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트리플A인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에 콜업 되어서도 대호의 질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대호 자신이 더 잘 느끼고 있었다.
‘분명 더블A로 콜업 되었을 때는 초반에 조금 주춤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이번에 트리플A, 라스베이거스에 오고 난 이후로는 솔트레이크와의 첫 3연전부터 맹타를 때렸어. 거기에 홈런 사이클까지…….’
이제는 미국 야구에 대한 적응이 끝난 것일까.
아직 메이저리그에 승격한 게 아니라 확신할 순 없지만, 조금은 자랑스러워해도 될 듯했다.
대호는 홈경기에서 홈런 사이클, 수비 능력 등, 자신의 실력을 뽐내며 다시 한번 이름을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래서일까, 상위 구단인 오클랜드 슬랙스의 팬들도 이제는 대호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고, 트리플A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 선수가 언제 올라올지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오클랜드 슬랙스의 성적은 80경기를 치르는 동안 35승 45패로 승률이 고작 43.75% 밖에 되지 않았다.
순위도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4위로, 이대로는 오클랜드의 야구팬들에게 가을 야구란 가망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마이너리그에 혜성처럼 나타나 전설적인 기록을 연이어 세워 버리는 슈퍼 루키가 나타났다.
200년 야구 역사에서 단 세 명만이 기록한 홈런 사이클의 주인공이 바로 오클랜드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활약을 펼치고 있으니 팬들이 심정이 어떻겠는가.
최근 오클랜드의 열렬한 팬들은 직관을 하기 위해 경기장에 모여도 대호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크~ 역시 슈퍼 보이! 오늘도 한 건 했구먼.”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휴대폰을 보며 중얼거리자, 옆자리에 있던 안경 쓴 남자가 물어봤다.
“오? 혹시 지금 라스베이거스 경기 보고 있습니까? 대호 선수가 오늘도 한 방 날려 줬나 보군요.”
“말해서 뭐 하나요? 아… 요새 오클랜드 하는 걸 보면 빨리 메이저로 올라와서 팀에 도움을 좀 줬으면 좋겠는데.”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더블A, 그리고 트리플A.
각각 한 번씩 기록한 홈런 사이클도 경악할 만한 일이지만, 저게 플루크가 아니란 사실이 팬들의 마음에 더욱 불을 질렀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서도 정말 뜬금없이 무명의 선수가 퍼펙트게임을 기록한다든가, 사이클링 히트를 친다든가 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그들의 대부분은 원 히트로 끝나 버리고, 다음 경기에서 믿음을 배반한다.
정대호는 완전히 달랐다.
오클랜드의 팬들 중 대호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은 그의 이력을 살펴보았는데, 놀랄 만한 승격 속도에 기겁했다.
하이 싱글A에서 2주 만에 승격, 더블A에서는 두 달 만에 승격.
그것도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너무 뛰어난 실력 때문에 불법 약물 의혹이 벌어져서 해명하느라 걸린 한 달의 시간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후 팬심이 생길 수밖에 없던 것이다.
“하… 정말 프런트에서는 뭘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선수를 말이지…….”
“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죠. 선수 보호라든가 그런 조항 있잖아요?”
“쩝… 이럴 땐 좀 융통성 있게 운용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오클랜드의 팬 두 사람은 그런 대화를 남기고 다시 경기장으로 눈을 돌렸다.
한편, 프런트에서도 당연히 이런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프런트에서는 이 페이스로 대호가 타격을 할 때, 어떤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 대충 예상을 세워 보았다.
현재까지 트리플A 열다섯 경기에서 기록한 열두 개의 홈런.
즉,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에 올라왔다고 가정할시, 단순 계산으로 130개는 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메이저리그의 투수력과 조금씩 떨어지는 체력, 타자로서 공략될 버릇 따위를 계산하면 실질적으로는 훨씬 떨어지리라.
그러나 그보다 더 적게 친다고 가정하더라도 최소한 7~80개는 기대해 볼만 했다.
60개를 넘게 친 선수가 그 해의 MVP가 됐다는 걸 감안하면, 정말 메이저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선수가 될 건 당연했다.
과연 단장인 조엘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하는 프런트 직원들이었다.
* * *
“오늘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가지는 올스타 브레이크 첫날입니다.”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구장인 오클랜드 뉴슬랙스 볼파크의 장내 아나운서 제레미 화이트가 목소리를 높였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브레이크 첫날 행사 중 하나로 마이너리그 올스타 경기인 퓨처스 게임이 있는 날인데, 대호 역시 당당하게 뽑혀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 오클랜드의 유망주인 정대호 선수도 아메리칸 리그 선수로 출전을 하죠?”
“맞습니다. 1번 타자고, 수비 포지션은 중견수로 출전할 예정입니다.”
제레미 화이트의 물음에 해설인 존 쿠거가 대답을 했다.
오늘 퓨처스 게임이 치러지는 장소가 장소이다 보니, 오클랜드 슬랙스 팬들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장내 아나운서와 해설은 오클랜드 슬랙스 산하 마이너리거인 대호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들려주었다.
“와아아아!”
장내 스피커로 대호에 대한 이야기가 퍼지자, 경기장을 찾은 많은 오클랜드 팬들이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환호성을 질렀다.
* * *
팡! 팡!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운동장에 나와 가벼운 토스를 주고받으며 몸을 풀고 있었다.
웅성웅성.
마이너리그 경기장이 아니라 그런지 몇 배나 되는 관중이 들어찬 이곳은 평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귀가 울렸지만, 많은 경험을 가진 선수들은 이에 동요하지 않고 각자 몸을 풀었다.
그래야 본 경기에 들어갔을 때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오늘은 다른 때와 다르게 함께하는 선수들의 면면이 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를 대표하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모여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른 선수 구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다른 때는 서로 적대적으로 대결을 벌이던 사이였지만, 오늘만은 서로 협력하여 경기를 뛰는 것이다.
“너도 이번 올스타에 뽑혔구나?”
누군가 대호를 보며 말을 걸어왔다.
“응? 누구?”
7월에 콜업 되고 불과 2주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대호로서는 아직까지 자신이 속한 아메리칸 리그 소속 타 팀 선수들을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난 라운드락 익스프레스에서 온 미카엘 리라고 해.”
“아, 미카엘이구나. 반가워, 난 정대호라고 해. 정이 성이고 대호가 이름이야.”
대호는 자신에게 말을 건 미카엘을 보며 자기소개를 했다.
“정이든 대호든 둘 중 편한 대로 불러!”
외국인들이 동양인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해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성과 이름 중 편한 것으로 부르라 하였다.
“그럼 대호라고 부를게.”
“좋아. 그런데 너, 발음이 좋다? 보통 내 이름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던데.”
대호는 미카엘이 자신의 이름을 너무도 정확하게 부르는 것에 놀라며 발음을 칭찬했다.
“하하, 고마워! 동생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 어렸을 때부터 많이 K-POP을 듣다 보니까 나도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배우게 됐어.”
“아!”
미카엘 리는 대호가 따로 물어본 것도 아닌데, 자신에 관한 이야기서부터 동생들의 이야기까지 하며 대호와 대화를 이어 갔다.
‘와! 이 친구 붙임성이 정말 좋네.’
그런데 아메리칸 리그 선발 중에는 미카엘처럼 대호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선수도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로는 대호에게 대기록을 헌납한 솔트레이크 비스의 1선발 아드리안 펠릭스와 세크라멘토 리버 캣츠에서 온 포수 리버 와일드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대호와 경기를 치르면서 약간의 트러블이 있던 이들로 대호를 얕잡아 보다가 쓴맛을 본 경험이 있었다.
당연히 이들과 대호 사이의 관계가 좋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사실 대호가 이들에게 먼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색안경을 쓰고 대호를 상대하다 얻어맞은 뒤, 엉뚱한 곳에 분풀이를 하다 더욱 호되게 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소인배였는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직까지 대호와 화해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그렇거나 말거나 대호는 적당히 몸을 풀고, 또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전혀 경계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런 대호의 모습에 처음 말을 걸었던 미카엘과 다른 아메리칸 리그 선수들은 호감을 나타냈다.
물론 오늘 이렇게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고 하더라도 후반기에 경기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벌한 대결을 할 것이 분명했지만, 그게 바로 운동선수 간의 숙명이었다.
그렇게 가벼운 몸풀기가 끝나고 이벤트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대호의 오늘 경기 포지션은 중견수였다.
경기를 치를 구장이 오클랜드 슬랙스의 홈구장이고, 아메리칸 리그 소속 구단이었기에 내셔널 리그에서 먼저 공격을 시작하였다.
‘호오, 미래의 마린스 1번 타자 시나 존을 여기서 보네.’
내셔널 리그의 1회 초 공격.
대호는 멀리서도 선두 타자로 나온 타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3회차 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난 이후 본 기억이 있는 타자였다.
선구안이 좋고, 또 장타력도 있는 선수로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팀의 선발은… 이거, 상성이 좋지 못하군.’
대호가 속한 아메리칸 리그 올스타 팀의 선발투수는 아드리안이었다.
솔트레이크 비스의 1선발인 아드리안이 좋은 투수인 것은 맞지만, 좌타자인 시나와 상성이 그리 좋지 못했다.
좋은 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상하게 아드리안은 좌타자들에게 그리 성적이 좋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직접 대결을 한 첫 데뷔전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따악!
아니나 다를까.
선두 타자인 시나에게 3루수와 유격수를 통과하는 안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대호의 넓은 수비 범위가 익히 알려졌기에 3유간을 관통하는 안타를 쳤음에도 시나는 2루로 가지 못하고 1루에 머물렀다는 점이었다.
분명 코스는 2루타가 많이 나오는 코스가 맞았지만, 원체 외야의 수비가 좋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타 코스로 안타를 쳤음에도 1루밖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하던 시몬의 모습은 아무런 여과 없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하하하! 시나 존 선수, 안타를 치고 나갔으면서도 자책을 하고 있군요.”
“저 마음 저도 잘 압니다.”
해설자인 존 쿠거가 바로 제레미 화이트의 말을 받았다.
선수 출신인 존 쿠거는 무엇 때문에 시나 존 선수가 1루에서 자책을 하는 것인지 알고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나 존 선수가 보이는 이상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다고요?”
제레미 화이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2루타성 타구를 쳤음에도 너무도 완벽한 타이밍에 달려가 공을 잡은 좌익수 미카엘 리 선수로 인해 고작 1루밖에 진루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아!”
존 쿠거의 설명에 이해를 한 제레미 화이트가 감탄하였다.
시나 존의 2루타성 안타를 1루 단타로 막은 미카엘의 수비는 이미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대호만큼의 공격력은 가지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라운드락 익스프레스에서 1번을 맡고 있는 만큼 타격의 정교함은 물론이고 발도 빠른 선수로 인기가 높았다.
한편, 선발로 나와 선두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한 아드리안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는 2루타가 단타로 그친 것에 기뻐하기보단 1루에 선두 타자를 내보냈다는 사실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두 번째 타자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도 과도하게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따악!
신중하게 공을 던진다고 생각했지만, 어깨에 과도하게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공은 밋밋하고 회전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결국 또다시 타자에게 맞았다.
“2번 타자 그레이엄이 친 타구, 쭉쭉 외야로 날아갑니다.”
내셔널 리그 팀의 2번 타자 그레이엄 쿠친이 친 타구는 쏜살같이 허공을 가르며 중견수와 우익수의 중간 지점으로 날아갔다.
타다다다!
“마이 볼!”
대호는 뛰면서 콜을 하였는데, 공을 향해 뛰던 우익수도 들었는지 속도를 줄이며 뒤쪽으로 물러나 백업에 들어갔다.
한편, 대호는 콜을 하고는 좀 더 빠르게 발을 놀렸다.
텁!
달리면서 쭉 뻗은 글러브의 웹에 묵직한 느낌이 느껴졌다.
그러자 대호는 곧바로 글러브에서 공을 꺼내 1루로 송구하였다.
퍽!
“아웃!”
“아웃!”
2번 타자 그레이엄은 실투를 놓치지 않고 정확하게 타격을 하였지만, 상대가 좋지 못했다.
메이저리거와 비교를 해도 평균 이상은 하는 뛰어난 발을 가져, 넓은 수비 범위를 가진 대호가 외야에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엄 뿐만 아니라, 1루에 있던 시나 역시 당연히 안타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인 게 패착이 되어 아웃되고 말았다.
상황이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 시나는 도저히 자신이 왜 아웃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2번 타자로 나온 그레이엄이 친 타구는 정말이지 잘 맞은 타구였다.
그런 타구가 쉽게 잡히고,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1루로 송구되어 자신이 아웃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때문인지 2루 베이스에서 멍하니 서서 제자리로 돌아가는 대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4회차는 명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