한 것 같으니, 이번에는 바깥쪽으로 공 하나 정도 빠지는 고속 슬라이더!’
크리스 바스케스는 대호를 잠시 일별하고, 스트라이크 존 판정이 넓은 심판을 믿고 선발 저스틴에게 다음 공의 사인을 보냈다.
그런 크리스의 사인을 받은 저스틴은 포커페이스를 하고 공을 던졌다.
작은 신호라도 보냈다간 타자가 무언가 정보를 알아차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투구를 할 때면 한 가지 표정으로 일관하는 저스틴이었다.
팡!
“스트라이크, 아웃!”
‘아니!’
바깥쪽으로 한참 빠지는 공이었는데 이것조차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리자 대호는 정말 당황했다.
아무리 이곳이 휴스턴 스트로스의 홈구장이라고 하지만, 방금 전 공을 스트라이크 판정 내리는 것은 타자에게 아예 공을 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애런 씨! 방금 공이 스트라이크라고요?”
대호도 끝까지 참으려고 했지만, 너무나 어처구니없어 주심을 보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 판정에 불만이 있나?”
자신의 판정에 1회 초부터 이의를 제기하는 대호를 보며, 애런 발도나 주심은 표정을 굳히고 딱딱하게 물었다.
그러자 대호는 지금 각을 세워 봤자 팀에 불리해진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고 억지로 화를 누른 뒤 한 발 물러났다.
“아닙니다. 그저 한번 확인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제길!’
3번 타자인 대호마저 이렇게 삼진으로 물러나자, 오클랜드의 1회 초 공격은 그렇게 삼자범퇴로 끝났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주심인 애런 발도나의 볼 판정이 휴스턴에만 유리하게 판정을 내리는 게 아니란 것이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오클랜드의 1선발인 프랭클린의 공에도 비슷한 판정을 했던 것이다.
그제야 휴스턴의 선수들도 1회 초 오클랜드의 타자들이 어째서 그렇게 황당한 표정을 지었는지 깨달았다.
디비전 시리즈 1차전 주심을 보는 애런 발도나는 인코스나 아웃코스, 어느 한쪽만 스트라이크 폭이 넓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늘은 대체 무슨 마음을 먹은 것인지 모든 코스에서 판정이 매우 후했다.
이 때문에 투수에게는 무척이나 유리해졌고, 그에 반해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으로 인해 공을 구분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게 나비효과를 일으켜, 오클랜드 슬랙스와 휴스턴 스트로스의 디비전 시리즈 1차전은 생각지도 못한 투수전이 펼쳐졌다.
양 팀 모두 6회까지 아무런 점수도 내지 못하고 맞이하게 된 7회.
텁.
“아웃!”
빗맞은 공이 라인을 벗어나 파울이 되었는데, 이를 놓치지 않고 쫓아간 휴스턴의 포수 크리스의 미트에 들어가며 선두 타자인 지미 울프가 아웃되었다.
휴스턴의 에이스 저스틴의 공은 아직도 힘이 살아 있어 제대로 맞춰도 멀리 뻗지가 않았다.
“젠장!”
벌써 세 차례나 타석에 섰지만 삼진과 내야 땅볼, 그리고 방금 전에는 파울 플라이로 아웃된 지미는 인상을 쓰며 더그아웃으로 돌아왔다.
이대로 가면 저스틴에게 퍼펙트를 내줄지도 몰랐기에 짜증이 났다.
그런 지미를 뒤로하고, 다음 타자는 오클랜드의 2번 타자 리키였다.
그 또한 선두 타자인 지미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에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펑!
“스트라이크!”
101마일이 찍힌 포심 패스트볼이 날아와 꽂혔다.
“후!”
휴스턴의 에이스 저스틴은 7회에도 100마일이 넘는 무시무시한 포심 패스트볼을 타자의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꽂아 넣으며 완전히 경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똑같이 무실점이지만, 몇 번 위기가 있던 프랭클린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저스틴으로 인해 리키는 순간 몸이 굳어 버렸다.
‘와… 이거 정규 시즌 때보다 더한데?’
현재 리키가 느끼기에 휴스턴의 에이스 저스틴은 주심의 버프까지 받은 결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단기전인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당연한 일일수도 있겠지만, 평소보다 훨씬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미 상대에게 기가 죽어서 그런지 리키는 별다른 힘도 써 보지 못하고 3구만에 헛스윙을 하며 삼진을 당했다.
한편 대기 타석에서 저스틴의 투구를 조용히 지켜보던 대호는 어느 정도 그의 투구 패턴을 읽을 수 있었다.
‘하나 둘 셋… 좋았어!’
무지막지한 구속과 구위, 하지만 그것만이라면 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심판이라는 변수 때문에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대호는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서기 직전 저스틴의 투구 패턴 중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때의 동작을 알아냈다.
팡!
“스트라이크!”
바깥으로 빠지는 고속 슬라이더였다.
하지만 이건 쳐 봐야 배트 끝에 살짝 걸려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그냥 버린 것이었다.
휘익!
두 번째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포심이다.’
초구 바깥쪽 고속 슬라이더를 던지고 두 번째로 던진 공은 인코스 꽉 찬 포심 패스트볼.
바깥쪽을 던졌으니 이번에 안쪽으로 던져 타자의 감각을 흔드는 정석적인 투구 로케이션이었다.
하지만 포심 패스트볼의 타이밍을 잡고 있던 대호에게는 그 정도 로케이션으로는 타격감을 흔들기 부족했다.
따아아악!
두 타석 모두 삼진으로 처리를 했던 것 때문에 방심을 한 것인지, 저스틴은 벌써 7회가 되었는데 투구에 변화를 주지 않고 비슷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 최악의 결과로 나왔다.
지금까지 20명의 타자를 상대로 퍼펙트를 이어 가고 있다가, 7회 마지막 타자라 할 수 있는 21번째 와서 그만 홈런을 맞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대호에게 읽힌 상태에서 기다리고 있던 포심 패스트볼이 들어왔으니, 얻어맞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와아아아! HO―!”
오클랜드의 원정 팬들은 7회까지 휴스턴에 퍼펙트로 끌려가다 홈런이 나오자 일제히 그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이곳이 휴스턴의 홈구장임을 잊고 말이다.
한편, 잘만 통하던 자신의 주무기를 상대가 시원하게 타격하는 모습을 본 저스틴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고 그라운드를 돌고 있는 대호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무서운 놈이군!’
그는 정규 시즌에 딱 한 번 대호와 대결을 해 보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한 방 얻어맞았었는데, 그 당시에는 주심의 성향이 무척이나 보수적이었던 지라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스트라이크 존이 태평양만큼이나 넓은 애런 발도나가 심판을 보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대호를 비롯한 오클랜드의 모든 타자들을 삼진과 내야 땅볼로 손쉽게 처리했다.
그런데 이렇게 한방을 먹게 되다니 어이가 없기도 했다.
상황판에 드디어 변화가 생겼다.
1:0
그러나 대호에게 솔로 홈런을 맞은 저스틴은 그가 왜 휴스턴의 에이스인지 곧바로 증명했다.
2031년 정규 시즌에서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23승3패로 최다승까지 차지한 실력을 말이다.
펑!
“스트라이크, 아웃!”
저스틴은 대호의 다음 타자로 나온 4번 타자 맥 마이크를 상대로 다시 한번 삼진을 잡아내며, 퍼펙트가 깨졌음에도 전혀 영향이 없음을 보여 주었다.
‘하… 이거 쉽지 않겠는데.’
4번 타자인 맥 마이크가 삼진을 당하는 모습을 더그아웃에서 지켜본 대호는 휴스턴의 선발 투수인 저스틴이 지금까지와 전혀 다름없는 구위를 보여 주는 것에 놀라며 남은 이닝이 힘들 것이란 예상을 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상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보통 투수들이 노히트나 퍼펙트 기록을 세우다 깨지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감독들 역시 교체를 하기 마련이고.
그러나 휴스턴의 감독은 저스틴을 믿고 있는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저스틴 역시 맥을 삼진으로 잡아내며 믿음에 보답했다.
이 상황은 타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따아악!
공수 교대가 된 7회 말.
휴스턴의 타자들이 프랭클린의 공을 공략해 내기 시작했다.
물론 프랭클린이 저스틴처럼 퍼팩트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연속해서 안타를 맞은 건 이번 이닝이 처음이었다.
“괜찮겠어? 힘들면 말해!”
타자에게 연속해서 안타를 맞고 주자를 내보내자, 오클랜드 더그아웃에서 타임 요청을 하고 코치가 마운드에 올라 물었다.
그리고 프랭클린은 코치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정규 시즌과는 다르게 디비전 시리즈는 생각 이상으로 정신적 압박감이 심했다.
그러다 보니 연속해서 안타를 맞은 프랭클린이 더 이상 공을 던지는 건 악수라는 걸 인정하고 곰을 넘긴 것이었다.
원래 단기전은 선수 개개인이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한 법.
그러나 프랭클린의 결단에도 상황은 더욱 안 좋게 흘러갔다.
휴스턴은 바뀐 투수를 상대로 지금껏 무력했던 것을 시위하듯 맹타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따악! 따악!
프랭클린이 내보낸 타자뿐만 아니라 그 뒤로도 연속해 안타를 맞으며 점수를 내줘 1:0의 스코어는 7회 말이 끝나기 전 1:4로 역전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휴스턴의 저스틴이 9회까지 마운드를 지킨 것과 대조적으로 오클랜드는 8회에 또다시 투수 교체를 했음에도 3점을 더 내주고 최종 스코어 1:7로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휴스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날 대호의 성적은 3타수 1안타 1홈런 1볼넷이었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