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솔트레이크 비스의 투수가 던진 공을 쳐서 홈런을 만든 대호는 가볍게 러닝을 하듯 그라운드를 돌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왠지 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대호는 바로 자신이 미국 무대 첫 홈런을 쳤을 때가 기억 났다.
‘맞아. 랜싱 러그너츠에서, 그리고 락하운즈에서 데뷔할 때도 그랬지.’
익숙한 느낌에 궁리를 하던 대호의 머릿속에 이번처럼 데뷔 타선에서 홈런을 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감독들은 오클랜드 슬랙스가 역대급 계약금을 주고 계약한 해외 유망주의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보자는 심정으로 타선에 올렸는데, 바로 실력을 보여 주었다.
물론 하이 싱글A였던 랜싱 러그너츠에서는 대타로 먼저 데뷔를 했었지만, 어찌 되었든 첫 데뷔 타석에서 홈런을 친 것은 맞았다.
“와아아!”
대호는 팬들의 함성소리를 들으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예전 같았으면 신인이 이렇게 홈런을 치고 여유롭게 베이스를 돈 순간, 다음 타석에서 보복구를 맞을 확률이 높았다.
게다가 몸에 보복구를 맞은 타자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했다.
이는 홈런을 맞은 상대 투수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개소리가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불문율.
메이저리그에 만연한 그것 때문에 말이다.
심지어 몇몇 올드스쿨 감독들은 자기 팀의 선수가 보복구를 맞아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 때문에 타자들은 홈런을 치고도 아무런 감정을 내보이지 못하고 조용히 베이스만 돌아야했다.
물론 이런 주장이 모든 나라의 프로야구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진짜 개소리지. 야구의 종주국이라는 국가에서 아직도 이런 게 남아 있다니…….’
또 다른 메이저리그의 불문율 중 하나가 타자의 배트 플립 허용과 관련된 문제였다.
다행히 지금은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2020년 이전에는 한 번 배트 플립을 펼쳤다간 순식간에 언론을 장식하고, 동료 선배들에게 쓴소리를 얻어먹기 일쑤였다.
2031년인 현재에도 일부 선수들이나 감독, 코치들은 배트 플립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대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배트 플립은 타자가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의 표시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투수가 강력한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냈을 때, 과장된 모션을 보이거나 환호성을 지르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니까.
대호가 MLB 야구를 볼 때 예전부터 의아해했던 부분이었다.
투수의 세리머니는 허용하고, 타자는 안 된다고 하면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또한 미국 4대 스포츠 중에서 야구가 하락세를 그렸던 것도 이런 볼거리가 적은 점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대호의 개인적인 견해였다.
적어도 시청자로서 볼 땐, 응원하는 선수의 자기과시적인 행보도 경기에 몰입하는 한 요소였으니까.
짝!
홈으로 돌아온 대호는 홈에 먼저 들어와 대기를 하고 있던 닉 알렌과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타석에 들어서기 위해 대기하던 빈스와도 손뼉을 마주치며 속삭였다.
“빈스, 투수가 투구할 때 디딤 발을 잘 봐. 패스트볼과 변화구를 던질 때 각이 살짝 달라.”
“호오…….”
탁탁!
대호는 솔트레이크 비스의 투수에 대한 정보를 주고는 곧바로 더그아웃으로 걸어갔다.
또한 빈스 뿐만이 아니라, 대기 타석으로 가는 달튼을 불러 방금 전 말한 정보를 다시 한번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달튼은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난 듯, 깜짝 놀란 눈으로 대호를 돌아보았다.
혹시라도 지금 보여 주는 반응으로 솔트레이크에서 무언가 눈치챌 수도 있는 노릇.
대호는 그대로 뚜벅뚜벅 더그아웃 안으로 들어갔다.
“잘 들어봐. 내가 상대 투수를 유심히 봤는데…….”
물론 더그아웃으로 돌아오자마자 축하해 주는 선수들을 상대로 솔트레이크 비스의 투수에게서 찾아낸 버릇을 곧바로 알려 주었다.
“그게 사실이야?”
달튼에 이어서 다음다음 타석에 들어갈 3번 타자인 맷이 물었다.
“그래, 한 번 잘 봐. 진짜인지 아닌지 곧바로 알 수 있을 테니까.”
대호는 마운드 위에 서 있는 아드리안 펠릭스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팡!
“볼!”
초구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슬라이더.
빈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봤지?”
대호는 선수들을 보며 물었다.
“……?”
하지만 더그아웃에 있던 선수들은 그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대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하, 다시 한번 자세히 봐.”
아직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동료들을 보며 대호는 계속해서 집중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또한 대호는 한 번에 눈치챈 걸 아직 못 알아본 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선수들은 마치 투수를 찢어발기겠다는 듯 노려보았다.
그들의 표정은 투수 아드리안 펠릭스의 버릇 하나하나를 분석하겠다는 듯, 매우 비장했다.
펑!
“스트라이크!”
두 번째 공은 스트라이크였다.
하지만 선수들은 방금 전 초구와 다른 점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었다.
“정말이잖아? 대호의 말대로 발끝의 각이 달랐어!”
솔트레이크 비스의 선발이 던진 두 번째 공은 포심 패스트볼이었는데, 중심축이 되는 발의 각도가 변화구를 던졌던 초구와는 확실히 다름을 알 수 있었다.
따악!
타석에 있던 빈스도 3구째에 드디어 대호가 전해 준 투수의 버릇을 확인했는지, 바로 타격에 성공하였다.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 선수 중에서 가장 타격감이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었기에, 약점을 확인하고 바로 반응을 하여 안타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다만 단타에 그쳤는데, 대호의 말이 사실이란 걸 깨닫고 흥분하는 바람에 배트 중심에 제대로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달튼, 내 친구라면 너도 한 방 쳐 버려!”
대호는 타석에 들어서는 달튼을 향해 응원의 목소리를 보냈다.
휘익!
그러면서 휘파람을 한 번 불었는데, 달튼은 타석으로 걸어가며 배트를 빙빙 돌리며 긍정의 답변을 했다.
한편, 선두 타자부터 연속으로 타격을 허용하자, 솔트레이크의 투수 아드리안 펠릭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금 가장 크게 소리친 대호는 이제 막 트리플A에 콜업 된 신인이었는데다가, 방금 전 타석에서 투런 홈런을 허용했으니까.
‘감히 날 무시해!’
아드리안은 대호의 목소리를 응원이 아니라 상대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거기에는 분명 대호의 퍼포먼스도 한몫했다.
트리플A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고 천천히 산책하듯 베이스를 돈 건방진 녀석이 큰 소리를 지르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쉬잉!
아드리안이 던진 공은 슬라이더였다.
그런데 그 공은 포수의 미트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타석에 서 있던 달튼의 얼굴 쪽으로 날아들었다.
퍽!
“악!”
달튼은 투수의 발끝을 주시하며 변화구라는 걸 깨닫고 타격 준비를 취했는데, 갑자기 공이 날아오자 급히 몸을 틀고 움츠렸다.
최대한 공에 맞는 부분을 작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히트 바이 피치!”
‘저 자식이!’
대호는 보았다.
방금 전 나온 데드볼은 결코 실투가 아니었다.
솔트레이크 비스의 투수 아드리안이 던진 공은 일부러 타자를 맞추기 위해 던진 게 분명했다.
대호가 보기에는 그의 팔 각도나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가 정상적인 위치가 아니었지만,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투수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공을 던졌는지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달튼이 공에 몸을 맞기 전 최대한 몸을 틀고 움츠렸다는 사실이다.
달튼이 공에 몸을 맞고 쓰러지자, 라스베이거스 에비에이터스의 더그아웃에서 빠르게 의료진이 뛰어나갔다.
프로 선수가 던진 공에 맞은 충격은 보통 오토바이에 충돌한 것과 같은 충격량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런 충격을 머리 근처에 받았으니 의료진이 살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의료진이 뛰어오자 쓰러졌던 달튼이 손을 내저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면서 우측 어깨와 견갑골 부근을 만지긴 했지만, 걱정할 만한 상황은 아닌 듯했다.
‘그나마 다행이네.’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과 별개로, 대호는 솔트레이크 비스의 선발투수 아드리안에 대한 적개심이 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다른 팀이라 하지만 동업자 정신이 부족하군.’
대호는 야구에 관해선 무척이나 진지한 사람이다.
어려운 가정사 때문에 포기한 야구, KBO 리그의 에이스,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올랐으나 첫 턴 입성 실패까지.
2회차와 3회차에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야구 선수로서의 삶을 살았으나, 언제나 아쉬움이 한 끗 남은 삶을 살았다.
그렇기에 이번에야말로 야구 선수 최고의 명예를 달성하고, 어쩌면 회귀도 끝날지 모르는 마지막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약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살아온 것 아니겠는가.
그런 대호에게 지금 아드리안의 행동은 결코 용서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본때를 보여 줘야겠군.’
대호는 굳게 다짐했다.
또한 실제로 그렇게 본때를 보여 줄 능력도 충분히 있었고.
실제로 경기에서 더티 플레이를 하던 이들은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세계청소년야구대회에서 일본 팀과 더블A 리그에서 샌안토니오 미션스의 배터리가 좋은 예였다.
자신을 향해 계속해서 빈볼을 던지려던 일본 청소년 대표 팀에게 확실한 보복을 가했고, 약물러라며 도발하던 미션스의 배터리를 상대로도 찍 소리도 못 내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 대호에게 솔트레이크 비스의 선발투수 아드리안 펠릭스가 자신과 팀 동료에게 악의를 품고 덤벼든 것이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조만간 마운드에서 내려오게 만들어 주겠어!’
자신이 던진 공에 맞아서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1루로 걸어가는 달튼을 보면서도 미안한 감정 하나 없이 뻔뻔한 표정을 유지하는 아드리안을 보며 대호는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 * *
“아! 달튼 선수, 무사하나요?”
라디오 중계석에 앉아 중계를 하고 있던 장내 아나운서는 놀란 눈을 크게 뜨며 몸에 공을 맞은 달튼을 걱정하는 멘트를 날렸다.
“다행입니다. 몸에 공을 맞고 쓰러졌던 달튼 선수,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예.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듯합니다.”
아나운서와 해설은 경기 상황을 지켜보며 방금 전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제구력에 큰 문제가 보이지 않던 아드리안 선수였는데, 실투겠죠?”
아나운서가 방금 전 상황에 대해 운을 땠다.
그러자 해설이 대답을 이어 받았다.
“아무래도 연속해서 얻어맞고, 특히나 두 번째 타자로 나온 대호 정 선수에게 홈런을 허용한 게 머릿속을 어지럽게 만든 것 같습니다. 멘탈이 흔들린 거죠.”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두 사람 역시 방금 전 아드리안이 던진 공에 달튼이 몸에 맞은 상황은 아직 홈런의 영향으로 제대로 된 공을 던지지 못한 실투라는 추측을 내놓았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런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과도한 퍼포먼스로 인해 보복구를 던지더라도, 대호의 다음 타석에 던지는 게 불문율이니까.
같은 팀의 다른 타자에게 던지는 건 불문율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나운서와 해설도 아드리안의 마음속이 완전히 헝클어졌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실수로 인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아드리안 선수, 이제는 마음을 다잡고 던져야 해요.”
그러나 아드리안의 진정한 마음을 파악한 사람은 대호 이외에도 또 있었다.
바로 그와 오랜 시간 합을 맞춰 온 솔트레이크 비스의 배터리, 포수였다.
4회차는 명전이다