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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차는 명전이다-61화 (61/209)
  • 61화

    같은 마이너리거이기는 하지만, 상대의 약점을 알고 있다면 일을 이용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더욱이 상대는 자신이 가진 약점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니,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타자들은 굳이 길게 승부를 가져가지 않았다.

    물론 약점을 알고 공략에 들어간다고 해도 모두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타자들은 배트를 짧게 잡고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했다.

    그래야 솔트레이크 비스의 선발 아드리안의 버릇을 파악하고 바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악!

    “아아, 이번 3회 말 빅 이닝의 시작이 된 타자 릭 알렌이 또다시 해내는군요!”

    장내 아나운서는 고함을 질렀다.

    그의 말대로 어느새 타순은 한 바퀴를 돌았으며, 방금 안타를 통해 또다시 타점을 낸 상태였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아나운서는 말끝을 흐렸지만, 경기장에 울리는 함성만 들어도 누구의 차례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HO! HO! HO!”

    “제가 얘기할 것도 없겠군요.”

    대기 타석에 있던 대호가 다시 한번 타석에 들어서자, 홈팬들은 뜨거운 환호를 보내 주었다.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 볼파크.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지금 대호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는데, 이것만 들어보더라도 지금 팬들이 대호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자명했다.

    ‘하아, 젠장!’

    반대로 대호가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있던 아드리안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또한 솔트레이크 비스의 더그아웃에서도 분주한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아직도 준비가 덜 되었나?”

    솔트레이크 비스의 감독, 리 마슨은 전화기를 들고 물었다.

    오늘의 선발 아드리안은 고작 3회에 연속 안타와 홈런까지 허용하며 무려 8점이나 내주었다.

    당연히 더그아웃에서는 교체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달튼에게 HBP를 맞힌 순간, 불펜에게 연락했지만 솔직히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적어도 5회는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아드리안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물론 당연히 불펜에서도 몸을 풀고 있는 릴리프 투수가 있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라스베이거스의 타자들은 그 짧은 시간조차 기다리지 않고 마구 타격을 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몸도 안 풀린 불펜을 마구잡이로 올렸다간 지금보다 더 큰 참사가 벌어질 게 뻔한 일.

    사실 투 아웃을 잡은 것도 기적일 정도로 지금 상황은 최악으로 흐르고 있었다.

    더군다나 수비수들까지 점점 지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리 감독으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분위기를 전환해야만 했다.

    “HO! HO! HO!”

    그때, 그의 귓가에 다시 한번 HO라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래서 리 감독은 타석에서 배트를 붕붕 돌리는 대호를 응시했는데, 그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들어왔다.

    선발 아드리안이 포수와 사인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상대 타자인 정대호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그런 불안감을 품게 된 감독이었다.

    한편, 대호 역시 아드리안의 눈길을 눈치챘다.

    ‘이 자식, 지금 날 노려보고 있는 건가?’

    왠지 모르게 어깨와 목, 그리고 머리 쪽에서 찌릿한 따가움이 느껴졌다.

    “타임!”

    대호는 요상한 느낌에 일단 주심을 보며 타임을 요청했다.

    “타임!”

    주심은 대호가 갑자기 타임을 요청하자 아직 투수가 투구 동작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주심에게 타임을 요청하고 타석에서 나온 대호는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배트를 가랑이에 끼고 왼팔에 착용한 프로텍터를 점검했다.

    보통 때는 굳이 팔을 보호하기 위한 프로텍터를 착용하지 않는 대호였다.

    하지만 오늘 공을 던지는 아드리안의 모습을 지켜보며, 왠지 프로텍터를 착용하고 타석에 나가야 할 것 같은 예감에 착용하고 나온 상태였다.

    “플레이!”

    대호가 타석에 들어서자 주심은 다시 경기 재개를 선언했다.

    팡!

    아드리안이 투구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대호는 빠르게 상체를 뒤로 빼며 공을 피했다.

    “볼!”

    상당히 위협적인 공이었지만, 주심은 별다른 제재 없이 그저 볼 선언만 내렸다.

    ‘이것 봐라?’

    자신의 예상대로 인코스 높은… 아니, 어깨 높이로 위협구가 날아왔다.

    이번에는 집중을 하고 있었기에 상체를 살짝 뒤로 빼는 걸로 공을 피할 수 있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할 수 없지.’

    웅성웅성!

    3회 말에 또 다시 위협구가 나오자 관중석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개중에는 투수에 대한 비방도 더러 섞여 있었다.

    켈리 달튼이 등에 공을 맞고 1루로 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또다시 그런 위협구가 나오자,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홈팬들 속에서 야유가 터져 나온 것이다.

    탕탕!

    자신의 머리 쪽으로 위협구가 날아왔지만, 대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 한번 타격 자세를 취했다.

    그런 대호의 자신감 있는 태도에 아드리안의 눈빛이 조금 더 차갑게 빛났다.

    ‘FUCK!’

    자신을 쳐다보는 대호의 시선에 아드리안은 모멸감이 느껴져 속으로 욕을 하였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을 한 것인지,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짓고는 공을 던졌다.

    아드리안 펠릭스가 공을 던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 감독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더그아웃에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휘익! 퍼억.

    털썩!

    “뭐, 뭐야!”

    관중석에서는 방금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투수와 타자가 둘 다 쓰러져 있었으니까.

    상황은 이러했다.

    투수가 공을 던지고 타자가 배트를 휘두른 순간, 사고가 나고 말았다.

    아드리안이 던진 공은 대호에게 맞고 포수 뒤로 튀었는데, 휘두르던 배트가 마운드로 날아가 투수를 덮친 것이었다.

    “으아악!”

    엎어진 아드리안은 비명을 질렀다.

    빙글빙글 돌며 얼굴로 날아오는 배트를 막기 위해 팔을 들었는데, 그만 팔꿈치에 강하게 맞고 말았다.

    대호가 얼마나 강하게 휘둘렀는지, 사람에게 맞았는데 배트가 두 동강 나고 말았다.

    다다다다!

    타자와 투수가 동시에 바닥에 쓰러지자, 양쪽 더그아웃에서 감독과 의료진이 뛰어나왔다.

    먼저 도착한 것은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 쪽이었다.

    아무래도 아드리안에 의해 한번 피해를 봤기 때문인지, 조금 더 대응이 신속했던 것이다.

    “대호, 괜찮나? 어디를 맞았지? 상태는?”

    감독 프란은 대호의 상태를 걱정하며 부상 상태에 대해 물어보았다.

    팀에 부족한 장타력을 책임져 줄 대호가 공에 맞아 쓰러진 상황이기에, 그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괜찮습니다. 프로텍터에 맞았습니다.”

    대호는 비척비척 일어나며 감독을 안심시켰다.

    물론 완전히 데미지를 경감하지는 못한 듯, 프로텍터에 보호받고 있던 왼쪽 어깨를 만지작거리긴 했지만 경기를 계속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비교적 멀쩡한 대호와 다르게 아드리안의 상태는 가볍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투구를 마친 상태에서 느닷없이 날아든 배트를 막기 위해 팔을 들다 팔꿈치에 맞았기 때문이다.

    “끄윽… 으으윽…….”

    팔꿈치에서 느껴지는 고통으로 인해 아드리안은 짐승과도 같은 억눌린 신음을 질러 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많은 야구팬들은 그런 아드리안을 동정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갑게 노려보았다.

    야구팬들이 그에게 이렇게 차갑게 구는 것은, 비단 그가 상대팀인 솔트레이크 비스의 선수이기에 그런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그는 아까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2번 타자인 켈리 달튼에게 HBP를 던졌다.

    그런데 또, 초구부터 빈볼을 던졌다.

    게다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두 번째 공도 같은 코스로 던졌고, 결국 타자의 몸에 맞는 볼이 나와 버렸다.

    자칫하면 첫 출전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 줬으며, 라스베이거스의 에이스가 될 대호가 큰 부상을 입을 뻔했으니 팬들의 차가운 태도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괜찮나?”

    리 감독을 비롯한 솔트레이크의 의료진들은 아드리안에게 물어봤으나, 그는 신음성을 흘릴 뿐, 대답을 하지 못했다.

    결국 교체되었는데, 의료진의 부축을 받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는 아드리안의 뒷모습을 차갑게 지켜보던 대호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가볍게 몸을 풀었다.

    “이봐, 자네는 정말 괜찮겠나?”

    타석에 들어서는 모습을 보던 주심이 물었다.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시합을 재개하지.”

    대호가 괜찮다는 대답을 하자 주심은 곧 시합을 속개하였다.

    한편, 선발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인해 투수를 교채하게 된 솔트레이크 비스.

    팡!

    “볼!”

    현재 카운트는 2B 1S.

    아드리안에게 던진 볼에 맞았지만, 대호가 휘두른 게 헛스윙으로 인정되며 나온 스코어였다.

    불펜에서 교체된 솔트레이크 비스의 릴리프는 대호를 상대로 쉽사리 공을 던지지 못했다.

    첫 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친 강타자, 그리고 지금 루상에는 모두 주자가 있는 만루 상황.

    당연히 긴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손 봐줘야 할 상대는 처리했는데… 바뀐 투수가 엄청 긴장하고 있네. 뭐, 당연하겠지만.’

    대호가 보기에도 어깨가 마구 들썩이는 것이 눈에 딱 들어왔다.

    집중을 하자, 불안하게 떨리는 팔도 같이 보였다.

    ‘온다!’

    이번에도 볼 판정을 받으면 3B 1S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 투수는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필사적인 듯했다.

    하지만 투수가 던진 공은 힘만 잔뜩 들어간 나머지, 공의 회전이나 움직임이 밋밋한 작대기 직구였다.

    ‘이건 못 참지!’

    휘익!

    대호는 딱 노리기 좋은 공을 보며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다.

    따아아악!

    나무 배트에서 들린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아! 해냈어, 해냈다고!”

    공이 맞는 타격음만으로도 홈런임을 알 수 있었다.

    중앙 담장까지의 거리가 126m나 되는 비교적 큰 구장에 속하는 라스베이거스 볼파크였지만, 방금 전 대호가 친 타구는 이를 훌쩍 뛰어넘는 장외 홈런이었다.

    그랜드 슬램.

    두 번째 타석에서 만들어 낸 쾌거였다.

    “빅 타이거! 네가 최고다!”

    “인크레더블! 대호는 인크레더블이야!”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홈팬들은 자신들의 구장에 이제 갓 콜업 된 뉴비가 첫 선발에서 투런 홈런을 친 것만으로 기꺼웠는데, 두 번째 타석에서 그랜드 슬램, 그것도 비거리가 150m를 훌쩍 뛰어넘는 대형 홈런을 친 것을 보자 기쁨의 환호성을 마구 질렀다.

    그동안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홈팬들은 부진한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타자들의 면면을 보면 최악이라고 까지는 할 수 없었는데, 매번 찬스를 잡을 수 있는 강력한 한 방을 가진 강타자가 없어서 패배의 쓴잔을 들이킨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오늘, 첫 경기에 등판한 새로운 선수가 팀의 고질병을 고쳐 주는 장면을 목격하자 완전히 미쳐 버렸다.

    “우와아! HO! HO!”

    4회차는 명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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